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구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하다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은 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던 한반도도 비켜 가지 않았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9월경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철도망을 따라 동아시아로 확산한 뒤 한반도 전역을 덮친 것으로 전해진다.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학교와 회사가 문을 닫았고, 농촌에서는 익은 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렸다. 거리에는 상여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조선 팔도의 민심은 크게 흔들렸다.
학교와 회사가 문을 닫고 농촌까지 멈추다
1918년 11월 11일 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스페인독감이 유행하자 각급 학교가 일제히 휴교하고 회사들도 휴업에 들어갔다. 농촌의 상황도 심각했다. 추수를 해야 할 시기였지만 주민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면서 들녘의 익은 벼를 제때 거두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마을마다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했고, 상여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전염병은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교육과 산업, 농업, 행정 기능까지 마비시키는 국가적 재난으로 번졌다.
직원들이 전멸한 우편국
당시 전염병의 심각성은 지방 우편국의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18년 11월 14일 자 〈매일신보〉에는 악성 감기가 창궐하면서 일부 지방 우편국 직원들이 거의 전멸해 다른 지역에서 지원 인력을 파견해야 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악성 감기의 창궐로 인하여 지방 우편국 중 국원이 전멸되어 다른 곳에서 응원자를 파견케 하는 곳은 평남 개천군 우편국, 충남 아산 우편국, 인천 전화계, 김천 우편국이며, 거의 전멸이 된 곳은 풍산·갑산·박천·용암포·공주·삼수의 각 우편국이다.
— 〈매일신보〉, 1918년 11월 14일
우편과 전화는 당시 지역 간 소식과 행정 정보를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우편국 직원들의 집단 감염은 스페인독감이 일반 가정뿐 아니라 사회 기반시설까지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선 인구의 42퍼센트가 감염되다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는 1918년 당시 조선 인구 약 1,759만 명 가운데 약 740만 명이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42퍼센트에 해당한다. 감염자 가운데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조선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26명당 1명꼴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 당시 조선 인구: 약 1,759만 명
- 감염자: 약 740만 명
- 감염률: 약 42퍼센트
- 사망자: 약 14만 명
- 전체 인구 대비 사망 비율: 약 126명당 1명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환자와 사망자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는 공식 기록보다 더 컸을 가능성도 있다.
백범 김구도 스페인독감에 걸리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백범 김구 선생도 스페인독감에 감염됐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독감에 걸려 약 20일 동안 심하게 고생했다고 기록했다. 스페인독감은 신분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퍼졌으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큰 위협이 됐다.
조선 후기에도 반복된 역병의 기록
스페인독감 이전에도 조선에서는 전염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전염병은 기근과 결합하면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광해군 5년, 1613년 이 무렵부터 해마다 전염병이 발생했다. 서울 수구문 밖에 시체가 서로 겹칠 정도로 사망자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현종 12년, 1671년 전염병과 대기근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약 1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숙종 33년, 1707년 전염병으로 어린이들이 특히 많이 사망했다. 거리에서 아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영조 6년, 1730년 한양 5부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망자가 거의 1만 명에 이르렀다.
영조 25년, 1749년 전염병으로 약 50만에서 6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조 51년, 1775년 홍역이 크게 유행하면서 당시 인구 약 800만 명 가운데 약 23만 명이 사망했다.
고종 32년, 1895년 중앙과 지방에서 호열자라 불린 콜레라가 크게 유행했다. 정부는 소독규칙과 예방·소독 집행 규정을 공포하며 방역에 나섰다.
※ 관련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의 전염병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