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
욕먹을 각오로 말한다. 나는 오디오를 한다. 이렇게 고백해 둬야 다음 이야기가 풀리기 때문에 미리 털어놓는다. 예전에 산속에 살았을 때 오디오를 켜두고 혼자 음악을 듣고 있으면 등산 온 사람들이 가끔 물었다.
“스님은 왜 염불 안 듣고 음악 들으세요?” 그때 나는 장난처럼 말했다. “나는 입만 열면 늘 염불하는데, 염불을 듣기까지 하고 있으면 얼마나 지겹겠어요?”
몇몇 분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만큼 음악은 절집과 이질감이 느껴지나 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도 탐탁찮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거다. 그런 분은 신문을 한 장 넘기시거나 다른 코너를 읽으시라. 괜히 욕해서 업 짓지 말고. 나, 욕먹으면 기분 나쁘다. 사람이니까.
나는 중고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다. 싸기 때문이다. 새것 사는 비용으로 중고를 사면 더 높은 단계의 오디오를 장만할 수 있다. 물론 고장은 감수해야 한다. 나는 앰프와 스피커, CD 플레이어 모두 중고를 쓴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중고 인생이 돼버렸다.
내가 보성선원에 올 때 그것들을 갖고 왔다. 우리절은 대구 주택가에 있는데, 도시 신도라고 해서 내가 음악 듣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 거기서 거기다. 고개를 갸웃거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이 입을 대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음악감상회’를 연 거다. 그래서 오디오를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음악을 틀어줬다. ‘그래, 나 음악 듣는다, 어쩔래?’ 이렇게 쎄게 나가야 별 말이 없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지금까지 대놓고 내게 뭐라고 한 사람은 없다.
| | | |
우리 ‘음악감상회’는 요즘 KBS 1FM에서 카이 씨가 진행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클래식, 가요, 뉴에이지, 영화음악, 재즈, 월드뮤직, 국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편성했다.
대구불교방송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했던 최현태 보살을 초청해서 그에게 진행을 맡겼다. 내가 선곡을 해서 넘겨주면 그이가 그 곡에 대한 소개를 써서 내게 다시 보내주었고, 내가 다시 검토하는 형식으로 원고를 완성해 갔다. 서두에는 계절 인사를 하기도 하고 날씨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음악만 들으면 지루할 것 같아서 라이브 연주도 넣었다. 어떤 날은 성악가가 오기도 하고, 소리꾼이 와서 판소리를 한 대목 부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대구시향과 경북도향의 연주자들이었다. 콘트라베이스, 첼로, 바순, 트럼펫, 호른, 섹소폰, 마림바 등의 연주자들이 반주를 넣어주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와서 앵콜 포함해서 세 곡 정도의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신도들은 하품을 했다. 다 들리도록. 연주자들에게 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볼 수 있는’ 음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지름신과 무척 친하다. 지난번에 말했지만, 빔 프로젝터와 150인치 스크린, 서라운드 영화를 볼 수 있는 오디오를 질렀다.
영상도 많이 확보했다. 러시아의 미녀 성악가 안나 네트렙코는 물론, 파바로티, 키신, 카라얀, 바렌보임, 두다멜을 우리 스크린으로 불러왔고, 심지어 비틀즈나 이글스, 태양의 서커스, 야니, 조용필, 소리새, 최성수까지 다녀갔다. 참 좋았다, 나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하품을 계속하더니 참가자 수가 점점 줄었다. 처음엔 46명이 왔었는데 13번째는 9명이 왔다. 마림바 연주자는 그래도 꿋꿋하게 세 곡이나 연주했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가사에 이런 게 있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렇게 음악감상회를 종쳤다. 에이, 실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