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T.V <책나라 탐험> '꿈을 찍는 사진관' 녹화(1987년)
안옥희(1954~1993)! 이화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1971년 MBC 탤런트 2기로 연예계에 데뷔한다.
TBC 드라마 <어머니>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일약 신데렐라가 되었다.
1975 영화<춘자의 사랑이야기>
1977 월간문학 희곡 당선
1979 월간문학에 동화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당선
희곡 <저 산너머에 행복이> 당선
90년대 초 KBS 드라마 <내 마음 별과 같이> 에서 주역
1993. 10월 위암으로 별세
안옥희, 그녀는 나와 수 차례 편지도 왕래하며 문학적 교감을 가졌고 아동문학 동인 <두레마을>결성에 대해 논의도 하는 등
한참 레포가 형성돼가던 차에 불운하게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87년 정묘년을 맞아 그녀는 붉은 토끼 연하장을 보내주었다. (영채는 그녀의 본명)
안옥희! 그녀는 이 세상에 부재한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불꽃처럼 태워 오직 예술을 위해 소멸시키고 유성처럼 사라졌다. 모든 것 아낌없이 일에 쏟아붓고는 말없이 떠나버렸다.
한 가지 일만으로도 끙끙대며 감당키 벅차 주저앉고 마는데, 그녀는 탤런트로,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 희곡작가로. 동화작가로, 수필가로 일인 다역의 다양한 재능을 발산하였다. 예술 전반에의 욕망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넘쳤던 것이다. 그녀는 야무지게 목적한 바를 위해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갔다. 건강을 믿었다. 예술을 향한 이상과 꿈을 믿었다. 후회없는 삶, 그녀를 위한 말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하였고, 배우로서의 연기자의 삶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건강을 잃는다. 위암이었다. 39세 한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죽음을 고향 해남에서 방송을 통해 알았다. 공직만 아니면 장례식장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녀의 문학을 사랑하였다.
안옥희! 그녀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간다. 자꾸 아쉬움이 고개를 쳐드는 이유는 그녀의 짦은 생이 정오의 태양처럼 뜨거웠기 때문이다. 몇 사람 몫을 한꺼번에 감당한 그녀지만 떠넘기지 않았다. 고스란히 등에 맨 채 헤쳐나갔다. 욕심 많은 배우요, 동료문인이었다.
그녀는 70년대 동시대 브라운관에서 은막에서 함께 했던 정윤희의 볼륨 있는 뺨을 가졌다. 복사꽃 뺨이었다. 고혹한 문희의 눈망울을 가졌다. 우수에 젖은 듯한 청순미를 지녔다. 손예진의 순수함의 이미지가 녹아내린다. 내게는 복합적 매력을 확보한 여성상으로 남아있다. 그녀가 떠난지도 26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가 본 그녀가 출연한 마지막 작품은 T.V.드라마 <내 마음 별과같이>이다. 30년대 유랑극단에 뛰어든 여인들의 일생을 통하여 예술의 참된 의미를 재조명해보고 유랑의 역사의 이면을 그려본 인기드라마였다. 특히 주현미와 현철이 부른 주제가도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세인들 입에서 불려졌다. 그녀는 영원히 우리 곁에서 유랑을 떠났다.
첫댓글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유랑을 떠난지 어느덧 26년이 되었구나. 우리의 정오의 태양처럼 불타올랐던
예술에의 열정은 그러나 아직 식지 않고 있다. 그녀도 나도 지상에서 하늘나라에서 치열하게 감성과 시대의 언어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나도 카메오처럼 안성기 주연의 <아들의 이름으로> 극영화에 출연했다. 단역이지만
내 인생에 획기적인 궤적 하나를 남긴 셈!(2020년 5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10월로 연
기되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