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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19-26)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하늘 군대의 비밀”이라는 글을 읽고서도 이해가 안 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말씀을 배우며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하늘 군대를 섬기는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배우지 말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리스도에게 배우는 영과 진리의 예배에 대하여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신 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찬 사마리아 여자을 찾아서 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자를 육시에 만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세례 의식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세례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례는 무엇일까요?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개역개정벧전3:21)
세례가 무엇이라고 하나요? 세례를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표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부활……즉 거듭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거듭 나는 가에 대한 실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라야 영과 진리의 예배를 할 때가 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개역한글 벧전3:21)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번역이 무슨 차이가 있나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개역개정벧전3:21)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개역한글 벧전3:21) 더 원어적으로 번역하였다는 개역 개정에서 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라고 번역하였는지 모르지만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는 개역한글 번역이 더 원어에 맞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헬라어 “에페로테마”를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라고 번역한 것이고 개역 성경에서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참고로 다른 성경에서도 개역 성경과 같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성경이 그렇게 번역 하였다고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는 에페로테마(1906)는 “갈망하여 질문하여 조사하다” 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하지만 원어 사전에는 1905에서 어원이 유래 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에페로타오(1905)는 “질문하여 찾아가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래서 개역 개정에서는 “갈망하다”에 초점을 맞추어 “간구니라”라고 번역한 것이고 다른 성경에서는 찾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찾아 가는 것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로 제기하는 것은 에페로테마(1906)와 에페로타오(1905) 모두 질문하다 라는 의미를 간과하여 번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간구 합니까? 어떻게 찾아 갑니까? 간구하고 찾아 가는 방법이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간구니라”라고 하니까 기도 하는 것이 구나 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찾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는 요한복음 4장을 살펴보면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질문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씀 드립니다. 이에 대하여 묵상해 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을 저는 들어보지 못 하였습니다. 찾아오셔서 질문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할 때가 된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성의 야곱의 우물에 오신 것입니다. 성경이 딱 들어 맞지요? 왜요? 반면에 사마리아 여자도 육시에 물을 길으려고 야곱의 우물을 찾아 옵니다. 그리스도가 찾아오고 사마리아 여자도 육시의 말씀을 찾아서 야곱의 우물에 와서 서로 질문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물에 대하여 서로 질문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개역한글 벧전3:21) 다섯 남편의 가르침인 야곱의 우물의 물(교훈,가르침)로 말미암아 죽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를 먹고 살아나는(부활, 거듭남)것이 세례입니다.그리고 이것이 영과 진리의 예배입니다.
야곱의 우물이란 야곱의 가르침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의 물(교훈)로 가르침 받은 여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람이 어린양(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어야 할 여자를 가르쳐 자기 아내 삼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4:6-15)
세례는 질문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는 저의 해석이 맞지 않나요? 그러므로 개역 개정의 번역 보다는 개역 한글에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번역한 것이 더 잘 맞기는 하지만 “질문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고 번역 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말씀 드립니다. 말씀을 일방저으로 듣기만 하는 예배보다 서로 질문하여 진리를 찾아가는 여와 진리의 예배……이것이 참다운 예배 아닐까요?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4:16-18)
사마리아 여자에게는 다섯 남편과의 삶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삶도……이 정도면 음부 아닌가요? 결혼을 다섯 번? 이혼도 다섯 번? 그리고 이제 지겨운지 결혼 안하고 동거하는 남자까지……
문자대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이상해 집니다. 사마리아 여자를 음란한 여자로…… 그런데 성경이 어렵다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여자는 음란한 여자가 맞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음란한 여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음란한 여자라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남편은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자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말은 사마리아 여자를 가르치는 남자가 다섯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닌 남자는 셰례 요한, 사도 바울, 계22:7-10의 형제와 같은 가르치는 남자를 말합니다. 그와 같은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를 가르쳐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여 찾아가게 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물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그 가르침이 맞는지 질문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때를 저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라고 하는 것이고 이를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남편이 죽고 참 남편인 그리스도를 찾아서 만나서 질문하는……그리고 그리스도와 서로 예배하는……무슨 말이냐고요?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찾으시느니라 라고 번역한 헬라어 “제테오”가 가지고 있는 의미 중 “경배하다”라는 의미……번역에서 관과 하여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찾아서 질문하여 경배(예배) 하느니라”라고 번역해야 더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찾아서 질문하는 것이 “세례”이고 ‘영과 진리의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4:20-26)
그리스도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찬 자들을 찾아서 함께 예배하고자 하지만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바울과 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합니다. 설사 만났을지라도 남편삼고 아내 삼는 간음을 행합니다. 이제 그들이 남편이 아님을 깨달아 그 남편이 죽고 과부가 죽어야 참 남편인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다섯 남편과 남편이 아닌 남자에 대하여 묵상해 보기로 합니다.
첫댓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란 하나남의 영이신 그리스도 와 예배 할 때란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라는 말은 참 예배를 말하는데 서로 질문하며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이저 물 세례이고 거듭 나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도 이에 대하여 묵상하지 않고 같은 예배를 계속하고 있는가?
저는 궁금하다.
지금하고 있는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예배하지 말라는 곳은 아닌지......
적어도 하지 말라는 곳에서 예배 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닌가?
영과 진리의 예배란 영이신 그리스도(성령)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의 실제는 요한 복음 4장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다섯 남편과 비록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예배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성령)를 만나면 영과 진리의 예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란 서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 오시는 것이고 나도 그리수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물(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이제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시나요?
내갚주는 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말씀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