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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쓸 것인가
마중물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적인 행위이다.
어느 날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왔다. 읽는 것을 좋아 했기에 쓰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 란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쓰기 시작하자 어렵다는 생각이 더하였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중심으로 요약정리 하였는데, 거창한 이론서가 아닌 내가 쓰기 위한 몸부림 정도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글쓰기 하면 우선 첫 문장이 안 나와서 쉽게 못쓴다. 다른 사람은 첫 문장이 쉽게 나와서 잘 쓰고 있을까. 무엇보다 쓰겠다는 적극성의 결여가 이유일 것이다. 그 내면에는 평소 생각은 많았어도 그냥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좋은 생각과 문장이 떠오르거나 멋진 정경을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붙잡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개인의 방법에 따라 기억, 사진, 스크랩 또는 메모로 이어진다. 바로 출발점이다.
글을 쓴다 하더라도 어려워하는 이유는 두려움이다. 세상에 이글은 완벽하다라며 찬사를 받는 글이 몇 편이나 될까? 글은 많이 발표할수록 비평에 시달린다. “내가 아는 작가 모두는 이것 때문에 두려워한다. 쓰는 것.” 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아는 고전이라는 작품도 비평 앞에서 완벽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는 의욕, 완벽하게 쓰려고 하는 부담 그런 것이 공포를 불러 오는 것은 아닐까.
글쓰기를 하고 있으나 더디다는 말도 한다. 쓰는 사람의 취향내지 습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재의 빈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일상에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른 눈을 갖고 바라보자, 또한 깊게 사유하는 습관이 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글쓰기 시작 어떻게 할까
우리는 부정적인 목소리에 약하다. 그런 말이 속에서 올라오면 심연의 소리에 기울이자. ‘그냥, 계속해. 네 이야기를 써.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라고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시 지금 있는 곳에서 쓰기 시작하고 내 기분과 상관없이 아무 때나 쓴다. 무엇보다 그냥 써 보는 거다. 머리로 백 날 생각 해 본들 소용이 없다. 그것은 생각이지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 꽉 막히면, 마구쓰기를 해보자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다. 문법, 형식, 내용에서의 규제를 벗어나는 글쓰기이다. 상소리를 해도 좋고 낯 뜨거운 내용을 써도 좋다. 목적은 백지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다. 운동 전의 몸 풀기와 같다. 긴장감을 없애고 몸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워밍업이다. 글쓰기도 손가락 운동이다. 피아노 치듯 자판 위를 날아 다녀 보는 거다. 그리고 자판위에 스케이트를 타듯 활자를 마구 쳐본다. 처음 하얀 백지를 채운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니 두려움이 앞선다. 꽉 막히면 주변 사물 이름부터 적어본다. 단어 나열, 문장의 파편, 토막글도 괜찮다. 글이 나오지 않을 때는 연관되는 단어 하나를 백지위에 써본다. 글이 글을 이끌어 내듯 실마리가 될 수 있는 활자 하나라도 기록하면 그 단어가 또 다른 단어, 문장을 이끌어 낸다.
연필 드로잉 할 때 틀렸다고 지우개를 집어 드는 순간 또다시 맥은 끊긴다. 틀리면 기존 선을 무시하고 그 위에다 다시 긋는 것이다, 지저분해진다고? 그게 더 멋있다. 곱게 다듬어지지 않고 거칠게 움직이는 듯한 선, 그것이 빠른 드로잉이 매력이다 – 백남원, 드로잉 정석
○ 사람이름 쓰고 대화하기(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 느끼기)
글쓰기는 힐링의 과정이요 효과가 탁월한 테라피다. 안부 편지를 써보자. 아니면 이름을 써 놓고 노트에 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 때 그 사람과의 미묘한 감정을 자세히 적어보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다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은 우리를 무한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
○ 가까운 소재로 문장을 만들 본다
나의 닉네임은 카르페 디엠이다. 아침에 일어 날 때마다 닉네임을 외친다. 순간을 붙잡자. 한 번 뿐인 인생이다. 지금 이순간이 지나면 시간은 영원히 박제가 된다. 이 순간을 철저히 누리고 즐기자. 하루 15분은 오늘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자. 남은 인생 후회 하지 않을래. 자 넷츠고 ! 레잇고 !
○ 지금 순간을 붙잡는다 – 메모장 활용
메모를 잘 하기 위해서는 도구준비를 항상 해야 한다. 기록은 단숨에 단문으로 적는다. 2번 이상 봐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메모에서 장문이다.
나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더 낫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꼼꼼히 적어 놓는다. 기록이란 감성의 카메라와 같다. 기억은 자고나면 사건의 골자, 즉 뼈대만 남지만 기록은 그때의 감성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통통한 살도 붙어있고 향기와 온기도 남아있는 것이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 짧은 글을 자주 만들어 본다
글을 쓸 때 문장 한 구절, 짧은 스토리하나로 기둥을 세우면 나머지는 수월하다.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이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 다음을 이어가기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인 입장에서 사과문을 써본다. 그들은 어떻게 사과 하는가 살펴보자
그녀의(그의) 입술의 떨림을 느꼈다. 그 다음은 (감정을 표현)
애완동물(반려동물)과 헤어졌다. 그 후 나의 삶은
글쓰기의 기본은 일단 글을 쓰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시) 8쪽 – 불륜 이야기 (제프 위트모어)
○ 엽서 한 장 써보기
삶이 무료하다 느끼던 중 해외로 여행간 친구에게서 엽서 한 장을 받았다. 멋진 그림 풍경에 잠시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그게 처한 현실이라면 이내 우울 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 상황을 바꾸어 엽서를 받는 친구가 기분이 업 되는 엽서를 쓰는 것이다. 받는 쪽이 더 나은 상황이라고 느끼도록 묘사하여 보는 것이다 (배려하는 글쓰기)
안녕 잘 있었어? 말없이 떠나 이곳에서 안부 전한다. 지금은 네가 나와 같이 있지 않을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거야. 이곳 북해도에 눈이 엄청나게 와서 모든 교통이 단절되었어. 마트에 가려고 택시를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었단다. 10년 만에 대 폭설이라 일주일 동안 출입을 자제하라고 방송에 나왔다. 일주일이면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 같은 여행자에겐 절망적인 뉴스더라. 숙소에 머물 시간이 많을 것 같아 일주일 동안의 생필품을 미리 사 두려고 여기에 왔어. 물품은 거의 다 소진되고 라면도 몇 개 없어. 가관인 건 줄을 서서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계산할 때야 알게 됐지 뭐냐. 현금, 신용카드를 숙소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아! 창 박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네. 이럴 땐 니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어휴. 만나면 맛있는 커피 한 잔. 안 ~ 뇽
좋은 글을 읽고 베껴보기
글쓰기는 다른 예술처럼 혼자 배우기는 매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작가 신경숙은 필사를 통해 고수가 되었다. 여름방학 내내 필사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시작은 서정인의 “강”이라고 한다. 필사, 베껴 쓰기는 일단 지루하다. 그러나 사랑하면 미칠 수 있고, 미치면 일을 낼 수 있다. 필사를 하다보면 아름다운 문장과 만나고, 그 문장과 사랑에 빠지며 즐거움은 물론 자양분이 된다.
누구나 글을 읽다 보면 좋은 글에 반할 때가 있다. 밑줄을 긋고 마음에 품고 그리고 자신의 펜으로 옮겨 본다. 거기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더하여 다른 문장으로 탄생한다. 좋은 문장을 익히는 일이 글쓰기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많은 문인들이 이 과정을 거쳤다.
예시) 7쪽 - 윤오영 수필 중에서
진짜 글쓰기의 시작은 관찰이다
예술이나 문학의 대가들은 ‘관찰로부터 시작 한다’는 말이 있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풍경을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어야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알고 보면 잘 관찰하고 꼼꼼히 글로 옮기는 사람이다. 세상을 바라 볼 때, 삶의 흥미를 스스로 키우는 것인데 사람, 사물, 문학, 예술, 음악 무궁무진 하다. 세상은 다채롭고 귀중한 순간의 연속이다. 아름다운 영혼들과 재미있는 사람들이 요동치고 있다. 나이 들수록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더 느낀다고 한다. 지금 창 밖에 보이는 풍경, 사람, 사물을 기록하여보자. 보이는 것 모두 글로 옮길 수 있다.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하여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 쓰지 말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보았던 영화에 대해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만한 것들 뿐 이예요.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봄이면 시간을 내어서 어떤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애인과 한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은 어땠는지, 그 날의 날씨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쓰세요. - 김연수
○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좋은 소재는 다른 눈으로 보는 관찰이다. 자신을 잊고 다른 무엇이 되어 바라보자.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인간은 물고기 아니면 작은 벌레였다. 다른 내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하고 경이로움을 얻게 할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후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축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있었다 – 카프카 , 변신
예시) 8쪽 - 권영상의 시 밥풀 감상 ( 사물에 대한 통찰 )
글의 표현은 물 흐르듯,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난 태양을 그릴 땐, 사람들에게 태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밀밭을 그릴 땐 밀알 안에 든 원소 하나하나가 영글어 터지는 순간을, 사과를 그릴 땐, 사과즙이 표피를 밀고 나오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사과 씨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려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어.
- 나의 형 빈센트 반고흐
것이라는 글자로 인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이 ‘것’자를 없애면서 표현을 달리해 보면 생생한 느낌이 더 든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 보자는 것이다
태양을 보고 글을 쓸 땐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그 놀라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밀밭 풍경이라면 밀알 안에 든 원소 하나하나가 영글어 터지는 순간을, 사과를 묘사할 땐, 사과즙이 표피를 밀고 나오려는 안간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다시 말해 사과 씨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려 몸부림치는 그 생생함을 느끼게 만들고 싶단 말이야.
그녀는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F 장조에 호흡을 불어 넣었다. 그녀는 악보위에 음반처럼 은반 위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 AP통신, 스포츠기사 중에서
우연은 우연처럼 오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방아쇠 당긴 사라예보총성. 100년 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황태자부부가 쓰러졌다. 19세 학생 가블릴로의 저격 성공이다. 1914년 6월 28일, 세상은 뒤집어졌다. 발칸의 총소리는 전쟁의 뇌관이었다. 한 달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암살 드라마는 우연의 결합이었다. 우연은 운명으로 돌연변이 했다. 우연은 우연처럼 오지 않았다. (2014. 3. 8. 중앙일보 1면)
꽃의 속삭임까지 듣는 감성
정(情)이 글을 낳지 글이 정을 낳는 것은 아니다. 글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온 종일 비가 내렸다. 거리를 지나다 걸음을 멈춘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번져왔다. 어디서 오는 향기일까?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니 골목 끝에 라일락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는 그 쪽으로 걸어갔다. 보통은 ‘향기 참 좋다’라며 지나칠 뻔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꽃이 지나가는 나에게 향기를 흘려보낸 것은 내게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왜 꽃이 자신을 부르는지 알기 위해 서성거렸다. 그러다 꽃의 말을 들었다.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그는 굴곡진 삶 속에 빛바랜 자신을 돌아보았다.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책의 제목이 되었다. 감성은 마법을 일으킨다. 작은 사물 하나, 작은 사건 하나에 대한 느낌은 글쓰기에서 무척 중요하다.
‘라일락은 연보라색이라 비에 젖으면 금방 지워질듯 한 여린 빛이다. 그런데도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있다. 세월의 빗발에 젖으며 나는 내 빛깔과 향기를 얼마나 많이 잃어 버렸던가. - 도종환 ,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평론 중
당신의 마음 안에 있고 싶다. - 짜릿하고 따뜻한 느낌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첫 문장 쓰기
첫 문장은 꽃이다. 저마다 고운 자태로 독자를 유혹한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혹적 향기로 호기심을 자극해서 품 안으로 끌어오도록 한다. 마법의 시작이다. 씨앗이 되어 줄기로 뻗어나가 단락을 이루고 그리고는 만개한 ‘글의 정원’을 만든다. 잘 써진 첫 문장은 작가 스스로도 자기 눈을 의심하며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첫 문장은 뇌관이다. 첫 장을 연 독자를 위한 버튼이다. 이내 가슴속에서 터진다.
첫 문장은 심장이다. 독자를 압도하는 핵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덫이어야 한다. 글속으로 끌어들여 붙잡아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첫 문장은 중요한 만큼, 산고의 과정을 거쳐 맨 마지막에야 나온다.
예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 칼의 노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카뮈 ; 이방인)
티끌 자욱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이문열; 삼국지)
그 여자 배꼽 밑에는 화살문신이 있다. (김영하 ; 비상구)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 ; 엄마를 부탁 해)
그녀의 치마가 펄럭이었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실)
직접 낭송하여 본다
낭송하여 보면 어감, 낱말 문맥 등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귀에 들어온다.
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인수지우 책인즉명, 수유총명 서기즉혼) 사람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어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비록 총명할지라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는 어둡다.
자신에게(안으로) 엄격하고, 남에게는(밖으로) 관대해야 한다.
별지 -7 페이지
윤오영의 글을 살피다
( 1906 – 1976 ) 2014. 1회 윤오영 수필문학제정
◎ 자식은 돈을 벌러 외지에 가서 백골로 돌아오고, 딸은 돈벌이로 호텔에서 웃으며 나온다. 죽은 자식은 잊으면 그만이다. 외국 손님 품에서 시달리는 딸년은 애처롭지만 아침에 웃고 들어오는 얼굴은 역시 해사하다. 그러나 기쁜 것은 돈이다. 판자 집이 양옥이 되고 골덴텍쓰 양복에 제법 반반한 신사가 된 것도 다 이 친구 덕이다. 이래서 역시 돈이 좋다. 유지 신사 축에 들고 사회 명망가의 대열에 낄 수 있다면 약간의 희생은 출세를 위하여 가문을 빛내기 위하여 잊어야 한다. 냉방에서 콧물을 줄줄 흘리며 도사리고 앉아 준치가시 같기만 했던 잣골 샌님의 후예는 이렇게 변했다. 돈이 더럽다고 젓가락으로 뇌까리던 선비의 후손은 이렇게 황금 앞에 충신으로 변했다. 그리고 소원대로 복을 받아 이제는 남 앞에 어깨가 으쓰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술을 먹고 체신없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 - 『 왜 울었던고 전문
그것은 자기도 모른다는 말이 수필의 결론이요 해결이다. 그 이상 더 표현할 말이 없다. 이것이 진실로 슬픔이 아닌가.
◎ 꼭 그에게 무엇인가 하나 선물을 주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선뜻 생각나지 아니할 때면, 글을 쓰다가 꼭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아니할 때처럼 삭막하고 아쉽다. 꼭 누구에게 선사했으면 싶은 물건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보내줄 만한 자리가 없으면 또 허전하고 쓸쓸하다. - 중략 -
㉠ 돌아서 오면서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 버선을 돌아다보곤 했다. 그는 타래버선을 못 사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갖다 줄 손주가 없어서 쓸쓸하고 슬펐던 것이다. - 중략
㉡ “미나리 한 포기를 키워서 씻으이다. 연대 아니아, 우리님께 받자오이다. 맛이야 긴치 아니커니와 다시 씹어 보소서” 유희춘(柳希春)의 시조다. “다시 씹어 보라”는 말이 얼마나 애틋한가. 또 다시 씹어줄 님이 없다면 미나리는 외롭고 보잘 것 없다. - 중략
㉢ “玉環(옥환) 한 짝 보내오니, 이것은 이몸이 少女(소녀)때 갖던 물건이외다. 님의 옷자락에 달아 주옵소서. 玉(옥)같이 고운 님의 情(정), 고리처럼 돌고돌아 끝나지 마옵소서. 白紋竹(백문죽) 한 벌, 색실 한 타래 곁들여 보냅니다. 눈물 흔적, 대 위에 있고, 시름겨운 심사 실마리에 얼켰사오나, 물건 보시고 이 뜻 짐작하소서. 변변치 못하오나 눈물맺힌 정성으로 올리는 兒女子(아녀자)의 마음. 길이길이 안녕하오서.”
- 윤오영 선물 중에서
별지 -8 페이지
밥 풀
권 영 상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던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걸음을 아래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도 없이
이 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방바닥에 떨어진 밥풀 한 알에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한 시인의 예리한 감성과 통찰. 큰 공동체 안에 함께 살다보면 밥알들끼리 서로 좋아해서 붙어 있기도 하지만 다름에서 오는 사소한 갈등과 아픔을 못 견뎌 갈라지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같은 집안에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의 인내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귀한 인연일 것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을 적마다 내 그릇에 담긴 밥알과 내 옆자리에 앉은 수녀밥알들을 감사와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며 새삼 행복한 나날들이다. - 이해인 수녀
불륜 이야기
- 제프 위트모어
“조심해, 자기야. 그 권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보드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 이걸로 자기 와이프 쏘려고?” “내가 직접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전문 킬러를 쓸 참이야” “난 어때요?” 그는 낄낄 거렸다. “귀엽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여자 킬러를 쓰겠어?” 그녀는 총을 들고 조준을 한 채 대답했다. “당신 와이프”
뉴욕타임스 에서 주최하는 50자 이내 단어로 된 스토리 당선작.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긴장, 섹스, 배신, 복수 그리고 살인. 짧은 이야기 속에도 인물의 성격부터 총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짧은 글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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