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 록 강 압록강은 중생대의 구조운동에 의해 형성된 압록강단렬대를 따라 흐르고 있다. 압록강 유역의 지질은 대략 네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상류 연안에 해당하는 함경남도의 신갈파진(新乫坡鎭) 부근까지의 지역은 중생대의 대동계층의 기반 위에 결정편암, 반려암이 포함된 화성암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신생대에 백두산에서 대규모로 분출된 현무암이 그 위를 덮어 오늘날의 개마고원을 형성하였다. 개마고원에는 송화강(松花江)의 상류에 해당하는 장진강(長津江)·허천강(虛川江)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강줄기가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장진·허천 두 강이 북류하다가 압록강으로 흘러, 부근의 유로는 모두 압록강 본류의 유향과 반대 쪽인 북동 방향이다. 또한 압록강의 경사도를 보면 이 두 강이 압록강과 합류하는 점은 장진강 쪽이 낮다. 그러나 곧 허천강의 하상보다 높아져서 거의 평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압록강의 본류가 허천강구 부근에서 갑자기 하상이 높아져 경사가 급변하는 것으로 보아, 허천·장진 두 강에 비하여 압록강이 후기에 형성되어 아직 하각침식(下刻浸蝕)이 진전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제3기 후기에 장진강·허천강은 동북동으로 흘러내리다가 동북의 영고탑(寧古塔)이 있는 분지로 흐르고, 다시 목단강(牧丹江)을 피하여 우쑤리강[烏蘇里江]의 서지목릉강(西支穆稜江)으로 흘러들었다고 여겨진다. 그 뒤 압록강은 두부침식(頭部侵蝕)을 발달시키고, 강의 길이를 증가시킴에 따라 허천강과 장진강을 탈취함으로써 오늘날처럼 이들 강이 압록강으로 방향을 바꾸어 유입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신갈파진에서 만포에 이르는 압록강의 중류 연안 지역은 중강진을 정점으로 하여 압록강이 심한 굴곡을 하는 자성·후창 두 군의 북부지역으로 안산암·반려암·결정 편마암 등이 섞여 있는 복잡한 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압록강 유역의 간헐적인 융기에 의하여 중위평탄면(中位平坦面)이 발달하였는데, 이 중에서 오수덕(烏首德) 고개는 대륙의 광활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하류 지역에는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에 걸쳐 분출한 화강 편마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압록강 가까이에는 강남산맥이 뻗어 있는데, 이 산맥을 횡단하여 북서북 방향으로 단층선(斷層線)이 발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긴 저지로 태천·벽동에서 운산으로, 초산에서 희천에 이르는 단층선은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압록강의 하류는 퇴적층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하구에는 넓은 범람원과 삼각주가 발달되어 있고,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압록강은 백두산의 최고봉인 병사봉(兵使峰)의 남동 약 8㎞부근에서 발원하여 작은 계류를 형성하면서 흐르다가 보천보(普天堡) 부근에서 높은 하안단구를 이루고, 가림천(佳林川)·오시천(五是川) 등을 합하여 혜산을 지나면서 서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서쪽으로 흐르면서 수력발전으로 유명한 허천강·장진강을 비롯하여 평안북도에서 후주천(厚州川)을 합한 다음 중강진에 이른다. 상류 지역은 강폭이 비교적 좁고 유속이 빠르나, 중강진 부근에서 남서쪽으로 유로를 바꾸면서부터는 강물의 흐름이 갑자기 느려지고, 급한 여울도 많이 나타난다. 중강진에서 하류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자성강(慈城江), 독로강(禿魯江), 위원강(渭原江), 충만강(忠滿江), 삼교천(三橋川) 등과 중국 쪽에서 훈강(渾江)을 합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압록강은 강남산맥과 중국의 장백산맥(長白山脈) 사이를 흘러서 유역에는 급한 침식애(侵蝕崖)가 발달되었고, 대규모의 감입곡류(嵌入曲流)가 많은 강으로 유명하다. 특히 신의주에서 200㎞ 가량 상류에 해당하는 위원군 서태면의 강 건너에 있는 관통구릉(貫通丘陵 : 곡류가 절단될 때 보호사면 쪽에 남은 구릉)인 관문납자(關門拉子)와 그 상류에 있는 협착산각(狹窄山脚)인 라오후차오[老虎哨]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함경남도의 신갈파진과 혜산과의 사이에는 모식적인 감입곡류에 의한 관통구릉이 여러 개 남아 있다. 이렇듯 향사곡에서 급한 침식곡을 이루며 흐르므로 연안에는 평지가 발달하지 못하여 경지 면적이 극히 좁다. 그러나 공격사면(攻擊斜面)에는 높은 절벽이 솟아 있어서 하안에 도로마저 통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곡류를 하는 안쪽인 보호 사면(保護斜面) 쪽에는 군데군데 범람원이 전개되어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고구려의 왕도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의주 이하의 하류 연안에는 비교적 넓은 의주평야가 펼쳐져서 예로부터 이 지역의 곡창 지대가 되었다. 하구에는 삼각주가 발달하였는데, 그 중에는 위화도(威化島)와 같은 범람원을 비롯하여 신우평(信隅坪)·영문강(迎門崗) 등의 하중도들이 있다.
한 강 간선(幹線) 유로연장 481.7km. 법정하천연장 405.5km. 유역면적은 2만 6,018㎢(북한지역 포함 3만 4,473㎢이고. 상류부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둘로 나뉘며 남한강을 본류로 한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의 대덕산(大德山:1,307m)에서 발원하여 남서류, 영월읍에서 평창강(平昌江)을 합치고 충청북도 단양군을 지나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제천시를 거쳐 충주호(忠州湖)에 27억 5,000만 t의 물을 채우고 시설용량 40만 kW의 발전소(1985년 준공)를 움직인 다음, 북서(北西)로 유로를 바꾸어 달천(達川)을 합쳐 충주시를 지나서 경기로 들어간다. 도계에서 섬강(蟾江)을 합치고 이어서 청미천(淸渼川)을 합류하여 북서로 유로를 잡아 여주시를 관류하면서 양화천(楊花川) ·복하천(福河川) 등을 받아들인다. 양평군으로 들어서면서 흑천(黑川)과 만나 서쪽으로 유로를 돌려 북한강과의 합류점인 양서면(楊西面) 양수리(兩水里)에 이른다. 한편,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산(金剛山)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류, 금강천·금성천(金城川) 등을 합치 면서 화천군에 이르러 양구군 쪽에서 흘러오는 서천(西川)·수입천(水入川) 등과 만나서 파로호(破虜 湖:저수량 약 10억 t)를 이루고 다시 남하, 화천군의 지류들을 모아 춘천호(春川湖)에 물을 담고 나 서 춘천시의 의암호(衣岩湖)에서 소양강(昭陽江)과 만난다. 강원 인제군에서 발원하는 소양강은 남서류하면서 인제군과 춘천시에 걸치는 소양호(湖)에 29억t의 물을 채우고 20만 kW의 발전소를 가동시킨 뒤, 의암호에서 북한강과 만난다. 다시 가평천(加平川)을 합치고 남이섬을 지나 홍천강(洪川江)을 합류하여 청평호(淸平湖)를 이루고, 경기에 들어서서 양평군과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양수리로 빠진다. 양수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한강은 경안천(慶安川)을 합류, 팔당호(八堂湖)에 괴었다가 서류하여 서울로 진입, 완만한 유속으로 시역(市域)을 관류하면서 중랑천(中浪川)·안양천(安養川) 등을 합치고 북서쪽으로 직진하여 폭을 넓히면서 김포시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룬다. 파주시에 이르러 곡릉천(曲陵川)을 합치고, 임진강(臨津江)과 합류한 뒤 김포반도의 북부를 돌아 강화만(江華灣)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한강의 상류부에는 춘천·영월·여주·화천 등의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하류부의 김포평야는 양질의 쌀을 생산하는 국내 유수의 곡창지대이다. 한강은 유량(流量)의 계절적 변화가 큰 편이나 상류부와 중류부에 건설된 여러 댐의 홍수조절능력으로 여름철의 범람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강은 공업용수·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서울·춘천·원주·제천·충주 등 유역 도시의 상수도원(上水道源)으로서 큰 구실을 한다. 한강 수계의 수력발전 시설용량은 98만 kW(1990년 말)가 넘어 전력공급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우리말에서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한가람'에서 비롯하였다. '한'이란, 큰, 정확한, 한창인, 같은을 뜻하는 접두사이며, 가람은 강의 옛 말이다. 즉 '큰 강'이라는 뜻이다.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라 불렸고, 광개토대왕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 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한반도의 중앙부 평야지대를 차지하는 한강 하류부는 신석기시대로부터 문화발달의 터전이 되어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쟁패(爭覇)의 요지가 되어왔다. 특히 조선시대의 태조가 이곳에 도읍함으로써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낙 동 강 하천연장 400.7㎞, 유로연장 510.36㎞, 유역면적 2만 3384.21㎢이다. 발원지에 관해서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황지연못을 비롯하여 태백시 함백산 천의봉 북동쪽 계곡의 너덜샘, 너덜샘 아래쪽의 용소(龍沼), 태백산 장군봉 아래의 용정(龍井)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태백시에서는 황지연못만을 발원지로 인정한다. 《동국여지승람》《척주지》《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는 황지연못이 발원지라고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 편에 따르면, 태백산 황지와 경상북도 문경의 초점(草岾), 순흥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했다.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咸昌)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이고, 유로(流路)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尙州)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善山) 부근에서 감천(甘川), 대구(大邱)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남지(南旨)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상류부에서는 편마암(片麻岩)과 중생층(中生層) 사이의 구조선을 따라 유로를 취하다가 중류부에서는 중생층, 하류부에서는 분암(玢岩) 지대를 흐른다. 낙동강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400㎞ 상류의 안동에서도 해발고도 100m에 달하지 못하고, 퇴적이 심한 하류부에서는 천정천(天井川)을 이루는 데다가 삼랑진에서 물금(勿禁) 사이의 약 19km 구간은 홍수 때 강물의 소통이 잘 안되는 협착부(狹搾部)를 이루어, 지류 남강에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범람이 심했다.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 또는 구릉지를 흐르기 때문에 범람원(氾濫原)의 발달이 없다. 따라서 김 해삼각주(김해평야)를 제외하고 강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펼쳐져 있을 뿐, 넓은 충적지는 비 교적 적다. 주요평야는 상류부의 안동분지, 중류부의 대구분지, 하류부의 경남평야로 나뉜다. 안동분 지는 여러 지류 연안의 침식분지들이 연결된 규모가 큰 평지이고, 대구분지는 본류와 금호강·감천 외 여러 지류 연안에 수지상(樹枝狀)으로 분포하는 평야이며, 경남평야는 창녕(昌寧) 이남의 본류 연 안과 남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평지 및 김해삼각주를 포함한다. 낙동강 하구부에 형성된 김해삼각주는 남북 18㎞, 동서 16㎞의 대삼각주로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대충적평야를 이루는데, 낙동강은 구포(龜浦) 상류 2㎞ 지점에서 2대분류(二大分流)하면서 거대한 삼각주 하중도(河中島)를 형성하고, 다시 망상 분류(網狀分流)를 하면서 여러 작은 하중도를 분리시키고 있다. 낙동강은 유역의 논 약 86만ha의 농업용수와 여러 시읍(市邑)의 상수도용수 및 공업용수원이 되고 있다. 특히 1969년 남강에 건설된 남강댐과 1976년 건설된 안동댐은 수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에 기여하는 한편, 각각 1만 2600kW, 9만kW의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유역의 농업·공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옛날에는 내륙지방의 교통동맥이 되어 조운(漕運) 등에 크게 이용되면서 강기슭에 하단(下端)·구포·삼랑진·수산(守山)·풍산(豊山)·안동 등의 선착장이 번창했고,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 역할을 했다. 한편 김해삼각주 말단부에 있는 을숙도(乙淑島) 일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새도래지이다.
대 동 강 길이는 438㎞이고, 유역면적은 1만 6673㎢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좌안에 지류가 많은 비대칭적 하계로, 총 443개의 지류가 있으며 그중에서 길이 15㎞ 이상 되는 지류가 26개이다. 주요 지류로는 좌안에 마탄강, 비류강, 곤양강, 황주천, 재령강 등이, 우안에 보통강, 송화강 등이 있다. 대동강 유역은 북쪽에 묘향산맥, 남쪽에 멸악산맥, 동쪽에 낭림산맥이 둘러 있어, 평안남도의 대부분 지역과 황해도의 북부지역을 포함하는 관서지방의 중앙부를 차지한다. 대동강은 고조선시대에는 열수(洌水), 고구려시대에는 패수(浿水)·패강(浿江) 또는 왕성강(王城江)이라고 불려오다가 고려시대 이래로 대동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때에는 왕성강이라고도 하였는데, 고종 때의 문신 최자(崔滋, 1188∼1260)는 그의 시구에 “여러 물이 모여서 돌아 흐르므로 이름이 대동강이 되었다(衆水所匯名爲大同).”라고 그 이름의 유래를 밝혔다. 대동강은 중생대 중부삼첩기의 송림구조운동과 중부-상부 쥐라기의 대보구조운동에 의하여 하천의 기본형태가 이루어졌다. 그 후 신생대의 지각운동과 침식작용으로 많은 지류가 형성되었다. 대동강은 낭림산맥의 동백산(東白山)과 소백산(小白山)에서 발원하여 대체로 요동(遼東) 방향의 산계(山系)를 따라 남서류한다. 본류는 덕천 부근에서 마탄강(馬灘江, 52.6㎞)과 합류한다. 북창 부근에 이르러 지질구조선(地質構造線)을 따라 급전하면서 남류한다. 순천 부근에서 장선강(長鮮江), 성천 부근에서 비류강(沸流江, 132.7㎞)을 합류하면서 다시 남서 방향으로 흐른다. 중·하류에 이르러 남강(南江, 185.4㎞)이 합류되면서 하폭이 넓어지고 유량이 급증하여 대하천이 되고, 주변에 넓은 평야가 발달한다. 하류에서는 황주천(黃州川)·재령강(載寧江, 129㎞)과 합류하여 남포 서쪽에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두 만 강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을 따라 흐른다. 길이 521㎞, 유역 면적 10,513㎢(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유역 면적을 합하면 41,242㎢). 우리 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이 강은 백두산 동남쪽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를 원류로 하여 처음에는 동류한다. 그 다음 마천령산맥 에서 발원하는 소홍단수(小紅湍水, 82.5㎞)를 합류, 북동류하면서 마천령산맥 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서두수(西頭水, 173.1㎞)·연면수(延面水, 80.0㎞)·성천수(城川水, 76.3㎞) 등의 대지류들을 합류한다. 중류에 이르러서는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하면서 보을천(甫乙川)과 회령천(會寧川)을 합한 후 본류는 북북동류한다. 함경북도의 최북단에 이르러 중국의 간도(間島) 방면에서 흘러오는 해란강(海蘭江)을 합류한 뒤 유로는 급전하여 남동류한다. 하류에서는 다시 간도 지방에서 남서류하는 혼춘강(琿春江)과 우리 나라 쪽의 오룡천(五龍川)·아오지천(阿吾地川) 등의 지류를 합한 뒤, 수량과 하폭을 증대하면서 하구 부근의 호소지대(湖沼地帶)를 거쳐 서수라(西水羅) 부근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두만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한청문감 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언급하고는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두만강은 또, 고려강(高麗江)·도문강(圖們江)·토문강(土們江)·통문강(統們江)·도문강(徒門江)으로 표기된 바도 있다. 만주지명고에 의하면 두만강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禽)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女眞語) 자구(字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청문감》의 동문유해(同文類解)에서는 원나라 때 지방 관제에 만호(萬戶)·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한다. 뒤에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쓰여 있는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자구 속의 토문이 두만강이라고 청나라측이 강변함으로써 오늘날의 간도 지역을 중국의 영역으로 하고 있다. 두만강은 중국·소련과 국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상 매우 중요한 강이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여진족이 주로 살던 곳이어서 그들의 영향이 문화와 취락 경관에서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들을 몰아내고 개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병영취락(兵營聚落)이나 개척취락들이 형성되었다. 함경도 지방에 기근이 들 때마다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이 강을 넘어 간도 지방으로 이주하였고 이들로 인하여 청나라와 국경 문제가 야기되기도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일제의 학정을 피하여 수많은 우리 민족들이 이 강을 건넜다. 이러한 민족의 역사를 안고 있는 두만강 유역은 비록 자연적 조건은 매우 불리하지만 거의 무진장으로 펼쳐진 미개척의 삼림 자원과 지하 자원이 있어 무한한 개발 가능의 잠재력을 가진 미래의 땅이다.
금 강 길이 394.79km, 유역면적 9,912.15㎢이다.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報靑川),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美湖川), 기타 초강(草江)·갑천(甲川)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한다.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 영동에서 양산팔경(陽山八景) 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扶蘇山)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 강경 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溺谷)을 이루어 군산·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芙江)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 자동차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상류부에 대전분지·청주분지, 중류부에 호서평야(湖西平野:內浦平野), 하류부에 전북평야가 전개되어 전국 유수의 쌀생산지대를 이룬다. 그와 같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농업 생산으로 일찍이 연안에 공주·부여·강경 등 고도와 옛 상업도시가 발달하였다. 1980년 신탄진 부근에 대청 다목적댐이 건설되었다. 기후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여 온대 북한계에 가까워, 유역의 평균기온은 11.0~12.5℃, 연강수량은 1,100~1,300mm이다.
임 진 강 길이 244.00km, 유역면적 8,897.24㎢로서 한강의 제1지류이다. 오른쪽 유역에는 아호비령산맥(古味呑川:114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81km)·한탄강(漢灘江:130km) 등이며, 5km 이상의 지류는 250여 개이다. 수상교통의 요지로 6·25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예로부터 신라·백제·고구려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았던 지역인데,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縣)의 치소(治所)인 파주칠중성이 있었다. 유역 안에는 봉래호, 죽대저수지, 신당저수지, 감둔저수지, 난송(란송)저수지, 송도저수지 등 저수 지가 많다. 상류는 전형적인 산지하천으로 강바닥의 경사가 심하고 연안에 충적지가 발달하지 못하 였으나 중·하류연안에는 임진강어구평야 등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 상류 일대에는 석회암, 규암, 점팜암, 결정편암이, 판교·이천지역에는 화강암이, 철원·평강지역에는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며. 상류유역은 소나무·참나무를 기본수종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나 하류유역은 수원개발조건이 좋지 못하다. 유출이 많은 하천으로 유출률은 상류로 가면서 많아진다. 특히 고미탄천의 유출률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다. 집중호우가 많이 내려 수해가 많은 지역이다. 강에는 어룡치·메기·열묵어·숭어 등 어류가 많고, 특히 자라가 많이 서식한다. 개성시 장풍군 석둔리에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434호로 지정된 임진강 자라서식지가 있다. 강물은 관개용수, 공업용수, 식수로 이용된다.
청천강 총 길이는 약 199㎞이며 유역 면적은 5,831㎢, 가항로는 152㎞이다. 희천 남부에서 희천강(熙川江)과 합류하고 묘향산맥과 적유령산맥 사이를 지나 영변 남쪽에서 구룡강(九龍江)과 합류한다. 이 강은 하류에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안주·박천의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곳을 살수(薩水)라고 불렀으며, 수나라 양제의 100만 대군이 침략하여 왔을 때 을지문덕(乙支文德)이 크게 승리한 곳이기도 하다. 청천강 유역은 희천·영변·운산·태천·박천군 등과 창성·삭주군의 남부 및 구성군의 동남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단층지형을 나타낸다. 북부는 개마고원의 서부에 해당하는 고원지대로서 희천·북진(北鎭)·대관(大館)을 연결하는 불규칙한 경계선을 따라 고도가 갑자기 낮아진다. 이 저지는 남부의 해안 지역으로 가면 고도 200∼300m의 저산성산지를 이룬다. 서부에는 화강암질의 천마산(天摩山)이 있어 서해안 지역과 분리되며, 동부로는 강을 사이에 두고 묘향산맥과 마주보고 있다. 박천군의 서북부에는 화강암질의 노년기 저산성구릉이 넓게 분포하고 청천강 유역에는 기름진 박천평야가 형성되어 곡창지대를 이룬다. 박천은 군의 중앙에 위치하여 영변과 북진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物産)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주요 산물은 농산물이며, 그 밖에 운모(雲母)의 매장량이 많다. 한편 영변군은 청천강 중류의 좌안(左岸)에 위치한다. 영변은 대표적인 산성취락(山城聚落)으로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철옹성(鐵甕城)의 요새이다. 용문산(龍門山) 기슭의 용산면 일대는 평안남도에서 이어지는 대석회암지대(大石灰岩地帶)로 카르스트지형이 잘 발달되어 있다. 부근에 있는 동룡굴(蝀龍窟)은 석회동굴로서 기이한 형상이 신비롭다. 청천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희천군은 적유령산맥과 묘향산맥에 둘러싸여 대부분이 산지이며, 하천이 감입곡류함으로써 생기는 좁은 계곡에는 아름다운 경승지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북쪽의 구현(拘峴)·적유령(狄踰嶺)을 넘으면 독로강(禿魯江)유역의 강계에 이르게 된다.
섬 진 강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봉황산 상추막이골에서 실낱 같은 물줄기로 시작한 섬진강은 진안·임실·순창·남원·곡성 등지의 여러 산봉우리에서 흘러 나온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에서 보성강과 합류하여 본격적인 위용을 갖춘 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 오백리 물길 중 가장 깊고 너른 화개나루를 만들고, 여기서부터 경남과 전남의 도 경계를 이루며 광양군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흔히 오백리라고 하는 섬진강은 212.3㎞로 우리나라에서 아홉번째로 긴 강이며, 이 물줄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계곡과 산과 들과 마을을 적신다. 구례 같은 너른 들판을 적셔주기도 하지만, 너른 들판보다는 작은 마을을, 그리고 지리산 자락을 끼고 돌며 숱하게 아름다운 강변을 만들어내는데, 여느 강보다 정겹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섬진강은 본래 고운 모래가 많아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기문화, 두치강(豆恥江) 등으로 불렸다. 고려 우왕 11년(1385) 무렵 왜구가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며 침입하자 새까맣게 몰려든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이를 두려워한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도가 낮은 강으로도 손꼽히며, 강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강물에서 잡히는 은어·참게·재첩이 유명하다.
예성강
경성강의 길이는 187.4㎞, 유역 면적은 3,913.3㎢로서, 북한에서 15번째로 큰 강이다. 황해북도 수안군 언진산(彦眞山, 1,120m)에서 시작되는 언진천 및 강원도 이천군의 장재덕산(長在德山, 752m)에서 시작되는 지석천(支石川)을 합류하여 한강 하구로 흘러든다. 명칭의 유래는 고려에서 중국의 송나라와 교섭할 때 이곳에서 모든 배를 띄워 예절 있게 맞아들이고 다시 바래다 주었던 강이라 예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 시대 송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을 때의 사실을 노래한 「예성강곡(禮成江曲)」도 있었다. 상류지역은 현무암대지이고 중류지역(평산∼금천 일대)은 탄산염암석이 화학적풍화작용을 받아 형성된 두꺼운 점토풍화각이 침식되어 이뤄진 골짜기가 있고 여기에 충적지가 있다. 상류에서 수안·신계·평산 분지의 연안 농경지를 관개한다. 강 하류 유역에는 연백평야가 펼쳐진다. 하계는 나뭇가지 모양이며, 하천망밀도가 비교적 높고 하천망이 발달된 편이다. 예성강에는 약 88개의 하천이 흘러든다. 유역의 연강수량은 1,352.7㎜ 정도로 유역평야의 관개용수로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4계절에 걸쳐 수량이 풍부하고 하구에서 100리 거리인 한포(汗浦)까지 선박의 항행이 자유로워 수운이 발달하였다. 본래 상류는 곡산천이었으나 제4기 하세에 현무암이 분출되어 용암대지가 형성되고 물길이 막히면서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예성강 유역은 고대 낙랑군에 속하였고 뒤에는 대방군에 예속되었다. 백제에 병합되었다가 광개토왕 당시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의 멸망 뒤 당나라의 영토가 된 적도 있으나 곧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예성강은 안북하(安北河) 또는 북하(北河)라고도 불렸고 고려 초에 왕건이 송악(松岳)을 본거지로 해상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싸울 때 이곳이 수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예성강의 수운은 벽란도(碧瀾渡)가 고려 송도의 배후 관문 구실을 담당하여 번영을 누렸다. 연안에는 여러 곳에 포구가 있었고 그 중 연백군 유곡면의 금곡포(金谷浦)는 유명한 포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근에 금곡연이 있고, 또한 금곡포창이 있어 연안·배천은 물론 해주·신천·풍천·장연·문화 등 여러 고을의 전세 양곡을 이곳에서 수납하여 서울로 조운하였다.”고 한다. 점차 수운이 약해지고 경의선 철도가 예성강 수로변을 따라 지나가게 되면서 수운은 더욱 보잘 것 없어졌다. 예성강은 개풍군과 연백군의 경계를 이루며 황해로 흘러든다. 하구 가까이는 조류의 역류가 심하며, 또한 휴전선이 지나고 있다. 황해북도 곡산군·수안군·신계군·평산군·토산군·금천군·인산군(린산군), 황해남도 봉천군·배천군·개성시 개풍군 지역을 흐른다. 유역의 주요 도시로는 금천·한포·평산 등을 들 수 있다. 금천은 경의선이 경기도를 벗어나 황해도로 접어들면서 예성강의 한 지류인 오조천(吾助川)과 합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평산군·금천군일대의 농산물 집산지의 기능을 하며, 특히 금천군의 금천대두(金川大豆)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인삼의 고장인 개성과 인접한 관계로 이 일대는 인삼의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금천 동북쪽에 위치한 예성강 지류의 하나인 구연천(九淵川)의 상류 분지에 위치한 토산읍은 교통의 요지로서 금천·신계, 경기도의 연천, 강원도의 이천으로 연결되는 주요 시장이다. 한포는 금천 북쪽 예성강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성강 수운의 소항점(溯航點: 물길을 거슬러 항해하는 지점)으로 부근 일대의 농산물 수송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남천 유역의 평산읍은 행정·산업·교통의 중심지로 그 지방으로 통하는 물자의 집산지이며 동부산지로의 문호가 된다. 예성강 유역의 교통은 경의선 외에도 개풍군 개풍읍에서 시작하여 해주로 이어지는 토해선이 있고 1번 국도가 경의선과 나란히 달린다. 이들을 가로지르는 국도가 평산에서 만나고 금천의 원명리에서는 한 갈래의 국도가 갈라져 토산읍을 거쳐서 동부 산지로 접어든다. 이 지역은 농산물 외에도 금·은 등을 비롯하여 형석·대리석 등과 천연슬레이트를 비롯한 광산물의 산출이 많다.
재 령 강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과 벽성군 이율면의 지남산(指南山, 623m)에서 발원하여 재령평야를 관류하여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129㎞. 유역면적 3,671㎢. 가항거리는 38㎞로 300t급의 배가 상류의 상해(上海)까지 운항할 수 있어 재령철산의 철광을 송림제철소에 운반하고, 또 진남포(鎭南 浦) 방면으로 비료·잡화의 운반이 활발하였다. 은파천(銀波川)·서흥강(瑞興江)·서강 등의 지류를 합하여 연중 수량이 풍부하다. 풍부한 수량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평야 가운데 하나인 재령평야의 관개에 이용한다. 조수 때에는 재령강의 역수(逆水)로 말미암아 수면 아래 3m의 저습지까지 생긴 곳도 있다. 재령·신천은 평야의 중심지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유역에서는 밀·콩·목화·담배가 생산되고 철을 비롯한 광산물의 산출도 많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강 유역의 토지는 기름져 오곡과 목화가 잘 되고, 연철(鉛鐵)이 산더미처럼 나오며, 강둑을 따라 논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나는 쌀은 질이 좋아 나라에 진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 흥 강 함경남도 고원군 운곡면의 각고산(角高山, 1,038m) 남쪽에서 발원하여 영흥평야를 관류하며 송전만(松田灣)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134.8㎞. 유역 면적 3,397㎢. 각고산 남쪽 계곡을 흘러 영흥 군 횡천면 산성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쳐지고 다시 창평에서 입석천(立石川)과 합류한다. 영흥군 선흥면 용반리 북쪽에 이르러 동북쪽에서 나온 단속천(端屬川)과 합류하여 동남류하면서 영흥읍을 거쳐 덕지강과 합류한다. 문천군 명구면과 영흥군 억기면의 경계에 이르러 영흥만의 북부 송전만으로 흘러든다. 용흥강은 여러 지류들을 합류하면서 영흥에 큰 퇴적평야를 형성하는데, 이 평야는 함경남도의 주요 곡물 생산지 중 하나이다. 또한, 주민들의 농지 관개 수리로 이용되며, 유량이 풍부하여 선흥면, 고원군 고원읍까지 수운이 이용되었다. 강의 상류는 산악이 중첩되어 있어 홍수 피해는 적은 편이나, 용흥평야 일대에는 매년 두세 차례 범람한다. 홍수는 1165∼1890년 사이에 15회의 기록이 있고, 1186년, 1729년, 1739년, 1829년 및 1860년의 홍수는 1,000여명의 인명 피해를 내었던 대홍수였다고 한다. 하천 조사에 의하면 수위 관측 이후인 1914∼1927년 사이에 12회의 홍수가 기록되었으며, 그 중에서 215명의 익사자를 낸 1919년의 홍수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26∼1936년에는 평야 부분의 홍수 방어를 위하여 유로 주변에 제방을 쌓기 위하여 하천 개수 공사가 시행되었다. 옛 이름은 횡강(橫江) 또는 요락지(瑤樂池)라고 하였다. 명칭은 조선 태종 때 봉사(奉使)로 온 하륜(河崙)이 술좌석에서 순문사(巡門使) 강회백(姜淮伯)에게 “여기가 환조(桓祖)의 복거지(卜居地)요, 태조가 출생한 고향이니 그 이름을 용흥강이라고 지어 부르자.”는 데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영 상 강 전라남도 담양군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 중서부 지역을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강에 속한다.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용추봉(龍湫峯, 560m)에서 발원하여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암군 등을 지나 영산강 하구둑에서 서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본류의 총 길이는 약 150㎞, 유역 면적은 약 3,551㎢으로서, 유역 면적이 전라남도 총면적의 약 29%를 차지한다. 영산강은 섬진강보다 길이와 면적이 작지만, 유역이 우리나라 서남부의 핵심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4대강으로 취급한다. 영산강은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나주시, 담양군, 장성군, 함평군, 화순군, 영암군의 대부분 지역을 유역분지로 삼고 있으며, 전라남도 목포시와 무안군, 전라북도 정읍시의 일부 지역도 유역에 포함된다. 영산강 유역 내에는 영산강 본류를 포함하여, 황룡강, 지석천, 고막원천, 함평천 등 5개 국가하천 구간과 영산강 본류의 최상류, 황룡강의 상류, 광주천 등 163개의 지방하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역의 동서간 최대길이는 60.6㎞, 남북간 최대길이는 89.9㎞, 유역의 평균폭은 26.7㎞으로, 남북으로 보다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유역의 평균경사는 19.5%로 비교적 완만하다. 영산강의 명칭은 중류에 위치한 나주와 영산포에 의해 역사적으로 변화되었다. 나주는 통일신라 때 금성(錦城)으로 불리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영산강을 금천(錦川), 금강(錦江)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錦江津)이라 했다. 고려시대에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永山島)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나주 남쪽의 강변에 마을을 개척한 후, 그곳을 영산포(榮山浦)로 부르게 되었고, 조선시대 초기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영산강 유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곳으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무문토기들이 나주시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백제 시대의 옹관묘(甕棺墓) 군집들이 강 하류인 나주시와 영암군에서 발견되고 있다. 강 유역의 기름지고 넓은 들판에서 나는 물산들과 바다에서 오는 물자들로 영산포는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물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남 대 천 강원도태백산맥(太白山脈) 동쪽사면에서 발원(發源)하여 강릉시를 지나 동해로 들러드는 하천으로 길이 51.3㎞. 만덕봉(萬德峰, 1,035m)과 대화실산(大花實山, 1,010m) 사이에 있는 삽당령(揷堂 嶺)을 분수계(分水界)로 북쪽으로 흐르는 수계(水系)가 왕산면 목계리에 이르러 하곡이 약간 넓어지 면서 도마리 일대에 왕산면 소재지를 이루고, 계속 북쪽으로 흐르다 성산면 오봉리의 왕산교에 이르 러 고루포기산(1,232m)과 화란봉(花蘭峰, 1,065m) 사이의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수계가 왕 산리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지류와 합류한다. 여기에서 유로가 동북쪽으로 변하고 구정면과 성산면의 면계를 이루면서 동쪽으로 흘러, 동해안에서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지를 이루고 견소동과 남항진동 사이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남대천이 운반한 모래는 연안류에 의하여 견소동과 강문동 사이와 남항진동 일대의 해안에 넓은 백사장을 이루어 놓았다.
성 천 강 함경남도 신흥군 하원천면과 북청군 안수면의 경계인 금패령(禁牌嶺, 1,676m)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98.5㎞, 유역 면적 2,338㎢. 신흥군 동북방 함경산맥의 금패령에서 발원하여 신흥· 원평·중리 등 3읍을 지나 함주군의 중앙을 흘러 동한만으로 들어간다. 상류는 물의 흐름이 급하고 수량도 비교적 풍부하다. 부전강(赴戰江)·장진강(長津江) 유역에 유역변경식 발전소가 설치된 후에는 압록강의 물이 합수하여 항상 유량이 풍부하다. 강의 하류에는 하상(河床)이 토사로 이루어져 분류가 많아 수운에 적합하지 못하다. 지류로는 호련천(湖連川)·흑림강(黑林江) 등이 있다. 강의 중류부 이상은 급류이고 강기슭에는 평야가 적으며 흑림강의 합류점 아래로 평야가 넓다. 조선 시대에 이미 성천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으나 그 이전은 확실하지 않다. 함흥평야는 함경남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로 성천강이 만드는 삼각주이다. 성천강을 주류로 하여 동성천강(東城川江)·여위천(汝渭川)·수원천(水院川) 등이 망류하는데 정평(定平) 부근에서는 복합삼각주를 형성한다. 그러나 성천강의 흐름이 빠르고 퇴적력은 크지만 동해안의 수심이 깊고 해안류의 발달로 인해 삼각주의 발달은 미약하다. 이 유역의 중심지로는 함흥과 흥남을 꼽을 수 있다. 함흥은 성천강 동쪽 반룡산(盤龍山)을 북에 등지고 있으며 서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끼고 있다. 본래 이 지역은 고려 시대 이후로 여진족이나 거란족들이 발호하던 지역으로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평정된 이후에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함흥은 주변 평야에서 생산되는 산물 집산지였으며, 함경선의 개통과 장진강·부전강의 전원 개발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대한 지원 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중심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어 랑 천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궤산봉(机山峰, 2,277m)에서 발원하여 군의 남부를 흐르다가 함경선의 봉강역 부근에서 지류인 명간천(明澗川)을 합쳐 동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103㎞, 유역면적 1,950 ㎢. 상류 부근에서는 대체로 남류하다가 중류 부근에서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흐른다. 어랑천의 지류인 명간천은 명천군의 북부를 흐르는데 칠보산지괴의 재덕산(在德山)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며, 대체로 길주명천지구대 북부를 따라 흐르면서 하안단구를 형성시켜 명천(明川)·영안(永安) 등의 취락을 형성한다. 경성군의 어랑면 용천동 부근에서 어랑천과 명간천이 합류한다. 어랑천 상류의 지질은 화강암이 주를 이루며, 중하류에는 현무암이 분포한다. 명간천 일부에는 제3기 퇴적암이 분포하고 있다. 어랑천은 중·하류에서 심한 곡류를 하며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특히, 어랑면 부근에서는 곡류가 심하여, 비교적 넓은 들을 만들어 함경북도 남부의 큰 평야인 어랑평야를 이룬다. 여기서는 쌀·보리·밀·옥수수 등의 재배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작물 외에 축우·양잠도 성하다. 하구 부근에서는 퇴적층 위를 곡류하면서 유로 변경에 의한 우각호를 형성하고 있다. 하구 부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연호인 장연호(長淵湖)와 무계호(武溪湖)가 있다. 어랑천의 중류에는 삼포온천(森浦溫泉)이 있어 유명하며 하구 남쪽에는 어대진(漁大津) 어항이 있어 이들이 어울려 관광휴양지를 이루고 있다..
안 성 천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보개면 일대에서 발원하여 평택시를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 이 76㎞, 유역면적 1,722㎢. 옛날에는 안성남천(安城南川)이라 하였다. 하구 근처는 우리 나라에서 조차가 가장 큰 곳 중의 하나로 대조시 평균조차 8.5m에 달한다. 유역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이에 관입한 화강편마암으로 반상결정편마암·흑운모편마암·각섬화강암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지류는 진위천(振威川)·입장천(笠場川)·한천(漢川)·청룡천(靑龍川)·오산천(烏山川)·도대천(道垈川)·황구지천(黃口只川) 등이다. 안성천의 본류와 지류가 합류하는 곳 근처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하성퇴적평야(河成堆積平野)를 안성평야라 한다. 안성평야는 대부분 충적토로 이루어진 평야로 예로부터 토질이 비옥하여 김포평야와 함께 경기미(京畿米)의 주산지를 이루고 있다. 안성천 하구에 방조제가 들어설 때까지는 하구로부터 16.5㎞ 떨어진 평택시 팽성읍 신호리까지 조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방조제를 아산방조제라 하는데, 방조제가 완공된 뒤 많은 간석지가 간척되어 농경지가 확대되었다. 안성천 상류인 안성군 금광면과 고삼면에는1956년에 금광저수지가, 1958년에 고삼저수지가 축조되었다. 이 저수지들은 본래 농업용으로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삽 교 천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오서산(烏棲山, 791m)에서 발원한 후, 북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는 61㎞, 유역면적은 1,619㎢이다. 주요 지류로는 청양군 화성면에서 발원하는 무한천(無限 川), 천안시 광덕면에서 발원하는 곡교천(曲橋川), 당진시 면천면에서 발원하는 남원천(南院川) 등이 있으며 삽교천 주변에는 넓은 충적지(沖積地)가 발달하여 예당평야의 주요부를 형성하고 있다. 삽교천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1975~1983)의 핵심 사업으로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됨에 따라 충청남도 홍성·예산·당진·아산 등 4개 시군 22개 읍·면에 걸친 2만 4700ha의 농토는 전천후 농토로 탈바꿈하였다. 과거 삽교천 유역은 충분한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가뭄과 홍수를 자주 겪어왔으며, 하구(河口)로 흘러드는 바닷물로 인하여 염해(鹽害)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1979년에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었고, 이에 따라 저수량 8400만 톤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한편 서해안고속도로가 완공되고, 수도권으로부터의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삽교천 유역의 개발은 더욱 촉진되고 있다. 이 지역은 덕산도립공원·덕산온천·예당저수지·도고온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형 산 강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경주시·포항시를 지나 동해의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61.95㎞, 유역면적 1,140㎢. 남한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강 중에서 가장 크고 유역 에 형성된 충적평야도 가장 넓다. 본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서 발원하여 언양단층선의 북쪽 연장선을 따라 북북동류하다가 경주시 부근에서 지류인 건천(乾川)·남천(南川) 등을 합류하여 경주시 부근에 넓은 분지상 충적평야, 즉 경주평야를 형성한다. 계속 북북동쪽으로 흘러 경주시 안강읍 부근에서 기계천(杞溪川)과 합류하며 이 부근에 다시 분지상의 안강평야를 만든다. 여기서 유로를 동북동으로 바꾸어 형산제산지협(兄山弟山地峽)을 지나 영일만내에 삼각주성 충적평야인 포항평야를 형성하고 바다로 흘러든다. 일반적으로는 태화강(太和江)의 지류인 동천강(東川江)과 형산강의 지류인 남천, 그리고 경주시 이하의 형산강 본류를 따라 형성된 저지대를 형산강지구대라고 부르나, 지구대로 단정할 확실한 단층구조가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 강 유역에는 신라의 고도 경주가 자리하고 있으며, 하구에는 포스코(POSCO; 구 포항종합제철)가 위치하고 있다.
동 진 강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의 상두산(象頭山, 575m)에서 발원하여 김제평야를 지나 황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역면적 1,034㎢, 유로연장 44.7㎞이다. 도원천(桃源川)을 이룬 뒤, 정읍시 칠보면에서부터 하폭(河幅)이 50m 이상으로 넓어지면서 동진강이 된다. 동진강 유역의 북측과 동측은 성덕산(24.2m), 모악산(793.5m), 국사봉(543m), 흑방산(538m)을 분수령으로 만경강 유역에 접하고, 남측으로는 성옥산(388.5m), 내세산(763.2m)을 분수령으로 하여 섬진강 및 영산강 유역과 접하고 있으며, 서측으로는 변산반도 국립공원과 접하여 있다. 유역의 형상은 대체적인 선형(扇形)을 이루고 있으며 하상은 전 구간이 실트 및 점토로 구성되어 있다. 정읍시 신태인읍 서쪽 1.5㎞에서 내장산에서 발원하는 정읍천과 합류, 이평(梨坪, 배들)의 넓은 충적평야를 흐른 뒤, 호남평야 남부에서 김제시와 부안군의 경계를 이룬다. 부안군 동진면의 하구에서 김제시 모악산(母岳山, 793m)에서 흘러나오는 원평천(院坪川)과 정읍시 고부면에서 흘러나오는 고부천과 합류, 황해의 넓은 간석지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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