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성경 그림 읽기 (5) 천사와 야곱의 씨름
화면 가운데 천사와 야곱의 씨름하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 야곱의 모습은 십자가 형에 처해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방불하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 야곱의 모습이 붉게 칠해져 있어 온몸에서 피와 같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는 불꽃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천사로 그려졌다. 천사의 왼쪽 다리가 천사의 뒤에 있는 나무의 뿌리에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모세가 광야에서 보았던 가시떨기나무처럼 불이 붙었으나 타 없어지지 않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사의 오른손은 야곱의 머리에 대고 있어 야곱이 원하는 대로 축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그림을 둘러싸고 야곱의 일생이 화폭의 주변에 그려져 있다.
그림 왼쪽 위에는 우물과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야곱이 사랑한 아내 라헬을 처음 만난 곳이 우물가였고, 라헬을 처음 본 야곱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창세기 29:11). 야곱과 라헬의 대각선 방향, 화면 오른쪽 아래에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야곱이 그려져 있다. 야곱은 흰 옷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낳았고,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 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무사히 정착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야곱의 열두 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고서 죽는다. 라헬은 죽으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노니’라고 부르지만 야곱은 ‘베노니’와 발음이 비슷한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다. 라헬의 죽음은 야곱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샤갈은 화면의 오른쪽 중간에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이 가장 사랑하고 극도로 편애하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는 광경을 그렸다. 그 요셉을 형들은 미디안 사람 상인들에게 은 20에 팔아버린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을 하고 야곱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서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오른쪽 아래 울고 있는 야곱은 라헬을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요셉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그림의 중앙의 야곱은 겸손한 모습이다. 얼굴 표정이 특히 그러하다. 야곱의 생애에서 이 장면은 정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 야곱의 생애는 사실상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야곱에게는 불행한 일들이 계속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한 일과 그로 인한 분쟁,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실제로는 형들이 팔아버림)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는 삶이다. 나중에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내려가서 살게 되었을 때에 바로에게 야곱은 자신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노라고 말한다. 야곱의 그 ‘험악한 세월’은 이 천사와의 씨름 이후의 세월을 가리킨다. 그 이후의 험악한 세월을 야곱이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이 그림에서 보자면, 야곱이 천사를 잡고 있고 천사가 야곱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야곱은 이 그림의 저 표정으로 이후의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들고 있었기에 평온을 유지하며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