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시 이야기]
동백나무가 웃다
권영세(동시인)
나는 고교시절 김소월의 시에 깊이 빠져들어 시심(詩心)을 갖게 되었고 시를 공부하며 한동안 열심히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초등교사가 되어 어린이들과 가까이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레 아동문학의 유혹에 빠져 동시
공부를 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행복한 동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것이 지난 해 나의 열 번째 동시집 『동백나무가 웃다』를 편집하면서 책머리에 쓴 이글입니다.
‘돌이켜보니 40여 년 나의 동시 쓰기는 조금씩 사라지는 동심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동시로서 세상의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회복하면서 위로를 받고 마음의 치유를
얻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동심(童心)이 바탕이 된 동시가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어느 날 서로 소통하며 나의 위로가 되었던 내가 쓴 동시 한 편을 소개할 게요.
할아버지, 베란다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어요.
그래, 동백나무가 드디어 웃었네.
근데 할아버지, 나무도 웃어요?
그래, 나무도 때가 되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지.
아! 그래서 꽃이 저렇게 곱네요.
그렇지, 오래오래 참고 견뎠으니 더욱 곱단다.
-권영세, 「동백나무가 웃다」 전문
이 동시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한 식구가 된 동백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매일 서로 눈을 맞추며 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끝에 드디어 동백나무가 몇 송이의 꽃을 피웠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이 장면
은 금방 동시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이 동시에서 꽃을 피운 동백나무를 사이에 두고 어린 손주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시적 표현을 쉽게 하려고 했으면서도, 동시 속 화자인 어린 손주와 할아버지의 대화 속에 삶의 메시지를 담은 몇 개의 시어와 표현을 특별히 썼습니다.
먼저 2연의 ‘동백나무가 드디어 웃었네.’에서 ‘드디어’란 말입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결과로’란 뜻이다. 즉 동백꽃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린 할아버지 화자의 간절함이 담긴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4연의 ‘나무도 때가 되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지.’에서 ‘때가 되면’이란 말인데, 이것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동백나무도 언젠가 꽃을 피우기 위해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는 메시지입니다.
마치 우리들도 무언가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일에는 반드시 가장 적절한 때가 있듯이 동백나무도 그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6연의 ‘오래오래 참고 견뎠으니 더욱 곱단다.’에서 ‘오래오래 참고 견뎠으니’란 말입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더라고 결코 성급하거나 소홀함이 없이 단단히 준비하였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사용한 표현입니다.
내가 40여 년 동시를 써오면서 열 번째로 펴낸 나의 동시집『동백나무가 웃다』의 표지에 ‘소통 회복 위로 치유의 시’라고 또렷이 적었습니다. 이것은 한 편의 동시가 불통을 소통으로 바뀌게 하여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간에 상처 입은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위로가 되며, 나아가 치유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나의 분명한 동시론(童詩論)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러한 마음으로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끝으로 ‘웃다’란 메시지를 담은 나의 동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미루나무 가지가
바람의 겨드랑이를 간질입니다.
바람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키득키득 웃습니다.
미루나무가
온몸을 흔들며 웃습니다.
산과 들의 풀 나무들이
따라 웃습니다.
온 세상이 크게 입 벌려
한꺼번에 웃습니다.
-권영세,「웃다」전문
나의 모든 이웃들이 이 동시의 마지막 연 ‘온 세상이 크게 입 벌려/ 한꺼번에 웃습니다.’라는 표현처럼 함께
웃는 행복한 올 한해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권영세 kwysee@hanmail.net
1980년 <창주문학상>과 《아동문학평론》 동시로 등단
동시집 『겨울 풍뎅이』,『우리 민속놀이 동시』,『동백나무가 웃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