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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후 취리히 시내 나들이다.
“취리히”는 “츠빙글리”에 의해 종교 개혁이 추진 되고, 켈러와 페스탈로치 같은 작가와 학자가 배출되었다.
대학교 교직과목을 이수할 때 익히 들었던 “페스탈로치”와 교직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지도했던 “츠빙글리”가 생각나고 있다.
중세때 북부유럽은 로마 문화권과 떨어져있어서 지도층을 제외하고는 국민대다수가 문맹자나 다름없었다.
취리히 시의 번화가
린덴호프로 이동
로마교황청은 성 베드로 성당을 수축하기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면죄부를 이들 낙후된 지역에 판매했다.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크나큰 시련이자 도전이었다.
면죄부 판매가 성서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했기때문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날로 증가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로 이동
프라우뮌스터교회
성모교회로 마크 샤갈의 스테인데스글라스가 유명하다.
그 중에 독일지방의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가 있었다.
이것이 독일의 종교 개혁과 스위스 종교 개혁이다.
독일에서 “루터”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츠빙글리”는 좌절했다.
가톨릭교도와 싸우다가 전사했기때문이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칼뱅”에 의해 종교개혁이 추진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칼뱅파 교회다.
리마트 강 가에 기마 상이 있으며
시내전경이 아름답다.
성모교회 프라우뮌스터 교회 앞에 서서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영국도 로마교황청에서 떨어져나갔다.
헨리 8세와 왕비 캐더린과 이혼문제때문이다.
캐더린은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와 카스틸라의 이사벨라 1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하고 영국 왕실의 아더왕자와 결혼했다.
이때 캐더린은 16살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5개월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시아버지는 고민하다가 며느리를 시동생인 헨리 8세와 결혼시켰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다.
헨리 8세는 후계자를 갈망했다.
이것이 두명사이를 갈라놓게 한 요인이었다.
성모교회 프라우뮌스터 교회
벽화를 보며 감탄하고 있다.
헨리 8세는 주변 여자들에게 접근하기시작했다.
그 중에 캐더린의 시녀 앤 볼린에게 까지도 치근덕거렸다.
헨리 8세는 로마교황청에 이혼을 청원했다.
교황청은 거부했다.
영국이 가톨릭국가에서 떨어져 나간 이유다.
종교개혁의 도시이자 교육의 도시인 “취리히”를 돌아보고 있다.
그림같아서 점점 매료 되어가고 있다.
벽화
시가지는 르네상스시대부터 개발된 도로와 가옥,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중세시대 동업조합인 길드가 눈에 띄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고색이 찬란하다.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이 지척에 자리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에서 냇물이 흘러고인 곳이 “취리히 호”다.
바나나 모양을 하고 있다.
취리히 호수는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청정 호수다.
알프스 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아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취리히 호수에 정지하고 있다.
호수가에 초호화 요트가 정박되어있다.
그리고 별장도 즐비하다.
거리는 현지인 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넘쳐나고 있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 도로바닥에 그은 녹색선을 발견할 수 있다.
녹색선을 따라 걸어가며 시가지를 탐방하고 있다.
시가지 도로바닥 녹색선은 서울특별시 성곽길 화살표 표시와 비슷하다.
서울특별시 성곽길은 도로바닥 화살표 방향을 따라 이동하면 성공 리에 완주할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 시도 녹색선을 따라 이동하면 구시가지를 탐방할 수 있다고 했다.
녹색선을 따라 출발해도 좋고 중앙 역에서 도로번호를 따라 출발해도 좋다.
중앙 역에서 출발해 반 호프거리로 걸어가고 있다.
‘반 호프거리”는 취리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넘쳐나고 있다.
취리히 시의 교통체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차도에서 자동차가 우선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람이 우선이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행복감에 취해서
리마트 강
사람이 길을 건너면 차량은 무조건 멈쳤다.
사람중심의 선진국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 스위스가 부러웠다.
우리나라 교통체계도 스위스처럼 국민의 생명을 중시하는 체계로 바뀌었으면 더 좋은 사회가 되지않을 까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반 호프 거리는 유명 브랜드 매장과 부티크,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이 늘어서 있다.
건물의 높이도 5층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때문에 번화함 보다는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 들고 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
반 호프 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작은 언덕에 공원이 있다.
린덴호프 공원이다.
공원 까지는 5분 거리다.
이곳에 스위스가 낳은 세계적인 교육자 페스탈로치 동상이 있다.
리마트 강과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스위스가 부러웠다.
인정이 넘쳤기때문이다.
이곳의 역사는 기원전 107년 경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의 목표는 세계제국 건설이다.
30개군단이 있고 30개 군단과 동일한 보충 병도 있다.
1개 군단은 1,500 명에서 3,000명 사이고 공성부대와 전차부대가 있다.
여기에 기마병도 있다.
이 정도의 군사력 이면 세계 최강이다.
로마제국 앞에 서있는 스위스는 볼품없는 존재다.
그로스뮌스터교회
세계 역사의 흐름은 로마로 기울고 있다.
스위스도 로마의 속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로마제국의 군단이 스위스에 주둔하고 있기때문이다.
스위스가 빠른 속도로 로마화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막을 수없는 현실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 구획이 그어지면서 세관을 짓고 있다.
또한 전국토가 요새화되어가고 있다.
그 때 축조된 성벽이 지금도 남아있다.
리마트 강과 교회의
어우러짐
성 베드로(페터)교회로 걸어가고 있다.
성 베드로(페터)교회는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서기 800년 경에 건축되기 시작해 13세기 경에 완성되었다.
이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축조되었다.
탑도 세워졌다.
이후 성당은 증축이 지속되었다.
시계탑도 건립했다.
시계는 3m의 시침과 4m의 분침이 돌아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탑이라고 했다.
벼룩시장의 정경
“프라우 뮌스터교회”로 이동하고 있다.
프라우 뮌스터 교회는 원래 수녀원이다.
동 프랑크왕국의 루트비히 2세의 딸이었던 힐데가르트가 초대 수녀원 장으로 취임했다.
15세기 경에 증축 되면서 고딕양식 건물이 첨가되었다.
성가대 뒷편의 창에 화려한 무늬가 돋보이고 있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처럼 햇빛을 조각내 교회내부로 투사하고 있다.
뷔르클리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곳은 취리히에서 두 번째로 큰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가지각색의 화초들
벼룩시장 안으로 걸어가고 있다.
농산물, 원예작물, 가공식품 등 볼거리가 많다.
근처의 농가에서 재배한 과일과 화훼가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다.
신성한 유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하몽(Jamon)도 눈에 띄었다.
하몽은 생 햄으로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인 것이다.
동굴이나 그늘에서 곰팡이가 피도록 6개월에서 2년 동안 건조·숙성시켜야 한다.
열을 가하지 않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오랜 기간동안 말렸을 때 제대로 된 맛을 낸다.
하몽 자체를 얇게 썰어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와 같은 음식물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치즈를 구입하여 일행과 나눠먹으면서 이웃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다.
하몽 가게다.
즐거움은 행복의 근원
가게주인은 넉살좋은 시골 농부처럼 인자하다.
하몽을 썰어주며 먹어보라고 했다.
맛은 일품이었다.
지금도 그맛을 잊을 수 없다.
무화과와 사과를 사서 손에 든 채 케다리까지 걸어가고 있다.
호수가 환상적이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곳이다.
리히텐슈타인 수도 바두츠
알프스 산맥과 호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다.
사진을 촬영한 후 오데온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데온은 아인슈타인이 자주들렀다는 카페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취리히시에서 보낸 후 세계적인 이론 물리 학자가 되었다.
그는 가끔 오데온 카페에 앉아 공상에 잠겨있곤 했다.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하여 1905년에 발표하고,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그를 능가할만한 물리학자가 없다.
호기심은 새록새록
발현하고
굽이 키보다 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학연구에 몰두했다.
그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의 교육제도때문도 있었겠지만 국민들의 열열한 지지때문이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물리학과에서 수학해 학자의 길을 걸었다.
다시 그로스뮌스터 교회로 이동하고 있다.
그로스뮌스터 교회는 취리히의 랜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곳이다.
1100년부터 150년간에 걸쳐 완공된 건물이며, 스위스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다.
취리히의 상징이며, 두 개의 쌍둥이 탑이 취리히 시를 지키고 있다.
탑 꼭대기는 둥근 돔 형으로 되어있다
이것이 주변 탑과 다른 점이다.
우체국은 잠겨있고
우표가게는 성시를 이룬다.
프랑스 출신 “츠빙글리”가 스위스 취리히로 건너가 종교개혁을 추진했다.
그 이념적 바탕이 된 곳이 이곳 그로스뮌스터 교회다.
자코메티가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눈길을 끌고 있다.
다시 니더도르프 거리로 이동하고 있다.
미로같은 골목길은 헤집고 있다.
레스토랑과 맥도널드, 기념품 가게, 골동품 점 등 눈길을 끌지 않는 곳이 없다.
사람들도 덩달아 바글바글하다.
동심으로 돌아가
보자.
나도 구부릴 수 있다.
반 호프거리가 명품 거리라고 한다면, 니더도르프 거리는 중·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거리다.
시가지를 돌아보고 중앙 역으로 회귀하고 있다.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취리히”를 관광하고 3번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바두츠 시로 이동하기위해서다.
취리히에서 리히텐슈타인 바두츠시 까지 109km다.
규정 속도로 이동한다면 1시간 20분이 소요될 것 같다.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 되고
나를 찾아보기도 한다.
왼쪽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지고 있다.
취리히 호수다.
호수는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크다.
기원전 8,000년 경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다.
강물은 명경같이 투명하고 주변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산책로와 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호숫가 산책로는 취리히 벨뷰에서 취리히호른에 이르르는 곳으로 걸어서 1시간 거리다.
여행객의 바쁜 일정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호숫가를 산책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주변은 별장이 즐비하다.
같은 모양의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각기 특징이 있어보인다.
사람의 개성이 다양한 것처럼 건물도 제각각이다.
호수의 잔잔한 파도가 등고선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캐나다 천 섬이 생각나고 있다.
호수 윗쪽은 광활한 알프스 산맥이다.
정상은 하얀눈이 덮여있다.
신비감마져 든다.
리히텐슈타인 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취리히 호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취리히 호수에 이어서 Wallensee가 나타났다.
Wallen은 지역 이름이다.
그런데 어미에 see가 붙어 있다.
바다가 볼 수 없는 스위스 사람들은 이곳을 바다처럼 생각하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리히텐슈타인 영토 내로 진입하고 있다.
도시로 이동해 갈수록 외딴 섬처럼 느껴지고 있다.
첩첩 산중으로 둘러싸여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은둔의 거사처럼 달관하는 표정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라인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평화스럽고 안정돼 보였다.
그러나 1499년 슈바벤 전쟁으로 나라가 파멸되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귀족들은 국가재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바두츠 시내
1938년 요제프 2세 프란츠가 군주 자리를 계승했다.
부탄의 국민들처럼 이곳 국민들도 행복한 모습이다.
자연 경관은 수려하고 국가 소장 역사문화 유산 또한 풍부하다.
퓌르스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세계사에 빛나는 국보급이다.
리히텐슈타인 우표박물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문이 꽁꽁 잠겨있다.
공휴일 이라서 그럴 것이다.
외양은 지극히 소박하다.
우리나라 시골의 한 우체국처럼 보였기때문이다.
공작의 거처
바두츠 성
아쉬웠으나 발길을 돌리고 있다.
대신 우표를 판매하는 상가로 들어갔다.
우표의 종류가 다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에서 6 번째로 작은 나라다.
면적은 160㎢ 이며 인구는 4만명이 채 되지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특별시의 1/4 정도다.
그러나 얕잡아볼 수 없다.
역사적 문화 유산이 거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기대문이다.
나도 인증샷
귀족의 직위는 공작과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첫번째 직위가 공작이다.
공작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기때문에 공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군대가 없다.
국방은 스위스가 담당하고 치안은 경찰이 담당하기때문이다.
언어는 독일어이고, 국민의 대다가 로마 가톨릭교를 신봉하고 있다.
너도 인증샷
리히텐슈타인의 수도는 바두츠 시다.
고산 준령속의 수도 바두츠 시는 초라하게 보였다.
그러나 공작의 거처인 파두츠 성은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두츠 성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바두츠 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 중턱까지 도로가 개통되어있다.
그러나 도로는 많은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위험성때문에 오솔길을 따라 성으로 걸어가고 있다.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를 경청하며 자연과 합류된 나,
하늘을 지붕삼아 걸어가고 있다.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신선이 되는 느낌이다.
땀이 등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자연의 친화력때문에 나 자신도 빠져들고 있었다.
만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보고 있다.
지구 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바두츠 성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정 적과 고요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만물이 꿈틀거리고 있다.
순수 하고 인정이 넘쳐흐르는 리히텐슈타인, 행복이 충만하고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오염물질을 찾아볼 수 없는 별천지,
이곳을 걸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누구 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