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노인과 오늘 상가 앞에서 만났다. 인사를 건넸더니 반갑게 받으시며 말했다. 노인정에 있는 사람들이 무료해하는 것 같아 보여 술과 안주를 사오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고 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나는 술을 못할 뿐만 아니라 노인정은 노굿, 아직 출입할 군번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감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내 나이를 어찌 보고 그러는지 조금은 서운했다. 따라가 보아도 뻔한 노릇이었다. 노인들이 서로 만나 모여 앉으면 화투치기 내지는 바둑과 장기두기일 것은 불을 보듯 하였다.
물론 사람마다 취미에 따라 다르겠지만 방안에 골골거리며 처박혀 지낸다고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노인은 우리 아파트 라인에 딸이 살고 있어 가끔씩 마주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로 삼고 싶은 듯 보였지만 나는 나중에 가겠다고 웃으며 사양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내가 어렸을 적만 하여도 시골 동네의 할아버지들을 떠올려보면 아마, 지금의 나도 상노인 축에 들고도 남지 않을까싶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으로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 우선으로 살다 보니 지금의 환갑 나이는 노인 축에 들 수도 없게 되었다. 따라서 환갑잔치라는 말도 쉽게 들어볼 수가 없게 되었다. 만 65세 이상이 되어야지만 경노우대자로 인정받게 되고, 멀지 않아 만 70세로 인상 조정할 것이라고 하여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이런 고령사회에 맞춰 정부나 지자체 당국이 노인복지관 또는 도서관 등을 통해 나이든 어르신들에게 혜택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못살았던 지난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식들을 공부시켜 낸 보람이랄 수 있지만 오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매주 목요일이면 나는 수원시가 운영하는 팔달산 기슭에 자리한 중앙도서관에 나간다. '어르신들을 위한 행복한 글쓰기 교실'은 내게 한마디로 신천지와도 같은 곳이다. 속된 말로 가방끈이 없는 나는 이렇다할 취미나 특기도 없다보니 재주도 없고, 남들 앞에 노래도 못하는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한글은 아는지라 글쓰기 반에는 합류할 수가 있어 안성맞춤이다.
수원중앙도서관 어르신 글쓰기 대성황 _1
그렇게 한글의 받침이 틀리면 어떤가. 읽어서 뜻을 알 수 있고, 마음의 감정이 전해지면 되는 것이다. 시와 수필을 공부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하! 이래서 사람들은 문학을 공부하고 또, 문학 일을 하는구나싶어진다. 길에 핀 꽃도 예사가 아니요,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도 어디 하나 마음이 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니 악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고 우리 사회가 정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곳 도서관에 오면 모두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된다. 학채가 없는 대신에 숙제가 있다.
수원중앙도서관 어르신 글쓰기 대성황 _2
수원중앙도서관 어르신 글쓰기 대성황 _3
소녀 같은 학생들이 저마다 준비해온 글을 남들 앞에서 낭독하고 있다. 시나 수필을 한편씩 써와 발표하면 선생님께서 지적해주고, 첨삭을 받는다. 혹자는 늙어서 글은 써 배워 뭐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늙은이 일수록 글쓰기가 제격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이 많아 늙어지면 사람이 추레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 또한 많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고,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글쓰기가 아닐까싶다.
이런 것을 감지한 때문일 것이다. 지금 중앙도서관의 어르신을 위한 행복한 글쓰기교실은 인기리에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무료하게 지내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또 인터넷을 모르는 컴맹이라면 구전으로라도 이런 정보들이 전해져 글쓰기의 행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