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성이가 본 뒤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두륜산 구름다리.
- 구름다리 보고 실망한 민성이
노승대에 앉아 있는 동안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희영이는 엄마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바빴다. 고교 1학년이라도 주중에는 보충수업 끝나고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기 일쑤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대화를 제대로 나눌 시간이 없다. 가족산행은 이런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 모두가 산을 오르며 땀을 흘리다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쇠줄을 잡고 노승봉을 내려선 뒤 두 개의 암봉을 우회해 가련봉(703m) 정상에 섰다. 계속해 깔끔한 나무계단이 놓인 급경사 내리막을 통과하니 운동장처럼 널찍한 만일재에 닿는다.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요기를 했다. 해가 구름 사이로 숨고 바람이 불며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직 완전한 봄이라기엔 이른 시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두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를 보기 위해 두륜봉으로 향했다. 능선길은 두륜봉 왼쪽 사면을 가로지른 뒤 철계단으로 이어진다. 이 계단 위에는 아치형 자연바위 구름다리가 드리워져 있다. 바위벽 사이에 걸려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하지만 그 위로 사람이 다녀도 꼼짝도 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다리다.
“저기 걸려 있는 바위가 구름다리 맞아요?”
민성이는 속았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월출산이나 대둔산에 걸려 있는 현수교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규모로 치면 두륜산의 구름다리는 현수교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크기다. 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화강암 다리를 인공구조물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륜산 구름다리는 산 아래 운해가 가득할 때 보는 운치가 제일”이라는 이 지역 산꾼의 설명을 듣고 보니 구름다리의 의미로 새로웠다.
- ▲ 벚꽃 만발한 진불암 경내.
- 구름다리 위의 두륜봉에 올라 지나온 능선길을 돌아본 뒤 곧바로 진불암으로 향했다. 이제 산길은 너널지대를 지나 숲으로 접어든다. 잠시 후 만나는 콘크리트 도로를 타고 100m 가량 올라가니 진불암 경내로 들어선다. 희영이네 가족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요한 산중 사찰에서 멋진 봄날은 즐겼다. 평소에 잊고 살았던 소중한 하루가 이렇게 지나고 있었다.
진불암을 지나 이제 두륜산 제일의 명소로 꼽는 일지암(一枝庵)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알려진 암자로, 초의선사가 40여 년을 머물던 곳이다. 복원공사를 마친 일지암은 너무 깨끗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 거쳐간 명소라곤 하지만 너무 과한 배려인 듯싶다.
일지암 앞 산비탈에는 차밭을 조성하느라 베어낸 나무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하산은 S자로 휜 도로를 타고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차밭 옆 숲길을 따르기로 했다. 잡목과 산죽이 가득한 숲속을 가로질러 대흥사까지 내려서는 데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희영이네 식구는 지리산에서 단련된 산꾼 가족답게 가뿐하게 두륜산을 넘었다. 능선길이 암릉 구간이 길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산인데다가 위험지대도 많아 산행 경험이 없는 가족을 이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오늘 산행은 전체적으로 순조로운 편이었다. 건강하고 경험 많은 두 자녀가 잘 따라와 줬기 때문이다. 즐거운 가족산행을 위해서는 심신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 ▲ 깔끔하게 계단이 설치된 가련봉 하산길.
산행길잡이
대흥사 기점의 원점회귀코스 제일 인기
산행은 대흥사를 기점으로 능선을 향해 부챗살 형상으로 뻗은 산길을 조합해 여러 가닥으로 엮을 수 있다. 그중 장춘리 숲길로 대흥사까지 다가간 다음, 북미륵암~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진불암~일지암~대흥사로 돌아오는 길은 대표적인 암자들과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를 두로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코스다.
집단시설지구 식당가에서 500m쯤 떨어진 터미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 정상 아래까지 접근한 다음 오심재로 내려서면 산행이 훨씬 수월하다. 고계봉에서 오심재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이후 쇠사슬과 쇠발판이 박혀 있는 바윗길을 지나면 노승봉 능허대에 이른다.
계속해 두 암봉을 허릿길로 가로질러 가련봉 정상에 올라선 다음 계단을 타고 만일재로 내려선다. 여기서 서쪽 길은 만일암터를 거쳐 대흥사로, 왼쪽 길은 북일면 흥촌리 삼성 마을로 이어진다. 구름다리로 가려면 계속 능선길을 따른다. 두륜봉 오르기 직전의 구름다리를 통과해 왼쪽의 계단을 내려서면 능선길은 끝난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내려서다 만나는 찻길을 따라 100m쯤 오르면 진불암이다.
일지암으로 가려면 진불암 경내에서 만일암터 길을 따르다 첫 번째 갈림목에서 왼쪽 길을 따라 내려선다. 일지암에서 포장도로를 따르거나 차밭 왼쪽의 소로를 따라 곧장 내려서면 대흥사에 닿는다. 매표소 주차장 기점 원점회귀산행에는 5~6시간 정도 걸린다. 입장료는 어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승용차 2,000원, 버스 3,000원. 도립공원 사무소 061-533-0088.
교통
해남행 버스편은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02-6282-0600), 동서울터미널(02-453-7710), 부산 서부터미널(051-322-8301) 등지에서 운행한다. 광주 종합터미널(062-360-8114)에서 가장 많은 버스가 다닌다.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해남행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96km, 2시간 소요).
해남 시외버스터미널(061-534-0881)에서 대흥사 입구행 군내버스가 30분 간격(06:30~20:00)으로 운행된다(12km, 15분 소요).
숙식
대흥사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꼽을 만하다. ‘새벽숲길’ 프로그램은 3월부터 12월까지 총 25회차가 마련되어 있다. 홈페이지(www.daeheungsa.co.kr)를 통해 확인하면 자세한 일정을 알 수 있다.(문의 061-535-5775).
절 입구에 대규모의 집단시설지구가 있다. 대흥사 바로 밑 유선관(534-3692)은 사찰 객사로 이용되던 유서 깊은 숙소다. 조식은 물론 한정식도 가능하다. 해남시에서 운영하는 유스호스텔(061-533-0170)을 비롯해 다수의 여관이 자리하고 있다.
집단시설지구 내 전주식당(532-7696)은 표고전골로 이름나 있다. 1인분 10,000원, 산채정식 4인상 60,000원. 한오백년식당(061-534-5633)은 싸고 맛깔스런 집이다. 해남읍내 국향정(061-532-8922)과 용궁해물탕(061-535-5161) 등도 인기 있다.
명소
대흥사
12 대종사와 13 대강사 배출한 도량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는 대둔사와 대흥사 두 이름으로 불리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대흥사는 한국불교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문화재가 다수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몇 해 전 보물 제48호에서 국보 제308호로 승격된 의미 있는 유물이다.
명찰
일지암(一枝庵)
초의선사가 다선일여를 확립한 절대흥사 13대 종사인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40여 년간 머물며 한국의 다경(茶經)이라 불리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집필한 곳이다.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사상을 확립해 조선 후기 쓰러지던 차 문화를 새롭게 일으킨 차의 성지로 불리는 암자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장소로 지금도 그 흔적이 전해온다.
명소
우항리 공룡발자국 화석지
9천만 년 전 공룡 발자국 화석 남아 있어해안의 퇴적암 절벽에 9천만 년 전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을 비롯해 익룡, 초식공룡의 발자국 화석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공룡의 흔적이다.
해남군 황산면 소재지 갈림길에서 우항리 공룡화석지 안내표지판을 따라 북쪽으로 3km쯤 가면 우항리 해안에 닿는다. 해남군 도로 곳곳에 공룡화석지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안가의 보호각 시설과 전시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관리사무소 전화 061-532-7225.
명소
땅끝
한반도 육지부 가장 남쪽 마을
한반도 육지부의 가장 남쪽 마을이 해남 땅끝이다. 국토 종단에 도전한 젊은이들에게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성지 같은 곳이라 하겠다. 이곳 해안의 끄트머리에 창끝처럼 예리한 땅끝탑이 세워져 있다. 땅끝 바로 뒤 전망대가 서 있는 산은 갈두산 사자봉으로, 이곳에서 보는 다도해 조망이 아름답다. 거칠 것 없는 시원스런 풍광이 일품으로 그림 같은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