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전 교무가 쓰는 선진 읽기 ⑤
활인(活人)의 삶 안산 장인중( 安山 張仁中) 대봉도

얼음같이 맑고 옥같이 조촐한 마음으로 (氷淸玉潔之心),
인술로써 인간을 살리는 일에 (仁術活人之事),
제생의세의 큰 원을 세워 (大願濟生醫世),
능히 영육쌍전 공부와 (能以靈肉雙全),
일원대도 정법으로 (一圓大道正法),
세세생생 활불이 되리라 (世世生生活佛).'
일생을 활인의 삶으로 헌신한 안산 장인중(安山 張仁中) 대봉도의 좌우명이다.
일생동안 교단의 의료기관에서 헌신하며,
정산종사와 대산종사의 주치의로
열과 성을 다하고 전무출신들의 건강을 살폈다.
전북 산서가 고향인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문사숙에서 공부를 했다.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살던 흠산 모상준 대봉도를 만나
"이리에 있는 불법연구회에서 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자
흠산은 "한문공부를 더 하고 오라"고 했다.
이후 한문공부를 기초로 해서 한약업을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군산 중일약업에서 공부를 했다.
여기서 거래처 관계로 알게 된 공산 송혜환 대봉도와 흠산에게
"나도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이리보화당으로 직장을 옮겼다.
보화당에서 한의학과 원불교 공부를 하면서
대도회상에서 전무출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드디어 동산 이병은종사의 추천으로 원기42년 전무출신을 서원한다.
이후 보화당을 교법이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영육쌍전의 일터로 여기며,
이리·서울·부산 보화당과 익산원광한의원, 중앙요양원 등에서 인술을 베풀었다.
특히 각 지역에 보화당을 개원할 때 마다 그의 의술은 빛이 났다.
명성이 전국에 알려져서 지역사회에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초기교단의 재정적 보루와도 같았던 보화당이 장족의 발전을 가져왔다.
실적이 쌓일수록 상없는 마음과 자리이타로 상도의 모범을 보이며 살았다.
이처럼 의료계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교화계에 근무하기를 염원했다.
어느 날 정산종사께 "교화 현장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산종사는"교화계나 의료계나 제생의세하는 동등한 일이다.
영육쌍전 이사병행하는 자리니, 공부도 하고 복도 짓는 일이다"며 용기를 주었다.
이후 40여 년을 오직 의료계에서 일생을 헌신했다.
정산종사 주치의를 담당하면서
"전무출신은 위공망사하고, 위법망구해야 한다.
이 정신이 없으면 헛 전무출신이다"는 말씀을 받들고,
일생동안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생로병사는 우주의 정칙이다.
그에게도 허리디스크와 요사통풍이 찾아왔다.
"진리께서 나를 공부시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한것 같다.
몸 불편한 것이 마음에 밝음을 가져다주었다.
병으로 보약을 삼는다"며
만년을 낙도생활로 일생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