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씨와 우현보]
세 아들 ·큰손자 잃고 멸문당할 뻔
유배된 뒤 모진 핍박 … 이방원과의 인연으로 2차 왕자의 난 후 가문 재기
아파트와 송림에 둘러싸인 월곡역사박물관. 문중에서 만든 유일한 박물관이다(왼쪽 사진). 단양 우씨 시조단과 재실 희역당이 있는 단양군 적성면 애곡마을.
비극이 찾아온 것은 1392년 4월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되면서부터다. 참살된 정몽주의 시신을 거둬준 이가 바로 우현보였다. 우현보는 계림(경주)으로 유배당하고, 아들 5형제도 뿔뿔이 유배를 당했다. 그해 7월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내쫓기던 날, 우성범은 개성 남문 밖에서 공개 참살되고, 조선 개국이 선포된 뒤에는 유배지에 있던 첫째 홍수, 넷째 홍득, 다섯째 홍명이 장살(杖殺·곤장을 맞고 살해)됐다. 곤장을 많이 맞으면 장독이 올라 죽는 수도 있지만, 사형(死刑)이 따로 있었으니 죽지 않을 만큼 때리는 게 장형(杖刑)이다. 그런데 세 형제가 죽음에 이른 것은 죄다 정도전(鄭道傳)의 사주로 빚어진 일이라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후손들 대구에 시민공원 겸한 박물관 만들어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의 우탁 출생지에 세워진 사적비.
정도전의 어머니가 단양 우씨인데, 어머니의 외할머니가 노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도전은 벼슬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었다. 고려시대는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어머니가 천민이면 그 자녀도 천민의 신세였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우씨 집안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출신 성분을 거론하며 음해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고려와 함께 몰락한 우씨 집안이 극적으로 부활한 것은 이방원이 주도한 제2차 왕자의 난 때였다. 정종 2년(1400년)에 우현보의 문하생인 이래(李來)가 이방원의 바로 위 형인 방간이 방원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우현보에게 알렸고, 우현보는 이 사실을 둘째 아들 홍부에게 알려 이방원에게 대응하게 했다. 이방원은 즉시 사병을 움직여 방간의 사병들을 제거했고, 정종으로부터 권력까지 승계할 수 있었다.
고려의 원수이자 집안의 원수인 조선에 우현보가 돌연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왜일까? 이는 우현보와 이방원의 인연 때문이었다. 이방원이 과거에 급제할 때 우현보가 시험관을 맡았다. 당시 급제자들은 자신을 입신시켜 준 시험관을 은문(恩門)이라 칭하며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 그들 사이에서는 스승과 제자보다도 더 강한 인연이 맺어졌다. 이 같은 인연이 이방원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홍부와 셋째 아들 홍강은 원종공신이 돼 우씨 집안은 정치적인 재기를 했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시대에도 벼슬이 끊이지 않았다.
양호당 우현보의 후예들
우승흠(대종회 회장대행), 우영제(대제학공파 회장), 우문식(오파회의 총무), 우종택(예안군파 회장), 우기정(대구컨트리클럽 회장), 우종호(전 외교통상부 대사), 우윤근(국회의원), 우원식(국회의원), 우진명(미성산업 대표), 우대규(한일약품 회장), 우윤근(서울화수회 회장), 우종근(판서공파 회장), 우억기(전 성균관 부관장), 우국일(예비역 장군), 우광택(부장판사)
단양우씨의 시조는 고려시대 지방단체장을 지낸 현(玄)이다. 우씨의 본관은 단양, 예안, 영천, 강주, 목천등 5본이 전해졌으나 모두가 단양우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오늘날 단양우씨 단일본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으로부터 시작한 단양우씨는 크게 10개파로 나눠진다. 홍수를 파조로 하는 대제학공파, 홍부를 파조로 하는 예안군파, 홍강을 파조로 하는 안정공파, 홍득을 파조로 하는 집의공파, 홍명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는 고려말 정승 현보의 아들형제들로 나눠진 것이다.
이후 원광을 파조로 하는 참의공파, 원명을 파조로 하는 봉상정공파, 국진을 파조로 하는 문강공파, 인열을 파조로 하는 정평공파, 희열을 파조로 하는 문숙공파등이 단양우씨에서 분파됐다.
▲마량면 수인마을에 위치한 단양우씨 세거비.
특히 현보의 아들 5형제가 번창해 단양우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중 예안군파와 안정공파가 많은 후손들로 번창했다.
단양우씨는 고려 충렬왕때 현의 5대손 중대의 아들 천규, 천계, 천석, 천우, 천성 5형제가 모두 과거시험에 합격하면서 중앙정치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를 계기로 단양우씨는 명문성씨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또 천규의 아들 탁은 고려말 대표적인 유림으로 역학을 개척한 대학자로 알려졌다. 또 천규의 큰아들 현보는 고려말의 명신으로 항상 검소한 생활로 청백리에 오르는 등 가문을 빛내게 된다. 이어 현보의 아들 5형제는 모두 벼슬길에 오르면서 각 분파의 파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