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190]조사수(趙師秀)7절 ‘약객(約客)’
약객(約客)- 온다는 손님은 안 오고
樂天(락천) 조사수(趙師秀)
黃梅時節家家雨(황매시절가가우)
장마철 집집마다 비가 내리고,
靑草池塘處處蛙(청초지당처처와)
푸른 풀 무성한 못 곳곳에 개구리 우는
소리 들린다.
有約不來過夜半(유약불래과야반)
약속하고 오지 않아 밤이 깊이 지났는데,
閑敲棋子落燈花(한고기자낙등화)
한가로이 바둑돌 두다 보니 다 탄
등잔불 심지 떨어진다.
敲 : 두드릴 고. 棋 : 바둑 기.
棋子(기자) : 碁子(기자) 바둑 돌.
趙師秀(조사수)-중국 南宋 詩人
이하=문화일보입력 2019-07-01 12:19
<박석 교수의 古典名句>黃梅時節
黃梅時節家家雨
靑草池塘處處蛙
有約不來過夜半
閑敲棋子落燈花
(황매시절가가우 청초지당처처와
유약불래과야반 한고기자낙등화)
황매의 계절 집집마다 비는 내리는데
푸른 풀의 연못에는 곳곳에 개구리 소리.
약속한 사람 오지 않고 밤은 깊어 가는데
한가로이 바둑알 두드리니 타버린 심지 떨어지네.
남송 조사수(趙師秀)의 ‘약객(約客)’이라는 칠언절구다.
시를 지은 시기는 바야흐로 푸른 매실이 누렇게 익어가는 황매의 계절이다.
이 시기는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장마를 매우(梅雨),
혹은 황매우(黃梅雨)라고 불렀다.
누런 매실의 계절에 집집마다 비가 내리는데
푸른 풀이 무성한 연못에는 곳곳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려온다.
황매와 청초가 강렬한 시각적 대조를 이루고
가가우(家家雨)와 처처와(處處蛙)가 절묘한
평측의 대비로써 음송의 맛을 더해준다.
장마철 풍경을 참으로 잘 묘사한 명구다.
주제는 다음 구에 나타난다.
약속한 손님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손님이 오지 못한 것은 분명 집집마다 내리는 장맛비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곳곳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는
시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잘 말해준다.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구절에 있다.
복잡한 심사를 달래려고 바둑알을 딱 치는 순간 이미 타버린
등불 심지의 끝부분이 툭 떨어진다.
등불의 심지는 기다림으로 애태우는 시인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그 시끄럽던 마음이 한순간에 깊은 정적에 빠진다.
장마가 시작됐다. 이런 칙칙한 계절에 하던 일마저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은 더욱 답답해질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
수시로 숨 고르며 몸과 마음에 고요와 평안을 주도록 하자.
상명대 교수
온다는 손님은 안 오고約客/송宋 조사수趙師秀
黃梅時節家家雨 매실이 익을 무렵 집집마다 비 내리고
青草池塘處處蛙 푸른 풀 연못에는 곳곳에 개구리 울음
有約不來過夜半 한밤 지나도록 온다는 손님 오지 않아
閑敲棋子落燈花 무료하게 바둑 두니 불똥이 떨어지네
매실이 누렇게 익을 무렵에 강남에는 비가 자주 온다.
마을의 지붕에는 비가 내리고 처마 아래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연못에는 풀이 무성한데 개구리 울음 소리가 쉴 사이 없이 들려온다.
누군가 내방하기로 약속을 했다. 술과 차도 준비했다.
그런데 손님이 한밤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무료함을 달랠 겸 바둑을 둔다.
바둑 알 놓는 진동에 등잔 심지에 맺혔던 불똥이 떨어진다.
초여름 밤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손님을 기다리다가
바둑을 둔다는 이야기가 물씬 여름의 정취와 함께 알지 못할
향수에 젖게 만든다. 두터운 바둑판에 땅땅 바둑알을 올려 놓다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둘이 두면 더 좋지만 혼자서도
이리저리 수를 생각하면서 두어보는 중이리라.
《시인옥설(詩人玉屑)》에 수록된 《유계시화(柳溪詩話)》에서는
이 시를 두고 “내용은 진부하지만 말은 참신하다.[意雖腐而語新]”라고 평했다.
평자는 이런 시를 많이 접한 모양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내용은
잘 다가오지 않지만, 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한 번 음미해 보기 바란다.
등화(燈花)는 등잔의 심지 끝에 타고 남은 찌꺼기가 꽃 모양으로 매달린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불똥과 다르지 않다. 중국인들은 불이 꺼질 무렵
이 불똥이 떨어지는 것을 길조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예전 서울역 근처 다방에서 밤을 새우며 바둑을 두고 종로에서
방내기를 하고 돈이 털려 정릉까지 걸어오기도 했는데
그 많던 기원들이 지금은 다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예전 정릉에 살 때 저녁 해거름에 쌀가게 앞으로 나오면
바둑 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이런 풍경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바둑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조사수(趙師秀, 1170~1219)는 송 태조 조광윤은 8세손으로
절강성 온주(溫州) 사람이다.
호가 영지(靈芝), 낙천(樂天)이고 오언시를 특히 잘 썼는데
이 시인의 대부분 시가 오언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