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왼쪽·47·부산 해운대구 좌동) 씨와 딸 하다솜(신라대 영어영문4) 씨가 지난 16일 임시개장한 부산시민공원의 하야리아 잔디광장을 거닐고 있다. 두 모녀는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푹신폭신한 잔디밭의 느낌을 만끽했다. 전민철 프리랜서 jmc@kookje.co.kr
사각사각, 폭신폭신. 여간해서는 발바닥으로 잘 느낄 수 없는 감촉입니다. 여름이면 녹아내릴 듯 끈적한 아스팔트나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훨씬 익숙하지요. 운동화 아래가 쿠션이라도 깐 듯이 부드럽습니다. 자연의 잔디가 이렇게 푹신한 것이었는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잔디밭이라면 줄이 쳐져 있고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주의 간판이 걸려있는데 익숙해서 일겁니다. 드넓은 잔디 위를 아무런 제지 없이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것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참 좋은데 이래도 될까' 하는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직은 잔디들이 다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그야말로 푸르른 잔디밭이 될 것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2시께 부산시민공원(부산진구 범전동)을 찾았습니다. 그 다음날까지 임시개장 기간이라 많은 시민들이 산책 겸 나들이를 나와있었습니다.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은 하이힐을 벗어들고 해변가 모래 위를 거닐듯이 하야리아 잔디광장을 거닐었습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공원의 잔디 위를 걷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영화에선 성공과 돈을 좇아 달려오던 리차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로부터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배우는 에피소드를 그렇게 풀어냈습니다. 저에게 그 장면은, 대도시 한가운데 그렇게 푸르고 넓은 공원이 있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게 참 멋있어 보였더랍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장면을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게 됐습니다. 부산에도 다음 달 1일이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잔디밭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시원한 분수와 폭포가 있는 시민공원이 활짝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미군 주둔지였던 이곳이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염원이 모여 결국은 모두의 쉼터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민공원 임시개장 때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은 가장 인상깊은 공간으로 드넓은 잔디밭을 꼽았습니다. 산이 많은 부산에서 이렇게 큰 평지의 잔디밭을 거닌다는 게 정말 반가운 거지요. 게다가 근교나 야외가 아닌 도심 한가운데서 푸르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섞여 있습니다. 밤 11시까지 여는 공원이니 밤 산책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걷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인 것도 매력입니다. 중간중간의 나무 벤치에서 아픈 다리를 쉬어가면서도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봄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도심 녹지에 대한 칭찬과 함께 앞으로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시민공원 측은 이곳을 술·담배·쓰레기가 없는 3무(無) 공원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술은 모든 소동의 근원이 될테니 막는 겁니다. 담배 역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특히 담배꽁초는 공원을 더럽히니까 당연히 금지하는 겁니다. 공원 내 쓰레기통도 최소화할 계획이랍니다. 공원에서는 아예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혹시나 생기면 되가져 가 달라는 뜻입니다.
다음 달 1일이면 부산시민의 쉼터이자 '허파'인 시민공원이 문을 엽니다. 정식 개장 전 한 곳 한 곳 찬찬히 살펴보며 앞으로의 공원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잎을 많이 달지 못하고 조금은 빈약해 보이는 나무들이 5년 후만 되어도 풍성한 잎을 자랑할 겁니다. 더 멋있어질 미래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시민공원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 함께 갈까요, 푸른 숲길…함께 즐겨요, 문화 향기
- 넓은 잔디에 숲터널 '거대한 도심정원' - 음악·터널분수 폭포 보기만해도 시원 - 미로공원·뽀로로도서관 아이들에 인기 - 도자기·금속·목공예공방·북카페 등 - 곳곳에 문화예술 체험·휴식공간 산재
지난 16일 찾은 부산시민공원은 그야말로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로 둘러쌓여 있었지만 워낙에 넓어 시원한 느낌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여러 곳의 입구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묘미였다. 어디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산책 코스를 달리할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이날 기자는 국립국악원 맞은편인 북문에서 시작해 부전천과 문화예술촌, 하야리아 잔디광장 등을 돌아보고 18일에는 부산진구청 쪽 입구에서 시작해 전포천을 건너 '북(book)카페'와 참여의 정원 등을 둘러보았다.
■문화의 향기 물씬
애기동백나무로 만든 미로공원. 생각보다 출구찾기가 쉽지 않다. 전민철 프리랜서 jmc@kookje.co.kr
시민공원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현직 작가들이 입주해 있는 문화예술촌의 공방들이다. 시민공원 측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방을 개방하는 조건으로 입주 작가를 모집했다. 또 시민들의 체험이 가능한 분야를 골랐다. 그래야 시민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공방에서 문화적 소양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다시 공방 이용을 위해 시민공원을 자꾸 방문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곳 진영섭 금속공예공방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과거 시민공원 터에 주둔했던 미군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었다. 베레모를 쓴 군인의 실루엣을 잘 살린 작품에서 예술성과 역사성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금속공예는 다른 것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부분이라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촌에는 목공예·도자기 공방 등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박태홍 목공예 공방에서는 재미있는 소품을 발견했다. 아주 멋스럽게 낡은 철제 서랍장이었는데, 그것의 출처는 미군부대라고 한다. 박태홍 작가는 "하야리아 부대 내의 물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람에게서 사들였다. 제 자리를 찾은 셈이니 더욱 이 공간에 잘 어울릴 것"이라며 웃었다. 이 공방에서는 국산 잣나무를 이용해 공구통 겸 화분꽂이 작품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세훈 도자기 공방에서도 체험이 가능하다. 이세훈(동원과학기술대 산업디자인과) 학과장은 "이런 공간들이 자리함으로써 시민공원이 창조적인 공간이 된다. 시민들이 장기적인 프로그램으로 이곳에서 체험을 거듭해 작품을 만들게 되면 다함께 전시회를 열 수도 있다"며 체험 프로그램을 반겼다.
예전 하야리아 부대의 사령관 숙소로 쓰였던 곳은 '숲속의 북카페'로 단장했다. 아직은 책이 채워지지 않았지만 북카페 앞의 큰 겹벚꽃나무는 느지막하게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더했다. 북카페의 책은 부산 서면 영광도서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신간을 공급받는다. 뒤쪽으로는 에코브릿지가 있어 인근 하지산 등산로로 이어진다.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
부전천 옆에 조성된 왕벚나무 산책길.
공원에 그늘이 많지는 않아 보였다. 향후 5년 정도 흐르면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서 자연스러운 그늘이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땡볕이라 한여름에는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우려는 바닥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물놀이 공간과 모래사장을 갖춘 음악분수, 터널분수, 거울 연못 등에서 잊을 수 있었다.
물놀이 공간의 물은 수돗물을 이용하므로 아이들이 마음껏 맞고 놀아도 문제가 없다고 시민공원 측은 밝혔다. 바닥에서 물이 올라오는 것과 함께 꼭대기의 펠리컨 부리에 물이 가득차면 아래로 쏟아져 내리므로 시원하게 놀 수 있다.
터널분수는 취재 당일인 16일에도 인기 만점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터널분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몇 아이는 덜 젖어 보겠다고 우산까지 쓰고 들어갔지만 홀딱 젖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몇 번이나 터널분수 안을 왔다갔다하며 깔깔댔다. 터널분수 옆은 하늘빛 폭포여서 그야말로 시원한 물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물을 터널처럼 쏘아 올리는 터널분수.
이와 함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은 미로공원과 뽀로로 도서관이었다. 미로공원에는 미로 공원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덱'이 설치돼 있다. 일행이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가르쳐 줄 수 있다.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보니 코너를 돌아갈 때 앞쪽이 보이지 않아 출구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개장을 앞두고 정리가 한창이던 뽀로로 도서관 안은 그야말로 온통 뽀로로 이미지로 도배돼 있었다. 바닥부터 벽지까지 모두 뽀로로인데다 가구와 소품 모두 뽀로로 세상이었다. 이곳에 비치된 아동도서는 3000여 권. 맨 안쪽에는 '뽀로로의 얼음썰매 대모험'을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었다. 한켠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이 앉아 쉬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문화예술촌의 진영섭 금속공예 공방(위)과 뽀로로 도서관 입구. 에디, 크롱 등 뽀로로의 캐릭터들로 꾸며져 있다.
임시 개장하는 날인데도 많은 애견인들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공원을 찾았다. 하지만 공원에 반려견을 데리고 오려면 목줄이나 가슴줄 등을 반드시 착용하고 배변봉투도 준비해야 한다. 목줄과 배변봉투가 없는 견주에게는 과태료가 부가된다. 모두가 편안하게 쉬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필수적이다.
부산시민공원 최진욱 관리파트장은 "사실은 애견 및 자전거와 관련한 애로사항이 가장 예민하다. 애견의 변은 치울 수 있지만 소변은 없앨 수 없어 곤란하다. 특히 잔디밭 위의 소변은 냄새와 함께 처치곤란이라 애견과 잔디 위를 걷는 것은 자제할 것을 당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전거가 지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시민공원을 가로지르는 '문화의 숲길'이 그곳이다. 공원을 통과하는 것이지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 관통로가 없다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 하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반려견 푸들 다롱이와 산책을 나온 김미경(26·부산진구 초읍동) 씨는 "사실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할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뛰놀 수 있으니 정말 좋다"고 즐거워 했다. 그러면서 "일부 사람들이 애견의 목줄을 채우지 않거나 분변을 치우지 않아 다수의 선량한 애견인들에게 피해를 준다. 매너를 잘 지켜 모두가 시민공원을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