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어요. 산에도 들에도,,,
이번 산행은 지난 번 보다 봉우리수가 적다는 말을 희망으로, 순영 언니의 '힘들어도 그냥 가는거다' 이 말을 신조로 삼고
처음도 시작도 없는 마음으로 오르자 결심했는데, 봄이 오는 산은 어떤 각오도 필요없이 만들며,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새벽을 가르고 쌍암재에서 첫발을 디뎠는데 등산화에 닿는 폭신함이 봄이 온 것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지난 번 산행에서는 아이젠을 통해 전해지는 눈의 감촉과 별빛을 더 차갑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으로 겨울 끝자락에 선 산을
느낄 수 있었는데, 2주 사이에 봄은 성큼 와서 눈을 녹이고, 얼었던 대지를 깨워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랜턴 빛으로 보이는 뽀얀 쑥. 뽀얗다는 말은 이른 봄, 아직 차가운 바람에도 제일 먼저 봄을 알리며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쑥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뽀얗다는 그 말에는 긴 겨울 뒤에 온 봄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베어 있는 듯하다.
국사봉에 이르자, 올망졸망 이어진 작은 봉우리들 사이로 아침해가 떴다. 영임 언니 말을 빌리자면 다람쥐가 얼굴을 쏙 내밀듯이
그렇게 앙증맞게 해가 뜨더니 막상 온 몸을 드러낸 이후에는 이글거렸다.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 일출은 처음 보았다. 봉우리 사이로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움직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해가 쑥쑥 커졌다. 이것도 봄 날이 주는 특별한 현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잠시 국사봉 어디쯤에 서서 3월 9일 첫 태양의 잉태를 저마다의 느낌으로 지켜 보았다.
역시 산행 중 최고의 시간은 산에서 먹는 아침, 헬기장에서 펼쳐진 아침은 산해진미의 집합장이었다. 집에서 싼 소고기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 시레기 나물밥, 꼬막 무침, 가지 나물, 김, 김치,,, 모두 가진 것을 나눠 먹으며 행복하고 푸짐한 아침을 먹고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다. 소나무에 내린 서리들이 하얀 꽃처럼 보였는데, 아침 태양이 빛을 더해서 그야말로 눈부신 흰꽃들로 만개했다. 대항산을 오를 때쯤, 서리 꽃들은 비가 되어 투둑투둑 내렸다. 마치 대숲에 내리는 비처럼. 이번 산행에서 좌우로 펼쳐지는 운무도 봄산의 운치를 더했는데, 분덕 언니가 설악산 가리봉의 운무에 비하면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도 언젠가는 가리봉의 운무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지만 지금은 여기의 운무를 최고로 여기며 감탄하기로 했다.
봄산의 매력 중 하나는 공기이다. 산을 오르면 조금씩 달라지는 공기의 특별함이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함이 있다. 대항산 쯤이었던 것 같은데, 오른쪽은 편백 나무가 왼쪽은 자작 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을 지날 때, 산이 발산했던 청량함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속이 환해지는 듯 하다. 살결에 와 닿는 그 촉촉한 공기, 햇살이 나무 줄기 사이로 만들어 내는 빛의 분산, 순영 언니가 이런 것 때문에 산은 중독되는 거라고 했다.
봄 산의 매력에 넋이 나가 걷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봉우리인 선도산까지 올랐다. 모두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나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초보니까 山선배님들이 이 정도는 봐주시겠지 하면서 나는 연신 투덜투덜하면서 산을 오르고 내린다. 그러면서 항상 선두에 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선두 그룹이 더 많이 쉰다는 것이다. 후미 그룹이 도착하면 선두는 떠 날 준비를 한다. 후미 그룹은 별 짬도 없이 바로 일어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마지막 산을 내려올 때, 즐거움이 더 크다. 아, 오늘 산행도 무사히 마쳤구나. 앞 선 사람들이 없으니 내가 먼저 이 즐거움을 차지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 때문인지 암튼 내려올 때, 유난히 즐거움이 커지면서 오르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잊게 한다. 그런데 이 번 산행에서는 영임 언니의 간드러지게 꺾이는 노래를 덤으로 선물 받았다. 제일 선두에 선 영임 언니가 산을 내려오며 개나리 우물가에 처녀랑, 사는게 그런거지, 닐리리 맘보,,, 를 마치 이미자 처럼 불렀다. 영임 언니 바로 뒤에 선 나만이 누린 최대의 특권이었다. 영임 언니는 기적을 이루며 사는 사람 같다. 언니는 오르거나 내리거나 아무 말이 없다. 똑같은 리듬으로 간다. 그래서 영임 언니 뒤를 따라가면 편하다.
드디어 개운한 목욕 시간, 찬 물에 열이 오른 무릎을 풀어 줘야 한다는 언니들의 말을 들어 냉탕에 들어갔지만 나는 절대, 온 몸을 냉탕 속에 담글 수가 없다. 언니들은 그 속에서 수영이라도 할 폼이지만 나는 다리만 넣은 채, 혹시 심장마비로 사망하지 않을까 쫄면서 시간만 세고 있었다. 그래도 5분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특별히 40분 정도 목욕 시간이 주어졌다. 모두 뽀얀 쑥처럼 해맑은 얼굴이 되어서 식당에 모였다. 오늘 메뉴는 청주의 특식 매운 갈비찜. 각종 야채랑 매콤한 갈비를 국물이 자근자근한 전골 냄비에 익혀 먹는 것이다. 떡도 넣고, 버섯, 달래, 냉이도 넣고, 물론 이 시간이면 맛있지 않은 게 없을 건 당연하지만, 모두들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둘러 앉아 먹는 늦은 점심은 언제나 최고다. 술도 한 두 잔 오가며, 참, 오늘은 후식으로 김보성님이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덕분에 정말 간만에 메론바를 내 친구 저재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신갈, 양재, 강남역에서 모두들 내리고 영등포에 닿은 영등포 식구들, 새로운 식구가 (나) 왔으니 환영회를 해야 한다고 영덕 물회집으로 갔다. 식구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다. 나와 동향인 권선생님 두 분, 나의 친구 저재, 순영 언니와 신랑, 김 사장님과 박 지사장님, 모두 기쁘게 맞아 주셔서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을 마쳤다.
회장님이 자꾸 우리 백두 산우회가 괜찮지 않냐며 물으신다. 왜 백두 산우회가 어찌 보일까를 염려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런건 기우일텐데, 아마 멋진 산우회를 자랑하고 싶고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신가 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백두 산우회 정식 회원이 되고 싶은데,,, 이 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
그럼 건강하게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임수연
첫댓글 수연님 좋은글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제 우리 백두는 다같이 산행하고, 사진기록보며 머리로 산행 복습하고, 마지막으로 수연님의 산행후기로 총정리하면 참 훌륭한 산행이 될듯합니다. 정말 좋은 산행후기 계속 부탁합니다. 내 고향 안동출신이라 더욱 자랑스럽네요. ㅋ ㅋ
이쁘게 봐 주시는 권 샘! 좋아요 ~~~ ^^ 아싸 안동!!!
사진으로 볼수 없는 감성적인 산행기 고맙습니다.새로운 기운을 우리 산우회에 불어 넣어 주시네요. 감사 드립니다.
하늘이 내린 총무님의 기운에 비하면 저는 조족지혈,,,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제일 감사드리는 건 저를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 주셨고, 언제나 반갑게 대해 주시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