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1521번. 출애굽에 관하여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출애굽이 가리키는 교훈과 이스라엘의 구원. 2007-11-01. 롬9:7-8, 히9:13-14, 히4:1-11, 히4:8-10, 고전11:30-32
존경하는 민목사님께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출애굽 사건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먼저, 보통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신약의 교회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그래서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사건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으로 해석하고, 광야에서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배워 생활하고 있는 것을 현재 우리들의 교회생활로,그리고 가나안 땅을 혹자는 천국을, 혹자는 사명을 감당하는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두 가지 해석이 다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한 성경구절이 마땅한 것이 없는 것 때문에 확정적으로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가나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다음은, 출애굽은 하였으나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한 1세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요? 그들의 구원상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른지요? 그들은 천국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을런지요?
목사님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응 답>
출애굽이 가리키는 교훈과 이스라엘의 구원.
1. 출애굽 사건과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되었다는 의미
출애굽 사건은 그냥 출애굽 사건일 뿐입니다. 그 사건이 신약에 와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하고 있느냐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함으로 그들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느냐는 문제가 대두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사건이 그들의 구원을 말해 주느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왕 밑에서 노예생활을 해온 것이 우리의 죄에서 노예생활과 비유될 수 있고 또 그곳에서 빠져나와 바로의 손에서 해방된 것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된 것과 비유될 수 있다는 상징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우리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에 이른 사건과는 직접적인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2. 광야의 성막생활과 신약의 교회생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어집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무리는 하나의 구약적인 교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복음입니다. 복음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십니다. 구약적 교회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씨인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들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자손 모두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손 중에서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만이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제외되었습니다(롬9:7-8). 신약에 와서는 이 복음이 육적인 아브라함의 벽을 허시고 온 인류에게 미쳤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약속의 자녀들에게 구원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메시야가 태어나시기 이전의 시대였으므로 복음에 나타난 모든 의식이 예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막생활은 오실 메시야가 성취하실 속죄사역을 보여주며 이스라엘은 그들의 속죄에 대한 은총을 짐승의 피로 이루었으며 이같은 짐승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됨으로 예표적인 사역을 성취했습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죄인이란 사실을 끊임없이 가리켜 주는 몽학선생 구실을 했으며 율법에서 깨달은 죄에 대한 속죄를 성막 혹은 성전에서 짐승의 피로 씻는 의식을 통해서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히9:13-14).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의식이 장차 오실 메시야에 의해 완성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복음이 되었으며 이 복음으로 그들은 구원에 이르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이 이런 복음에 불순종함으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히4:1-11).
이런 이스라엘의 구약적 교회나 성막에서의 의식이나 율법의 준행등은 복음의 예표적인 구약시대에만 해당된 것으로 지금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만 복음이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나타났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복음이 나타나기 까지 어떤 경로와 과정을 겪었느냐는 문제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지식은 복음을 이해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유익을 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구약적 복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3. 가나안은 무엇을 상징해 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구약적 사역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 안착시켜 하나의 거대한 민족을 형성하여 복을 주시려는 뜻에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고 위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윗에게 허락하신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 왕국은 이스라엘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갈망하는 메시야 왕국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안착지가 아닙니다(히4:8-10). 이스라엘이 소망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노략질을 당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으며 왕국이 분열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다니엘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70이레의 언약에서 예언하신대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영이 난지 69이레 만에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약적인 복음사역을 종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신약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에 대한 성경적 의미와 교훈을 말한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안착지로 약속은 하셨지만 메시야 왕국이나 천국을 예표한 것으로 말씀하신 일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영원히 거처할 낙원의 땅으로 보여주시고 인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4.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이스라엘은 구원에서 떨어졌나?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1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사건은 불순종에 대한 징계일뿐, 그들의 구원문제와는 관계가 없는것으로 압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그의 생존시에 하나님께 범하는 죄의 보응으로 육체의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고전11:30-32). 그들이 비록 광야에서 죽임을 받았다해도 자기 죄를 속하는 속죄제물을 드리고 죄사함을 받고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을 통해서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고 있는 것처럼,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혹은 문설주의 피를 통해서, 혹은 장대에 높이 단 구리뱀을 통해서, 혹은 양이나 염소 같은 회생제물의 피흘림의 의식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구원이 조건이 되었을뿐 율법이나 그들의 출애굽이나 종교적 의식이 그들에게 구원을 준 것은 아닙니다.
2007년11월2일 민 병 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