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대왕 : 순조(1790-1834. 재위: 1800-1834년. 집권 34년.)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이며 수빈박씨 소생이다. 1800년 정월에 왕세자에 책봉되고 그 해 6월에 정조가 죽자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한다. 그러자 영조의 계비이며 대왕대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하게 되었다. 그는 순조1년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천주교도를 잡아들이기 위해「오가작통법」을 썼다.정순왕후는 근 5년 동안의 수렴청정을 거두고 물러앉은 뒤 1년만에 죽는데 벽파의 기둥이었던 그가 죽 자 벽파는 다시 몰락의 길을 걷는다. 1802년 김조순의 딸을 순조의 비로 맞아들인다. 이때부터 영안 부 원군 김조순 일문에 의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60여 년간 이어진다.
순조 시대에는 김조순이 정권을 전단하다가 헌종대에는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 에게로 넘으가고 ,철종 대에 와서는 김좌근의 양자 김병기에게로 넘어간다. 세도 정권의 특징 이라면 당쟁시대와는 달리 견제 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 어린 왕을 정권에서 배제시켜 버리는 세도 정권의 전횡을 가능 하게 했으며, 그 결과 관료사회의 부패와 백성을 상대로 한 수탈과 민생의 피폐가 나타났다.
농민들의 불만은 순조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비롯,19세기 중협이후 전국적인 민란으로 폭발했다. 이러한 민란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권을 궁지에 몰아넣는 한편 그에 불만을 품고있던 조대비와 흥선대원 군의 밀약으로 고종의 즉위와 함께 안동 김씨의 세도 정권의 막을 내리게 한다.
● 홍경래의난 : 세도정권에 의한 과거제도와 국가기강의 문란, 삼정을 통한 관리들의 횡포 등에 대항 하여 몰락한 양반과 지식인 등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 등장한 부농과 사상인 들의 물력과 조직 력 등을 결합하여 10여 년간의 준비 끝에 일어난 것이다. 평안도 용강 출신인 홍경래는 본디 양반 출신 으로 과거에서 수 차례 떨어지면서 그것이 서북인 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과거를 포기한다. 홍경래의 난은 비록 성공 하지는 못했지만 이씨왕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새로운 정치 체제를 표방함으로써 조선 사회에 큰 타격을 가하여 그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
● 순원왕후 김씨(1789-1857) :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창조인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 이다.
1800년(정조24년) 초간택,재간택을 거쳐 삼간택을 앞두었을 때 정조가 갑자기 죽자 영조의 계비인 정순 왕후의 외척 김관주와 권유 등의 방해로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1802년 왕비에 책봉된다. 순원왕후 김씨는 안동 김씨 일문의 집권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한때 세자비의 외척인 풍양조씨 일문 에게 정권의 주도권을 빼앗기다가 헌종 대에 이르러 다시 회복 하지만 헌종이 젊은 나이에 죽자 자손이 없는 헌종의 왕통을 누가 이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났다.이때 정순왕후 김씨는 조대비 일문이 미쳐 손을 쓰기 전에 재빨리 원상에 권돈인을 지명하고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강화도령 원범을 지목하여 왕위 를 잇게 한다. 또한 자신의 외가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에 책봉함으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 정권은 대원군이 등장하기 까지 60여 년간 이어진다.
● 효명세자(1809-1830) :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났으며 3세에 왕세자에 책봉 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의 딸을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구현에 노력 했으나 대리청정 4년 만인 22세에 죽는다. 이때 그의 외척인 조씨일파가 대거 등용되어 안동 김씨 일파 와 정치적 세력 투쟁을 벌임으로써 정국이 혼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익종(이호,효명세자), 명온, 복온, 덕온공주.
숙의 박씨(淑儀 朴氏);-영온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