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산사호가 세상에 출현 적이 있었다.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하고 후계자 옹립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때 그의 정비(正妃) 여후(呂后)와 총부(寵婦) 척(戚) 부인이 서로 자기 자식을 태자로 옹립하려고 경쟁하고 있었다.
여후는 그의 동생 여택과 이 문제를 의논했다. 여택은 다시 유방의 명 참모이자 지략가 겸 왕자의 스승인 장량(張良)에게 그 방법을 의논한 결과 장량이 넌지시 알려 주었다. "폐하는 천하를 평정하자 천하의 현자를 초빙 했으나 이 초빙에 응하지 않는 네 사람이 있는데, 이 네 사람만 모시면 태자의 자리도 안전 할 것입니다." 여택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사람을 시켜 네 현인을 모셔다 태자 영(英)이 고조와 군신이 모두 모여 있는 연회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네 사람의 나이는 80여 세이고 머리도 눈썹도 수염도 눈처럼 희였다. 의관이 거룩해 보였고 고고한 기풍은 흡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신선같이 느껴졌다. 이들 상산사호는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후, 어질다는 말을 듣고 여러 차례 초빙했으나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들이었다. 고조가 물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대들을 찾았으나 나오지 않더니 지금 어찌 내 아이(태자)를 따르려 하는가?"
"폐하께서는 선비를 업신여기고 꾸짖기를 좋아하시니 신 등은 의(義)로서 욕됨을 받지 않으려고 황공하게도 피했나이다. 지금 태자 영은 성품이 어질고 인품이 뛰어나 선비를 아낄 줄 아시므로 천하 백성들이 모두 그 분을 위해 죽음도 사양치 않는다 하옵니다. 이 분이야 말로 저희들이 섬겨야 할 명군이라 생각되어 스스로 나와 이렇게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네 현인들의 말이었다.
고조는 네 노인을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대들은 오래오래 태자를 지키고 보좌하라"
네 노인이 물러가자 고조는 척 부인을 불러 말하였다. "나는 태자를 바꾸려 했으나 저 네 노인이 태자 영을 보좌하고 있어 이젠 깃과 날개가 다 돋았음이니 움직일 수가 없소. 단념하시오" 십년 공들인 척(戚)부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고조가 태자를 바꾸지 않은 것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이들 네 현인을 불러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유방이 죽은 후 그 아들이 즉위하자 정권을 잡은 여태후(呂太后)는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척(戚)부인의 손발을 자르고 눈을 후벼 판 후 돼지우리에 넣어 기르게 하며, ‘인간돼지’를 보라고 조롱하고 비웃으며 처절하고도 끔찍한 복수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