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동이 시작되는 성창기업만 해도 출퇴근 때가 되면 수십 대의 통근버스와 종사자들이 거대한 물결처럼 드나들었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흔히 `적기 뱃머리'로 불리던 작은 포구까지 있었다. 지금의 부산은행 우암지점 건물과 마주보이는 곳이지 싶은데, 그 건물 자리만 해도 본래는 장고개에서 내려오는 하천 끝이었으며, 2백 미터쯤 뒤의 양지아파트 자리에는 지난 66년 송도로 옮겨간 검역소가 있었고, 현재 성업 중인 명성주유소 자리에는 커다란 기름 탱크가 두 동 있어서 긴 호스를 연결해 건너편 선착장까지 연료를 공급했다.
당시에는 그 선착장에서 중앙동 옛 부산경찰청 뒤편까지 대략 30분쯤 소요되던 작은 발동선 세 척이 운항됐다. 발동선 중에서는 `호남호'가 제일 규모가 컸으며, 전차요금이 2원 50전 할 때라 배 삯은 3원 정도 됐지 싶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넘게 걸리던 부산시청, 자갈치나 국제시장, 또는 대신동 공설운동장까지 가는 지름길로 많이 이용되던 뱃길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여느 포구처럼 조선에서 약탈한 온갖 물자를 실어 나르던 곳이었고, 6·25동란 때는 피난민들을 내려놓던 곳이기도 했으며, 등 뒤에 `P'자가 찍힌 인민군 포로들이 미군 드럼통을 선착장까지 굴려서 선적하던 곳이었다고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조그맣고 시커멓던 판자 건물 대신 칙칙한 타일을 바른 콘크리트 건물의 우암역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그 주변은 기차 침목이나 나무전봇대를 콜타르에 담가 푹 쪄내던 작업장이 있었다. 60년대 중반쯤, 갓 쪄낸 침목이나 시커먼 전봇대를 실은 화물열차가 서행하면 채 식지 않은 온기 때문에 매캐하고 텁텁하면서 역한 송진 냄새까지 풍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암역을 마주하는 길 건너편에는 우암동과 감만동 지역의 유일한 휴식공간이었던 동원극장이 있었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대한종합식품,못과 용접봉 생산업체로 유명했던 조선선재가 있었다. 조선선재 골목길로 가면또 성지중학교, 성지공고도 있었다
철도길 건너편 창고사잇길 지나면 성창 원목이 바다에 더있었제. 고시래기도 잡고~~
첫댓글 아련한 추억입니다.
적기뱃머리, 우암부두,성창합판, 우암역, 동원극장 낯 익은 단어,동네
동원 극장 생각난니다 잠시 옛모습에 추억에 잠겨 봅니다~~~이모가
성창합판에 다녀는데~~~~
아주 상세하게 기록 하셔네요.감탄해습니다
ㅋㅋㅋ저는 고시레기 잡아든 기억 납니다.아주 크서요
이 글은 부산남구신문(2007년 발간)에 게재된 남구이야기 '그 라인을 추억하다'를 옮긴 글로 남구문인협회원인 소설가 곽태욱님이 집필한 글입니다. 귀한 향토자료 발굴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페지기 이규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