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진 감독의 <용의자 X>는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원작에다 일본에서도 니시타니 히로시(西谷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도 있다. 임순례 감독의 다음 영화도 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의 <남쪽으로 튀어>다. 또한 오쿠다 히데오 원작을 마시코 쇼이치(益子昌一) 감독이 만든 <방황하는 칼날>도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미 상영되었던 변영주 감독의 <화차> 또한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의 소설이며, 아사히TV에서 하시모토 하지메(橋本一)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소설이나 만화, 영화를 막론하고 일본 원작이 많이 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방은진, 임순례, 변영주 들은 그런대로 쓸만한 감독이다. <남쪽으로 튀어>와 <방황하는 칼날>은 아직 나오지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룬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작품은 원작이나 영화화된 작품에 비해 번안 작품은 하나같이 제대로 소화를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리네 이야기가 아니라 그럴 것이다.
그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왜 하필 쓸만한 감독들이 일본 원작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드는가다. 그만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영화계가 열악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일본에 대한 경계를 늦추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문제라 하겠다. 문화침투라는 게 별거 아니다. 한참 일본 만화가 문제인듯이 말하지만 벌써 만화계를 일본색으로 물들이고 난 뒤에 떠벌이는 후일담에 불과하다. 일본 영화는 들어온지는 꽤 되었지만 수월하게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번안 작품이 도리어 일본 영화를 연착륙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웬 국수주의? 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문화의 침투, 특히 일본문화의 침투는 우리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일본 영화를 전반적으로 보면 알게 모르게 일본 특유의 군사주의와 사밀한 정의(情意)를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본' 문화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는 것은 우리의 역사로 봤을 때 치명적인 후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번안을 할 때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다. 영화계가 이미 자본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임순례 감독의 제작 과정에서 제작사와 감독이 불화를 겪은 바도 있다.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돈 되는 영상을 자본이 원하기 때문에 번안 작품을 아무리 잘 해석하고 수용한다 해도 흥행이 되지 않으면 비판적 시각이란 그냥 짤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의 대종상 시상식을 보더라도 그렇다. CJ의 힘이 영화계에서 무엇인가를 즉물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일본문화와 자본의 결합은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지금은 그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