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처| 오정호 목사
가치 있는 일일수록 주님과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의 백성들에게 오실 때에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위로를 목적으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위로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성품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주의 백성들에게 가까이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심정으로 위로하심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10절)
슬퍼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66장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심으로 주의 백성을 위로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꿈꾸며 소망하는 사람들을 주님이 내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다가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서 예루살렘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초토화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이스라엘 가운데 예루살렘이 다시금 회복될 것이라는 주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기를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고전7:6)이라고 했습니다. 계급이 높다든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에서 남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고 하니까 많이 가진 자들이 얼마나 조롱하겠습니까? 남들보다 많이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답게 살려면 애통하는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의 골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모르는 값을 치르는 현장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비천한데 처해있는 주님의 자녀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으로 다가가십니다.
어떤 무명 시인은 주님의 위로를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아신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짐승 곁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당신의 외로움과 쓸쓸한 시간을 알고 계십니다. 폭군에게서 쫓겨 먼 나라로 피난을 했던 아기 예수님은 나그네와 같은 당신의 적막함을 알고 계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지만 깃들일 곳 없었던 예수님은 의지할 곳 없는 당신의 불안을 알고 계십니다. 목수의 집에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난 예수님은 당신의 땀과 고생과 그 피로를 알고 계십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을 당하신 예수님은 욕심의 수렁 앞에 선 당신의 위험을 알고 계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고 외치던 예수님은 당신의 절박함과 답답함을 알고 계십니다. 친구들의 떠남과 배신을 체험하신 예수님은 혼자서라도 굳세게 살아보려는 당신을 알고 계십니다. 수건을 두르고 제자의 발을 씻던 예수님은 숨은 봉사와 당신이 지불한 희생을 알고 계십니다. 갈보리 언덕을 홀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남몰래 흘린 당신의 눈물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탄식과 우리의 눈물과 희생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독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위로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애통을 기쁨으로 희생을 보상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원하십니다.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공급해 주심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11절)
어린 아기의 필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영적인 안정감이 필요합니다. 평안함이 필요합니다.
그 평안함은 어머니의 품에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둘째, 몸의 건강이 필요합니다. 몸의 건강은 어머니의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양분을 통해서 젖을 먹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몸의 건강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품안과 어머니의 공급이 필요한 것처럼 주님이 그 역할을 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고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공급받지 않으면 그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삭막해 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 감격이 없어서 주님께서 아낌없이 다 주셔도 마치 전혀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우들은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를 할 때,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주의 목적을 따라 구하는 모든 제목들이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간구함이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지혜든지, 자녀문제든지 직장 문제든지 연구프로젝트에 관계된 것이든지 주님 앞에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제목들이 주의 은혜 가운데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들이 더욱 더 넘치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합시다.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사람들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남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사40:1,2)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난 메시지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받은 위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주의 위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위로의 공유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곧 성도의 사명과 직결이 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주위의 눈물을 흘리면서 갈등과 고민과 인생의 험악한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체험했던 주님, 내가 받았던 사랑을 공유하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모님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위로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 여러분! 부모님께 위로의 통로로 자랑스럽게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위로의 사람이 되려면?
첫째, 위로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작정해야합니다.
성도들은 1주일 168시간 가운데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만 하나님께 드리면 안 됩니다. 전 생애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런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둘째,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합니다.
구약의 예루살렘은 신약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 안에서 위로받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건물만 사랑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이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요한 칼빈(John Calvin)이나 또 위대한 교부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성도의 어머니는 교회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서는 성도가 건강하게 믿음 생활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교부 오리겐(Origen)은 “교회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 속에서 위로의 손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우리를 향한 약속은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말씀 자체가 우리 인생을 든든히 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날마다(Day by Day)라는 찬송의 제목을 보면, 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