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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환경인권 2'의 82항]
종이책이 문제라면, 전자책이 道지요!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김오식
종이책(c-book)은 중성지의 비싼 책이 아닌 경우 25~30년의 라이프사이클이어서 환갑에 5트럭의 과학기술서적을 폐기물로 처리했답니다. 그리고 지나간 60여년 동안 그 높은 공자님 말씀과 과학논리로 살면서 한번도 감사의 말씀 올리지 못해, 1주일간의 곡부 순례여행 후, 달포에 걸쳐 과학자 순례여행차 유럽에 갔다가, 반-고흐의 미쳐 오르는 보리밭과 노고지리의 명화를 보고서, 내 어린 시절 보리 지게 받쳐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던 바로 그 장면이라고 회상하면서, 하이네켄 맥주 공장에 가서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는데, “아빠는 한국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으면서 영어도 안 쓰는 나라를 마음대로 다니세요. 한국에 돌아가거든 당장 보청기 하세요!” 딸래미의 추상같은 불호령이었다.
귀로 듣기보다 눈으로 보고 다녔으니, 전연 문제가 없다고 여겼는데. 인생 60년 만에 아차차 깨닫고 보니, 어린제 볼테기 많이 맞고 기합 많이 받은 것이 열병을 자주 앓은 탓이란 걸 비로소 알았지요. 분명히 나는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지금은 더 구분 못하는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이라고 자인하니, “아빠는 눈치 제로, 코치 제로!”라고 막내딸이 확인하고, 옆 자리의 마누라는 ‘당신은 상당히 먹었어요! 특히 내말은’라며 거든다.
“그래 미안하다. 60년 동안 눈치 없이 코치도 없이 살아왔고, 돈벌 줄 모르고 살았고, 돈쓸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남 대접할 줄 모르고 남의 대접 받을 줄도 모르고, 남이 나를 오해했고, 내가 남을 오해하면서 살아왔다. 그래도 ‘사바사바’ 하자는 소곤대는 소리일랑 못 듣고 살아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차피 인간이란 이 푸른 지구상에 휴가 나온 존재 아니니! 어떤 이는 병가로... 어떤 이는 무전취식으로 ........................................”
나 자신이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이란 걸 체득하고 보니, 앞으로 남은 3모작 인생이 몹시 걱정 되었지요. 책이 문제라면서 종이책도 낡아서 폐기처분했으니, 그런 길로 가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헤매이는데 ........... 컴퓨터 속에 길이 있더군요. 그래서 노트북 PC와 친구하며 살기로 했지요. 그때까지 써왔던 글과 책을 모두 e-book화 해나갔지요. 그 길이 바로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인 내가 “책이나 쓰며 사는 사람”으로 쭈욱 살아갈 수 있는 道라고 믿습니다.
지난 오뉴월엔 달포간, 아일랜드로 시집간 딸래미의 사돈댁 목장 (예이츠의 시향 ‘이니스프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에서 보청기 달고서 “아 목동아!” 노래하며 지냈지요. 문제인 것은 청신경이 별로 복원되지 않아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신세를 피할 수 없음이오. 그래도 나의 벗 노트북 PC와 함께 하며, ‘위클로우’ 국립공원에 가서는 40여 년 전 마산고등학교 앞의 완월동 이발관에 걸려 있던 “저 산 너머 …”(독일시)를 영어로 용감히 번역해, 산을 오르는 길손들에게 “Over the mountains, there’s a happiness”라며 목소리 크게 안내했지요. 내 얼굴이 좀 검어졌는지, “Oh! Danny boy” 하며 화답해 주더군요.
그제서야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김오식이 보총기(?) 달고서, 지구 저편에서 다시 이편의 한국으로 돌아와 PC와 친우하면서 종이책을 모두 전자책으로 바꾸어가고 있지요. PC에다 스캐너 사다 붙이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김오식 저술의 종이책(c-book) 100여권을 전자책(e-book)으로 바꾸어나가니 벌써 125권을 e-book화 해버렸답니다. 인터넷 망에서 팔아주기도 한다기에, 내친 김에,,,,, 한글시를 영시로 몇 개 번역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천만다행 전공이 같은 아일랜드 사돈과 “영문 전공서적”도 저술하기로 했지요. 이런 것은 죄다 PC와 e-book의 은혜라고 믿지요.
OOO 친구! 그리고 모든 친구들! “종이책이 문제”라면 “전자책”으로 바꾸세요. 10개 트럭의 책도 2~3cm USB 속에 쏘옥 들어가 버립니다. 그 道 즉 방도는 딸래미한테 며느리한테 모가지 힘 빼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싸우면서 건설하자!’ 고 외치면서 밀어부치면 됩니다.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김오식은 전화가 오면 목소리 커져서, 오해하고 오해받고 하여, 매우 두려워진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 ocicaokim@gmail.net로만 대화합시다. 어쩌다 둘레길에서라도 마주치면, 그냥 싱긋이 미소만 나눕시다.
한편이긴 한데요! 종이책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흉이지요. 열대림과 지구숲을 베어내는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랍니다. 종이서류를 포함한 모든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바꾸고 종이책을 퇴출시킨다면, 열대림과 지구숲을 보전하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거의 방지할 수 있지요. 현재로서는 그럴 수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종이책 퇴출에 의해 지구온실가스의 전-지구적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그 절반으로 감축시키면서, 동시에 그로 인해 보전되는 수많은 지구숲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되는 배가적, 이중적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종이책이 문제라면 이제 퇴출시킵시다!
“책이나 쓰며 사는 사람”의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김오식 [마산고 29회 동문회보 통권 253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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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환경인권 2'의 83항]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예찬
“미스 코리아”, “미스코리아 파이팅” ..... 서울 올림픽으로 한참 들떠있던 1988년 8월말까지 3개월 동안, 저 뙤약볕 아래서 보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빨간 옷을 입고서 올림픽 응원 하는 붉은 악마(Reds)들이 오죽이나 더워서 한국 제일의 미녀 ‘미스 코리아’를 외치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 자막에 비로소 “필승 코리아”가 나왔다.
유행가 ‘허공’의 노래 가사를 연필로서 두 달이나 따라 적지 못하고, 가사집을 구입해 보고서야 라디오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가사를 외우고 했던 나는 어린 시절 “열병”을 자주 앓아 ‘가는귀가 좀 먹은’ 탓인지, 필승 코리아를 미스 코리아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스 코리아를 필승 코리아로 제대로 알고 보니,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차라리 ‘미스 코리아’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10여년이 넘게 흐른 50대 초반의 어느날 아침, 막내딸의 대학 등교를 도우느라고 차를 운전해 전철역으로 가던 중, 며칠 계속 그 시간이면 “간큰 도너츠”가 라디오 광고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참 재밌고 맛있는 도너츠인가 보다고 생각하다가, 딸래미에게 “저 간큰 도너츠 먹어 봤어?”라고 물어보자, 우스워 죽겠다고 요절복통을 하고 만다. ‘던킨 도너츠’였던 것이다.
사실인즉슨 나는 환갑 때까지 내가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이란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했다. 그러한 연유로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도 나는 항상 외톨이였고, 따돌림 당했다. 친구들의 속삭이는 소리, 수군대는 소리 및 사바사바 하자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으니, ‘말로 하는 정보에 대한 먹통’이기도 했다.
어린 제 열병을 많이 앓은 탓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후유증이었다는 사실을 대학졸업 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근무하면서 방사화학 등을 담당하고부터 겨우 알게 된 것이었다. 1945년 8월 9일의 나가사키 원폭투하 시에, 그와 마주 보던 300~400여 미터 높은 산동네 달동네에서 사셨던 부모님은 800미터 상공에서 폭발하던 원폭의 감마선을 그날 일을 준비하려 나오시던 아침에 직사광선으로 그대로 맞이하셨던 것이다. 그 후 평생 동안, 단 하루 밤도 끙끙대지 않고서는 지낸 일이 없으셨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 탓으로 나는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은 베개가 흥건히 젖도록 앓았다. 자라면서 좀 덜하기는 했지만, 서른 살 아니 마흔 살까지 그러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는 550mm 마산지역의 물폭탄 난리에 논밭이 모두 진흙으로 덮히어서 부득이 “훈련 받으면 좀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연히 건강에 문제가 생겨 중도에 포기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직사광선을 받으면 식은땀 흘리고 쓰러지는 일’은 전연 치유되지 아니했고, 평생을 안은 채 살고 있다.
그래서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의 나였지만, 스스로는 인정하지 아니하고, 눈치코치도 없이 과학적인 응답으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산다”고 주변의 친인척들은 맨날 책이나 보는 나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송충이는 솔잎만 먹지 않는데요, 봄 동산에 가보면 솔잎이 없으면 갈잎도 먹고 감잎도 잘도 먹는데, 무슨 말 하는 겁니까!’로 대꾸했더니 혀를 차고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면서 은근히 도와달라고 주문했는데, 소식 감감이니 답답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런 속뜻을 알 턱이 없는 나는 ‘백지장을 왜 맞들어요. 나는 그런 필요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아닙니다. 자기 혼자서도 할 수 있을 둘이서 맞들다니, 그런 비경제적인 일이나 하면서 사는 사람 아닙니다’고 응답했더니, 눈 꼴씨면서 가버렸다.
내 주장을 좀 할라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난 돌이 쓸모 있는 돌입니다. 그래서 장인의 정 맞습니다. 쓸모없는 썩돌은 정 맞을 가치도 없는 것 아닙니까?’로 맞받아치니 콧김 힝 내면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은근 슬쩍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충고를 하는 2~3년 선배나 동급생들이 있었다. 내가 고개를 숙일만한 대상도 아닌 것들이라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침략이나 받은 동양인의 주식인 벼는 익어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지만, 선진국민의 주식인 밀은 아무리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세계인의 70%가 밀을 주식으로 합니다. 나는 벼 같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아무데나 고개 숙이는 사람 아닙니다!’고 대드니, 그대로 휘익 돌아서 버렸다.
직장에 들어가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 낸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 무슨 말입니까. 굴러온 돌은 운동 에너지가 있으므로, 위치 에너지만으로 제자리만을 지키는 돌을 당연히 빼내지요. 여기 몇 년 전에 굴러온 돌 아닌 사람 누가 있어요. 한민족도 2,400여 년 전에는 한반도에 굴러온 돌이었습니다!’고 일장 연설 아닌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인상 팍 찡그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주장하거나 방향 전환을 좀 해야 된다고 주장할라치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새로운 생각을 버리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제서야 나는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어떤 넘이 화장실 갑니까? 그냥 싸고 말지요!’라고 응대했다. 그러면 그도 맞는 말이라고 얼굴 돌리면서 응수해 주기도 했다.
나는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이면서, 그걸 전연 모르고 살았으니, 학교 생활도 외톨이였고, 직장 생활도 외톨이였다. 회사 식당에서도 혼자 밥 먹기를 좋아했다. 바깥의 식당에서는 1~2인 자리만 골라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밥도 혼자서 못 먹는 사람은 관계중독자’라고 핑계 대었다. 그래서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없는 처지로 발전하여, 프리랜서로 살아오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발표된 미국의 파킨손 법칙에서는, 직장에서 남에게 충고하거나 남의 충고에 대응하는 사람은 미국의 공무원으로서도 크게 진급하거나 정년퇴직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파킨손 법칙은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없고 코치 없는 나는 전연 몰랐던 탓이다.
21세기에 이르면서,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참으로 세상 즐겁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유행가 가수도 20년만 하게 되면, 가수의 70%가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된다. 아무리 즐거워도 그 높은 소음 속에 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진다. 가수 외의 악사들도 그러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도 그러하다.
자동차공장, 조선공장, 정유공장, 화학공장, 원자력발전소, 기계공장, 할 것 없이 모든 공장에 20년 이상 근무하게 되면, 아무리 주의를 철저히 해도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된다. 공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아도, 나이 60세를 넘기게 되면, 그 40%가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된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에게 “저 넘의 영감쟁이 가는귀라도 좀 먹었으면 내 살기 편할 텐데”라고 자주 짜증을 내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어머니의 소원을 일찌감치 들어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1세기 현대의 젊은이들도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40%에 이르고, 심하면 60%에 이른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음악을 즐긴다고 레시버를 맨날 꽂고 다닌 탓이란다. 안 그래도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은 대충 전체 인구의 30%가 된다.
서울의 일류대학인 S대학에 강의할 때의 일이다. 내 자신이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으로 인정하지는 아니했지만, 조금은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환경과 건강’ 과목의 강의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파악해 보니, 그 30%는 나의 젊은날처럼 조금은 청력이 부족한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군대나 운동회 및 잡종 모임 등에 가보면, 일류대학 출신과 대학원 출신들이 ‘고문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왔다. 그보다 30년 전 부산의 전문대학에 강의할 때는 학생들의 청력이 90% 이상이 매우 좋다는 것을 느꼈다. 청력이 좀 예민하지 않아야, 남녀공학의 옆자리 여학생과 남학생의 ‘사랑스런 숨 쉬는 소리’를 듣지 않고 공부(工夫)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40% 이상으로 사회의 주류가 되고 있다. 오히려 ‘가는귀가 좀 먹은’ 사람이 큰일을 해내고 있다. 옆사람의 쓰잘데기 없는 말소리와 사바사바 하자는 수군그림을 잘 듣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청력이 좀 시원찮은 젊은이나 ‘가는귀가 좀 먹은’ 학생은 대학졸업 시까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및 영어의 4개 국어는 그 신문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어문실력이 쌓아지리라고 보지만, 영어 듣기, 일본어 듣기, 중국어 듣기 등의 3개 외국어에 대한 “외국어 받아쓰기 연습”을 부지런히 하여, 글로벌한 인재가 되게 해야 한다.
세익스피어는 “성격이 운명이다” 즉 ‘His character is his fate’라고 했다. 어떤 성격을 갖느냐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지, 청력이 좀 달리거나 ‘가는귀가 좀 먹었다’고 하여,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터득하고 실천해야 하리라.
‘가는귀가 좀 먹은’ 먹통 만세! 만만세!!
[환경인권 2] : 김오식 지음의 전자책 142~152p
eISBN 480D13095669(정가 2,500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우리카페에 숨은 인재가 많습니다. 저도 이번기회에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모두 e-book화 하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