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藝舟雙楫 目次
購碑第三(구비제삼); 宋-齊-梁-陳-魏碑
購碑第三(구비제삼); 北齊 - 北周碑
購碑第三(구비제삼); 隋
일러두기
1. 판본은 『續修四庫全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였다.
2. 주석은 崔爾平의 『廣藝舟雙楫注』를 주로 삼고, 또한 潘運告注釋의 『晩淸書論ㆍ廣藝舟雙楫』, 高煙常信의 『廣藝舟雙楫』, 祝嘉의 『廣藝舟雙楫疏證』 등을 참고하였다. 교감도 이와 같으며, 이에 대한 簡稱은 다음과 같다.
사고본 : 『續修四庫全書』ㆍ1089ㆍ子部ㆍ艺术类ㆍpdf.
상해본 : 崔爾平, 『廣藝舟雙楫注』, 上海書畵出版社 1981年.
목이본 : 康有爲ㆍ高煙常信, 『廣藝舟雙楫』, 木耳社 1982年.
화정본 : 華正人編輯, 『歷代書法論文選』, 臺北 華正書局 1989년.
호남본 : 潘運告注釋, 『晩淸書論ㆍ廣藝舟雙楫』, 湖南美術出版社, 2004年.
3. 주석은 『廣藝舟雙楫』이 비학을 위주로 하는 한국서단에 많은 영향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것을 찾아서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필요에 따라서는 ‘역자주’를 설정하여 이해를 분명하게 하였다.
4. 도판은 본래 없으나 본문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가능한 많이 찾아서 필요한 부분에 삽입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도판을 중복하여 본문의 내용을 검증하는 역할을 겸하였다.
5. 원문은 긴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역자의 재량으로 내용에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끊어 【원문】ㆍ【해석】ㆍ【주석】 순으로 배열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 편마다 앞에 【해제】를 달아 전체 내용의 윤곽을 간단히 정리하여 각 편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해하도록 하였다. 또한 【원문】에서 ‘( )’를 사용하여 안에 내용을 기록한 것은 원문에서 작은 글씨의 주를 바꾼 것이다.
6. 【주석】에서 다른 책을 인용한 내용은 한글로 해석하여 본문에 같이 실었고, 이에 대한 원문은 각주로 처리하여 읽거나 보기 쉽도록 하였다.
7. 해석은 직역을 원칙으로 하였고, 서예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한글로 풀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는 정확한 용어의 사용은 서예의 품위를 높여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廣藝舟雙楫
廣藝舟雙楫敘目
自敘
1. 原書第一
2. 尊碑第二
3. 購碑第三
4. 體變第四
5. 分變第五
6. 說分第六
7. 本漢第七
8. 傳衛第八
9. 寶南第九
10. 備魏第十
11. 取隋第十一
12. 卑唐第十二
13. 體系第十三
14. 導源第十四
15. 十家第十五
16. 十六宗第十六
17. 碑品第十七
15. 碑評第十八
19. 餘論第十九
20. 執筆第二十
21. 綴法第二十一
22. 學敘第二十二
23. 述學第二十三
24. 榜書第二十四
25. 行草第二十五
26. 干祿第二十六
27. 論書絕句第二十七
廣藝舟雙楫敘目
自敘
【원문】
可著聖道, 可發王制(1), 可洞人理, 可窮物變, 則刻鏤其精, 冥縩其形(2)爲之也. 不劬(3)於聖道王制人理物變, 魁儒勿道也.
【해석】
성인의 도를 드러낼 수 있고, 왕의 제도를 펴낼 수 있으며, 사람의 이치를 통찰할 수 있고, 사물의 변화를 궁구할 수 있으려면, 정화를 새기고 형체를 수고롭게 하여야 한다. 성인의 도, 왕의 제도, 사람의 이치, 사물의 변화에서 수고롭게 하지 않은 큰 선비는 말하지 말라.
【주석】
(1) 王制(왕제) : 왕의 제도이다. 『예기』에 「왕제」편이 있는데, 선왕의 반작(班爵)ㆍ수록(授祿)ㆍ제사(祭祀)ㆍ양노(養老)의 법도를 기록하였다. 여기에서는 봉건사회의 제도를 가리킨다.
(2) 刻鏤其精, 冥縩其形(각루기정, 명채기형) : ‘각루(刻鏤)’는 조탁하고 새기는 것이다. ‘채(縩)’는 즉 설(㡜)이다. 『광아ㆍ석고』에서 “설(㡜)은 즉 채(縩)이다.”라고 하였으며, 『설문해자ㆍ건부』에서 “설(㡜)은 잔여 비단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명채(冥縩)’는 가르고 나눈다는 뜻으로 인신하여 수고롭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3) 劬(구) : 이는 수고롭게 한다는 뜻이다. 도잠은 「화유시상」이란 시에서 “골바람은 차가워지는데, 봄 막걸리로 허기와 수고함을 푸네.”라고 하였다.
【원문】
康子戊己(1)之際, 旅京師, 淵淵然憂, 悁悁然思(2), 俛攬萬極(3), 塞鈍勿施(4), 格絀於時(5), 握髮慹(6)然, 似人而非.
【해석】
강씨 후손인 나는 무자년(1888)과 기축년(1889) 사이에 경사(북경)에 묵으면서 깊은 우려와 간절한 생각을 하였다. 두루 여러 곳에서 힘써 가려 뽑아 취하였으나 막히고 둔하여 베풀지 못하였다. 당시에 쫓겨나서 머리카락을 쥐고 꼼짝도 하지 않아 사람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주석】
(1) 康子戊己(강자무기) : 사고본에는 ‘康子’, 상해본에는 ‘康于’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무(戊)’는 무자년(戊子)이니, 광서 14년(1888)이다. ‘기(己)’는 기축(己丑)이니, 광서 15년(1889)이다.
(2) 淵淵然憂, 悁悁然思(연연연우, 연연연사) : ‘연연(淵淵)’은 원래 물이 깊은 모양을 가리켰다. 『장자ㆍ지북유』에서 “깊고 깊음이여, 바다와 같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우려가 깊음을 형용한 말이다.
‘연연(悁悁)’은 간절한 모양이다. 소식은 「고안」이란 시에서 “정성스러운 뜻 간절하나 감히 다 펴지 못하네.”라고 하였다.
(3) 萬極(만극) : ‘극(極)’은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먼 국경지대이다. 『이아ㆍ석지』에서 “동쪽으로는 태원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빈국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복연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축율에 이르는 것을 사극이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만극(萬極)’은 두루 만방(萬方), 즉 여러 곳을 뜻한다.
(4) 사고본에는 ‘施’, 상해본에는 ‘旅’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5) 格絀(격출) : ‘격(格)’은 막혀서 서로 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서ㆍ양효왕전』에서 “태후의 의논이 막혔다.”라고 하였다.
‘출(絀)’은 ‘출(黜)’과 같으니 폄적 또는 쫓겨났다는 뜻이다. 『순자ㆍ성상』에서 “유하혜(柳下惠, 展禽)가 3번 쫓겨났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당시 쓰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6) 慹(집) : ‘墊(집)’은 ‘칩(蟄)’과 같다. 원래는 동물이 동면할 때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모습을 가리켰다. 여기에서는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음을 형용한 말이다. 『장자ㆍ전자방』에서 “공자가 노자를 뵐 때 노자는 새로 머리를 감고 바야흐로 머리카락을 말리려고 꼼짝도 하지 않아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곽상 주에서는 “고요하게 정지함이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성현영 소에서는 “이미 새로 머리를 감고 햇볕에 쬐어 말리며, 정신을 모으고 고요하게 정지하여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우뚝 솟은 마른 나무와 같은 까닭에 사람 같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원문】
厥友告之曰, 大道(1)藏於房, 小技鳴於堂, 高義(2)伏於牀, 巧奰(3)顯於鄉. 標枝(4)高則隕風, 累石危則墜牆. 東海之鼈, 不可入於井(5), 龍伯(6)之人, 不可釣於塘. 汝負畏壘之材(7), 取桀杙(8), 取櫩櫨(9), 安器汝. 汝不自克以程於窮(10), 固宜哉.
【해석】
친구(沈曾植)가 고하기를 “큰 도는 방에서 숨고, 작은 재주는 집에서 운다. 높은 뜻은 평상에서 엎드리고, 교묘하게 성냄은 향리에서 나타난다. 나뭇가지의 끝이 높으면 바람에 떨어지고, 돌을 쌓음이 위태하면 담이 무너진다. 동해의 자라는 우물에 들어갈 수 없고, 용백의 사람은 못에서 낚시할 수 없다. 너는 성현의 재주를 짊어졌는데, 횃대와 나무말뚝을 취하고 처마와 두공을 취하였다. 어찌 너를 그릇이라 하겠는가? 네가 스스로 궁한 데에서 나타날 수 없음은 진실로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주석】
(1) 大道(대도) : 이는 상리(常理)ㆍ정리(正理) 및 변하지 않는 일반적 규칙이다. 『예기ㆍ예운』에서 “큰 도가 행해져서 천하가 공변되었다. 어질고 능력이 있는 자를 뽑아서 믿음을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맹자ㆍ등문공하』에서는 “천하의 넓은 곳에 기거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도를 행한다.”라고 하였다.
(2) 高義(고의) : 이는 숭고하고 정의로운 행위 혹은 정의감을 일컫는다.
(3) 巧奰(교비) : ‘교(巧)’는 교묘하고 영리한 것으로 ‘졸(拙)’의 반대 뜻이고, ‘비(奰)’는 성내는 것이다. 따라서 ‘교비(巧奰)’는 교묘히 속이고 포악한 것을 가리킨다. 이상 4구절은 대도를 행하고 높은 뜻을 품으며, 때때로 숨어서 드러나지 않고 작은 재주와 교묘히 속이는 것을 믿으며, 시끄럽게 떠들면서 다투며 당시에 나타남을 일컫는다.
(4) 標枝(표지) : 사고본에는 ‘枝, 상해본에는 ‘技’’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표(標)’는 나무 끝이고, ‘지(枝)’는 가지이다. 따라서 ‘표지(標枝)’는 나뭇가지의 끝을 가리킨다. 『관자ㆍ패언』에서 “큰 것은 근본이고, 작은 것은 나뭇가지의 끝이다.”라고 하였다.
(5) 東海之鼈, 不可入於井(동해지별, 불가입어정) : 『장자ㆍ추수』에 “그대는 어찌하여 구덩이로 변한 우물의 개구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동해의 자라에게 ‘나는 즐겁다!’라고 일컬었다. 우물 난간 위에 뛰어오르고 깨진 우물 벽돌 기슭에 돌아와 쉬며, 물에 들어가면 겨드랑이를 물에 대고 턱을 들어올리며, 진흙을 밟으면 발이 빠져 발등이 안보이네. 또한 장구벌레ㆍ게ㆍ올챙이를 보아도 나와 같을 수 없네. 한 구덩이의 물을 멋대로 하여 넘고 머뭇거리며, 물에 빠지는 즐거움 또한 지극하네. 그대는 어찌 시간을 내어 들어와 보지 않는가? 동해의 자라가 왼쪽 발이 아직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무릎이 이미 걸렸다. 이에 뒷걸음치고 돌며 물러나 바다에 고하기를 ‘천리의 먼 것으로 큰 것을 열거하기에 부족하고, 천 길의 높음으로 깊음을 다하기에 부족하다.’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6) 龍伯(용백) : 이는 『열자ㆍ탕문』에서 전설에 나오는 대인국(大人國)으로 “용백의 나라에 대인이 있는데, 발을 들어 몇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산이 있는 곳에 이르렀고, 한번 낚시하여 연달아 여섯 자라를 잡아 합하여 짊어지고 달려 자기 나라에 돌아왔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하도용문』에서는 “용백나라 사람은 키가 30장이고, 1만 8천 살을 살다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못에서 낚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7) 畏壘之材(외루지재) : 『장자ㆍ잡편ㆍ경상초』에 “노자의 제자에 경상초가 있었는데, 노자의 도를 어느 정도 터득하고 북쪽 외루의 산에 살았다.……3년을 살며 외루가 크게 풍년이 들었다. 외루의 사람들이 서로 ‘경상초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지금 우리가 날로 헤아리면 부족하나 해로 헤아리면 남음이 있으니, 거의 성인인가보다. 그 분을 어찌 서로 더불어 신이나 신주로 높이어 토지의 신과 오곡의 신으로 제사지내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 ‘외루지재(畏壘之材)’로 성현의 재주를 비유하였다.
(8) 桀杙(걸익) : ‘걸(桀)’은 닭이 올라앉게 닭장에 가로질러 놓는 막대기인 횃대이다. 『시경ㆍ왕풍ㆍ군자우역』에서 “닭이 횃대에서 깃들인다.”라고 하였다.
‘익(杙)’은 마소를 매는 나무말뚝이다. 『상서대전ㆍ낙호』에서 “말뚝을 치는 자는 헤아림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정현 주에서는 “ ‘杙’은 희생을 매어놓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9) 櫩櫨(염로) : ‘염(櫩)’은 또한 ‘첨(檐)’이라 하니, 처마로 낭하의 처마[廊檐]나 기와집의 서까래 끝에 부연을 달아 네 귀가 높이 들린 처마[飛檐]와 같다. 소식은 「신성도중」이란 시에서 “동풍이 내가 산에 가려는 것을 알고, 불어서 처마 사이 쌓인 빗소리 끊었네.”라고 하였다.
‘로(櫨)’는 지붕받침인 두공(斗拱)이니, 기둥 위에서 동량을 잇는 평방 방향으로 짠 맨 밑의 첨차(檐遮)인 모난 나무받침이다. 『회남자ㆍ주술훈』에서 “짧은 것으로는 들보 위의 작은 기둥 위에 웅크려 꿇어앉은 난쟁이나 두공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桀杙(걸익)’ㆍ‘櫩櫨(염로)’와 같은 작은 목기를 만드는 데에 ‘외루지재(畏壘之材)’를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10) 汝不自克以程於窮(여부자극이정어궁) : ‘극(克)’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서ㆍ요전』에서 “큰 덕을 밝힐 수 있다.”라고 하였다.
‘정(程)’은 나타내는 것이다. 육기는 『문부』에서 “글은 재주를 나타내어 기량을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궁(窮)’은 뜻을 얻지 못하거나 귀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달(達)’과 상대적인 말이다. 『맹자ㆍ진심상』에서 “궁하여도 의를 잃지 않고, 달하여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뜻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자신의 재능을 나타낼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원문】
且汝爲人太多, 而爲己太少, 徇於外有, 而不反於內虛, 其亦闇(1)於大道哉. 夫道無小無大, 無有無無. 大者, 小之殷(2)也, 小者, 大之精也. 蟭螟之巢蚊睫(3), 蟭螟之睫, 又有巢者, 視虱如輪(4), 輪之中, 虱復傅緣焉. 三尺之畫, 七日遊(5)不能盡其蹊徑也. 拳石之山, 丘壑巖巒, 䆗(6)深窅曲, 蠛蠓蚋(7)生, 蛙蠙之衣(8), 蒙茸(9)茂焉. 一滴之水(10), 容四大海, 洲島烟立(11), 魚龍波譎(12), 出日沒月. 方丈之室, 有百千億獅子廣座(13), 神鬼神帝, 生天生地(14). 反汝虛室(15), 遊心微密(16), 甚多國土, 人民豐實, 禮樂黼黻(17), 草木蘢鬱, 汝祌禫(18)其中, 弟靡其側(19), 復何鶩(20)哉.
【해석】
“또한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함은 크게 많으나 자신을 위함은 크게 적다. 밖에 있는 것에서 좇고, 안의 허함에 돌아가지 않는구나. 또한 큰 도에 어두운 것이다. 도는 작거나 큰 것이 없고, 있거나 없는 것도 없다. 큰 것은 작은 것의 많음이고, 작은 것은 큰 것의 정미함이다. 초명의 둥지는 모기 속눈썹이고, 초명의 속눈썹은 또한 둥지가 있다. 이가 수레바퀴처럼 보이지만 수레바퀴 안에서 이는 다시 인연을 붙인다. 3척의 그림에서 7일을 노닐어도 지름길을 다할 수 없다. 주먹만 한 돌의 산에도 언덕ㆍ산골짜기ㆍ바위ㆍ뫼가 깊고 움푹하다. 멀리 굽은 곳에서는 눈에놀이와 파리매가 생기고, 개구리와 진주조개의 푸른 이끼가 어지럽게 무성하다. 한 방울의 물은 사방의 큰 바다를 받아들이고, 강어귀에 삼각주 모양으로 흙과 모래가 쌓여 형성된 섬에서 연기를 세운다. 물고기ㆍ용ㆍ파도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없어지며, 해가 뜨고 달이 진다. 방장의 방은 백ㆍ천ㆍ억의 사자가 앉는 넓은 자리가 있고, 귀신과 상제는 하늘과 땅을 낳는다. 너의 허한 방인 마음에 돌아가 정미하고 깊게 생각하며 놀아라. 국토는 매우 많고, 백성은 풍요롭고 실하며, 예악으로 수놓고 초목은 모여 무성할 것이다. 너는 그 가운데에서 담박하고, 그 곁에서 즐기며 쓰러지니, 다시 어디로 달리랴!”라고 하였다.
【주석】
(1) 闇(암) : 이는 원래 어둡고 깜깜하며 우매하다는 뜻이나 여기에서는 어둡다는 뜻으로 쓰였다.
(2) 殷(은) : 이는 많다는 뜻이다. 『시경ㆍ정풍ㆍ진유』에서 “총각과 처녀들 많이 모였네.”라고 하였다.
(3) 蟭螟之巢蚊睫(초명지소문첩) : ‘초명(蟭螟)’은 또한 ‘초명(鷦螟)’이라고도 일컬으며, 고대 전설에서의 아주 작은 곤충을 가리킨다.
‘첩(睫)’은 속눈썹이다. 갈홍은 『포박자⋅자교』에서 “초명은 모기의 눈썹 가운데에 진을 치고 어마어마하게 큰 붕새를 비웃었다.”라고 하였다. 『열자ㆍ탕문』에서는 “양자강과 바닷가 사이에 작은 벌레가 사는데, 그 이름을 초명이라 부른다. 무리가 날아 모기 속눈썹에 모여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깃들고 머물러 오고 가도 모기는 깨닫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는 모기 속눈썹에서 생활하는 아주 작은 벌레를 가리킨다.
(4) 視虱如輪(시슬여륜) : 『열자ㆍ탕문』에서 “기창이라는 자가 다시 활쏘기를 비위에게 배웠다. 비위가 ‘너는 먼저 눈을 깜짝이지 않는 것을 배운 뒤에 활쏘기를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반드시 보는 것을 배운 뒤에 할 수 있다. 작은 것 보기를 큰 것처럼 하고, 숨은 것 보기를 나타난 것처럼 한 뒤에 나에게 고하라. 기창은 이의 꼬리를 창에 매달고 남쪽으로 얼굴을 하여 바라보니, 열흘 사이에 점차 커졌다. 3년 뒤에는 수레바퀴 같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은 작은 가운데 또한 작은 것이 있고, 큰 가운데 또한 큰 것이 있으며, 크고 작음을 서로 함유하여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道無小無大, 無有無無.’는 서로 상대적인 말이다.
(5) 遊(유) : 여기에서는 누워 노니는 것을 가리키니, 즉 산수화의 감상으로 명산대천 유람을 대체한다는 뜻이다. 예찬은 「고중지견방」이란 시에서 “한 두둑의 구기자와 국화를 갖추어 벼랑과 강산을 가득 만들어 누워 유람하네.”라고 하였다.
(6) 䆗(요) : 이는 ‘요(窈)’와 같으며 심원하다는 뜻이다. 『집운』에서 “깊고 깊은 모양”이라 하였다. 한유는 「박탁행」에서 “깊고 깊은 구덩이 그 담이 심히 완전하도다.”라고 하였다.
(7) 蠛蠓蚋(멸몽예) : ‘멸몽(蠛蠓)’은 눈에놀이라는 곤충의 이름이다. 『이아ㆍ석충』의 곽박 주에서는 “작은 곤충으로 파리매와 같으며 어지럽게 날기를 좋아한다.”라고 하였다. 양웅은 「감천부」에서 “햇볕에 차례로 넘어지고 들보에 나는 것을 끊음이여, 눈에놀이를 떠올려 하늘을 치네.”라고 하였다.
‘예(蚋)’는 파리매라는 곤충의 이름으로 형체는 파리와 같으나 조금 작고 갈색 혹은 흑색을 띠고 있다.
(8) 蛙蠙之衣(와빈지의) : ‘빈(蠙)’은 진주조개인 방합(蚌蛤)의 별명이다. 『상서ㆍ우공』에서 “회수의 오랑캐는 진주조개의 진주 및 물고기를 바쳤다.”라고 하였는데, 공영달 소에서 “진주조개는 방합의 별명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와빈지의(蛙蠙之衣)’는 진주조개에 붙어있는 푸른 이끼를 가리킨다.
(9) 蒙茸(몽용) : 여기에서는 푸른 이끼가 무더기로 불어나는 모양을 가리킨다.
(10) 一滴之水(일적지수) : 『유마경』에서 “사방의 큰 바닷물로 하나의 모공에 넣어도 물고기ㆍ자라ㆍ악어 등 물의 성질인 족속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저 큰 바다의 본성은 원래와 같다.”라고 하였다.
(11) 烟立(연립) : 강어귀에 삼각주 모양으로 흙과 모래가 쌓여 형성된 섬을 멀리 보면, 마치 연기와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12) 譎(휼) : 여기에서는 큰 바다의 파도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없어지면서 기이한 변화가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13) 獅子廣座(사자광좌) : 『대품반야경』의 주석인 『지도론』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람 가운데 사자이시니, 부처님께서 앉으신 곳은 평상이든 땅이든 간에 모두 사자좌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후한서ㆍ서역전론』 주에서 “또한 유마힐 삼만 이천 사자좌는 높이가 팔만 사천 유순으로 높고 넓으며 엄정하여 유마 방장실에 들어오면 포용하여 방해하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
(14) 神鬼神帝, 生天生地(신귀신제, 생천생지) : 『장자ㆍ대종사』에서 “스스로 근본과 뿌리가 되며, 아직 천지가 있지 않았을 때 예로부터 본디 존재하였다. 귀신이나 상제를 영묘하게 하고, 하늘을 낳고 땅을 낳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넓고 끝없는 세계의 안에 귀신이 있어 혹 하늘을 낳고 혹 땅을 낳으니, 매우 어지럽고 복잡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15) 虛室(허실) : 이는 마음을 가리킨다. 『노자』에서 “마음을 허하게 하고, 배를 실하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위원은 『노자본의』에서 “마음은 외모가 없고 허하다.”라고 하였다. 『장자ㆍ인간세』에서 “허한 마음은 햇빛이 비추는 곳에서 나고, 길상은 고요한 곳에 머문다.”라고 하였는데, 육덕명은 『경전석문』에서 “최씨는 ‘白’이란 햇빛이 비추는 곳이라 하였다. 사마씨는 ‘室’은 마음을 비유한 것이니, 마음이 공허할 수 있으면 순수한 ‘白’이 홀로 나온다.”라고 하였다.
(16) 遊心微密(유심미밀) : ‘유심(遊心)’은 생각에 골몰하는 것이니, 어떤 경지에서 마음과 정신이 오가며 관주하는 것을 일컫는다.
‘미(微)’는 숨겨두는 것이다. 『좌전ㆍ애공십육년』에서 “백공은 산으로 달아나 목을 매어 죽으니, 그의 부하들이 시체를 감추었다.”라고 하였다.
‘밀(密)’은 침묵 혹은 깊다는 뜻이다. 『주역ㆍ계사』에서 “성인은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나 깊은 데에 숨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마음은 심령 깊은 곳의 이상적 경지에서 노닌다는 뜻이다.
(17) 黼黻(보불) : 이는 고대 예복에서 수를 놓은 꽃무늬를 말한다. ‘보(黼)’는 흑백을 서로 차례대로 하여 도끼 형태를 만드는데, 칼날은 흰색이고 몸은 검은색이다. ‘불(黻)’은 검은색과 청색을 서로 차례대로 하여 ‘亞’자 형태를 만든다. 『상서ㆍ익직』에서 “종이ㆍ조ㆍ화ㆍ분미ㆍ보ㆍ불ㆍ치수는 다섯 가지 채색을 빛나게 하여 오색을 베풀어 옷을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 전에서 “보는 도끼 형태와 같고, 불은 두 마리 뱀이 서로 등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고공기』에서는 “그리고 수를 놓는 일이다.……흰 것과 검은 것을 보라 일컫고, 검은 것과 푸른 것을 불이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黼黻(보불)’을 빌려 문장의 뜻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18) 祌禫(충담) : 이는 즉 ‘충담(沖淡)’으로 언어가 담담하고 맛이 없음을 형용하는 말이다. 『순자ㆍ비십이자』에서 “그 말이 담박하다.”라고 하였는데, 양경은 주에서 “ ‘祌禫’은 마땅히 ‘沖澹’이어야 하니, 그 말이 담박함을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심정이 담박하여 명리를 추구하지 않음을 일컫는다.
(19) 弟靡其側(제미기측) : ‘제미(弟靡)’는 퇴폐하고 방종한 뜻이다. 『장자ㆍ응제왕』에서 “내가 비우고 순종하여 따르니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인하여 퇴폐하고 방종하다 여기고,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는 것으로 여겼던 까닭에 도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弟靡其側(제미기측)’은 퇴폐하고 방종한 생활이 그 곁에 있다는 말이다.
(20) 鶩(목) : 이는 ‘무(務)’와 통하고 추구한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이른바 ‘三尺之畫’ㆍ‘拳石之山’ㆍ‘一滴之水’는 비록 작고 적지만 만약 마음과 지혜에 막히지 않고 지혜 밖의 묘한 이치를 깨달으며, 보고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물 밖의 기이한 형태를 얻어서 적은 것으로 나아가 큰 것을 볼 수 있으면, 우주의 끝없고 넓음과 크고 작음의 무궁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원문】
盍黔(1)汝志, 耡汝心, 息之以陰, 藏之無用之地以陸沈(2). 山林之中, 鐘鼓陳焉, 寂寞之野, 時聞雷聲(3). 且無用者, 又有用也, 不龜手之藥(4), 既以治國矣. 殺(5)一物而甚安者, 物物皆安焉. 蘇援(6)一技而入微者, 無所往而不進於道也.
【해석】
“어찌 너의 뜻을 억제하고 너의 마음을 캐어 묻으며, 응달에서 숨을 쉬면서 쓸모가 없는 땅에 감추어 숨는가? 산림의 가운데 종과 북을 늘어놓고, 적막한 들에서 때때로 천둥소리를 들어보아라. 또한 쓸데없는 것도 쓸데가 있다. 손이 트지 않는 약이 이미 나라를 다스렸다. 하나의 일을 줄여 매우 편한 이는 일마다 모두 편안하다. 하나의 기예를 탐색하여 정미함에 들어간 이는 가는 바가 도에 나아가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주석】
(1) 黔(검) : 이는 가차하여 검(‘鈐)’이라 하니, 즉 잠근다는 ‘쇄(鎖)’이다. 『광운』에서 “병기 자물쇠로 방을 잠그고, 신부로 비상을 준비한다.”라고 하였다. 인신하여 외부 사회와 교류를 끊는다는 ‘쇄폐(鎖閉)’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가차하여 억제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2) 陸沈(육침) : 이에 대해 『장자ㆍ소요유』에서 “지금 당신은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음을 걱정하는구려.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고향과 광막한 들에 심어 놓고 그 곁에서 하는 일 없이 방황하거나 그 아래에서 누워 자며 소요하지 않습니까? 도끼에 찍히지 않을 것이고, 사물에 해가 없으니, 쓸모가 없다고 어찌 괴로워합니까?”라고 하였다. ‘陸沈(육침)’은 또한 ‘육침(陸沉)’이라고도 일컬으니, 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기어 가라앉음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이를 시정과 조정에서의 일로 비유하였다. 예를 들면, 『장자ㆍ칙양』에서 “바야흐로 또한 세상과 다르고 마음은 함께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陸沈’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은거하여 숨는다는 뜻이 있다. 『옥편ㆍ수부』에서 ‘沈’자 아래에 고야왕이 “ ‘陸沈’은 은폐한다는 ‘淪翳’와 같으니, 뭍에 살면서도 물에 잠겨 알려지지 않음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황정견은 「답장사하」라는 시에서 “장부의 몸은 힘쓰는 데에 있으니, 어찌 당신은 끝내 뭍에서 잠겨 있단 말이오?”라고 하였다.(3) 寂寞之野, 時聞雷聲(적막지야, 시문뢰성) : 이에 대해 『열자ㆍ탕문』에서 “양자강과 바닷가 사이에 작은 벌레가 사는데, 이름을 초명이라 부른다. 무리가 날아 모기 속눈썹에 모여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깃들이거나 머물고 오거나 가도 모기는 깨닫지 못한다. 눈이 밝은 사람인 이주ㆍ자우가 대낮에 눈초리를 닦고 눈썹을 치키면서 바라보아도 그 형체를 보지 못하였다. 귀가 밝은 치유ㆍ사광이 밤에 귀를 열고 머리를 숙여 들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오직 황제ㆍ용성자만이 공동산에 살면서 같이 재계하여 석 달 만에 마음이 죽고 형태가 폐하였다. 서서히 정신으로 보니 덩어리와 같이 보이는 것은 마치 숭산의 언덕과 같고, 천천히 기로 들으니 돌 구르는 소리 같음이 들리는데, 마치 우레와 천둥소리 같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보고 듣는 것 이외에 담담하고 초탈하며, 깊이 깨닫고 자연에 맡기어 신명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이어야 비로소 지극히 작은 사물을 보고 들을 수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4) 不龜手之藥(불구수지약) : 이에 대해 『장자ㆍ소요유』에서 “송나라 사람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고운 솜을 물에 헹구는 것을 일로 삼았다. 객이 이를 듣고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청하였다. 가족을 모아 논의하길 ‘우리는 대대로 고운 솜을 물에 헹구었는데 몇 금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아침에 기술을 백금에 팔고자 하니 청컨대 주도록 하자.’라고 하였다. 객이 이를 얻어서 오왕에게 유세하였다. 월나라에 어려움이 있어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겨울에 월나라 사람과 물에서 싸워 월나라 사람을 대패시키자 땅을 갈라 봉하였다. 손을 트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하나로 혹 봉작을 받았고, 혹 고운 솜을 물에 헹구는 일을 면한 것은 사용한 바가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위의 ‘息之以陰, 藏之無用之地以陸沈’과 같이 모두 무용(無用)을 대용(大用)으로 삼는 것을 논설하고, 성인은 사사로운 뜻이 없음을 증명한 말이다. (5) 殺(살) : 이는 줄인다 혹은 뜻을 꺾는다는 뜻이다. 양웅은 「장양부」에서 “뜻이라는 것은 일이 없거나 융성한 것으로 쉽게 꺾는 것이 아니고, 사물이 쓰러지고 성하여도 이지러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6) 蘇援(소원) : 이는 탐색하는 뜻이다. 『회남자ㆍ수무』에서 “어진 대부는 학문과 분별을 강구하고 날마다 스스로 즐기며, 세상일을 탐색하여 흑백과 이해를 나눈다.”라고 하였는데, 주에서는 ‘蘇’는 ‘索’과 같고, ‘援’은 ‘別’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흑백을 분별하면 이해가 있는 바를 안다는 뜻이다.
【원문】
於是康子翻然捐棄其故, 洗心藏密(1), 冥神卻埽(2). 攤碑摛書(3), 弄翰飛素(4), 千碑百記, 鉤午是富(5). 發先識(6)之覆疑, 竅(7)後生之宦奧(8). 是無用於時者之假物以游歲莫(9)也.
【해석】
이에 강씨 후손인 나는 불현듯이 옛것을 버리고, 마음에 깊게 숨긴 것을 씻어내며, 어두운 정신을 물리쳐 쓸어버렸다. 비석 탁본을 펴고 법서를 펼쳐 보며, 붓을 다루어 흰 생명주에 글씨를 날려 천 개의 비와 백 개의 조상기를 기록하였다. 수집한 자료는 풍부하였다. 이전 사람이 알고 있었던 지식의 덮은 의심을 펴내고, 후생의 분명하지 곳을 개통해 주었다. 이는 때에 쓸데없는 이가 일을 빌려서 세모에 노니는 것이다.
【주석】
(1) 洗心藏密(세심장밀) : ‘밀(密)’은 침묵 혹은 깊다는 것이다. 『주역ㆍ계사』에서 “성인은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나 깊은 데에 숨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세심장밀(洗心藏密)’은 뜻과 생각을 맑게 하여 마음과 정신을 수렴한다는 뜻이다.(2) 卻埽(각소) : 이는 손님을 사절한다는 뜻으로 다시는 길을 쓸어 손님을 맞이하지 않음을 일컫는다. 강엄은 「한부」에서 “빗장을 잠그고 문을 닫아 벼슬하지 않았네.”라고 하였다.(3) 摛書(리서) : ‘리(摛)’는 펼친다는 뜻이다. 『태현ㆍ현리』에서 “ ‘玄’이란 것은 만물의 유형을 그윽하게 펼치나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범망 주에서 “ ‘摛’는 베푼다.”라고 하였다. ‘서(書)’는 역대 명가들의 법서를 가리킨다. 따라서 ‘摛書(리서)’는 역대 명가들의 법서를 펼쳐 본다는 뜻이다. (4) 弄翰飛素(롱한비소) : ‘한(翰)’은 모필 즉 붓이다. 유정은 「공연시」에서 “붓을 던지고 장탄식을 한다.”라고 하였다. ‘소(素)는 흰색의 생명주로 고대에는 여기에다 글씨를 썼기 때문에 인신하여 종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붓을 다루어 글씨를 쓴다는 뜻이다.(5) 鉤午是富(구오시부) : ‘구(鉤)’는 ‘구계(鉤稽)’로 조사하고 수집한다는 뜻이고, ‘오(午)’는 종횡으로 뒤섞여 엇갈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오시부(鉤午是富)’는 여러 방면으로 수집한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는 뜻이다.(6) 先識(선식) : 이는 이전 사람이 알고 있었던 지식이라는 뜻이다.(7) 竅(규) : 이는 엿보아 통한다는 뜻이니, 『회남자ㆍ숙진』에서 “천지를 기울여 엿보아 통하였다.”라고 하였다.(8) 宦奧(환오) : ‘환(宦)’은 옛날에 방의 동북쪽 모서리를 일컬었다. 『이아ㆍ석궁』에서 “동북쪽 모퉁이를 ‘환’이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오(奧)’는 방에서 서남쪽 모서리를 가리킨다. 『석명ㆍ석궁실』에서 “방에서 서남쪽 모퉁이를 ‘오’라 일컫는데, 문이 밝아도 보이지 않고 있는 곳이 깊으며 신비하다.”라고 하였다. ‘환오(宦奧)’는 넓게 집에서 구석진 곳을 가리킨다. 이는 함유한 뜻이 깊어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후생이 분명하지 못한 곳을 개통해 준다는 뜻이다.(9) 歲莫(세모) : 사고본에는 ‘莫’, 상해본에는 ‘奧’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막(莫)’은 즉 ‘모(暮)’이니, ‘歲莫(세모)’는 1년의 해가 다하는 때이다.
【원문】
國朝(1)多言金石(2), 寡論書者, 惟涇縣包氏(3), 鈲之揚之(4). 今則孳之衍之, 凡爲二十七篇, 篇名如左.
【해석】
청나라에서 금석을 많이 말하지만, 서예를 논한 이는 적었다. 오직 경현의 포세신만 이를 마름질하여 선양하였을 뿐이다. 지금 이것이 불어나고 넘쳐 27편을 만들었으니, 편명은 아래와 같다.
【주석】
(1) 國朝(국조) : 이는 글을 쓴 사람이 살고 있었던 나라를 가리킨다. 조식은 「구자시표」에서 “이와 같이 해를 다하니 나라에 보탬이 없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 ‘국조(國朝)’는 청나라를 가리킨다.(2) 金石(금석) : ‘금(金)’은 종정, ‘석(石)’은 비갈 따위를 가리킨다. 옛사람은 종(鐘)ㆍ정(鼎)ㆍ반(盤)ㆍ우(盂) 등의 기물 위에 항상 문자를 새겼고, 또한 송공(頌功)ㆍ기사(紀事)ㆍ우계(寓戒)도 여러 금석에 새겼다. 동한시기 이후 묘비가 성행하였다. 양 원제가 비각을 집록하여 『비영』 120권을 만든 것이 금석문자 저록의 시작이나 전해지지 않는다. 송나라 구양수ㆍ조명성 등이 비로소 넓게 저록을 수집하였고, 청나라에 이르러 크게 성행하여 금석학은 마침내 전문 과목이 되었다. 금석을 연구하면 문자의 원류를 알 수 있고, 경사의 그릇됨과 누락된 것을 고증할 수 있어 학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3) 包氏(포씨) : 이는 포세신(包世臣, 1775-1855)으로 청나라 학자ㆍ서예가ㆍ서예이론가이다. 자는 신백(愼伯)이고 호는 권옹(倦翁)ㆍ소권유각외사(小倦遊閣外史)이며, 안휘성 경현(涇縣) 사람으로 ‘포안오(包安吳)’라 불렸다. 그는 당시 정치에 관심이 있어 농정(農政)ㆍ조운(漕運)ㆍ화폐(貨幣) 등에 대한 논술이 있었다. 글씨를 잘 썼고, 용필은 측필로 필세를 취하였다. 북비를 제창하여 이후 서풍의 변혁에 영향이 있었다. 저서로 『안오사종』이 있다. 『예주쌍즙』 하편은 서예이론 저작으로 학자들의 추대와 존중을 받았다.(4) 鈲之揚之(고지양지) : ‘고(鈲)’는 또한 ‘벽(䤨)’이라고도 하는데, 가르고 분리하며 나누는 것을 뜻한다. 좌사는 「촉도부」에서 “ ‘고규’를 겸하여 바쳤다.”라고 하였다. 『방언』에서 “ ‘고규’는 마름질하는 것이다. 들보를 더하는 사이에 나무를 마름질하여 기물을 만드는 것을 ‘고’라 하고, 비단을 찢어서 옷을 만드는 것을 ‘규’라 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고지양지(鈲之揚之)’는 버릴 것과 올릴 것이 각각 선택이 있다는 것으로 포세신이 이론에서 어느 정도 공헌이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原書第一(원서제일)尊碑第二(존비제이)購碑第三(구비제삼)體變第四(체변제사)分變第五(분변제오)說分第六(설분제육)本漢第七(본한제칠)傳衛第八(전위제팔)寶南第九(보남제구)備魏第十(비위제십)取隋第十一(취수제십일)卑唐第十二(비당제십이)體系第十三(체계제십삼)導源第十四(도원제십사)十家第十五(십가제십오)十六宗第十六(십육종제십육)碑品第十七(비품제십칠)碑評第十八(비평제십팔)餘論第十九(여론제십구)執筆第二十(집필제이십)綴法第二十一(철법제이십일)學敘第二十二(학서제이십이)述學第二十三(술학제이십삼)榜書第二十四(방서제이십사)行草第二十五(행초제이십오)干祿第二十六(간록제이십육)論書絕句第二十七(논서절구제이십칠)【원문】永惟(1)作始於戊子之臘(2), 寔購碑於宣武城南南海館之汗漫舫(3). 老樹僵石, 證我古墨焉. 歸歟(4)於己丑(5)之臘, 迺(6)理舊稿於西樵山北銀塘鄉(7)之澹如樓(8). 長松敗柳, 侍我草元(9)焉. 凡十七日至除夕述書訖, 光緒十五年也. 述書者, 西樵山人康祖詒長素父(10)也. 【해석】깊이 생각하여 무자년(1888) 섣달에 쓰기 시작하였다. 이 「구비」는 선무성 남쪽 남해관의 한만방에서 썼다. 오래된 나무와 딱딱한 돌이 여기에서 나의 고묵을 증명한다. 기축년(1889) 섣달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에 옛날 원고를 서초산 북쪽 은당향의 담여루에서 정리하였다. 긴 소나무와 시든 버드나무가 여기에서 나의 저술을 기다렸다. 17일에서 섣달그믐에 이르러 쓰기를 마쳤으니, 광서 15년(1889)이다. 글을 쓴 사람은 서초산인 강조이 장소보이다.【주석】(1) 永惟(영유) : 이는 심사(深思)와 같은 말로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2) 戊子之臘(무자지랍) : ‘무자(戊子)’는 광서 14년(1888)이고, ‘랍(臘)’은 음력 12월이다. 『사기ㆍ진섭세가』에서 “납월에 진왕이 여음으로 갔다.”라고 하였다. ‘랍(臘)’은 본래 제사이름으로 옛날은 12월에 거행하였고, 진나라 때 12월을 납월로 삼은 이후 이를 따랐다. (3) 南海館之汗漫舫(남해관지한만방) : ‘남해관(南海館)’은 북경 선무문(宣武門) 밖 미시(米市) 골목에 있는 남해회관(南海會館)이고, ‘한만방(汗漫舫)’은 남해회관의 방 이름이다. 강유위는 『한만방시집ㆍ서』에서 “내가 다섯 번 경읍에 머물면서 일곱 차례 상서를 올렸는데, 모두 선무문 밖 미시 골목의 남해회관에서이다. 남해회관 별채의 회랑에 늙은 나무와 큰 돌이 있고, 작은 집은 배와 같아 내가 한만방이라 하였다. 그윽한 뛰어남을 좋아하였고, 야인의 바탕과 합당하여 자주 있으면서 비를 읽고 돌을 닦았다.”라고 하였다.(4) 歸歟(귀여) : 이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논어ㆍ공야장』에서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때 말하시길 돌아가리라,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라고 하였다. 따라서 강유위가 남해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5) 己丑(기축) : 즉 광서 15년(1889)이다.(6) 迺(내) : 이는 ‘내(乃)’와 같다.(7) 西樵山北銀塘鄉(서초산북은당향) : 이곳은 광동성 남해현(南海縣)에서 서남쪽으로 120리 떨어진 곳에 있다.(8) 澹如樓(담여루) : 이곳에서 강유위가 소년시절을 보냈으나, ‘무술정변’ 이후 청나라 정부에게 차압되었다. (9) 草元(초원) ; 이는 응당 ‘초현(草玄)’이어야 하는데, 청나라 강희황제의 이름을 휘하였던 까닭에 ‘현(玄)’을 ‘원(元)’이라 바꾸었다. 『문선ㆍ양웅ㆍ해조』에서 “애제 때 정명(丁明)ㆍ부안(傅晏)ㆍ동현(董賢)이 권력을 장악하고 일을 처리하였다. 여러 붙거나 떨어진 이들이 집안을 일으켜 2,000석에 이르렀는데, 당시 양웅은 『태현』을 시작하여 스스로 지킴이 있어 담박한 것 같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강유위가 양웅의 예를 빌려 자신의 상서를 전달하지 못하고 남해의 고향으로 돌아와 이 글을 완성한 심정을 설명한 말이다.(10) 父(보) : 이는 ‘보(甫)’와 같고, 남성의 미칭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