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복이란 무엇인가 2 오늘은 삶의 적용 원리 원리 5번 여러분 복에 대해서 진짜 복이 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복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가를 살펴봤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그것이 왜곡되고 오해가 되면 우리 인생도 여러분 틀림없이 뭔가가 왜곡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여러분 우리 말씀드렸던 그 복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그 복이라는 것이 사실은 여러분 세상적인 개념에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만 여러분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린다면 만약에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다 얻어졌는데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것들이 다 얻어졌는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죽어버리면 그것이 뭘까요? 죽어서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 버린다면 그것이 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여러분 틀림없이 저주입니다. 그렇죠. 우리가 거기에 잘못하면 속을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무슨 거지같이 살라는 그런 말씀은 아니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복과 하나님 밖에서 우리가 말하는 세상의 복과는 다른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는다라고 그러셨어요. 다 아시죠.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것을 다 내가 원하는 걸 다 추구했는데도 여전히 염려 의심이 있고 안달복달하며 두려움이 있다면 그건 진짜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또 시간을 투자합니까? 그런데 거기에 염려 의심이 있다면 그건 진짜 복이 아닌 겁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저주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저주를 위하여 어떻게 보면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라는 거죠. 그것을 똑바로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은 영원히 저주 속에서 우리가 멸망하는지 살아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인생을 허비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복이란 개념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 때부터 이 복을 추구하면서 살기 때문에 복이 우리에게 당연히 있어야 하죠. 그렇죠. 그 개념을 우리가 똑바로 알지 못하면은 지난주에 한 것처럼 그런 어떤 인본주의에 해당하는 모든 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영원한 저주 속에 빠질 수도 있다. 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 지난주에는 우리가 왜곡된 개념 복이 어떻게 왜곡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본질은 하나님과 분리해서 오는 거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단절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우리가 누릴 수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누리고 있던 그 모든 것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걸 찾게 되어 있는데, 그걸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자꾸 구하여도 이 땅의 것을 채우고 우리가 원하는 운명의 부 이런 걸 다 손에 넣어도 그것이 복이 아닐 수가 있다라는 거죠. 단절된 상태에서는 영원히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단절된 상태에서는 우리가 행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그래서 첫날 여러분 했던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이 부분만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으면 여러분 우리가 삶에 적용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단절됨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있는 이 모든 왜곡된 것들이 여러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면 연합되면 되는 겁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그렇죠. 연합이 복입니다. 결국은 그래서 연합되는 게 복인데 오늘 성경 내용의 성경에 나와 있는 것들을 가지고 진짜 복이 뭔지 여러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나눠드린 여러분 그림을 잘 보시면 예 여러분 방송 보시는 분들은 카페에서 다운받아서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분 구약과 신약의 복이라는 단어가 구약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바라크라는 단어입니다. 바라크라는 단어고 신약에 여러분 복이 있는 자 라고 할 때 이 복이라는 단어가 마카리오스라고 합니다. 제가 이 복에 대해서는 몇 번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 종합해서 여러분 삶에 적용하는 부분에서 함께 또 복습하는 겸에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팔복 특강 할 때 또 한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고 아브라함의 복에 대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특강할 때 또 말씀을 한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 종합적으로 한번 정리를 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바라크라는 것은 여러분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왼쪽에 있는 그림이 바로 그 모양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있고 안수를 하고 있죠. 다음에 그러니까 무릎을 꿇었을 때 손을 대고 안수하면서 축복하는 게 그게 여러분 바라크라는 겁니다. 무릎을 꿇다 라는 것에 누가 무릎을 꿇는 걸까요? 예수님이 무릎을 꿇는 걸까요? 내가 무릎을 꿇는 걸까요? 바로 내가 무릎을 꿇는 겁니다. 다른 말로 여러분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아담이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겁니다. 이해 가시죠. 근데 교회에 와서 우리는 하나님을 무릎을 꿇릴려고 하죠. 하나님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시켜서 복종하게 하기를 원하잖아요.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건 엄청난 거죠. 여러분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우리는 그걸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릎을 꿇다 이건 축박하다라는 단어가 무릎을 꿇다라는 단어가 바로 그거고, 예배하다라는 단어에도 이런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예배하는 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아가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의시하는 게 사실 예배입니다. 이해가시죠. 그래서 그게 이 그림의 옆에 글씨를 보세요. 하나님께 항복하는 게 바라크라는 단어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본래 모습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걸 말하죠. 질그릇이 되는 걸 말하죠. 질그릇은 말 그대로 진흙 흙이죠. 티끌 다시 티끌로 돌아가는 겁니다. 예 선악과를 먹고 창저주에게서 흘러나오는 복을 거부한 것이 아담이죠. 그죠 이게 분리죠 단절되므로 하나님께서 흘러내려오는 복과 단절돼 버렸죠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 복을 생산하려고 했던 게 선악가의 개념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복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우리가 고군분투하죠.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없습니다. 결코 복은 우리가 생산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자체가 복이라고요.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거죠. 그걸 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그 노력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를 다스리옵소서 그게 복이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나라죠 나를 다스리는 게 하나님 나라지 않습니까? 그 다스리는 게 회복이 된 게 하나님 나라가 회복이 된 거죠. 나라라는 게 다스리다 라는 개념이라고 여러분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하는 내 자신이 되는 것이 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원래 없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 부어주심으로 존재가 됐잖아요.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과 결별하면 영원히 우리는 복이 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결국은 그래서 여러분 무릎을 꿇다 라는 건 자기 부인을 말해요. 지금까지 내가 나댄 것 그것에서 이제 완전히 돌아서는 걸 말합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말하죠.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서기가 그걸 말하고 있죠. 그걸 우리는 바라크라 라고 하고 오른쪽에 여러분 마카리우스 신약에 가면 복이라는 개념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마카리우스라는 단어가 뭔가 하면 여러분 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상태를 마카리우스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신들이 누리는 거예요. 신이 누리는 그 행복의 상태를 복이라는 단어가 마카리오스라고 해요. 그래서 신에게 복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마카리오스라는 단어를 써요 그러면 인간이 만들어서 내는 복이 아니라는 뜻이죠. 신들이 누리는 복 그래서 그게 뭔가 하면 염료 근심에서 자유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고 그 신들과 함께 누리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그걸 복이라고 해요. 신들이 누리는 복 그래서 이 마카리오스라는 복이란 단어는 위에서 아래로 흐름이다 라고 되어 있어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여러분 복은 우리는 땅에서 열나게 노력해서 생산해 내는 걸로 생각했죠. 그걸로 안 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뭔가 큰 일을 생산해 내어서 복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완전 반대예요. 이 마카리우스라는 단어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라는 뜻이에요. 흘러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생산해서 내서 올려드리는 게 아니고 흘러내려오는 겁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는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이 단어 자체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것이지. 여러분 우리가 이 수평된 세상 사회에서 달려가면서 쟁취해낸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걸로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걸 대신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복이라는 단어는 우리는 많이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이 행복 복이라는 걸 위해서 인생을 투자하잖아요. 투자해서 뭔가 만들어내서 부와 권력과 명예 이런 것들을 원하는 만큼 이렇게 누리는 걸 복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복은 뭔가 하면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흘러 들어와 내 존재가 되는 걸 말해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이 신들이 누리는 그걸 복이라고 그래요. 행복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신들이 누리는 그 복이 내 안에 이루어지려면 신들이 내 안에 들어와야 되잖아요. 하나님의 신이 내 안에 부어지면 되는 거잖아요. 아멘 단절됐을 때 하나님의 신이 떠나니까 우리가 육체가 되고 단절이 되었죠. 이제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면 다시 하나가 되면 그 신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복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아멘 너무 간단하죠. 그래서 가운데 그림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과 하나님의 실이 내 안에 들어와서 연합되려면 우리가 없어지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십자가가 복이라는 거예요. 왼쪽에는 자기 부인이죠. 그래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 결국은 생명이고 하나님의 신이 내 안에 충만하게 커가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때 여러분 그것이 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의 죽었다 가운데 있는 걸음이 갈리아디아스 2상 20절이죠. 그렇죠.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여 내 안에 복이 사셨다 이 말이에요. 이해 갑니까? 그걸로 바꾸면 너무 쉽죠 그래서 이 분리된 것이 연합되면 된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합되면 바로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쪽 그림이 여러분 우리 매일 봤던 그 그림입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여러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그 그림이죠. 그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가 여기에 이를 수 있는데, 그게 창조해 나왔던 내용이고 여러분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가 다시 연합되는 게 새 창조라고 그랬죠 그래서 새창조의 과정이 결국은 우리에게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박스 있는 걸 같이 보겠습니다. 복이라는 것이나 상을 받는다. 라는 것은 역사 속에서 우리가 행한 일을 근거로 우리에게 차등 있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인본주의의 복의 개념이죠. 맞습니까? 복을 받는다. 상을 받는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행하는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우리가 얻는 건 뭐 이런 것들을 우리는 복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장세전에 여러분 잘 보시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어요. 그렇죠. 그게 에비소스입니다. 에베소스 1장에 여러분 우리 많이 했던 그 내용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복주시되 그것이 뭐라고 그랬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라고 그랬죠 그건 결국 우리로 거룩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그랬죠 똑같은 말들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이미 완료가 되어 있는 거라고 그랬죠 묵시한이 완료되어 있는 것 이것이 전부 완료되었다라는 겁니다. 이미 이미 완료된 거예요. 복원 그래서 복원창서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이미 완료되어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는데, 우리가 날 때부터 분리된 상태로 났기 때문에 복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뿐이죠. 이제는 이미 완료된 대로 다시 찾아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는 실제화라고 설명을 드렸죠 그래서 그 복이 이제 역사 안에서 이미 주어놓고 이 역사 안에서 복이 뭔지 우리에게 다시 역사를 통해서 설명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줬죠 그 내용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외롭다 해놓고, 의롭지 않은 아브라함을 외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셨죠 그게 바로 그거래요. 결국은 외롭다 해놓고, 할래 하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없어지는 거였잖아요. 그리고는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을 때 그게 복이었죠. 이것처럼 역사가 다 그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 복은 하나님의 생명력이 복 없는 나에게 부어질 때 그것이 복이라는 거예요. 하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합을 말하고 있죠. 그래서 분리해서 연합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 우리가 그림으로 여는 성경 5번 6번에서 나눴습니다. 분리해서 연합되는 그 핵심이 전부 십자가였죠 기억납니까 전부 십자가를 골로세스 2장 16절 십자가로 분리된 것이 연합하여서 화해하게 하나가 되었다라고 그랬죠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건 전부 십자가에 피로되는 거라고 그랬죠 복이란 것과 다시 하나가 연합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것이 여러분 로마스 6장에 가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죽음과 함께 연합하고 그다음에 부활과 함께 연합한다. 그래서 연합해서 하나가 된다. 전부 십자가를 통과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창세 이전 묵시에 완료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는 다시 분리된 상태로 왔기 때문에 완료된 상태로 가는 그 과정이 전부 십자가를 통과하는 거죠. 이해갑니까? 그것이 전부 십자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가 복이라는 등식이 거기에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자마자 먼저 복부터 주셨던 성경 구절에 보면 그것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는데, 여러분 아담을 만들어 놓고 아담이 열심히 일해서 너는 복 받으라 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복주 시대 다스리고 정복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랬거든요.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을 때 이미 복이 임한 거예요. 그 복이 뭔가 하면은 생육 번성 다스리고 정복하는 거예요. 복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죠. 하나님이 형상이 되었을 때 그래요. 그래서 맨 왼쪽에 생명이 임할 때 복이라고 그럽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은 20절로 가면은 막 이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가 20절에서부터 나와요. 땅에 기는 것이 있고 이럴 때 보면은 생명이 드디어 나타날 때 그것이 복이라고 그럽니다. 창세기 여러분 잠깐 볼까요? 창세기 1장 20절에 가보면은 여러분 하나님이 가라사데 여러분 보세요.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에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게 하라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들의 날개 익은 모든 것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분 생명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복이 시작된 거예요. 그 생명이 들어간 게 복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력이 들어가니까 복이라고 그랬죠 똑같은 말이 여러분 창세기 1장 26절 28절로 내려가면 아담이 여러분 사람이 생기고 복을 주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을 때 그걸 복이라고 해요. 그다음에 창식이 이장으로 넘어가면 일곱째 날에 복 주시고라고 했죠. 일곱째 날이 된 게 복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다음에 여러분 창세기 12장 여러분 잘 아시는 12장 1절 2조로 가면 아브라함을 불러놓고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을 받을지어다 라고 말하지 않고 너는 복이다 라고 그랬어요. 너는 복의 근원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다. 그걸 복의 근원이라 이렇게 번역을 해놨는데 여러분 보면 아브라함이 복이다. 이런 뜻이에요. 유아 블래싱이라고 되어 있어요. 가로 아브라함 자체가 복이라고요. 이해가시죠. 창세기 15장으로 보면 내가 상급이라 이런 말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자신이 상이라고요. 우리가 받을 상이 하나님 자신이라고요. 그걸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게 사실 복이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는데, 창세기 여러분 아브라함에 대해서 나눌 때 함께 나누었지만 아브라함이 여러분 말씀으로 양육받는다라고 그랬죠 말씀으로 양육받아서 결국은 아브라함이 다 없어지죠 아브라함이 그렇죠. 그리고 다 없어지고 나서 아브라함이 되는데 그때 열국에 합의가 되고 그게 복의 내용이 되었죠. 결국은 아브라함이 자신이 복을 창조하고자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은 하나님이 다 무시하죠. 그렇죠. 하나님 약속대로 너는 복이다. 했으니까 이제 아브라함이 내가 복을 만들어내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건 하나님이 다 없애버리죠 그리고는 하늘에서 내려와서 복을 주죠 이삭을 하늘에서 내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개념이 그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완전히 꺾이고 나서야 그때야 성형회로 인하여 이삭이 잉태되죠. 맞아요. 아브라함이 잉태한 게 아니잖아요. 그 내용이에요. 그러니까 다 꺾이고 나니까 여러분 이삭을 낳게 되죠. 그게 바로 이삭의 기쁨이잖아요. 아브라함이 자신이 만들어냈던 그건 전부 근심이 됐어요. 그렇죠. 우리가 실제로 복을 만들어내려고 노력을 해서 이렇게 생산해낸 건 전부 우리에게 여러분 근심이 되고 올무가 됩니다. 여러분 근데 우린 그걸 잘 몰라요. 이스마엘이 튼튼하게 자랐잖아요. 얼마나 심했어요. 근데 그게 근심이 결국은 아브라함의 대조기로 후수 내내 막 싸우는 그게 복이 그게 복이 아니죠. 인간이 생산하는 건 결국 그거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복은 하늘에서 위로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삭이 내려왔죠 아브라함이 난 게 아니잖아요. 그죠 하나님 잉태하게 한 거죠. 예수님이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하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말씀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끌고 갔죠 말씀에 양육받으면 우리가 열공 그렇게 끌려가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는 걸 보여줄 수가 있는 것을 우리가 봤는데 구약에 또 여러분 10편에 계속 말씀을 드렸던 133편 3절 영생이 복이다. 그건 다 아시죠. 영생이 복이라고 영원한 생명 바로 부하라스 예수고리스의 생명이 영생이죠. 그걸 복이라고 그랬어요. 그 한 단어만 한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복이 뭔지 금방 알아채야 돼 근데 이게 눈에 안 보이죠. 전부 다 눈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이웃에 속한 인간들은 이게 안 보이는 거라고 계속 눈에 보이는 것만 쫓게 되어 있죠. 그래서 여러분 그걸 쫓아가다가 결국은 죽는 거예요. 그걸 다 취했는데 오늘 밤에 내가 내 호흡을 걷어가면 그것이 다 뭐냐 라는 그게 저주죠 뭐예요? 복과 저주가 여러분 딱 동전의 양면 같아요. 마치 잘 모르면 저주 깨달아야 복이 되는데 그걸 모른다는 거예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래서 시편에도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이라고 그랬죠 죄하로 말씀을 묵상하는 게 뭐가 복입니까? 굶어 죽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걸 여러분 좀 이따 다시 또 설명을 드리도록 하고 그다음에 로마스에도 가면 로마 4장의 5절에서 8절로 가면 죄를 가림받는 자가 복이라고 그랬어요. 죄 사함을 받는 자가 복이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영생을 말하는 거죠. 구원을 받는 자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은 하나님 자신을 말해요. 결국은 이해되시죠. 성경 구절을 여러분 다 갖다 대보면 전부 그건데 여러분 문제는 우리가 실명 28장이 문제죠 뭔가 때림직하죠. 안 그래요. 신민기 28장은 복합 저주가 훨씬 많아요. 그 신민기 28장의 핵심이 뭔가요 말씀을 지키는 거죠. 말씀을 지킨다 그러면 여러분 이 복이 쏟아져 내려와요. 줄줄 난리납니다. 난리납니다. 여러분 말씀을 지킬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그 수명계에 말하는 복은 다 없는 거예요. 전부 저주만 있는 거예요. 맞아요. 전부 저주예요. 우리는 그래서 그 저주가 왜 임하는가요 유괴 속한 것을 깨뜨려내는 거잖아요. 여러분 다 말씀드린 거예요. 다시 한번 더듬어 볼까요? 자 이 프린트물을 먼저 마무리를 하고 돌아가서 신민기 28장을 한번 다시 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뭐가 도대체 복인가 자 그래서 여러분 이 위에 생명이 법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창조되었을 때 복이고 일곱 날이 바로 여러분 오른쪽에 있는 그 그림 네가 내 안에 내가 너의 안에 그게 일곱 날이고 너는 복이다. 네 자신이 복이다 라고 우리가 복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위에 가운데 박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자마자 먼저 복부터 주셨다는 거죠. 이미 생육 번성 충망 정복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 창조적인 복을 받고 내려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묵체 완성되어 있었던 거 그래서 여러분 인간을 만들어 놓고 말고 만들자. 말자 복이다라고 그런 거예요. 아담이 뭐 열나게 노력을 했나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력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 복이 온 게 아니죠. 하나님의 형상대로 바로 복을 주시고 다스리고 정복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불러서 이름을 짓고 이런 다스리는 복이 바로 임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이건 뭔가 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어내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복의 본질인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지면 복이 되는 것을 창세기부터 보여주는 거예요. 처음부터 우린 그걸 놓쳤어요. 그래서 막 열심히 해서 다스리고 정복하려고 하죠. 생육할려고 하죠. 아니라는 거 그건 이미 우리가 받고 내려온 건데 받고 내려온 이 아담이 타락해 버렸잖아요. 그 복과 분리가 돼 버렸잖아요. 그래서 인생이 답답한 거예요. 이렇게 해도 해도 안 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지키라 그럼 복 주겠다라고 했는데 그게 여러분 진짜 본질이 뭔지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 그 아래 박스 맨 아래 박스 그렇게 우리가 먼저 복을 받았다는 것은 완료된 하나님 나라 그 안에 내가 들어가서 내가 하나님 나라가 된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거룩한 나라인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라고 한 게 없어요. 성경에 보면 전부 우리가 거룩한 나라라고 합니다. 베를 들어서 2장 구절 말씀 다 아시죠.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외된 백성 왕 같은 제사장이오 그랬거든요. 이미 개시로 지금 하고 있는 1장 6절에도 보면 여러분 우리를 나라 삼으시고 그다음에 제사장 삼으신 우리를 이미 나라 삼으셨다고요. 그게 전부 통일된 내용이죠. 그러니까 이미 우리는 나라라고 그렇죠. 너희가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이미 완료된 거예요. 우리는 이미 거룩한 나라고 내가 하나님 나라가 된 것이 그게 복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여러분 완료의 세계 묵시의 세계 완료된 건데 그것이 복인데 그 복을 받은 자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도저히 그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타라칸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다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가 하늘 우편에 앉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역사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절대로 연합할 수가 없다. 그 피로 연합된 모습이 여러분 에베소스 1장에 나오는 그 모습이죠. 이미 완료돼 있는 모습이죠. 근데 우리는 이 땅에 왔잖아요. 인제 그 완료된 모습으로 가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만 가능하잖아요. 그렇죠. 그걸 역사는 설명해 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약도 이 땅도 전부 뭐를 설명하는 거라고요. 예술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그림자라고 그랬죠 전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여러분 이 연합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계속 나눴습니다. 말씀의 실재와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제 세창조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그게 전부의 내용이에요. 십자가에 그것이 실제화되어서 하나님 우편에 앉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죄로 복과 분리되고 십자가로 다시 복과 연합되는 메커니즘이죠. 그래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피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 피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면은 그것이 복이라는 거죠. 그것이 나라죠 그것이 근처죠 그것이 성전이죠. 다 똑같은 말이에요. 같은 말을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러니까 역사와 인생의 처음 자리가 무엇인가 이것을 깨달으면 그건 금방 해결되는 문제 바로 아담 흙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존재가 흙이라는 거죠. 존재가 흙이었는데. 흙에 생기가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복이 됐잖아요. 그렇죠. 그게 여러분 이미 완료되어 있는 완료의 모습이고 지금 우리는 분리된 채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 분리가 연합으로 가려면 십자가를 통과해서 가는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라고 한 게 그 말이에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가는 길이에요. 그게 유일한 길이죠. 그게 여러분 이 육의 눈이 밝은 사람들에겐 그게 안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땅의 것이 전부로 보이기 때문에 그걸 구하고 취하여 이루는 것이 성취하는 것이 복이라고 착각하기에 우리가 잘못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슬프죠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 그래서 여러분 평안이 없는 거예요. 이 땅에는 이 땅에 평안이 있던가요 서로 전쟁하고 치고받고 난리지 않습니까? 두 사람만 모이면 벌써 분열이 생기기 혼자 있어도 속에서 얼마나 분열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절대로 인간은 통일될 수가 없는 거예요. 예수고에서도 피로 말미암치 않고는 절대로 통일되지 그 길 외에는 어떠한 길도 없는 거예요. 그것을 이제 예수님의 아담이 되셔서 보여주셨죠 그게 실재화라고 그래서 나를 따라오라고 그랬죠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 우리의 처음 자리 너는 티끌이다. 라는 걸 확인하고 그 티끌이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나라도 결코 행복도 어떤 건축물도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오직 모퉁이 돌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서 하나님이 지으시는 그 나라 아멘 그걸 붙들라는 거예요. 결국 십자가죠 여러분 그것이 여러분 새 창조라고 지금까지 말씀을 드렸던 내용이고 결국은 여러분 오른쪽 그림 전체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결과물이죠. 맞습니까? 그게 콜레소스 에베소스 2장 16절 예스고레스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죠. 분리되었던 우리가 다시 화목하게 되어서 하나가 되었다. 여러분 로마스 6장에 오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었음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죽음과 연합하는 건 뭐예요? 예수구에서도 십자가로 죽는 거죠. 그게 이제 우리가 예수고에서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 하니 그게 그 말이죠. 죽음과 연합한다라는 거예요. 연합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부활하면 영활히 죽지 않는 영생이죠. 그게 영생이 바로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한 자예요. 그러면 그렇게 연합을 한다 그러면 하나가 되는 연합은 하나가 되는 거라고 그렇죠. 뭘로 오직 십자가로 되는 거죠. 그것이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습으로 오셔서 실재화를 보여준 거예요. 맞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이게 결국은 이게 복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를 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보기 싫은 하나님과 연합을 할 수가 십자가의 비밀 여러분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우리는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복이라고 하는 건 여러분 결코 복이 되지 못하는 걸 알게 됩니다. 지금은 몰라도 마지막 대감 꼭 알게 될 겁니다. 분명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손해하고 자기 손에 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는 걸 우리는 반드시 경험하게 돼 있죠. 그때도 그것이 복이 되어질 수 있을까요? 이 땅을 떠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복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그걸 우리는 너무 단순한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속한 육에 속한 사람은 이 땅이 전부입니다. 그런 개념으로 교회를 왔기 때문에 수미코도 아직도 그런 것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복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추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죽기까지 달려가면서 그걸 추구하다 결국은 죽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그렇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아까 말씀을 드렸던 신명기의 복을 그러면 한번 그것이 도대체 왜 그렇게 복을 그렇게 써놨는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28장 너무 잘 아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것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가? 한번 볼게요 육적으로 보면 정확하게 우리가 구하는 것들이 저기 다 있습니다. 그렇죠. 그 안에 없는 게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다 있죠. 뭐 집이 복을 받고 우양이 복을 받고 그죠 떡 반죽거리기 복을 받고 뭐 그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이 막 눌렸어요.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기침해도 복 방귀를 껴도 복이고 전부 복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뭐라고요. 뭐할 때 말씀을 이게 실명계 일자리 28쪽에 일절이 말씀을 지키면 그다음에 그렇게 되겠다고 했는데 여러분 이게 누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느냐라는 거예요. 아무도 여러분 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로마스에 보면 의는 없으되 한 사람도 없다라고 그랬거든요. 율법의 말씀을 지켜서 의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 인간의 노력들이 인본주의 결국 율법주의에 해당하는 거죠. 이 율법주의의 말로가 뭔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법대로 너는 처방 법대로 여러분 심판 당하는 거예요. 법 아래 있으면 우리는 그렇게 맨날 신음하는 거예요. 신음하는 거예요. 이 율법 아래 있으면 우리는 자유함을 누릴 수가 없어요. 볼 때마다 매일 해결해야 되니까. 어떻게 지켜요 우리는 한 개 명도 못 지킨 걸 보여줬는데 그걸 지키려고 노력을 해서 내가 많이 열심히 지키고 말씀대로 헌신하고 노력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았다는 건 전부 가짜예요. 거짓말이에요. 못 지켜요 여러분 그렇게 해서 뭔가 이루어냈는데 그 사람이 마음이 막 심술 굳고 그 사람의 마음이 시기질투가 심하고 편광이 없고 매일 염력은 심하고 두려워하고 그러면 그게 복인가요? 저주지 그게 어떻게 복이에요. 옆에 조금만 더 가진 사람 보면 못 살잖아요. 안 그래요. 못 사는 거예요. 그 어떻게 복이 되겠어요. 그거 얻으려고 또 막 안 되니까. 막 전 세계를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면서 또 얻으려고 하잖아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건 복이 아닌 거예요. 저주 잘못하면 저주 그게 여러분 그 마기의 속임수에 넘어간 거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죠 마태범 사장이 그걸 가지고 우리를 유혹한다고 그거를 제발 깨달아야 되는데 못 깨닫는 거예요. 여러분 안타깝게도 여러분 자 봅시다 이게 도대체 여러분 구약은 여러분 구약은 구약은 율법 율법은 뭐라고 그랬어요. 그림자라고 그랬죠 그림자 무슨 그림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그림자라고 했죠. 율법이 여러분 절기가 전부 그림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이것도 여러분 뭔가를 설명해주는 거라고요. 그림자라고 이것도 자 어떻게 제가 한번 설명이 될지 한번 해보겠습니다. 자 여러분 이 황무지가 있어요. 황무지에 꽃이 피고 나무가 나고 열매가 맺고 이렇게 하려면은 어떻게 해야 돼요. 예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유치원 수준인데 비가 내려야지 비가 비가 막 내리면 되죠. 아멘 그러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 비가 막 내리면 어떻게 되는가요 여러분 아스팔트 길에 인도에 보면 보도블록이 이렇게 쫙 돼 있는 거 아시죠. 보도블록이 이렇게 되면 가운데 여기 사이사이에 흙이 조금씩 있잖아요. 햇볕 쨍쨍 나고 감을 때는 여기에 완전히 바짝 말라있어요. 그런데 비가 며칠 오고 나서 다음 날 가보면 여기에 뭐가 싹 올라오죠 이렇게 그렇죠. 신기하죠. 그 황무지에 생명이 올라오려면 뭐 비가 막 쏟아져 내리면 되잖아요. 아멘 황무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죠 여기에 뭐가 확 나기 시작하면 이게 복이라는 거예요. 말 그대로 여러분 잘 보세요. 이게 왜 그림자인가 말씀을 드릴게요. 그게 신명기 28장이 도대체 뭘 의미하고 있는지 알아야 돼요. 말씀을 지키면 복이라 했죠. 말씀을 여러분 지킬 수 있습니까? 지킬 수 없죠 이게 구약의 율법이죠. 그죠 말씀을 여러분 못 지킵니다. 근데 말씀을 지키면 복에 임한다고 하니까 우리는 교회에 와도 열심히 이걸 합니다.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잘 보세요. 이걸 해서 이 구약에 정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됐어요. 다 죽었죠. 말씀에 따라 구약의 말씀에 따라 다 죽었어요. 말씀을 못 지키고 전부 자기 마음대로 살았잖아요. 나중에 그래서 어떻게 다 멸해버렸잖아요. 말씀을 못 지키니까 저주를 받아서 다 멸해 그래서 신명기 28장 뒤편에 나오는 걸 몽탕 받았어요. 몽탕 받아서 다 죽었어요. 아셔요 그 말씀을 지킨 이 구약이 근데 여러분 인간의 말씀을 지킬 수 없다라는 걸 하나님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다음에 여러분 약속을 또 새로 주죠 이게 구약의 언약이잖아요. 십계명부터 해서 십계명에도 복이 나오죠. 여기 세언약을 주시죠. 새언약은 여러분 뭐예요? 그냥 에레미야 31장 31절기 다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죠 내 마음판에 새긴다고 그랬죠 맞아요. 마음판에 새기고 여러분 sns 36장으로 가면 여러분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말씀을 지키게 하시죠. 성령에 임해서 우리가 말씀을 지키게 하겠다고요. 그랬죠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판에 새겨지죠 먹어야죠 먹어요. 마음판에 새긴다라는 것은 여러분 말씀을 묵상해서 깨닫는 걸 말해요. 깨달아서 그것이 마음에 완전히 자리 잡고 있으면 그것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걸 말하는데 여러분 그래서 9향에도 복을 설명할 때 1편으로 가면은 복이 있는 사람은 복이 진짜 복인 사람은 어떤가 말씀을 죄하러 묵상한다.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게 이게 세언약 이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니까 말씀이 내 안에 새겨지는 거예요. 그렇죠. 그게 바로 예레미야 요 31장 이 말씀이거든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말씀을 취하러 목살 그러면 여기 보세요. 이 황무지 같은 데서 여러분 잘 보세요. 이걸 비가 막 들어오면 여기에 뭔가가 생산이 되죠. 이 비를 성경에는 뭐라고 그래요. 성령이라고 성령이라고도 하고 여러분 이것이 예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나요? 신명기 여기 있는 신명기 32편에 32장 2절로 가면은 이 말씀이 나와요. 하나님 내 교훈은 여러분 뭐라 그래요. 내리는 비요 내 기운은 내리는 비요 그 다음에 내 말은 있으리요 풀 위에 가는 비요 최소의 단비로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비라고 비가 여러분 그래서 황무지에 비가 오는 것처럼 아까 아스팔트에 비가 떨어지면 생명이 올라오는 것처럼 황무지 같은 내 마음 땅을 말하는 거예요. 황무지 같은 내 마음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서 들어오면 생명이 올라오잖아요. 그죠 이게 여러분 말씀 묵상하는 게 바로 이거라고요. 예수님이 자신을 먹으라고 한 것도 그거고, 말씀이 우리한테 먹으라고 한 건 먹으면 영양가가 돼서 생명이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걸 여기에 비유해 그러니까 여러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게 우리에게 임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복이라고 이 황무지에 의해서 우리가 생산할 수 있으면 뭘 생산하겠어요. 비가 없으면 끝인데 여러분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보세요. 천수답이라고 들어봤어요. 비가 와야 농사가 되는데 산 아래에 있는 걸 천수담이라고 그러잖아요. 물을 못 갖다 대는 비가 와야지만 거기에 농사가 되는 거예요. 그걸 천수담 우리가 바로 그 모양이거든요. 그러니까 신명기 28장이 말씀을 우리가 지킬 수가 지키면 복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지키냐라는 거죠.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지키는 어떻게 우리가 말씀을 지킬 수가 있어요. 못 지키는 거예요. 그렇죠. 맞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교훈이요. 그다음에 내리는 교훈이 내리는 비고 하나님 말씀이 있으리오 비요 단비요 이게 여러분 황량한 심령에 하나님이 들어오는 걸 말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이 땅은 여러분 전부 그러니까 이 구약은 비유로 말하고 있는 거라고 그랬죠 그림자라고 그러면 이 황무지 같은 심령에 비가 들어왔죠 내 마음 땅이 황무지잖아요. 여기에 비가 들어오니까 생명이 났죠. 이게 비유라고요. 그럼 생명이 나서요 그러면 신약으로 가면 이 황무지 같은 세상에 뭐가 내려와요. 예수님이 내려오죠 이걸 비호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구약에 농사짓는 비유가 전부 이걸 하고 예수님이 내려오니까 어떻게 됐어요. 여기서 예수의 열매가 열리죠 천 열매라 했잖아요. 예수님이 이렇게 비처럼 내려오는 걸 말하는 거예요. 맞습니까? 이것도 또 비유죠 맞아요. 그러면 이제 신약으로 가면 비처럼 뭐가 내려와요. 오순절 날 내려오잖아요. 오순절 오순절날 이분이 다시 내려오죠 누구한테 내려와요. 우리한테 내려오잖아요. 황량한 심령 우리한테 비처럼 내려오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어요. 그 성령님이 전부 우리를 끌고 천국으로 가시죠. 갈 때 어떻게 가요 십자가를 통과해서 가게 아시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려왔다가 죽고 다시 올라갔잖아요. 그거 똑같은 거예요. 우리에도 우리에게도 임할 때 이 단비가 말씀이고 또 성령이잖아요. 말씀과 성령이 항상 함께 가는 걸 볼 수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생창조할 때 나누었던 것처럼 그게 바로 그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내 마음 땅에 여러분 그래서 이것도 그림자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비처럼 내리신 것도 그림자고 결국 우리한테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웃음 전략 성경이 강림함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 일을 행하여 가시게 하는 것이 실제화죠 그림자로 전부 비유해요. 이것도 비유 이 말씀을 지킨다는 것도 전부 그래서 비유해요. 어떻게 말씀을 지켜요 우리가 못 지키지 어떻게 해야만 말씀을 지킬 수가 있어요. 말씀을 지킨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 거죠. 그렇죠. 그러면 이제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거죠. 그걸 그래서 여러분 이 말씀을 지키는 거 못 지키니까 말씀을 마음판에 새긴다 했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새겨지잖아요. 마음판에 맞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신비에 새겼다고 그랬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게 바로 이 그림이거든요. 이 그림이죠. 그래서 에스겔스의 36장에 26절 이하에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주셔서 말씀을 지키게 하겠다고 한 게 바로 예레메 이 말씀이 실제화가 되는 거고, 결국 오순젤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성령이 우리가 끌려가는 게 말씀을 지키는 겁니다. 기억하죠. 그러면 성령에 끌려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막 비가 떨어졌으니까 열매가 올라오죠 우리를 통해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천국의 열매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걸 보여주는 게 이 그림자라고 신명기 28장은 그 그림자를 말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 말씀 있게 끌려가는 것은 성경이 우리를 인도해서 가는 거죠. 그게 끌려가게 되면 어떻게 돼요. 이제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순절날 그 마가 다각방에서 성령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 예수님이 그림자로 보여준 것처럼 똑같이 예수님처럼 살잖아요. 안 그래요. 맞죠. 그래서 우리가 성령에 의해서 이끌려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게 복이라고 왜냐하면, 그게 말씀을 지키는 거기 때문에 내 안에 말씀이 오셔서 말씀이 나를 끌고 가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이 상태가 복이니까. 복이 되려면 비가 계속 내려야 될 거 아니에요. 말씀의 비가 계속 우리 마음땅에 흘러 들어와야 되겠죠. 그래서 그 말씀의 비가 확 쏟아져 들어온 게 바로 오순절이에요. 오순절 맞습니까? 그래서 시편일편의 죄하로 묵상한다는 게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걸 보여주고 있는 요소와 일장팔절을 구절해도 형통하려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그러죠 그게 그런 말이에요. 이 황량한 황무지에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이 황무지 같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는 사건이나 내 속에 말씀이 들어오는 사건이나 똑같다 그 말씀을 우리는 죄야로 묵상하는 자가 그것이 진짜 복이에요. 그래서 복을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복이라 이미 우리는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만 우리 이미 완성된 그걸로 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에 임하시면 우리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게 하는 거예요. 지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말씀이 없이 뭔가 신비한 걸 쫓고 능력만 쫓고 이런 것들은 여러분 심각한 문제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거예요. 복이 안 될 수가 있다니까요? 그 은사만 사형받고 나중에 내가 너를 모르는 데다 얼마든지 거기에 걸려들 수가 있는 거예요. 이해가십니까 그래서 이 황무지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이게 황무지죠 저주받은 땅이죠. 사실 이 땅의 모든 것이 지옥이에요. 그랬어요.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들어와야 비처럼 우리에게 들어와야 이게 여러분 천국으로 변화하는 거죠. 하면 그래서 비가 내려야 돼요. 비가 안 내리면 끝이에요. 하나님이 하시죠. 결국은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이 나를 읽고 가는 말씀이 나를 끌고 가는 거예요. 말씀이 마음판에 새겨지면 그 말씀에 의해서 내가 끌려 다니는 거예요. 그거를 여러분 이 신명기 28장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이에요. 그 본질은 예술 그리스도 결국은 결국은 예수 그레스트로는 우리 말씀을 못 지키는데 예수님이 말씀을 다 지키셨죠 성 육신이 돼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잖아요. 우리도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야 내 육을 입어야 말씀이 육신이 되죠. 그래야 내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자로 바뀌어 가는 거죠. 그게 복이라는 거예요. 말씀을 지키면 하늘의 복 땅의 복 뭐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다 임한다니까 그러니까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임한다니까요? 진짜로 정말로 그렇게 임해요. 그게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잖아요. 그게 바로 여러분 천국이고 하나님 나라라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는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복을 여러분 우리는 너무 오해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왕 노릇하는 대로 우리가 끌려가야 돼요. 그리고 말씀이 왕 노릇 하는 대로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가요 아브라함을 보세요. 다 꺾어지죠 전부 꺾어지죠 그게 할례잖아요. 할례가 꺾는다라는 뜻이잖아요. 이 사울이 예수님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니까 복음으로 넘어오면서 예수님을 만나니까 꺾이죠. 그리고 성경이 임해서 사울을 완전히 끌고 가죠 그게 바울이잖아요. 그렇죠. 아브라함도 꺾이니까. 이 하늘로부터 비가 싹 내려와서 이삭이 올라오잖아요. 이삭은 기쁨이죠. 그러니까 그것을 다 꺾여버리고 나니까 내가 기뻐하는 거예요. 내가 평가한 거예요. 내가 충만해지는 거예요. 염려 의심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신명기에 나오는 28장의 복은 전부 이 그림이에요. 예수 그리스를 말하는 거예요. 만판에 우리 말씀이 새겨져야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죠. 그러면은 그 복이 그냥 있는 거예요. 이미 복 받은 자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바뀌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1번 그림이 바로 그거예요. 말씀과 성령이 빛으로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를 그렇게 끌고 와서 오른쪽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 거죠. 그게 완성된 모습이잖아요. 이미 되어 있는 모습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신 거예요.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게 오순절이라는 거죠. 그래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분 이 땅의 복이라는 게 설정이 된 거예요. 이해가시죠. 하면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져야 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이 될 때 이루어지는 것을 여러분 땅의 것으로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이걸 보여준 거예요. 이것을 땅의 것으로 하늘 하늘의 복을 땅의 것으로 설명할려니까 이걸 보여줘 이것도 똑같은 그림이죠. 그래서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이 비처럼 이렇게 스며들 때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걸 이걸 비유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이 땅에 있는 건 전부 그래서 비유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열린 눈이에요. 여러분 그게 닫혀 있으니까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 땅에서만 쫓겨야 돼요. 본능적으로 쫓아간다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눈이 열리면 이게 보이는 거예요. 아 저걸 설명하는 게 이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황무지 같은 땅에 오신 것처럼 이제 황무지 같은 우리 땅의 마음 땅에 웃음절날 성령에 임함으로 그걸 완성해 가는 거죠. 그게 역사예요. 그게 성경의 첩보예요. 이걸 보여줄 그래서 새언약을 준다라는 것은 마음판에 새긴다라는 것은 말씀이 우리 심령에 스며드는 걸 말하죠. 그 5순 전략이 이루어졌잖아요. 그래서 말씀을 우리에게 또 주셨죠 그래서 말씀과 성령이 함께 가는 거예요. 그게 우리 마음판에 생수가 성령으로도 표현이 되고 여러 가지 말씀 이것들이 같이 막 이렇게 어우러져 가는 것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게 삼일제 하나님의 사역이죠. 너무 정확하죠. 그래서 창세기에는 그 그림이 빛이 있으라 라고 표현이 된 거고, 예수님이 오니까 참빛이 왔다라고 표현이 됐고 그렇죠. 그래서 그 참빛이 이제 어떻게 왔어요. 5순일 날 성령으로 오셨잖아요. 맞습니까? 전부 비유로 우리에게 보여주면 결국은 오순절날 성령에 오셔서 우리에게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을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존재라 결국 우리는 그걸 갈 수밖에 없어요. 근데 우리가 안 가려고 노력하죠. 어떻게 노력해요. 이 땅에 보이는 것을 막 해서 여기 영원히 살겠다고 그리고 너무 안 맞죠.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반대죠 고려논서 15장 50절에 보면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다. 그 말씀만 깨달아도 금방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혈과 욕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육에 속한 자를 말하는 거잖아요.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이 원수가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혈과 욕을 깨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가 여러분 갈라데스 5장 24절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못 박고 세상의 나를 또한 못 박고 그래서 세상이 못 박히는 거예요. 우리는 세상을 추구하잖아요. 그게 육에 속한 자예요. 육신의 눈만 밝혀져 있으니까 그것밖에 안 보여서 우리는 그걸 본능적으로 쫓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성령이 빛처럼 우리에게 들어오면 말씀이 우리 안에 새겨지면 이제 영적인 눈이 떠지는 거죠. 그래서 말씀이 영이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이 말씀이 영이에요. 비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게 예수님이 영으로 우리에게 들어오셨잖아요. 말씀으로 오셨잖아요. 말씀이 영인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영이 말씀이죠. 그래서 여러분 영이 열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말씀으로 충만하면 되는 거죠. 그게 0이잖아요. 근데 우리는 자꾸 뭔가 신비한 이런 걸 자꾸 쫓는데 그게 본질은 아니에요. 이게 자꾸 충만해지면은 이 열매가 생육 번성이 그 말이라고 그랬죠 예수 그리스의 생명이 번성하고 충만해지면은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예수군에서도 눈이 쫙 밝아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말씀이 자꾸 주야로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끌고 가기 때문에 융통하게 된다고요. 그게 신명기 요소 1장 8절 말씀이죠. 말씀을 그려서 죄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거예요.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절대 열매를 잃을 일이 없다. 라는 거 우리 삶이 그렇게 되면 풍성하게 되죠. 여러분 이 땅에서도 우리는 첫국을 누릴 수가 있게 된다고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복이 있는 자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에요. 말씀이 영이기 때문에 영일 주야로 내가 막 먹는 거예요. 비처럼 내 안에 막 비같이 막 비가 말씀이라고 그랬죠 아까 그래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진짜 복인 거예요. 여러분 그게 영이기 때문에 그럼 영을 열려고 막 인상을 써가면서 꼴을 쪼개 가면서 이렇게 하는 게 그게 아니고 여러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이 구약의 선진들이나 여러분 성경에 나온 인물들이나 그다음에 그렇게 살다 간 여러분 영선의 대가들을 보면 전부 말숨으로 들어갔어요. 뭐 뿅 가는 어떤 역사가 있었던 게 아니더라고. 보세요. 전부 그렇게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서 간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형통이에요. 형통 사도바울도 그래서 말씀에 정통했잖아요. 자기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그것을 쫓아간다고 그랬거든요. 사도와 우리 은사와 능력을 쫓은 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물론 방어는 많이 했다라고 되어 있고 그다음에 은사를 구하라는 내용은 있지만 전부가 아니었죠. 본질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말씀이 0이라는 이 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6에 속한 것은 6은 결국은 6을 낳죠 그래서 성령으로 낳은 것이 0이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지속적으로 우리가 0적으로 충만해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여러분 열려있는 거죠. 왜냐하면, 말씀이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열면 영이 열리는 거 말씀이 0인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맨날 말씀 열기 말씀 열기 하는데 이해를 잘 안 하시려고 합니다. 뭔가 신비한 걸 또 더 쫓아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아니 왜 기름보험을 하겠어요. 그걸 자꾸 말씀에 인도함을 받고 말씀이 말씀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할려고 기름보험을 받는 거잖아요. 기름보험이 임하면 묶인 걸 끊고 이게 닫힌 눈이 열린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기름보험을 우리가 사모하고 구하고 그래서 기름보험의 인도함을 받아서 말씀을 보다 보면 말씀이 이게 열려서 보여지게 되면은 그게 0이잖아요. 그 영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동시에 막 짬뽕돼서 같이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말씀과 기름품인 거예요. 말씀이 열리는 게 영이 열리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왜냐하면, 천하만물을 말씀이 자꾸 있잖아요.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다스리고 말씀을 운행하시잖아요. 그럼 그 말씀이 열리면 그게 다 열려서 보이는 거 아닌가요 그걸 우리는 몸으로 말씀 열기라고 그랬어요. 제가 옛날에 다 말씀을 드린 거예요. 몸으로 말씀 여는 게 바로 그게 그래서 주야로 묵사관자가 복 되다는 거예요. 우리는 신명계 28장 이거 말씀을 못 지켜요 지키면 복이 되죠. 그러면 어떻게 해서 지킨다고요. 그 지킨 말씀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키셨으니까 그 지킨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내가 지킨 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 거라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은 재화 사망에서 다 해방된다라는 게 전부 그 말이에요. 그게 연합의 원리예요. 이 연합을 하면 비가 내 안에 봐 이게 그림이라고 이게 황무지에 비가 내려 다 비우죠 예수님이 그래서 똑같이 이 황무지 같은 땅에 비로 내려오셨고 증발돼서 올라가셨죠 우리도 성령이 내려오시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도 결국은 올라가게 돼 있다는 거예요. 우리를 끌고 올라가신다니까요? 여러분 진짜 오리지널 휴거예요. 성경이 휴거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굳이 꼬집어 말하라면 그런 게 우리의 영적으로 우리의 존재가 변해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복은 여러분 존재에 대한 말이에요. 어떤 걸 뭔가 만들어내는 그런 것들이 아니고 존재 존재 내 자신의 존재를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역창조를 통한 새창조 말씀드렸던 그 메커니즘 전부 그게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거예요. 결국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지키면 복 되는 게 어떻게 지키는가 바로 그것이 새언약의 마음판에 새기는 새언약인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사건이죠. 그것이 성경의 오순절날 이루어졌던 거고, 내한의 오심으로 완성이 된 거죠. 그래서 신명기 28조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그림자예요. 그래서 성경은 구약성경도 전부 자신을 기록했다고 그랬잖아요.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한 거예요. 그래서 그래 성경은 예수고리스토바 십자가 외에는 없는 거예요. 그게 깨달아지셔야 돼요. 그래서 빛이 있어라 그게 참 그 말 비가 내릴지어도 똑같은 말이죠. 이런 마음판에 새기고 계십니까? 그래서 비가 내린 것이 오순젤라 그 사건입니다. 여러분 다 그걸 비유로 보여줬고 이제 우리에게 그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고 실제로 성령회 운행을 지금 우리에게도 운행을 하고 계시고 성령이 운행하면 여러분 새 창조가 일어나서 바로 이 그림으로 우리가 가게 돼 이게 여러분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는 저렇게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성령인도하심을 받을 수밖에 반드시 받아요. 성령이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여호와의 호흡 여호와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 말씀 기억나요? 여호와의 호흡 하나님의 호흡 그게 루아흐라고 그랬지 성령이라고 그랬죠 그쵸. 여호와 길혼부음 받은 자 에스고일체 하나님 여러분 항상 우리에게 운행하시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시죠. 그래서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건 창조의 사역을 행하신다라는 뜻이에요. 말씀이 임하면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창조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어떻게 됐어요. 구원을 받아서 새 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잖아요. 그 오늘날 우리가 비가 임하면은 생명이 나는 게 이게 새 모습이죠. 여기 완전히 황무지였는데 여기 완전히 밀림처럼 빼곡히 덮고 열매가 충만해지는 게 이게 완전히 모습이 다르죠 이게 새로운 피조물이죠. 뭘로 일어났어요. 비가 오니까 일어났잖아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비처럼 들어오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게 새로운 피조물이죠. 그게 새로운 창조물이잖아요. 여러분 이전 것은 없고 새것이 됐잖아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전부 그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죄하로 들어와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시간 날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뒹구는 거예요. 여러분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막 살아서 역사할 때 인도함을 받아서 우리가 변해가죠 점점 변해가지고 눈이 안 열려지면 계속 이것을 문자로 해석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문자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자로만 끌려가는 거예요. 그러면 이 신민기 28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문자로 해석하면 내가 말씀을 지키려고 주의하러 애써야 돼요. 최하로 헌신봉사하고 그렇게 하는 거 지킬 수 있어요. 못지키잖아요. 여러분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본질이 그러니까 이건 그림자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지켰으니까 그 지킨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지키게 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결국 구약은 그림자니까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 여러분 다 그림자를 읽는 그 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내면 그것이 0이라는 거예요. 이해가시죠. 그것이 영이라는 거예요. 말씀이 열려야 돼요. 열리면 그게 영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그러면 내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변했죠. 여러분 많이 변했죠. 아멘 근데 어렵다 어렵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 육쪽이라서 그래요. 이해가십니까 이런 말은 너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이걸 비유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웃음 열날 성령이 내려오는 걸 비유하는 거라고 하니까 이게 빨리빨리 안 돌아가거든요. 외형적인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경에 오시면 그걸 하시는 거예요. 눈을 열고 지각을 여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막 그런 것들이 보여지잖아요. 순간적으로 모르던 것들이 갑자기 깨달아지고 그렇죠. 근데 그것들이 볼 때마다 깨달아지고 볼 때마다 열려지고 그러면 이제 그게 비가 돼서 들어오는 거잖아요. 막 들어오잖아요. 비가 막 쏟아지잖아요. 어떻게 돼요. 막 올라오잖아요. 생육하고 번성하잖아요. 이게 그 모양인 거예요. 여러분 이해 가세요.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결국은 그래서 그래서 말씀 을 보고 열려서 깨달음이 와야 그게 비라고 그게 비라고요. 살아있는 거니까 이해갑니까? 말씀 목상이 뭔지 아시겠죠. 발숨이 열리는 거 열리면은 살아서 운동력을 가진 영이 되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킨다고요. 그 영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해 가는 게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랬죠 고린도서 3장 18절 기억납니까 형상이 형상으로 하리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을 이라 그 말씀이 0이 되면 되잖아요. 아멘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이 0이라니까 문자가 아니고 0이 되면은 그게 나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운동하면서 나를 그렇게 바꿔 놓는다는 게 결국은 하나님 형상으로 이렇게 간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걸 여러분 비유로 표현을 한 거예요.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1번 그림입니다. 1번 그림이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의 설계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여러분 말씀과 성명으로 지속적으로 가는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다른 어떤 신비로운 방법을 자꾸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뭔가 이런 노력을 안 하고 십자가를 통과하는 그런 걸 쏙 빼먹어버리고 그냥 편하게 되길 원하죠.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막 안수 한 번 받아서 완전히 대박 터트리고 싶고 그렇죠. 비행기 타고 가서 막 한번 팍 받아오면 될 것 같죠 참만의 말씀입니다. 그걸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하러 말씀이 뭐하러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일을 하시겠어요. 너무 답답한 거예요. 왜 10편 1편은 잘잘 외우면서 묵상을 안 하는 거예요. 이 말씀이 이렇게 들어오면 이렇게 된다는 것은 그게 복이라는 것을 여러분 이게 복이라고요. 이게 복이에요. 여러분 그 복이 다 이미 우리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성령에 이끌려서 말씀에 이끌려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에요. 황무지가 천국이 되는 것은 이 예수님이 지옥 같은 내 마음에 들어오셔야 되죠. 여러분 보세요. 이 그림을 한번 보세요. 이 그림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안수하는 모습이죠. 베드로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김바울 김바울을 안수하고 있는데, 지금 안수는 여러분 아시죠. 하나가 되는 걸 말해요. 내가 동물에게 안수하면 내 죄를 전가해서 동물과 내가 하나가 돼서 나 대신 동물이 나하고 똑같으니까 그놈을 잡아서 죄값을 치르잖아요. 그러니까 안수 받으면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저한테 안수 자주 받으면 곤란했거든요. 주님한테 안수를 자주 받았어요. 아멘 그게 바로 여러분 성령이 막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안수 똑같잖아요. 이거하고 오순일날 성령이 불같이 임한 거 하고 똑같잖아요. 우리가 안수를 하니까 불같이 막 임하죠. 그게 웃순절날 불같이 임하는 거 하고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하나가 되는 거예요. 이게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저한테 안수를 자꾸 받으려고 애쓰시는 분들은 반성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자꾸 들어가 버리면 되겠어요. 여러분의 정체성을 유지하셔야지 전부 다 나 같은 사람이 되면 되겠냐고 그러니까 예수님을 받으시라고 예수님으로부터 안수를 여러분 안수는 하나가 되는 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가 돼야 안수를 받으니 무릎을 꿇어야 되잖아요. 그게 복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전부 예표죠 그게 결국 이건 오순주를 말해 오순절 오순주를 말해 그런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자기 걸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이 비가 되어서 빛이 되어서 불이 되어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사건이잖아요. 아멘 성경이 뚫려지죠 확 보여집니까 그게 너무 단순하고 쉬운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구약의 그림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내면 그게 0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0이잖아요. 그렇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기억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게 하는 것 첫날에서 여섯째 날의 일곱 날 그게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러니까 말씀이 영으로 보여지면 첫날에서 일곱 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그거잖아요. 일어난다니까요? 그래서 그걸로 안 보고 자꾸 문법으로 율법으로 해석해서 내가 말씀을 지켜서 복을 뭐 이렇게 좀 더 잘 보여서 하나님 내가 이렇게 오늘 열심히 노력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뭐 했어요. 이러니까 안 되는 거지 못 지켜 너 이걸 왜 안 지켰니 할 말 있어요. 안되는 그래서 말씀을 죄하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라는 게 그거예요. 여러분 죄야로 묵상하면 내가 말씀에 끌려갑니다. 죄야로 묵상하면 눈이 열린다니까요? 영이기 때문에 그래요. 영으로 그래서 말씀 충만 예수충만 성령 충만이 이게 되는 거예요. 이콜 되는 거예요. 아니면 성령 충만하고 싶으세요. 뭐 해야 되겠어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되겠죠. 아멘 여기 열리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말씀을 열으면 되지 말씀이 열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조야로 어묵상하면 되죠. 아멘 그걸 하시라고요. 그러니까 자꾸 안수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안수는 잘 안 될 때 가끔 와서 이렇게 받고 이렇게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안수 한 번 받고 싹 열려버리면 좋겠죠. 그러면 좋겠죠. 그럼 뭐하러 주야로 묵상해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안 하시는 거예요. 한 번에 푹 벌 받아버리면 이게 다 된 줄 알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 안 해요. 뭘 하는가? 하면 그걸 가지고 능력 자랑하기 그러니까 안 변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이 들어가야 변하는데 불이 들어가니까 이게 태욱태욱이만 하니까 잘못하면 막 교만 엄청 위험한 거죠. 그래서 여러분 무조건 막 불 무조건 능력 능력 이러면 잘못하면 잘못 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조심하셔야 돼요. 여러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겁니다.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성경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연합하는 원리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길밖에 없고요. 그 십자가 외에 그 어떠한 것도 여러분 능력이 아닌 겁니다. 그걸 통과하면 복이라는 거예요. 근데 그걸 통과 안 하고 복을 달라 하니깐 아이 인생이 꼬이는 거예요. 환랑 고난이 막 몰아닥쳐도 그걸 모르는 거예요. 환란 고난이 몰아닥치는 건 그걸 통과 안 하고 막 고집을 피우는 건 꺾는 게 환란이고 고난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게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런 신호거든요. 그게 결국은 그거를 빨리빨리 캐치를 하셔야 되는데 그래서 듣는 자가 복된 거예요. 아멘 온전히 여러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수그레스도 안에 거하는 게 복입니다. 아멘 천향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