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믿나요, 공짜 핸드폰
“한 달에 만5천 원만 내면 된다더니 6만이 넘게 나왔어!”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준다고 하고선 이건 그냥 전화기야”
동네 형님 전화를 받고 경로당에 나가니 이현정씨가 너무 억울하다며 하소연을 한다. 완전 대머리에 두꺼운 돋보기를 쓰시고 한쪽 발이 말을 듣지 않아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니신다. 몸이 불편해서 말을 천천히 하고 발음은 정확하지 않다.
“가입한 데가 어느 통신회사인지 아세요?”
“몰러, 어떤 여자가 전화해서 한 달에 만5천 원만 내면 공짜로 스마트폰 준다고 했어”
작년에 매일같이 공짜로 전화를 바꿔준다는 전화가 왔고, 그 중 한군데가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보내줘도 된다’고 해서, ‘그럼 그러라고’ 말했을 뿐이란다.
“그럼 개통은 어떻게 했어요?”
“몰러, 아들이 시내 어디 가서 해가지고 왔어”
뭘 물어도 자꾸 모르다는 말을 먼저 하시더니 고지서를 한 장 내민다. 1월 달 요금이 진짜 62,000원이다. 통신회사는 케이피스엠모바일. 고객상담실로 전화를 하니 가입자 생년월일을 알아야만 진행된다고 한다. 이현정씨는 34년생이었다. 이 때부터 여기저기 전화하고 항의하고 교섭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첫 달에 요금이 많이 나온 건, 자기네들 탓이 아니라 전 통신회사 위약금 부분이고, 다음 달 부터는 만5천 원 정도 내면 된단다. 전 회사에서 할인받았던 통신비 위약금 3만6천 원과 바꾸기 전에 사용했던 10일치 요금 5천 원을 합해 4만천 원은 자기네 것이 아니라고. 케이피스엠모바일은 3년 약정이고 통신비는 월 35시간 기준 만 원 정도에 단말기 값 할부금 월 6,700원을 합한 다음 할인을 해서 매월 만5천원 정도란다. 첫달만 유심비 5,500원만 추가되었다고. 더구나 첫 달인 1월 달 요금 62,000원은 자동납부 되었다고 알려준다. 자세히 고지서를 보니 납부용이 아니라 통지용이다. 알뜰폰 스마트요금제라고 써 있는 걸 보니 아저씨가 스마트폰을 준다고 착각했나 싶기도 했지만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설명 들은 대로 아저씨에게 들려주니 더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여,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없어. 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여태껏 안 내고 있는데”
통장을 봐야 해서 할 수 없이 아저씨 전동스쿠터를 따라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은 시내에 집이 있어 노인네 두 분이 사는 평범한 벽돌집. 할머니는 커피를 내오면서 ‘괜히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바꿔서 사단이 났다’고 한마디 하신다. 통장엔 매월 기초연금하고 장애수당이 나란히 수입으로 찍혀있고 총액은 한 달에 30만 원이 넘지 않았다. 아저씨 말대로 62,000원이 한두달 새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아마 아들이 개통시켜 주면서 자기 앞으로 자동이체를 해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1월 달까지 만 칠천 원씩 인출되던 핸드폰비가 2월에는 단말기로 표시되어 9,700원이 빠져나갔다.
“여기 9,700원은 뭐죠?”
“몰러, 내가 알 수가 있나”
당신 통장에서 빠져나가는데도 모른단다. 느낌이 이상해서 고객상담실로 다시 전화해서 전 통신회사를 물어보니 에스케이텔링크라고 알려주었다. 그 회사의 말은, 작년 3월에 3년 약정으로 가입했다가 올해 초에 해지했기 때문에 위약금은 당연하고, 단말기 값이 25개월 동안 인출된단다. 더구나 알뜰폰이라 단말기를 되사주지도 않는다고. 62,000원이 문제가 아니라 24만원이 넘게 나가야 하는데도 아저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드리니 아저씨가 딸에게 전화해서 바꿔주었다. 작년 말인가에도 휴대폰이 배달되어 자기가 반품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또 아들에게 전화해서 바꿔 주었다. 자기가 1월 중순에 개통을 했는데, 거기까지는 잘 몰랐지만 어쩌냐고 되묻는다. 아마 여러 번 이 문제로 전화를 한 듯했다. 아버지는 큰 돈이 나가게 돼서 걱정이 태산이라 되물리고 싶어 자꾸 전화를 해서 오라고 했을 테고, 자식들은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으니 돈을 더 드리면 되는데 자꾸 전화해서 오라가라 하는 아버지가 성가셨으리라. 아무튼 한 달도 더 지났기 때문에 반품할 수 없고, 전 통신회사로 돌아가면 지금 통신회사 위약금과 단말기 값이 나갈 것이다.
아저씨는 주변에서 내가 ‘이런 일을 잘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청했으나 법적으로는 별 방법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부딪혀 보는 수밖에. 먼저, 통신회사에 전화를 해서 엄중히 항의를 했다. 시골 사는 노인네에게 과장광고를 하지 않았는가. 통신회사를 바꾸면 전 통신회사의 위약금이 발생되는 점, 전 단말기 대금을 지원하지 않는 점 등을 정확히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 기초연금 받고 사는 노인네에게 그냥 공짜폰이고 한달에 만5천 원만 내면 된다고 현혹한 책임을 져라. 상담실 아가씨는 연신 미안하다면서도 통신회사는 접수만 받을 뿐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만 했다. 대신 대리점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그 쪽으로 한 번 전화해보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대리점이었다. 다시 또 노인에게 과장광고를 한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광고를 하거나 개통을 할 때, 다 녹음을 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다가 위약금이 누락되었다면서 3만 원을 입금시킨단다. 전 회사 단말기 값은 자기네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책임이 있으니까 전 단말기를 되사가라고 따졌다. 그럴 수는 없다면서 녹음을 확인해서 내게 과장광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다며 시간을 이틀 달라고 했다. 삼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해서 항의했다. 통신회사에는 그 대리점에 벌칙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림점 측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 방안을 찾으라고 압박을 했다. 결국 대리점 측과 협의해서 5만 원을 더 받기로 타협했다. 총 8만 원, 위약금과 전 단말기 값 27만 원 중에서 3분지1을 받아내는데 그쳐야 했다.
아저씨는 총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아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통장에 찍힌 8만 원을 보고 아주 좋아 하셨다. 다음에 아저씨에게 또 전화가 왔다. 자꾸 핸드폰에 5천 원을 내라는 문자가 뜬다고. 확인해 보니 작년 3월에 바꾼 전 회사 미납요금이란다.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해서 아저씨에게 납입하라고 했다.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가 온다. 아저씨가 술 한잔 사야 한다고. 사실을 다 아는 나는 미안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또 다른 전화가 매일 몇 통씩 온다. 핸드폰 바꾸라는 아리따운 아가씨 목소리다. 한마디 쏘아부치렸더니 자동응답기다. 그냥 끊을 수밖에.
아저씨, 핸드폰 공짜로 드려요.hwp
첫댓글 와웅~ 좋은 일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