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린다는 것
작년까지 사수를 했어요. 번번이 좋은 대학 가는 걸 실패했기 때문에요. 조울증에 걸렸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보자고 시작한 수험생활 동안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냈습니다. 입시하는 동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디데이가 줄어들 때마다 숨이 막혔지만 여전히 나는 누워있었습니다.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내 입시의 끝엔 만 점짜리 수능 시험지를 휘날리고 싶었는데. 가난한 사람의 성공신화를 저도 이뤄보고 싶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교를 가면 과외 알바를 할 거니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이젠 퀴퀴한 냄새가 도는 지하방이 아닌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을 거라고, 더 이상 사람들이 날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지긋지긋한 가정폭력이 끝이 날 거라고 믿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사실 내가 노력을 안 해서 극복하지 못한 거였고, 노력하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는 천진난만한 믿음이 필요했고 필요했기 때문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수능을 4번이나 봤어요. 수능날 만점을 받는 게 저에겐 성공의 징표이자, 생존의 방식이었지만, 4번의 시험 동안 한 번도 만점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입시 하는 동안 누구도 절 데리고 나오지 못하는 환상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수능시험을 잘 봐야, 좋은 대학을 가야만, 돈을 모아 탈가정을 할 수 있을 거고, 빈곤하고 어린 여성이 그래도 학벌이 있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들. 그렇지만 나의 환상과는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대학입시에서 '성공'을 한단 게 이제 불가능에 가깝단 걸 알게 되어서 포기했습니다.
낙오자라는 낙인이 무섭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을 대학입시에 쏟아부었습니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낙오자란 무엇일까. 왜 명문대를 가지 못한 사람은,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낙오자가 될까. 우린 이게 부당하다고 더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이 침묵을 부숴야 하지 않을까.
대학 안 가도 좀 살만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가끔 수능 시험 다시 봐볼까 고민하는 내가 내년엔 수능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명문대라는, 수능시험 만점이라는 환상에 거부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아직도 아주 많이 남았지만, 이젠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단 걸 깨달았으니까. 애초에 좋은 대학을 가야만 빈곤이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단 게 이상합니다. 대학을 거부해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대학을 거부합니다.
2019년 11월 14일
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