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말씀
꿈속에서 어머니는 그곳이 참 편하시다네.
괜찮다 걱정마라 생전에도 속이시더니
내 눈물 닦으시려고 거짓 말씀 또 하시네.
고백
주문 넣은 점포가 어느 날 문을 닫아
간절한 본전 생각 삭일 길 아득한데
세모의 자선냄비를 못 본척한 나를 보네.
그들의 추석
배춧값 시금치 값 산보다 드높아서
추석 고개 넘자면 만 가지 시름인데
보름달
주문 없이도 창을 열고 들어앉네.
목련
고운 자태 좋다 시며
어머니가 심은 목련
집채보다 큰 둥지
올봄에도 환히 짓네
심은 님
가신 줄 아는지
서럽도록 더 밝네.
무소식
서투른 손끝으로
전화번호 날려놓고
그런 줄도 모른 채
여러 날을 살아왔네
아마도
너의 손끝에
나도 멀리 날렸겠지.
복수초
어깨에 내린 흰 눈
톡톡 털어 말리면서
찬바람과 햇살 틈을
가늠하던 두 손에
참말로
봄이라고 쓴
현수막이 영글다.
인사동에서
-골동품 전
가는 봄
잡고 싶은
늙기 싫은 당신들이
세월 겹겹
내려앉은
옛 물건 앞에 서서
오래된
빛깔 고르며
참이냐고 묻는다
부석사에서
낮달이 탑에 걸려
초침이 멎은 산사
비우라는 목탁 소리
청아하게 들리건만
기어이
남몰래 품은
쪽빛 하늘 한 조각
경포 찻집에서
비 내린 자리마다 흥건한 물이 들고
푸르던 바닷물도 생각에 젖은 오늘
나는야,
깊은 가을로
자박자박 들어서네.
부석사 석등
백팔계단 무심으로 올라서서 고개 드니
등 燈 없는 석등에서 사방으로 새는 불빛
절집만 환히 밝히랴, 가슴에도 불이 든다
두 손을 모아 잡고 무량수전 뜰에 서서
켜켜이 쌓인 허물 한 겹 두 겹 걷노라면
연화대 여덟 장 꽃잎 불그스레 생기 돈다.
2007년 《시조문학》 등단 제34회 한국시조문학상, 제3회 포은시조문학상대상. 달가람시조문학상 외 『초승달에 걸린 반지』 『별이 되는 꽃』 『쪽빛 하늘 한 조각』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
전)한국문협 영주지부 회장·월하시조문학회회장· 영주시조문학회회장
현)여성시조문학회이사. 시조문학·영주문협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