[경전산책] 화엄경(華嚴經) ③
③ 十佛로 세간에 머무시는 한량없는 부처님
<사진설명>송광사화엄탱(보물1366호).
봄비가 대지를 적시는 계절이다. 각기 다른 길을 거쳐 온 물방울들이 강으로 모이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큰 바다가 파랑이 없이 잔잔하면 만상이 바다에 도장 찍히듯 나타나는 것이 해인삼매이다. 해인삼매에 들어서 지금도 부처님께서 설법하고 계시는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의 부처님, 보살이 깨달음을 얻어 이루는 부처님을 한 번 더 뵙기로 하자.
『화엄경』에서는 보살이 수행을 원만히 하여 도달한 깨달음의 세계를 ‘여래출현(如來出現)’으로 보이고 있으며, 또 세간을 여읜다는 ‘이세간(離世間)’ 으로 나타내고도 있다. 그런데 이세간이란 세간을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 있으면서 세간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간에 머무르되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으며,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處世間如虛空 如蓮花不着水]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항상 청정하며[處染常淨], 티끌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경계[同塵不染]이다. 즉 이세간이란 연(緣)을 따라 나타나시지만 보리좌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부처님 경계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경에서는 그러한 법계에 충만하신 한량없는 부처님을 열[十]이라는 원만수를 사용하여 십불(十佛)로 나타내고도 있다. 만상이 본래로 비로자나진법신이라는 융삼세간의 십신(十身)이 있는가 하면,「이세간품」등에서 보이듯이 온전한 깨달음을 이룬 십불이 있다.
성정각불 또는 무착불은 세간에 안주하여 정각을 이루기 때문이다. 세간에 안주하므로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정각을 이루므로 생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열반에도, 생사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무착불’이다. 삼종세간이 원융 자재한 융삼세간불도 무착불에 다름 아니다.
생사 거래하는 중생과 열반을 증득한 불보살, 그리고 그 의보인 예토와 정토가 부처님의 분상에서 보면 차별경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생사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고 열반이 고요한 것이 아니라,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이 본래 평등해서 제도할 것 없이 길이 제도하니 ‘화불’이며 ‘열반불’이다.
안주(安住)하는 까닭에 심불(心佛)이니, 마음을 쉬면 곧 부처이고, 마음을 일으키면 부처가 아니다. 마음을 쉬면 법계가 두렷이 밝고 마음을 일으키면 법계가 차별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어 편안히 머무르면 법계의 제법이 우리의 이 몸[五尺身]에 나타난다. 금일 나의 오 척 되는 몸이 허공법계에 두루하여 이르지 못함이 없는 것이 정각이니,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는 까닭에 ‘법계불’이다.
존재들 사이의 한정된 한계가 사라져서 서로 걸림이 없으면, 오척신과 미세한 티끌과 거대한 수미산 등이 원융한 법성으로서 서로 다르지 아니하고, 시방삼세 허공법계가 다 불신(佛身)이다. 진여가 과거에 없어진 것도 아니고 미래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현재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처럼 여래도 과거는 불멸이고 미래는 불생이며 현재는 부동이다. 형상이 없어서 허공과 같아 헤아릴 수 없다.
반면에 법성에 대성(大性)과 소성(小性)이 있어 결정된 까닭에 ‘성불(性佛)’ 또는 ‘본성불’이니, 만약 한 법이 일어나면 내외가 없음이 대성이고, 한 법의 지위가 일체중에 두루 있음이 소성이다. 위로는 묘각에서 아래로 지옥에 이르기까지 다 불사(佛事)이니, 이 일을 믿는다면 ‘업보불’이다. 자신도 본래 여래성기임을 철저히 믿는 그 신심에 의해 구경의 불과(佛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원에 의해서 부처가 출생하니 ‘원불’이며, 여의보주처럼 부처님의 은덕이 중생을 덮고 즐거움을 주므로 ‘여의불(如意佛)’ 또는 ‘수락불’이다.
큰 바다가 모든 중생의 몸과 형상을 모두 도장 찍어 나타내듯이[引現], 부처님의 보리(菩提)도 중생들의 마음과 근성과 욕락과 번뇌 등을 다 나타내면서도 나타내는 것이 없다. 보리가 무성(無性)이므로 여래의 보리에 중생의 마음과 형상이 비치는 것이니, 그러한 해인삼매의 법이 한량없고 집착함이 없으므로 ‘삼매불’이다. 법계의 삼라제법이 무진이라도 만약 해인으로 포섭한다면 다 유일한 해인정법이니, 세계가 부처를 지니고 부처가 세계를 지니므로 ‘지불(持佛)’ 또는 ‘주지불’이다. 이러한 십불은 부처님께서 인연따라 세간에 나투심을 알 수 있게 한다.
중생의 형상이 같지 아니하여 행하는 업과 음성도 다양하기 그지없으므로
그 일체를 다 능히 나투시니 해인삼매의 위신력이다. 「현수품」
해주 스님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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