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많은 왕들 중에서 루이 9세(1214-1270)이 유일하게 성인으로 추증되었다. 카스티야 출신의 어머니 블랑슈는 넷째 아들을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데 성공하였다. 어머니는 마르그리트를 며느리로 선택하여 1234년 5월에 성혼하였다. 루이와 마르그리트가 너무 금실이 좋아서 자녀를 11명 낳았으며, 다른 후궁을 두지 않았다. 소외감을 느낀 모후와 왕비의 사이가 좋았을 리가 없다.
시대는 십자군 원정이 정리되는 단계였는데, 1244년부터 출정을 계획하였다. 1248년 8월에 루이는 대규모 원정대를 편성하고 진두지휘하였다. 국정은 모후에게 맡기고, 약 100척의 배와 35,000명의 병력을 거느렸다. 목표는 간단했다. 이집트의 주요도시들을 점령하고 그것을 시리아 도시들과 맞바꾸려는 것이었다. 사막지역에서 지리한 공방이 거듭되었고, 그 와중에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 1250년 4월 6일이었다.
왕은 모든 가족을 대동하여 전선에 나갔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였기에, 출정하는 동안 부딪힐까 봐서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거느린 대열을 형성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 왕비는 가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처분하고 보석금을 장만하여 왕을 석방시켰다. 그러나 바로 귀국하지 않고, 여러 해 지난 다음 모후의 사망소식을 듣고서야 프랑스로 돌아갔다.
재위 후반기에도 줄곧 성지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다가, 다시 이슬람 공략을 주도하였다. 튀니지를 중심으로 이슬람 세계를 두 쪽으로 가르자는 전략을 시도했다. 그러나 커다란 실책이었다. 전염병이 군대에 타격을 입혔으며, 루이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 1270년 8월 그는 사망하였다. 루이의 시신은 프랑스로 운반되었는데, 지나치는 곳마다 백성들로부터 성자의 대우를 받았다. 1297년 성인으로 추증되었는데, 이례적으로 빠른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