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의 은총 (마 5: 7)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긍휼이란 무슨 말입니까?
사전적 의미로는 가엾고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자비로 번역했습니다. 모두 비슷한 뜻입니다.
긍휼은 같은 급, 비슷한 수준의 대상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급의 사랑을 지닌 자가 낮은 심령 수준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넓은 의미로는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해내는 것도 긍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 말씀은 누가 누구를 긍휼히 여기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5장 4절에 자신을 놓고 애통하던 자가 더 발전하여 주변의 상대를 놓고 애통하는 것이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바로 마태복음 5장 6절의 의인이 주변 타락된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의인이 세인들을 바라볼 때 가엾고 불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영의 사람이 육의 사람을 바라볼 때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이 회복된 의인이 타락성에 점철되어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겠습니까?
설사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비판한다 하더라도 의인의 눈에는 한없는 연민(憐憫)의 정이 우러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도 진리를 모르고 방황할 때는 똑같이 그렇게 방탕하게 살아온 자신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렇듯 나의 심령수준이 높아지면 낮은 심령수준의 사람을 대할 때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의인의 눈에는 긍휼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이런 긍휼을 갖고 사는 자는 하늘이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는 나이지만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남을 긍휼히 여기니 하나님도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 은총을 베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6000년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던 죄인 중 죄인이 타락된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6000년 동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섭리하셨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타락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려고 끊임없이 불신당하시면서도 구원하시기 위해 몸부림치고 계십니다.
무지 가운데에서 해방되어 본성을 깨달을 그 날을 기다리며 가슴 조일뿐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재림주님도 그랬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되겠지요.
우리가 남을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고 은총을 베푸셨는지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내게 있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닮아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의 긍휼 은총을 얻을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