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7440]德溪九曲-7曲-雲騰淵[운등연]
洄=거슬러 올라갈 회. 돌아흐를 회.
蒼=푸를창. 崖= 벼랑 애,언덕 애.동자(同字)崕.
瀑=폭포 폭. 騰=오를 등. 斯=이 사.이것.
査滓사재=찌꺼기.
査=조사할 사. 찌꺼기 사. 滓=찌끼 재, 더럽힐 재.
都=모두 도. 消= 사라질 소.
澄=맑을 징. 물이 깨끗함.
덕계구곡(德溪九曲)
덕계구곡은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앞으로 흐르는 덕계,
현재의 기계천에 설정된 구곡원림九曲園林이다.
조선후기 계옹溪翁 이헌속李憲涑(1722~1793)이
이 굽이에 은거하며 덕계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였다.
그가 설정한 아홉 굽이는
제1곡이 수통연水通淵,
제2곡이 막애아寞碍阿,
제3곡이 수월암水月菴,
제4곡이 계정溪亭,
제5곡이 도서송島西松,
제6곡이 합류대合流臺,
제7곡이 운등연雲騰淵,
제8곡이 용방연龍房淵,
제9곡이 모산茅山이다.
덕계는 용계龍溪라고도 하는데
기록이 없어서 두 이름을 어떻게
구분해 썼는지 알 수 없다.
또 덕동에는 덕연구곡德淵九曲이 설정되고 경영되었는데
누가 설정하고 경영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헌속이
설정하고 경영했던 덕계구곡과 같이
덕동에 설정된 구곡원림인데 몇몇 굽이는 차이가 있다.
덕연구곡은
제1곡이 수통연水通淵,
제2곡이 막애대邈埃臺,
제3곡이 서천폭포西川瀑布,
제4곡이 도송島松,
제5곡이 연어대鳶魚臺,
제6곡이 합류대合流臺,
제7곡이 운등연雲騰淵,
제8곡이 와룡암臥龍巖,
제9곡이 삽연鍤淵이다.
덕계는 시내 폭이 넓지 않고 수량도 많지 않아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산과 견줄 수 없지만
이헌속은 덕계의 산수가
무이의 산수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서 아홉 굽이를 설정하고 경영하였다.
따라서 그가 덕계를 거슬러 오르는 유람은
단순히 산수의 가경을 찾아 나섰던 유람이 아니었다.
덕계의 아홉굽이를 차례로 오르면서
자연에 내재하는 도道를 찾아 나섰던 유람이었다.
이헌속은 자가 경온景溫이고 호가 계옹溪翁이며
본관이 여주驪州이다.
고려시대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낸 이세정李世貞이 그의 시조인데
조선중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에 이르러
그의 집안은 크게 번창하였다.
이헌속은 이언괄의 후손으로 1722년 양좌동良佐洞
사곡리沙谷里에서 태어나
1793년 덕계산장德溪山庄에서 세상을 떠나니
향년이 72세였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터득한 기량이 빼어났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알아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을 형에게 모두 맡기지 않았다.
평생 위기지학에 몰두하면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그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까닭은
계옹집溪翁集에 실려 있는 행장에서 찾을수 있다.
비록 과거 공부를 하여서 두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약옹藥翁이 벼슬에 오르니 공이 마침내
벼슬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형이 이미 벼슬에 나아가니 아우가 어
찌 부모 곁을 떠날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체후體候를 살피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의 지체志體를 따랐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안의 종들을 거느리면서
치우치거나 사사롭게 하는 일이 없었다.
스스로 하는 일에는 삼가 엄히 하며 맑고 곧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았다.
이헌속은 1774년 부친상을 마치자 덕계에 은거하여
스스로 계옹溪翁 이라
부르고 후진을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한가한날에는 자연을 즐기고 덕계구곡을 시로 지어 읊었으니
이는 주자의 무이도가
武夷櫂歌를 계승한 것이었다.
그가 벼슬에 나아가는 일을 달갑게 여기 않은
배경에는 이러한 삶에 대한 동경이
한 부분 차지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계옹이 주자의 무이도가를 계승하려 하면서도
무이도가를 차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자의 무이도가를 차운하는 것에 대해
외람되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무이도가 운에 매여 자신의 생각과 덕계의
경관을 오롯이 형상화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덕계의 경치는 속세와 아득히 떨어져
시냇가 기이한 경치 굽이굽이 새롭네
그중에 오묘한 곳을 그 누가 알겠는가
계옹을 방문해 나루를 물어야 하리라
이헌속은 덕계구곡을 세상과는 다른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덕계의 경치가 속세와 아득히 떨어져 있다고 하는 말이
덕계구곡에 대한 그의 인식을 잘 드러낸다.
그는 덕계의 아홉 굽이에 오묘한 처소가 있는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덕계구곡은 물욕이 가득한 세상과
는 달리 천리天理가 전개되는 세계이고
도체道體가 존재하는 공간인데
사람들이 알지 못해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헌속은 세상 사
람에게 덕계구곡의 오묘한 세계를 알리고 싶었다.
덕계구곡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는 자신에게 묻는다면 언제든지 답할 수 있고
함께 유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옹을 방문해 나루를 물어보라고 하였다.
여기서 나루는 덕계구곡의 오묘한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