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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온 고향(실화 소설입니다)
- 글쓴이 : 정 승 남(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장) -
*** 이 글을 쓰면서 ***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일생동안 잊지 못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반추하면서 아쉬움과 미련과 그리움이 추억의 페이지로 남는가 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늦었지만 이제 나이 들어 생각나는 분(이 글의 실제 주인공)을 찾아보고자 이 소설을 본 블로그에 게재한다. 나(정승남)는 1979년 2월 초에 군(軍)에 입대하여 1981년 12월 초에 만기 제대했다. 내가 바로 만기 제대하기 1주전에 나는 내가 복무하던 부대근처에 있는 마을인 천도리(天桃里)로 외출을 나오게 되었고, 이때 나는 이 이야기속의 실제 주인공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군복무를 마친 천도리(天桃里)에서 처음으로 다방(茶房 지금의 coffee shop)에 취업하였고, 또 첫 취업하던 날 첫 손님으로 나를 맞이했었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였다. 이때 나는 그녀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 그러면서도 다방(茶房) 아가씨라는 모순된 점에 장난기가 발동하여,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인데, 혹시 아가씨의 슬픈 일대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오늘 밤에 부대로 귀대하는 즉시 밤새 글을 써서 내일 가져다주겠다”고 장담했었다. 그 당시, 사실은 군인으로서 그저 재미있게 서로 이야기나 나누거나, 잠시 말만 걸고 헤어질 줄 알았으며, 그다지 정(情)을 느끼지는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글을 쓴다는 이야기와 나의 모든 말을 진지하게 들었으며, 또한 나의 모든 말을 진심으로 믿고 그녀의 아픈 일생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한(恨)을 섞어서 이야기 해 주었다.
그래서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허심탄회하고 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섬에서 태어나서 가난에 쪼들리고 부친은 돌아가시고 생활은 궁핍하고 육지는 그립고 하는 사춘기 때의 철없던 모든 갈등으로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의 인생이 너무도 가련했고 또 제대 1주일 전이었기에 헤어지기에 더욱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아픈 일생을 갖고 장난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혔고, 그날 밤 부대로 귀대하자마자, 밤새 이 글을 썼다. 누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듯이 감동 감화를 받으면 하룻밤에도 엄청난 원고를 채울 수 있음을 이때 처음 경험하였다.
그때 그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실제 자서전이 될 이 글을 써서(부대 졸병이 그린 아름다운 표지 그림과 함께) 그녀에게 선물로 주고 제대했다. (두 부를 써서 한 부는 그녀에게 주고, 한 부는 내가 가지고 제대했다.) 그리고, 이 글은 발표를 하지 않다가 1992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 춘추(行政 春秋)”에 발표 게재하였다.
이제 45년 남짓 흘러간 세월인 듯 하나 다시금 그녀가 생각나기에 그녀를 찾고자 한다. 부디 이 글이 인연이 되어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들었으면 한다. 또한 어디에선가 어릴 때 꿈을 간직한 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다.(연락처는 맨 아래에 기재합니다.)
* 제 목 : 두 고 온 고 향
- 글쓴이 정 승 남 (鄭 承 南) -
변함없이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여
옥소리 같이 맑은 그대의 목소리와 마음에
희비를 가슴깊이 느끼며 먼 훗날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디딤돌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1. 두고온 고향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던 어린시절 내게도 그런 전설 같은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때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끝없는 푸른 바다가 펼쳐 있었다. 그대로 온 몸이 빠져들 것 같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같다고 생각했었다. 밤이면 동산에 올라 총총 별들이 박힌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며 무심히 별 하나 별 둘을 헤던 밤하늘도 아름답게 수 놓아 있었다.
여섯 살이던가 일곱 살이던가, 여름 어느 날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바닷가 후미진 풀숲에서 바라보던 낯설은 육지가 저녁노을에 빨갛게 노을져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었다. 변모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시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억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죽은 시지포스가 매정스런 아내를 호통치기위해 지하의 신(神)에게 잠시 돌아 갈 것을 허락받고 지옥의 어둠 속에서 빠져 나왔을 때 최초로 본 것처럼 밝고 청명하고 생(生)의 축제 같은 평화스런 하늘, 어둠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脫出)이며, 비상(飛上)을 약속하는 생(生)의 탈출 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희망에 좌절한 우리 섬 처녀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무한한 희망과 평화의 실체 같은 아늑함을 풍겨 주었다.
거기에는 분명 감각의 도취가 있고 살아있는 기쁨, 생(生)의 축제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푸르고 사람을 황홀하게 끌어안고, 그리고 부드러운 무관심으로 행복하게 하고, 그러나 이윽고 현실의 나락(奈落)으로 추락시키고야 마는 허무의 공간을 맛보아야 했다.
비정하고도 푸르고 무심한 희망과 행복이란 이름의 덫, 그 덫에 걸려 평안하던 우리네 섬 처녀들 마음에는 마침내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는 참담한 수인(囚人)이 되어 버리곤 했다.
꽃들이 있는 곳엔 나비와 꿀벌이 떠나지 않고, 아무리 작은 풀숲에서도 갖가지 풀벌레가 삶을 꿈꾸듯이, 나는 며칠 밤을 만삭한 임부처럼 뒹굴다 문득 생각해낸 것이 친구와 함께 도시로 나가는 것이었다.
작은 나의 가슴에 설레임이 일고, 방년 20세의 나의 얼굴이 붉어지도록 부끄러운 치졸과 미숙과 감상을 노출한 채 가난과 미지에의 동경에 가슴 설레며 무모한 출발(出發)을 시도했던 것이다.
공간과 시간이 끝없이 있다면 나의 이 탈주(脫走)는 죄가 아니겠지
만약 끝없이 허락된 시간이라면 나는 영영 미움으로 변하리라.
고향의 작은 섬, 푸른 바다 그리면서 돌아갈 날을 기다리리라.
하늘을 나는 새여
너는 나의 마음을 알리라.
욕심스런 탓인지, 천성이 분명치 못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직 껍질속의 알처럼 세상(世上)에 대해 눈도 뜨지 않은 내가 밤마다의 꿈을 무서워하면서도 기다려지고, 참담하면서도 감미롭던 몰약이었지만, 늘 부드럽게 목덜미를 잡고 놓지 않던 마법의 희망이라는 이름의 꿈으로, 나는 실로 걸 데로 잡을 데도 없는 무형 무재한 희망에 생애(生涯)를 걸고, 나는 무작정 떠났던 것이다. 설사 내가 지향(指向)하는 세계가 허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스스로 희망의 덫을 치고 자신을 묶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난 것이었다.
내가 처음 안착한 곳은 목포였다.
여학교 시절 마지막 1년을 나는 가까운 바닷가 목포시로 통학을 했었다. 밤낮으로 파도의 흰 물결처럼 출렁대는 기적소리와 함께 내 생활(生活)의 일부를 차지했던 목포시(木浦市).
나는 친구와 함께 작은 업체의 직장을 얻게 되었다. 비록 박봉이며 낯설은 땅이고 서툴기만 했던 나였지만, 꾸준히 인근 동료들과 함께 계(契)를 조직하고 돈을 저축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不幸)은 닥쳐오고 말았다.
계(契)를 맡아 오야를 하던 사람이 우리의 곗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처음부터 불행해지기만 했다. 이렇게 전전하게 된 나의 생활 속에 온갖 희망(希望)과 낙망(落望), 미지(未知)의 설계(設計)와 불안으로 술렁대는 절기(絶忌), 얻은 이는 얻어서 잃은 이는 잃어서 새로 시작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 출발(出發)이라는 이름의 하역(遐域), 갑자기 밀어 닥치는 삶의 갖가지 하역(遐域)으로 하여 나를 자주 피곤하고 절박하게 만들곤 했다.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이 내게 있어선 결코 크고 눈부신 것들은 아니었다. 장난감이나 인형처럼 항상 옆에 놓고 만질 수 있고, 어쩌다 잊어 버려도 크게 마음 다칠게 없는 값없고 부담 없는 것들이 그때부터는 나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련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욕심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분수에 맞지 않는 나의 생활은 나를 즐겁게 해 주기보다 더 많이 괴롭게 하고 목마르게 했다.
뚜 -
붕 -
언제 떠났었는지 마음이 설레였던 떠나던 날의 부둣가, 언제 기적소리가 어떻게 울리던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언제 들었던가 거짓말처럼 까마득히 잊혀져 간다.
2. 상 경(上 京)
멀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의 눈물 이 앞을 가린다.
이제 뭍으로 이어진 삼학도 지저분한 선창가를 지나 목포역을 향했다.
묵직하게 이어진 철마(鐵馬)에 몸을 실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밤차를 달리는 드높은 신호와 함께 ‘칙 - ’하고 내딛는 육중한 차체의 첫 바퀴소리, 그리고 하늘높이 구름을 가르는 황황한 기적소리, 나는 그 출발의 순간이 주는 짜릿한 전율, 전신을 얽매는 것 같은 전율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참으로 물기없이 축축 늘어져 시들었던 마음을 단번에 싱싱한 꽃다발로 묶어내는 마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순식간에 바람으로 가득찬 고무풍선처럼, 하늘 높이 붕붕 떠오르는 비상(飛上)의 시간(時間)이기도 했다. 옆도 뒤도 보이지 않는 오직 전방(前方)만이 드넓게 활짝 열려오는 미지의 시간 ........
여객전무의 안내방송이 끝나고, 발차의 벨소리가 차창마다 울리고,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전송객들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뜨거운 시선을 쏟고, 이윽고 차문(車門)이 닫히고, 첫바퀴 구르는 소리가 쿵하고 낮게 전신(全身)을 진동하는 순간,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전신(全身)을 의자깊이 묻으며, 참으로 오래 오래 참아온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깊은 심호흡을 한다.
밀물같이 밀려오는 해방감과 비상(飛上)감에 터질듯이 충만해진다. 그 순간의 나는 흡사 곳간 하나 가득찼던 짐들을 말끔히 실어내고 난 뒤의 창고처럼 비어 버린다.
어떠한 근심 걱정도 울려오지 않는다. 삶과 가난의 역경을 이 순간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산적했던 일만근심이 감쪽같이 밀려가 버리고 가벼운 마음이 충만해 온다. 그 황홀한 출발의 자유를 맛보기 위해 나는 기차를 탄 것이었다.
기실 떠나고 돌아오기 위해서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기 위해서 떠나고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실상 지금 나는 먼 인척을 찾아 상경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차를 탈 수 있는 즐거움으로, 나의 고달팠던 생활은 유감없이 보상받는 것이었다.
캄캄한 밤 - 흑마(黑馬)처럼 달려가는 기적(汽笛)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이윽고 아침잠을 아직 어두운 첫 새벽의 기적소리로 깨어나 서울역에 도착했다.
신촌에서 그리고 시흥에서 두루 다니며 나는 도시의 냄새를 맡았다. 버스나 지하철안에서 백화점이나 시장바닥에서, 건널목이나 육교에서도 나는 나의 꿈을 찾아 다녔다.
가망 없는 끝없는 인생의 길에서 나는 이곳저곳으로 나의 정착할 곳을 찾아 다녔다. 잡지를 뒤적이고 신문을 펄럭거리며, 지나가는 말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나는 찾아 헤맸다.
어디에 이 짓눌리고 고달픈 삶을 말끔히 세척할 만큼이나 신나는 행운(幸運)이 없을까 하고.
지금 이렇게 비누거품 같은 하얀 구름처럼, 잠시 피어올랐다 금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마음의 거품들 그 방황 속에서 나는 어느 직업안내소를 찾았다. 변두리의 자그마한 집, 그 직업 안내소에서 어느 날 나이든 아저씨로부터 소개를 받고, 지금의 내가 삶을 보내고 있는 군인들이 득실거리고, 산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 여기 천도리(天桃里)란 마을에 오게 되었다. 커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속에 나도 다방 아가씨가 되는 것이라고 느낄 수가 있었다.
3. 외로운 직업
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양치질을 하고 식탁 앞에 앉아 성호(聖號)를 긋고, 밤이면 어둠속에서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한다. 어떠한 속임수도 여기에는 없다.
다만 나는 나의 정직한 주인이고자 원할 뿐이다.
내일을 위해 산다고들 한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나 잠시 믿어보는 위안이고 슬로건이다.
지금 나에겐 내일이 없다.
아니 내일은 오히려 두려운 단애(斷涯)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일어나 빗장을 따고 문을 열었다. 모든 창, 모든 문들을 이 신선한 아침을 위해, 오늘의 손님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는 것, 문 저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고 앙상한 겨울수목들이 서있는 동녘 산에 아침햇살이 비치고 있다. 하늘엔 찢어진 구름 한조각 풍선처럼 붕 떠있고, 이마를 마주 댄 지붕위엔 두 어 마리 집비둘기가 날개깊이 묻어있는 겨울의 어둠을 털어내고 있다.
이제 이 다방에 온지도 오래되어 간다. 처음에는 매사(每事)에 서투르고, 어수룩하고, 미숙했지만 손님들의 진심어린 몇 마디 걱정과 위로로 내 자신의 위안을 갖게 되었고, 나의 예쁜 용모로 쉽게 사귈 수가 있었으며, 친근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전설의 나라의 공주나 된 것처럼, 손님들 사이에서 일찍 인기를 얻을 수 있었고, 귀여움을 독차지 할 수가 있었다. 어느 때는 행복에 겨워 휘청거리며 가슴 뿌듯해지기도 했다. 그것은 생활(生活)이라는 목적에서 커다란 암벽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작고 작은 별들이며,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나의 파멸이기도 했다.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나의 얼굴은 손님들 사이에 회자(膾炙)되었고, 나는 내 직업에 대해서도 몹시 익숙해졌다. 그리고 내 자신 스스로도 손님들 사이에서 나의 인기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고, 나의 마력이 손님들을, 손님들의 마력이 나를 여기에 마냥 고착되게 한 것이었다.
나는 커피를 나르면서 손님들의 체취와 취향을 알게 되었다. 창에 어리는 아침햇살이 보는 사람만이 볼 수 있듯이, 찻잔에 어리는 한 주름의 향기도 맡는 사람만이 맡고, 지나치게 친절한 눈으로나 차갑게 식어버린 냉정한 마음으로는 손님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것과 너무 뜨겁게도 너무 차지도 않는 마음의 불, 삶에의 따뜻한 사랑의 불씨만이 손님의 여린 행복의 실체를 비춰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손님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의 가련한 마음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 속에는 정말 꽃송이에서처럼 풍만함과 기풍을 느끼긴 하겠지만 가슴에 감겨오는 정다움은 없다.
결국은 손님들의 이기주의와 비리(非理)속에, 나를 파멸시키는 시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나는 너무 지나치고 요염한 것도 싫어졌고, 고귀한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너무 농밀(濃密)하여 어질어질하고 현기증이 날 것 같은 향기도 감당하기 힘들어 졌고, 요란한 자태에 비춰지는 모습도 추하고 삭막하여 보기가 민망해졌다.
작고 소박하고, 옆에 있어도 없는 듯 조용하고 태없는, 남루하지 않고 언제든지 모르게 스러지듯 져버리는 내가 되고 싶다. 사실 나는 요즈음 알 수 없는 생명의 열기를 느낄 수가 있었고, 밤마다 긴 잠을 쫓겨다녀야만했다. 몇 밤을 뜬 눈으로 꼬박 꼬박 새고도 나는 선무당처럼 쓰러지지 않았고, 낯에는 다방아가씨로, 밤에는 술집아가씨로 뛰어다니며 바닥도 모를 깊은 고독, 나를 끌어내는 밤, 나는 그 밤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체모를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리고 분출하는 내 마음의 속불꽃들을 꺼버리기 위해 탈주(脫走)를 시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뒷날 나는 이 같은 부끄러운 얼굴을 붉히면서도 결코 버리지 못하고 빠져나가지 못함을 다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오고 가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 태어나고 죽는 일이 살아가는 사람의 일임에야 틀림이 없건만 참으로 나는 내 자신을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방황과 직업을 가졌었고, 수많은 손님들 중에서 온갖 것을 경험하며 겪어 보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뚜렷한 대답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내 자신을 때 묻고 더럽힐까 걱정되고, 시들고 파손될까 염려될 뿐이었다.
어찌하여 나의 생애를 뒤 흔들며 이렇게 지나가야만 하는지 더욱 더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름답기는 하나 조심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집안을 걱정해야 하며, 생활의 불편을 느껴야 하는 내 자신이 미워진다. 여자로 태어난 자, 누구나 공통적인 소망이 하나 있다. 아름답고 싶은 소망이다. 거울을 보고 한치만 코가 높았더라면, 두 치만 볼의 살이 빠진다면 하는 아름다운 생각에 잠겨 있어야 할 여자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나에게도 생활의 여유가 있었다면 내 가슴에 책을 한 아름 안고 그리운 낭만의 그 그리움의 여대생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한 일은 넘어지는 일이 아니라 일어서지 못하는 무기력에 있다. 넘어져 다치는 일은 오히려 일부밖에 모르던 자기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일이며, 세계의 한쪽 구석에서 넓은 세계 밖으로 한 달음에 뛰어 가는 일이며, 누워서 잠자다 깨어 일어나는 일이다.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내리라고 이를 악물었고, 열심히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이 생활을 계속해 왔었다.
4. 마음의 갈등
이제 추운 겨울이 엄습해 오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건만, 많은 순간들이 헛된 마음들을 들로 거리로 쏟아내게 한다.
시간은 금이라던가 이 짧은 건널목과도 같은 시간을 위해 나는 어떠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하루도 수 백 번 고쳐먹는 나의 마음, 곧 나의 집을 .......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이란 결코 흔하지 않다.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귀중하고 소중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어머니의 사랑 같은 나는 그런 불변(不變)의 것들을 하늘처럼 믿기에 내일(來日)에 희망을 걸고 나의 불행을 견디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각박하고 이기주의적이고 비리(非理)에 가득찬 현실(現實)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무질서 안에 순명(順命)하고 내일을 꿈꾸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의 고달픔을 견디어 갈 것이다. 두려운 것은 가난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으로 하여 일그러지고 추악해지는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진실을 보고도 감동할 줄 모르고, 불의를 보고도 미워할 줄 모르는 마음의 사멸(死滅)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인지, 가슴 뿌듯이 눈시울 젖게 하는 감동. 지상엔 아직도 이러한 진실과 맹세가 있어 나의 어두운 삶도 밝혀주게 될 것이라 믿는다. 때문에 나는 내 고독을 달래기 위해 손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트랜지스터의 불륨을 높여주고, 내 비애(悲哀)를 위로하기 위해 새 옷과 새 구두로 나를 감싼다. 그리고 나의 미운 몰골을 가려주기 위해 향수와 지분으로 분장을 하고 .......
나는 나의 직업을 잠시 혼전(婚前)의 여가, 삶의 경험으로는 추호의 생각도 없다. 내 자신의 직업을 남자의 보조역 정도로 가볍게 생각치 않으며, 더 더구나 스스로 자기 위치를 격하시키고 달콤하고 예스러운 말을 하는 남성에게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더 나를 미화시키지도 못할 것이고, 나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회피이며, 스스로 여자로서의 섬세함을 소외시키는 결과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스스로를 키우고, 변모하여 완성해가는 내 자신의 아름다운 의지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내부를 갈고 닦는 것이다. 한 벌의 블라우스보다는 한권의 책을 원하고, 열 마디의 말보다 침묵의 깊이를 깨달으며, 남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내 자신의 내부를 먼저 응시하는 진실함과 성실성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사실 생각하면 이 세상의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하늘의 태양도 들의 백화(百花)도 내가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고, 종교도 믿음도 내가 있음으로 해서 필요한 것이다. 나의 존재 나의 명예 나의 행복보다 더 절실하고 귀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진실로 자신을 아끼고 자신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기실 생명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악(惡)을 구별할 줄 알고 자신을 자각하며, 나의 이 직업과 인연을 맺은 한 내 자신 스스로 안락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허무(虛無), 그 퇴색함이 없는 평화적 구원의 색조에서 탈출할 길 없는 나, 철저한 무관심속에 비정하도록 무심한 하늘을 욕(辱)하며, 내 의지의 포물선을 구애 없이 마음껏 그어 볼 것이다. 새벽의 여명(黎明)에 황홀하고 낙일(落日)의 노을빛에 가슴 설레던 감정의 무늬도 낡은 사진처럼 퇴색해 버리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선 빵이 빛이 되고 탐욕스러운 사람을 위해선 황금이 빛이 되기도 한다.
나와 같이 젊은 여자들은 아름다운 용모일수도 있고, 물질에 오염된 정신의 암흑, 열락(悅樂)에 부식(腐植)된 육체의 황폐, 그 어두운 혼돈으로부터 가혹한 모든 착각과 공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갈피없이 방황하는 나를 침묵으로, 눈부신 빛의 유리벽 너머로 나오는 선망(羨望)과 비탄(悲嘆)과 자괴(自愧)의 짐은 나를 유혹한다. 어느덧 나는 내 자신을 향한 의혹(疑惑)과 회의(懷疑)가 크게 눈뜨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서서히 파고드는 깊고 어두운 침체, 무기력하고 암담한 실의(失意)가 저녁 일몰(日沒)처럼 전신(全身)을 감싸고, 그러한 실의(失意)에 부채질 하듯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그렇게 믿어오고, 희망(希望)을 간직했던 그 순간들이 무산되고, 가치와 신의와 일체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려 버리게 되었다.
믿음에 대한 정열도 내일에 대한 모든 꿈도 한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다시금 눈 감고도 떠오르는 그림 같은 나의 고향 암태도가 나의 시야를 희미하게 물들이고, 분통에 못잊는 내 머릿속 한구석에는 떠나오기 전의 그 감미로운 바닷바람이 마냥 그립다.
나는
병든 소녀
바람에도 꽃 내음에도
숨이 찬데
파도는 바람난 처녀처럼
넘실거리고 웃고만 있다.
머리를 풀고
머리를 감고
나날이 물 차게 피어오르는
나이 어린 순정
병석의 소녀는 목이 마르고 외롭다
무심한 파도는
그리운 고향을 숨긴다.
긴 날을 꼬박 시름한 나이기에
노오란 하늘만 지켜보느라
황달뜬 눈처럼
물이 들었다.
5. 노스텔지어(향수)
이제는 멀어진 내 고향, 김을 만들고 굴을 따던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진 암태도 바닷가, 해가 지는 저녁이면 한 개비의 성냥을 그어, 조그만 남포등에 또한 한 자루 초에 불을 댕겨 창마다 밝은 빛을 소망처럼 채웠다. 그것은 밤을 맞는 거룩한 제신처럼 허구한 저녁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것은 어린시절의 아름다움이었고, 삶과 사랑의 염원을 담은 표현이었다.
낮과 밤이 바뀌고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그 귀한 삶의 전환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 나는 이렇게 무작정 떠나왔던 것이었다. 그처럼 나의 삶도, 삶에 대한 내 마음의 자세도 해이(解弛)해지고 안일(安逸)하며, 단심(丹心)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덧없는 세월 속에 나의 무위와 방황, 겉으로만 무성했던 허욕(虛慾)을 털고 흩어졌던 마음을 모아 고향(故鄕)앞에 참회하는 시간을 갖으리라. 그러지 않고는 나의 어둠을 치유할 수 없으니, 그 한구석 외진 곳에 들어앉은 울타리 없는 나의 작은 악마의 물결을 탓하리라.
거짓 없이 반복하여 성가(聖歌)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눈을 감은 채 힘없이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듣고 싶었던가.
눈에 선한 고향의 바닷가, 황금색으로 물드는 저녁 길 떡갈나무 잎 새 반짝이는 길을 빠져나가 낭떠러지로 열리는 작은 오솔길, 소슬한 바닷가 단애위에 앉아 눈 아래 영원처럼 일렁이는 물결과 그것을 내리덮은 무한한 공간 속에 꿈처럼 빠져있는 한 작은 소녀, 온 몸이 해풍(海風)에 젖어 축축이 돋는 귀로(歸路)의 한 소녀를 나는 지그시 감은 눈 속 저 깊은 속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도지곤 하는 나의 병(病) 고향의 바다로,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망향병(望鄕病) 같기도 했지만, 실은 내 자신도 잘 모르는 바람병이었던 것 같다.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무너지듯 옛 가요를 불러본다.
고 ~ 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 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 몸
꿈 ~ 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 ~ 워
망망(茫茫)한 바다 그 위의 작은 섬들 외딴 등대 끝의 갈매기의 떼, 기선의 마스트, 수부들의 적동색 이마가 마냥 그립다.
오리나무 숲을, 흰 나리꽃 언덕을, 수수밭이랑 갈대밭을, 산과 골짜기 시냇물 논두렁을 곤두박질치며 오는 나의 잔잔한 마음의 고향(故鄕)이 물결친다. 잠 못드는 나의 골방에서 기다리는 한밤의 창가에 밝아오는 새벽을 기다리며, 간밤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의 그 처연한 모습이 나의 전신(全身)인양 슬퍼만 진다.
처음 떠난 객지생활이었지요
사랑도 욕심도 나를 미치게 하진 않았어요
단지 밤새는 줄 모르는 늦바람이었을 거예요
어제는 노오란 금잔화 목을 누르고
오늘은 장미 가슴에 비수(比首)를 찌르고
미쳐서 미쳐서 달아 났어요
살길이 막연했지요, 그리고 꿈이 있었지요
풋나기의 욕망이었지요
이렇게 할키운 상처는 가난때문이었답니다
그리고 저 순수한 사랑의 그리움이었어요
나는
한번쯤 바람이 되어
바람처럼 부서지고 싶었고 꿈을 가지고 싶었던 거예요
이렇게 나는 꽃을 보면 꺾고 싶고, 풀밭에 서면 달리고 싶고, 산을 보면 오르고 싶고, 구름을 보면 잡고 싶은 나를 키워주는 희망의 꿈을 찾아 방랑을 했었다.
6. 후 회
시간(時間)이 눈에 보이는 하얀 백지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찢어진 휴지들이 등 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까. 그 산더미 같은 시간(時間)의 쓰레기 속에 글썽거리는 젊음도 시든 꽃송이처럼 버려져 버렸다. 나의 육체와 정신의 고향(故鄕)이며, 최후의 안식처(安息處)이며, 마지막 위안(慰安)이신 나의 어머니, 나의 기쁨이고 고통이며 눈물인 나의 고향(故鄕) 암태도.
너무 가까와 잊어버리고, 너무 커서 보이지 않고, 너무 가벼워진 자신이기에 귀한 줄 모르는 사랑.
영원한 희망(希望)이며 미래의 행복(幸福)이 마냥 그리울 뿐이다. 미답(未踏)의 산맥이 아무리 험준해도, 그리고 가는 한줄기 희고 뚜렷한 길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 최후까지 산정(山頂)을 오를 수 있으리라.
설사 그 길이 지금보다 더 고달프더라도 도중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으리라.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무엇 때문에 희망 합니까 ?
로마서 8장 24절의 말이다.
그렇게 진실로 아름다운 희망의 갈망, 목적이 없다면 삶은 잿빛처럼 어둡고, 길을 잃고 헤메는 숲 속처럼 갈피 없고 암담할 것이다. 희망은 멀수록 크고 빛나며 변함이 없다. 나의 영원한 희망(希望), 신(神)이 나에게서 멀리 계심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결코 나는 슬퍼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참으로 슬퍼할 일은 나의 희망(希望)이 먼 곳에 있는 일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떠나는 일인 것이다.
풍성한 순백의 빛깔이 자아내는 정결한 평안함. 잠시 고달픔을 끌고 창가에 기대서면 이름지울 수 없는 감회의 늪에서 멀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릴 것도 같다.
젊은 날을 얼마나 전율했던가.
급기야 육체가 의식으로부터 분리되는, 소멸해 버리는 순간까지 겪어야 했던 혼(魂)의 생리현상에 차라리 육신을 한조각 낙서처럼 극도의 무기력과 상실감, 쇠약감속으로 구겨 넣기도 했었다. 일어서야 한다. 그 쇠약감, 상실감을 딛고 무기력에서 탈출(脫出)을 시도하자.
지금 나에게는 어린 날의 뜨거운 숨결이 고여 있는 내 생활의 만종(晩鐘)처럼 울려오는 시(詩)가 있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득한 이 항구-ㄴ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짝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 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의 <떠나 가는 배>였다.
고향으로 가고 싶으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 가족을 고향에 두고 객지를 떠도는 사람들, 잠시 다녀올 것 처럼 집을 나왔다 평생을 돌아가지 못하는 어버이 또는 자식,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방랑자가 되었다. 소리치고 싶은 비애(悲哀),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끓어오르는 비애(悲哀)를 끊어 삼키듯 꿀꺽 삼키고, 뜨거운 차 한잔으로 삥둘린 동굴 같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끄럽고 법석대는 음악이라도 자신을 잊을 수 있다면 듣자.
까닭 없이 울고 싶다.
서럽지도 않은 눈물이 지친마음, 허전한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향수(鄕愁)와 위안(慰安)의 손길이 마냥 그립다.
7. 고향 물결
미래(未來)는 없다.
더 바랄 시간도 자격도 이젠 없다. 그저 있는 것, 있어 온 것, 나날이 죽어가는 것들을 씻어내고 다시 재생시키기 위해 길을 떠날 뿐이다.
내가 비워 놓은 그 사이에 나의 고향, 나의 방과 마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부엌 유리그릇엔 기름때가 끼여 있을 것이다. 대문에는 기일을 재촉하는 편지가 회신(回信)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쌓여 갈 것이다. 그리고 떠날때 풍선처럼 부풀었던 가슴은 바람 빠진 공처럼 쭈그러지고, 말끔히 씻기었던 이마엔 갖가지 번거러움으로 다시 얼룩지고 주름이 잡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있고, 우렁찬 기적소리와 발차를 알리는 맑은 종소리와 덜컹거리며 첫발을 내 딛는 출발의 감미로운 순간을 누릴 수 있기에 나머지 365일을 잡다하고 고달프고 지글거리는 생활(生活)의 멍에들을 지고 갈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는 기다려도 오지 않은 때가 허다하지 않았던가. 사실 귀하게 얻어지는 기회이기에 그것은 값지고 의미가 있다고 말해 버리면 그만이다. 허구한 날 기차에 흔들려 달리던 그 시절의 고달프던 기억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는 없어도 거기에 나를 세척하고 재생할 수 있는 수줍은 마력(魔力)이 아직은 나를 구출하며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5년 동안만 객지 생활하기로 마음먹고 떠나온 고향(故鄕), 이제 그 한적하고 쓸쓸하던 바닷가 애수(哀愁)를 맛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떠나올 때의 나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황량한 변모.
아무렇게나 먹어버린 내 나이처럼, 나이로 인해 망가져 버린 내 스산한 모습처럼 .......
그러다 그 변모의 물결 속에 나의 20년이 고개 숙이고 앉아 있다. 나는 이 거리에서 풍운의 꿈을 꾸며, 시(詩)를 읽었고, 이 거리에서 화려함을 맛보았고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눈믈과 기쁨을 함께 알았고, 인생은 파란과 애환의 질긴 뿌리라는 것도 알았다.
이제 나는 이 거리에서 이별을 배우며 살아간다.
모든 황홀하고 아름답고 감미롭던 어제를 이별하고, 뿔뿔히 날아가는 새들처럼 삶을 위해 떠나가는 뭇사람들을 이별하고 내 젊음을 등 뒤에서 고개 숙이고 더는 함께 동행하지 않으려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내 젊음을 이별하고, 내안의 모든 꿈을 이별하고, 이별하고 .......
그래, 나는 이제, 이별을 배우며 이 거리에 서 있다.
나의 20년은 싸우면서 얻은 눈물겨운 생활(生活)의 전적(戰績)이었고, 이제 남은 꿈이라면 그리운 낭군을 만나 색동으로 수놓은 한복을 입고,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그리운 나의 고향 - 암태도 - 를 가고 싶다.
- 끝 -
그 동안 위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주변에 위와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알고 있거나 그러한 이야기나 사연을 전해들은 분이 있으면
아래의 이메일로 소식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전혀 때 묻지 않고, 정말 순수했으며 청아했던 여인이며, 저와도 순수했고, 흔히 만날 수 없는 그저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만 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회장 / The Korean Leaders Group(KLG) 회장 / (주)파우스트 칼리지 회장
정승남 배상
아 래
1. 이메일 주소 : faustcollege@naver.com / ceta211@naver.com / ceta211@yahoo(정승남)
2. 근무 했던 부대명 : 6288부대(12사단 51연대 14중대 1소대) - 당시 암호(음어)병이었음.
3. 당시 부대 주둔지 :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서하리 및 전방 DMZ(GOP 근무)
4. 만났던 장소 :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천도리(天桃里) 다방(Coffe Shop)
5. 만났던 시기 : 1981년 12월 3일 경 / 1981년 12월 10일 제대함.
6. 연락처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회장 / The Korean Leaders Group(KLG) 회장 / (주)파우스트 칼리지 회장 정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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