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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atextualitä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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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amedialitä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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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medialität |
그러나 매체의 경계를 넘는 관계도 ‘상호텍스트성’ 개념에 포함시키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텍스트개념을 비언어적 표현에까지 확대한 결과인데, 이를 ‘상호매체적 상호텍스트성 intermediale Intertextualität’이라 부른다. 글자는 항상 상징기호(Symbol)를, 그림은 항상 도상기호(Ikon)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확대된 상호텍스트 개념’을 인식하는 하나의 토대이다. 예를 들어 그림의 도상성은 외연 차원에서만 나타나고 내포 차원에서는 도상적 지시를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면, 그 그림은 문자텍스트와 같이 역동적인 의미 발현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단일 매체로 보이는 것에도 실제로는 상호매체적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문자와 컴퓨터의 결합도 마찬가지다. 문학적 전달도구로서의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문자와의 유대를 전제한다. 만약 이런 유대가 없다면 ‘오차 0'를 지향하는 완벽한 정보교환만이 컴퓨터에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책과의 유대를 통해 비로소 컴퓨터는 의미를 자기 관점에서 유연하게 현동화하는 가능성을 이용자에게 열어 준다. 즉 컴퓨터와 이용자의 ‘진정한 대화’는 컴퓨터가 상호매체적 관계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하다. 관계(inter)는 본질을 상대화하며 모든 것을 ‘과정’ 속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하나의 명확한 사실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이용자가 다양한 의미 위치들을 방문하며 풍성한 체험에 이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과 문자가 함께 이끄는 상호매체적 네트워크는 동적이며 과정적인 의미 구성이 자유롭게 행해지는 열린 정보광장이다.
2.2 매체 수용의 유형
매체의 영향에 대한 관점에는 크게 보아 두 모델이 존재한다. 첫째 모델에서는 매체가 정보전달 과정의 주체가 되고 수용자는 수동적 위치에서 매체로부터 영향을 받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즉 이런 경우에 이용자는 ‘비인간적 목적격 im inhumanen Akkusativ'과 같으며 그의 역할은 주로 ‘받아들임’에 한정된다. 다른 모델은 수용자의 매체 이용에 더욱 무게를 두는 방향이다. 여기서는 수용자가 주체이며 매체는 객체로 존재한다. 상호매체성에 따른 ‘과정적 범주’로서의 매체 이용은 이러한 수용자의 구성적 활동을 전제한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매체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개인을 연결하는 고리이다. 여기서 수용자는 수동적인 ‘받아들임’을 넘어서서 자기 관점에서 ‘덧붙임’을 행함으로써 매체를 적극적으로 향유한다. ‘상호텍스트성’이 생성하는 정보의 과정적 속성은 단일 매체(글자)가 다중 매체로 확장됨에 따라 더욱 활성화된다. 정보운영이 탈중심화 내지 탈지역화됨으로써 그리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의사소통당사자의 원거리대면(Telepräsenz)이 가능해짐으로써 기존의 작가, 텍스트, 독자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의사소통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서는 저자의 창의성, 원전성, 권위는 뒤로 물러나고 대신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활동이 부각된다. 문학적 글쓰기에서 점점 비중을 더해 가는 공동참여 방식(Kollaborationsformen)은 문자와 글자의 저편에서 다선적 가지치기를 행함으로써 작가와 독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문학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더불어 다중매체시대에는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만지고 듣고 하는 다른 감각활동 또한 중요하다.
수용자의 역할을 ‘받아들임’과 ‘덧붙임’으로 구분함에 따라 매체수용에 대한 연구도 두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 유용성 방식(der Nutzenansatz)은 수용자의 ‘덧붙임’에 주목하는 연구 방향으로서 ‘인간이 매체와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Was machen die Menschen mit den Medien’를 해명하려 한다. 개인은 특정한 목표의식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수용가능성을 누리는데, 그 토대가 되는 것은 개인의 지평, 욕구, 동기, 기대이다. 이런 경우, 매체의 객관적 내용보다는 매체이용자의 주관적 성향이 우위에 있게 된다. 개인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고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아젠더-세팅 방식(der Agenda-setting-Ansatz)은 수용을 ‘받아들임’으로 보는 연구 방향으로서 ‘매체가 인간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 was machen die Medien mit den Menschen’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개인적 다양성보다는 집단적 일반화가 더욱 관심을 끈다. 우리의 환경은 너무나 복잡하여 직접 파악되기 힘들기에 사람의 사고, 행동에는 다양한 고정태(Stereotypes)가 존재한다. 개인이 현실로부터 얻는 형상(Bilder)은 주관적인 성향이 아니라 외적이며 집단적이며 매체적인 성향에 의해 미리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아젠더-세팅 방식은 ‘어떠한 테마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공공성을 얻기 위해 이 테마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수용자의 역할이 개인적이든 공공적이든 전자 매체를 수용하는 그의 태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내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문자 매체의 수용은 독자가 담론적 질서와 접하면서 일차적으로 지시관계(Refenrenz)가 설정되고 이어서 그의 의식 속에 다양한 상상활동이 뒤따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즉 의미실현과 상상활동이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전자 매체에서는 둘 사이의 간격이 최소화되어 의미실현과 상상활동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J. Schulte-Sasse는 매체사회의 특징을 ‘동시화된 상상성 synchronisierte Imaginarität’으로 규정한다. 포스트모던적 매체문화의 본질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심미적 즐거움(das ästhetische Vergnügen)은 자신의 자율적 통용 영역 내에서 ‘담론적인 것 das Diskursive’과 ‘연상적인 것 das Assoziative(환상적인 것 das Phantasievolle)’ 사이를 중개해 주는 현대적 기능을 상실하였다. [...] 심미적 즐거움을 주는 지배적 매체가 더 이상 인쇄매체가 아니라 멀티미디어적인 전자매체가 되면서, 심미적 즐거움의 본질은 이성과 감성의 상상적 화해 방식에서 ‘외적 내적 정서운동의 신경생리학적 동시성 방식 Modus der neurophzsiologischen Sychronisation externer und interner emotionaler Bewegungen’으로 변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정보 내용과 더불어 그 정보를 수용하는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속도패권주의 Tachokratie od. Bewegungsherrschaft'에 상응한다. 책을 통한 정보 이용이 ‘느긋함’, ‘여유’, ‘되새김’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에, 전자매체의 경우에는 ‘민첩함’, ‘즉각적 반응’, ‘감각성’이 더욱 부각된다. 그리하여 문학이 전자 매체와 결합한다는 것은 인쇄매체가 지닌 “느린 운동의 제스춰 die Geste der langsamen Bewegung” 혹은 “원시적 의례 ein archisches Ritual”에서 벗어나 디지털적 운동 역학을 받아들임을 의미하게 된다.
2.3 하이퍼텍스트의 매체적 특성
현재 컴퓨터는 다중 매체 환경의 중심에 있다. 이 때 정보전달 도구로서의 컴퓨터는 독백적(monologisch) 기능, 대화적(dialogisch) 기능, 비단선적(nichtlineal) 기능, 상호행위적(interaktiv) 기능과 같은 네 가지 기능을 지닌다.
이 가운데 비단선적 기능이 하이퍼텍스트에 해당된다. 하이퍼텍스트는 문학의 중개 방식에 대한 풍성한 성찰의 출발점이며 대상이다. 왜냐하면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본질주의가 심어 놓은 가치의 완결성에서 벗어나 정보의 연결과 순환을 통해 문학의 과정의존성을 창출하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이퍼텍스트는 “시간성과 완결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담론 형식”이기에, 이러한 가능성을 이용하는 디지털문학은 근본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수용자의 주관적 참여를 조장하는 ‘쓸 수 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기호의 고정된 지시관계가 해체된 채 모두 교환 가능하다는 점은 문자 문화의 로고스에 대한 일종의 항거와 같다. 하이퍼텍스트는 서로 다른 정보의 흐름을 연결하는 반(反) 자율미학적 전략이다. 아마 ‘작품 Werk’ 애호가에게는 하이퍼텍스트가 가는 길이 많은 면에서 전율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의 즉자적 가치 혹은 문자 매체의 완결성만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의 주변화(Marginalisierung)는 곧 위상 감소라고 진단하는 것은 문학적 미래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절절한 방식이 아니다.
기술적 진보가 가져온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특성은 멀티미디어의 망 속에서 인간이 다시 원시시대의 자연미를 누리게 해 준다. 알파벳체계에 의존하는 문자문화가 논리 정연한 질서에 토대를 둔 반면에, 멀티미디어의 환경을 통해 인간은 다시 로고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텍스트 사회의 신화인 완결성과 작가의 권위 그리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위대한 작품’에 대한 갈망은 다매체시대에 들어 여러 정보매체의 접촉 속에서 자초되고 만다. 정보 네트워크의 심미적 도전을 수용한다는 것은 담론의 단선적 진행을 포기하고 비지시적(nicht-referentiell) 사고를 받아들임을 뜻한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은 전자적 정보처리와 역사를 함께 한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와 지식들을 유연하게 조직화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가능성과 수요에 따라 이 정보들을 결합, 재조직, 특수화하는 것을 하이퍼텍스트는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텍스트의 ‘탈직선화’를 의미한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에는 기본적 지식단위 혹은 정보단위의 탐색, 이들 정보와 지식의 기술적 구조화, 그리고 이들의 다차원적 연결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매체체계와 문화체계는 이미 ‘집단적 하이퍼텍스트’로서 혹은 ‘집단적 하이퍼미디어’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사에는 이러한 매체들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또한 매체들 자체도 하이퍼텍스트적 짜집기를 조장하여 여러 가지 결합 유형을 제시한다. 이런 마당에 이제 원전과 복사본, 혹은 자율적 창조와 모방 창조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 그 진위보다는 정보 가치가 더욱 중시되는 세상이 되었다.
정보를 하이퍼텍스트 형태로 재조직하는 데에는 객관적 형식(생산 차원)과 주관적 형식(수용 차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객관적 형식은 무수한 변종과 결합 형태로 누군가가 실제로 가시적 텍스트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둘째, 주관적 형식은 수용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개인적 활동이다. 예를 들어, TV를 이용하는 Switching (계속 채널 사이를 왕래함) 및 Zapping(다른 프로그램의 끼워 넣기를 통해 목적의식을 갖고 개인적 프로그램을 몽타쥬함) 형식은 TV 수용 차원에서 개인적 하이퍼텍스트를 구성하는 대표적 실행 방식이다. 또한 여러 매체를 동시에 이용하는 형식, 예를 들어 독서와 음악듣기, TV시청과 잡지보기도 주관적 하이퍼텍스트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에서 정보활용의 유연성이 증대한다고 하여 지시관계(Referenz)에 대한 최소한의 구속력이 와해된 것은 아니다. 하이퍼텍스트도 매체성(Medialität)과 물질성(Materialität)에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요구로의 수렴이 이루어진다. 물론 수렴은 개인적 차원에서 전개되기는 하지만(즉, 각 개인과 그의 관심/욕구에 의해 조종된 채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사회적 합의와 수용 관습에 의해 실현되며 각각의 역사적, 기술적, 인지적 수준의 테두리 내에서 구조화된다. 하이퍼텍스트가 다분히 전통적 지시관계의 토대를 흔들기는 하더라도, 기관, 집단, 상황, 개인 내에 묵시적으로 존재하는 지시관계의 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무시하지는 못한다. “사실이나 행동과 관련된 지시관계의 틀 없이는, 즉 정보와 의사소통이 세상사를 담고 있으며(welthaltig) 진실의 문제와 결속되어 있다(wahrhaftig)는 전제가 없다면, 의사소통은 아무런 기능도하지 못하며 무의미해진다.” 물론 구성주의적 시각은 이러한 지시관계의 실현이 개인의 구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구성도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와 관련될 때 사회적 공유성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3. 인터넷 속 문학의 양상
현재 인터넷(Internet)은 매체적 요소들의 정수가 모인 곳이다. 그러한 인터넷에는 문학이 여러 형식으로 존재한다. 우선 ‘인터넷 속의 문학 Literatur im Internet’과 ‘넷문학 Netzliteratur’의 구분이 필요하다. ‘인터넷 속의 문학’은 인터넷에 하나의 공간을 확보하여 이것을 단지 제시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기에, 종이 위에 기록된 문학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반면에 ‘넷문학’은 넷(Netz)이 지닌 여러 가능성을 이용한다. 즉 여기서는 컴퓨터를 제시의 수단만이 아니라 일종의 문체 양식(Stilmittel)으로 활용한다. ‘넷문학’은 하이퍼픽션(Hyperfiction)과도 다른데, 하이퍼픽션이 링크(link)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넷문학’은 상호행위적(interaktiv) 특성을 전면에 세움으로써 하이퍼픽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다음에 인터넷 속에 문학이 등장하는 여러 형식들을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 본다.
3.1 전달도구로서의 인터넷
우선 인터넷은 종이문학의 전달도구로서 활용된다.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그 속에 자신의 작품을 게시하는 것이 그 예이다. 여기서는 누구나 저자로 자칭할 수 있으며 또 저자일 수 있다. 홈페이지를 중개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은 대개 젊은 작가들인데 그들의 작품은 현재 독일의 출판분위기로 볼 때 출판 계약을 맺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이란 대중화된 전달도구를 통해 직접 다수의 독자들에게로 다가간다. 물론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무수히 많은 작품들 가운데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아마추어 작가 싸이트와 링크를 분류하여 모아두고 또 해설이나 평가를 곁들여 놓은 홈페이지들이 큰 도움이 된다.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기존 작가가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한다. 추리소설가겸 극작가인 Jürgen Groß는 출판사(Solmser Buchverlag)와 공동으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데, 여기서는 이미 출판된 책(예,『프랑크푸르트 커넥션 Connection Frankfurt』)의 내용 일부분이 홍보용으로 제공되고 독자들은 이것을 보고 이 싸이트에서 직접 책을 주문할 수 있다.
인터넷 문학프로젝트(Literaturprojekt)를 이용하면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 없이도 텍스트를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 Wolfgang Tischer가 발행하는 <인터넷 문학카페 Literaturcafe im Internet>는 문학프로젝트의 대표적 예이다. 이 문학카페는 1996년 6월부터 운영되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게시물이 새로워진다. 인터넷상의 문학프로젝트는 인쇄본보다 게시물의 변화에 유동적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문학카페 프로젝트는 300개 이상의 텍스트를 담고 있는데, 그 면면을 보면 100여개의 산문 및 시텍스트(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음), 공동서술프로젝트, 문학경연대회, 월칼럼, 비평, 서평, 인터뷰, 최신문학소식 등이다. Wolfgang Tischer의 진술에 의하면 질적으로 우수한 텍스트를 선정하기는 하지만 텍스트의 수준은 출판되는 텍스트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Claudia Klinger와 Dirk Schröder가 운영하는 <텍스트갤러리 Textgalerie>도 주목받는 문학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산문, 시 그리고 작가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텍스트갤러리와 문학카페에는 아마작가뿐 아니라 직업 작가들의 작품도 실려 있는데, 두 프로젝트모두 발행인을 통하여 작품의 질적 선정이 행해진다.
인터넷 속에는 문학프로젝트 외에 주기적으로 발행되는 문학잡지(Literaturmagazin)도 있다. 이들 문학잡지 중 대부분은 인쇄된 문학잡지의 보조적 성격을 지닌다. 즉 인쇄된 문학잡지 속에 이미 실린 텍스트들 가운데 전체 혹은 부분이 발췌되어 인터넷에 제공된다. 문학잡지『가난한 시인 Der arme Poet』의 온라인 판이 대표적 예인데, 이 잡지는 이미 출간된 인쇄판의 산문이나 시를 부분적으로 제공함과 아울러 잡지에 관한 정보나 그래픽 및 원고를 보내기를 희망하는 저자에 대한 안내문을 함께 담고 있다.
3.2 컴퓨터 문학
컴퓨터 문학은 컴퓨터와 더불어 혹은 컴퓨터를 위해 제작되어 사이버공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문학을 말한다. 하이퍼텍스트의 가능성을 창조적 목적에 투입하는 하이퍼픽션은 컴퓨터 문학의 대표적 형식이다. 하이퍼픽션의 특이점은 참조나 링크를 통해서 여러 단어나 단락을 자유롭게 항해한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책의 여러 부분을 계속 읽게 하는 기법은 이미 문학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하이퍼픽션은 제임스 조이스나 알프레드 되플린의 문학적 실험들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이들은 하이퍼픽션처럼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를 파괴하고 작가의 권위를 뒤로 물리며 독자의 자유로운 수용을 자극한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연결을 통해 수용가능성을 다변화하려는 생각은 이제 컴퓨터라는 매체의 도움을 받아 더욱 활성화된다. 즉, 기술적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은 하이퍼픽션을 위한 이상적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텍스트가 모니터에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마우스와 자판의 도움으로 독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기존의 인쇄매체와 다른 점이다. 번거롭게 책장을 넘기는 것이 사라지고 독자는 선택한 연결에 직접 다가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이퍼픽션은 고전적, 현대적, 모험탐구(Choose-your-own Adventure), 공동저작(Collaborative) 하이퍼픽션의 네 범주로 나뉜다. 인터넷 싸이트 <시 주식회사 Poetry Company>에 있는 스위스작가 Gregor F. Lüthy의「하이퍼텍스트 시 Hypertext-poem」는 고전적 하이퍼픽션의 대표적 예이다. 여기서는 종이 문학에서처럼 문자텍스트가 제공되고 중간에 몇몇 단어가 링크로 연결되어 추가적 정보를 제공한다. 반면에 현대적 하이퍼픽션은 프리젠테이션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여 색깔, 그림, 혹은 다른 멀티미디어 요소를 아울러 지닌다. Olivia Adler의「통행할 수 있는 소설 Der begehbare Roman」이 그런 예에 속하는데,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래픽을 지닌 ‘하이퍼미디어 Hypermedia’로 구상되었으며 텍스트에는 삽화와 음향이 들어있다. 이 소설은 텍스트적 특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컴퓨터게임과 만화의 교차점에 가깝다. 독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이 탐색을 거듭한다. 그는 채팅에 참여하기도 하고 메시지보드에 기록을 남기기도 하며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하여「통행할 수 있는 소설」은 원칙적으로 모험탐구 하이퍼픽션(Adventure Hyperfiction)의 범주에도 들 수 있다.
모험탐구 하이퍼픽션(Adventure Hyperfiction)은 독자를 등장인물의 위치에 둔다. 최초의 대표적인 예는 디스켓으로 보급되는「초르크 Zork」이다. 이것은 어드벤춰 게임과 유사하게 작동하며 ‘미로 찾기’의 원칙을 응용한다. 독자는 게임참가자로서 가상적 장면에 상호행위적으로 활동하며 수수께끼를 푼다. 공동저작 하이퍼픽션(Kollaborative Hyperfiction)은 하나의 저자가 아니라 여러 저자로 구성되며 저자의 역할을 독자에게 맡겨 그 이야기를 계속 전개해 나가거나 기존의 이야기를 변경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넷문학’과 일치한다.
하이퍼픽션이 작가와 독자 개념을 해체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예를 든다면 독자가 링크의 선택을 통해서 하나의 텍스트를 쓰거나 기존의 텍스트를 변경한다는 사실은 작가권위의 유보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작가의 사라짐’이 확인된다. 하지만 독자의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작가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프로그램 차원에서 여러 연결가능성을 만들며 텍스트의 가변적 수용이 작동하는 영역을 사전에 설정해 둔다. 모든 하이퍼텍스트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화면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와 프로그램 텍스트가 그것인데, 저자가 연결 가능성을 설정해 놓은 프로그램 텍스트에서는 이용자의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저자는 프로그램텍스트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기에 독자의 자유는 제공된 링크의 선택에 한정된다.
인터넷에 있는 멀티미디어 문학(Mutimedia-Literatrur)도 또한 컴퓨터 문학에 속한다. [짜이트 Zeit]지와 독일 IBM이 주최한 인터넷문학 경연대회의 많은 작품들은 멀티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여기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기술적 가능성이 문체수단으로 이용되어, 링크 외에 음향, 비디오, 그림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화면은 자동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가 참여하지는 못한다. 하이퍼미디어는 이러한 원칙(하이퍼텍스트)을 비디오, 음향, CD로 확장하여 “하이퍼미디어 결합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멀티미디어문학은 컴퓨터 문학이기는 하지만 ‘넷문학’은 아니다. 이것은 넷없이, 즉 CD-Rom에서도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멀티미디어 문학에서 작가는 만능작가여야 한다. 즉 그는 문학적 감수성과 표현력을 지니는 것은 물론이고 멀디미디 운영에도 전문가여야 한다. 그리하여 멀티미디어작품은 작가, 프로그래머, 그래픽전문가의 공동저작이 많다.
3.3 넷문학
‘넷문학 Netzliteratur’은 인터넷의 의사소통적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는 문학형식으로서, 하나의 저자가 아니라 여러 저자를 갖으며 또한 모든 독자도 저자가 되어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있다. 근본적으로 넷문학에는 누구나 ‘공동작가’로서 참여가 가능한데, 독자는 임의의 부분에서 텍스트를 계속 서술해 감으로써 스스로 저자가 된다.
현재「랴칸의 원주(圓柱) Die Säule von Llacaan」는 독일의 대표적인 ‘넷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Roger Nelke가 운영하는 상호행위 프로젝트 모음집인 <NetzWerke>의 일부분을 형성한다. 이 작품은 넷소설로 구상되었는데 여기서 넷은 형식뿐 아니라 문체수단으로서도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로거 넬케가 미리 제시한 3가지 서두 이야기(Startgeschichte)이다. 이 세 서두이야기에 이어서 누구나 연속이야기를 쓸 수 있다. 개별 독자는 자신의 연속이야기(Fortsetzung)를 처음의 서두 이야기에 연결할 수도 있고 다른 작가가 쓴 다른 연속이야기에 연결할 수도 있다. 또 원한다면 자기 이야기의 끝에 다른 사람의 글을 링크 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복합적인 이야기 망이 형성된다. 물론 독자가 자신의 글을 직접 작품에 연결할 수는 없다. 공동저자로서 이 작품에 참여하려면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연결을 희망하는 부분을 지정하여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그러면 이 운영자가 접수된 이야기를 검토한 후 희망하는 부분에 연결시켜 준다.
또한「텍스트라 textra」나「바알신(神)은 살아 있다 Baal lebt」와 같은 연작텍스트(Wandertexte)도 넷문학에 해당된다. 연작텍스트는 이메일을 통해 하나의 저자에게서 다음 저자에게로 보내지면 텍스트를 받은 저자가 정해준 규칙에 따라 이를 변경하여 다시 다음 저자에게로 넘겨준다. 텍스트는 전자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누구나 컴퓨터에서 쉽게 새로운 것을 첨가하거나 모든 임의의 부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텍스트라」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메일링리스트 넷문학 Mailingliste Netzliteratur> 싸이트의 회원만이 여기에 공동저자로 참여할 수 있다.
4. 문예학의 새로운 과제
문예학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목표, 내용, 과제 설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학문분야이다. 문예학의 성격을 독어독문학의 발전과정에서 더듬어 보면 이러한 사실이 더욱 확인된다. 19세기 중엽의 독일 문예학은 ‘민족문헌학 Nationalphilologie’으로서 독일민족의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었다. 19세기말에 이르면 독일 문예학은 ①문학적 교양의 조직 및 전수 ②중등학교 독어교사의 양성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떠맡는다. 이와 같이 문예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기능이 ‘교양개념 Begriff der Bildung’과 연관되는 현상은 1960년대까지 지속되는데 이때까지 대학의 문예학은 주로 언어와 문학에 교양있는 사람을 양성하여 독일어교사나 다른 직업분야의 전문가(예, 신문문예란기자, 드라마작가, 비평가, 대학교수 등)로 키우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즉 교양 개념이 ‘전공의 학문성’과 ‘직업적 자질함양’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에 이르면 민족문헌학으로서의 문예학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면서 대학의 문예학을 ‘상호문헌학적 interphilologisch’으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초민족적 사고’의 도입은 문학보다는 어학에서 먼저 이루어진다. 이러한 어학(특히 DaF)의 상호문화적 관점이 문학 쪽으로 확대되면서 모든 문학 현상을 균등하게 아우르는 ‘일반 문예학’이 형성된다. 방법적 영역에 있어서는 해석학적 토대가 경험학의 연구프로그램에 의해 도전을 받으면서 문학연구의 과학성에 대한 요구가 뒤따른다. 구조주의, 기호학, 체계이론, 구성주의 등의 영향 및 사회학, 소통학으로부터의 이론 수입이 있은 후 과학적 선회(szientifische Wende)가 전개되면서 문예학은 의사소통학으로 발전되어 간다.
80년대에 들어, 제도로서의 문예학은 ‘어떠한 사회적 실천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답하라는 압력을 더욱 받게된다. 또한 사회적 의사소통을 이끄는 매체들이 급격하게 확장되면서 전통적 문학 형식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크게 대두한다. 즉 현대 매체사회에서는 ‘인쇄매체적 능력 die printmediale Kompetenz’이 문화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니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문예학은 문자 문화에 토대를 둔 규범, 정전과 같은 가치지향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실천성을 모두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현대 매체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의 상호매체화 Intermedialisierung der Kommunikation’가 촉진되고 상이한 문화적 현상이 동일한 가치로 취급됨으로써 문예학, 매체학, 문화학의 결속이 이루어진다. 문예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들의 대화 속에서’ 발전해 가는 관계 학문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문예학이 인문적 정신을 넘어 사회 현장의 실천성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문학에 작용하는 디지털매체의 영향을 “2차 문맹 sekundärer Analphabetismus”으로 가는 길, 혹은 문자 문명의 건강함을 위협하는 “컴퓨터라는 암세포 eine Krebszelle der Computerisierung”의 확장 등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현대 매체사회의 변화된 문화적 조건들은 문예학에게 “도전이면서 동시에 기회 als Herausforderung und als Chance”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속 문학의 다양한 등장 형식들을 고려해 볼 때 문예학은 여러 가지 새로운 과제를 맡게 된다. 무엇보다도 문예학은 문자의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넓은 영역에서 형식의 문제를 새롭게 다루어야 한다. 멀티미디어 문학은 내용과 더불어 프리젠테이션 방식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문학 활동을 문예학의 영역에 아우르기 위해서는 문예학 자체가 다매체적 형식미를 설명할 자질을 함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가 보기에 미래의 문학은 더욱 자기기능성(Autofunktionalität)을 지니게 되어 이것이 문예학의 핵심적 관심거리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달 방식에 대해 가졌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관심이 언어기호에 제한된 반면에, 미래에는 문자매체와 전자매체의 결합으로 인하여 의사소통의 ‘매체의존성 Medienabhängigkeit’이 더욱 다원화됨으로써 화려한 형식미가 내용을 압도해 버릴지 모른다. 그리하여 내용에 대한 관심이 제로인 채 ‘형식미’만으로 존재하는 문학작품(특히 멀티미디어 문학)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형식미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효율성도 문예학이 방치하지 못하리라 예상된다. 만약 아무리 멋진 멀티미디어 문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운로드 받는 데에 지나치게 시간이 걸려 독자와의 만남이 줄어든다면 이것도 문예학적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아무튼 ‘웹에 적합한 webgemäß’ 문학의 상태를 진단하고 제안하는 것은 다매체 시대 문예학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매체 이용을 통한 형식미가 더욱 부각되면 될수록 문예학은 의사소통의 기술적 문제까지 포함하는 ‘학제적인 메가학문 interdisziplinäre Mega-Wissenschaft’으로 확장되기를 요구받을 것이다.
하지만 문예학이 본질적으로 ‘문(文)의 학문’이라면 매체 자체와 더불어 그 내용의 가치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매체 시대에 문학이 지나치게 하이퍼미디어적 형식 유희에 빠져드는 경향을 경고하는 과제도 문예학의 몫이 될 것이다. 문예학은 문헌학적 전통을 저버리지 않은 채 그 스스로 ‘매체 문화 과학 Medienkulturwissenschaft’이 되어야 한다. 이 때 여러 학문분야의 물리적 결합보다는 이론 통합적인(theorie-integrativ) 조건이 충족 될 때야 비로소 문예학은 학제성을 지향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합법성을 갖는다. 문화와 매체에 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문예학이 손을 잡는 기존의 학문 분야의 재조정이나 확충을 요구한다. 그러한 확충이 학제적 이론화와 실제영역과의 유대를 내실있게 확보한다면, 문예학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폭넓게 연결된 하나의 ‘새로운 大학문 neue Großdisziplin’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5. 맺는 말
현대 매체사회에서 문학은 여러 매체들과 자유롭게 결합한다. 인터넷은 전통적 소설이나 시를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중개하는 보조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멀티미디어문학이나 넷문학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 준다. 특히 넷문학은 글쓰기 역할을 보편화함으로써 작가와 독자의 구분을 무력화시킨다. 또한 텍스트 중개의 무선택성 및 신속성이나 기술적 진보에 따른 다양한 실험가능성도 인터넷이 가져다 준 중요한 장점이다.
이런 상황을 접하여 문예학은 특히 다음과 같은 과제를 안게된다. 첫째, 작가와 독자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다. 인터넷을 통한 독자의 피드백이 활성화되는 데 머물지 않고 넷을 통해 양자가 역할을 공유한다면 문예학은 기존의 ‘저자의 죽음 Der Tod des Autors’을 뛰어넘는 새로운 ‘죽음’의 상징을 논리화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적 형식미가 전면에 나서는 데 대한 문예학적 대응의 필요성이다. 기술적 가능성을 업고 화려한 형식미가 내용을 압도할 때 다매체 시대의 문예학은 이것을 자신의 논리체계 속에 수용하고 또한 이들을 문헌학적 전통과 결합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매체의 확장에 부응하는 문예학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다양한 매체들의 의존관계를 파악하고 이들을 각각의 의미 차원에서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다매체 시대에 문예학은 새로운 합법성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문예학 내에서 행해지는 매체학적 분석이 ‘문학의 몰락에 대한 묵시록적 진단’에 그치지 않고 차츰 생산적인 연구 영역을 발견할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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