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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진리를 위하여(갈라디아서 2장 1~10절) - 할례의 의미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를 받은 것이므로
진리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셨다며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한 복음만
전하고 있다며 그 복음이 진리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1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갈2: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14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시로 받은 것으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동일한 것인지 알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으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진리임을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력한 자들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사도들) 말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혹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도들과 다르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안되기 때문인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확인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바울은 사도가 아니므로
그가 전하는 복음은 다른복음이라고 했기 때문에
다른복음이 아님을 말해주기 위한 것으로
사도들과 동일한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헬라인 디도라는 것은 디도가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바울에게도 할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구약을 근거로 협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 협박에 넘어가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헛됨을 시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럼 할례의 의미를 알기 위하여
창세기 17장을 보기 전에 16장 1~2절을 먼저 봅니다.
창16:1 <하갈과 이스마엘>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로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하던 사라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자
스스로의 소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하갈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사라의 종 하갈을 통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으려 한 것입니다.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모습을
사도바울은 율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는 다른복음을 따르려 했던 것으로
자신의 소견으로 복음을 변형시켜 믿으려 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복음을(성경의 말씀을) 변형시켜 믿는다면
다른복음을 따르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과 같은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17장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하십니다.
창17:1 <할례:언약의 표징>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사라에게 아이를 낳게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하갈를 통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으려 생각했냐는 것으로
반드시 사라를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시는데 ....
창세기 17장 10~11절을 보면 ....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17: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를 받으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알고 깨닫게 하여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백성을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를 행하여 구원해 주시는 모습을
이어지는 1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여섯째 날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 만에(여덟째 날)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여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레위기 12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자는 구약교회를 말하며 여자가 남자를 낳는 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레 동안 부정하다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이전까지 부정하다는 것이며
여덟째 날에 부활하셔야 율법과 복음이 구별되고
그 복음을 성령이 오셔서 깨달아 믿게 하심으로
정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모든 인류는 영적인 맹인이므로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름으로
유대인들처럼 다른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지만
성령이 오셔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심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이어지는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12: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여덟째 날에 아이의 포피를 베라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여덟째 날에 부활하실 것을 말하며
성령이 오심으로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실 것을 말합니다.
즉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이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셔서 깨달아 믿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레12:4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그 여인이 33일이 지나야 산혈리 깨끗해진다는 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33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약교회가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해주신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되어
정결하게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할례의 의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율법과 복음을 구별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여
구원해 주시는 마음의 할례의 모형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고
사라가 임신하여 약속의 자손인 이삭을 낳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이 잉태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됨을 모형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할례를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구원받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며 오직 복음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3장 30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롬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할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4장 9~12절은 아브라함을 예를 드는데
롬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롬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행한 것으로
할례와 상관없이 복음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롬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복음을 믿은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에 불과하며
할례 자나 무할례 자나 모두 동일하게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할례는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고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다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인 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다면
아직 믿음이 약한 디도는 복음도 믿고 할례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따르게 되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거짓선지자들이 왜 할례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말했는지 본문 4절을 보면 ....
갈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거짓선지자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여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려고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으므로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본문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한시도 복종을 하지 않고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행하지 않게 한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이며
그 복음이 진리임을 알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았는지
로마서 5장 6~10절을 봅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다는 것은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그런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롬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증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죄인인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아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은
우리의 죄로 인함인데 그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대속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모든 죄를
사함받아야 하는데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진리이므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교회가 다른복음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사도바울은 거짓선지자들이 전하는
다른복음을 한시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본문 6~8절에는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
갈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2: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유력한 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말하는데
사도들이 바울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동일함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할례자인 유대인에게 복음 전함을 맡았고
바울은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9절을 보면 ....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지도자로 인정받던 야고보 베드로 요한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과 같음을 알았고
주님이 바울을 사도로 세운 것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친교의 악수를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들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했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기근으로 어려워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 달라는
연보를 부탁했다는 것이며
사도바울도 힘써 그 일을 행하던 일이라 말합니다.
로마서 15장 27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롬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방인들이 영적인 생명의 양식을 유대인으로부터 받았으면
어려워하는 유대인들에게 육적인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으로 연보를 부탁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고
또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지도자로 인정받는 사도들로부터도
확인받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다른복음이라 말하는
거짓선지자들의 말이 거짓임을 바로잡아 주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무엇인 진리인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확인하셔야 됨을 잊지 마시고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말씀의) 검을 소유하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