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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교회,
옛말에 삼종지의(三從之義)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봉건시대에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의 도를 말하는데, 즉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평생에 세 번을 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맡겨야 할 때에 맡기지 아니하고 나름대로의 생각과 고집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여자, 여자, 여자"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가정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행은 가정의 상실이요, 가정의 파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사회적인 실패나 물질적인 가난에 있지 않습니다.
잠언 21:9, 19절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또는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잠언 31:10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고 했고,잠언 31:30절에는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 누구입니까?
얼굴이 고운 여자, 아름다운 여자, 품위가 있는 여자, 섹시한 여자가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가 현숙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여자에 대하여, 더 고상한 말로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가정은 어머니가 있는 곳입니다.
최초의 가정은 하와를 창조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이 너무나 아름답고 보시기에 좋았으나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이 않아 하와를 만들어 가정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가정을 세워 주셨는데, 현대인들은 사업에 바쁘고, 돈벌기에 바쁘고, 취미 생활에 분주하여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발전으로 생활 수준은 높아졌는데 그들의 가정은 하숙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모두 가정을 잃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으므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야 내 어머니가 됩니다.
그런데 현대 여성들이 어머니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현대 여성들이 가정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가정에서 탈출하여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세울 때 여자를 중심으로 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돕는 자"라 하셨습니다.
여자의 일생은 자기를 희생하여 남편을 도와주고 자식을 도와주고 계속 도와주다가 끝나는 고귀한 생애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남녀 각각 600명에게 남자의 직분이 무엇이고, 여자의 직분이 무엇이냐에 관한 앙케이트를 받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남자의 직분은 첫째가 돈을 버는 것이요, 둘째는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이요, 셋째는 남편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 여자의 직분은 첫째는 어머니요, 둘째는 아내요, 셋째는 가사를 돌보는 일이라고 합니다.
남녀 평등을 제창했고, 근로 여성들이 많은 서구의 사회에서 조차도 남편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아내는 집안에서 가사와 자녀의 양육에 힘쓰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바깥 사람이라고, 여자를 집안 사람이라고 합니다.
생활의 분업과 인생의 직책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이 질서가 거꾸로 될 때 부부는 불행해 집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어머니가 우리를 살려내었습니다.
핏덩이를 쏟아 길러 낸 것이 어머니의 손길입니다.
어머니의 젖줄이 바로 생명 줄이었습니다.
방탕하는 남편을 만났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고, 결국 가정을 세우며 지키신 분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없어지는 날 가정이 파괴되는 날입니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생계를 꾸려 나가기나 어려웠을 때, 어머니는 연약한 몸으로 뛰어들어 그 살림을 꾸려 나가셨으며, 자녀 교육과 주택 마련을 위해 몸부림치시며 가정을 세워 나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아이가 잠을 깰 때마다 젖을 먹이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아이가 보채면 등에 업고, 아프다 하면 함께 괴로워합니다.
남자들이 사업과 출세와 명예를 자랑하지만 어찌 어머니의 그 숭고한 생애, 희생하며 도와주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그 수고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역사에 길이 찬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현숙한 어머니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어머니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에 주부는 있습니다. 식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머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극히 값진 진주를 하나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6) 하셨습니다.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값진 진주와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숙한 여인의 가치는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맞바꿨던 진주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현숙한 여인이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당신의 남편이나 자식들은 당신을 잃어버리지 않을려고 할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잠언 14:1절에서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아들과 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는 현숙한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겠느냐고 할 때에 "주여 여종이 여기 있나이다. 나를 불러 주시옵소서"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현숙한 어머니가 될 수 있겠습니까?
3. 먼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현숙한 어머니, 생명을 주는 어머니, 살리는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먼저 좋은 아내, 선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남편에게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한 몸으로 맺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듯이 우리의 결혼도 하나님이 맺어주신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남편이나 아내를 맞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연애 결혼 한 사람이 몇몇 있었지만 극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이나 친지가 정해준 사람과 얼굴도 모른채 결혼했고, 첫날 밤은 부끄러워 얼굴 한번 쳐다보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굴을 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은 행복하고 만족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서로가 연애하고, 좋아서 결혼을 합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고집하고, 결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혼률은 자꾸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3쌍이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다면, 1쌍은 이혼법정에 서고, 이혼신고를 한다고 합니다.
신앙인의 타락이 가정 불화에서 생기는 일이 많고, 가정 불화가 결혼의 의의와 목적을 그르친데서 발단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이유에서 만났든지 간에,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운데 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보호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서로 결혼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긴 머리에 반해서 좋아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어떤 사람은 학벌이나 직업이 좋아서 결혼한다고 말합니다.
즉 현대인의 결혼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이 식었거나, 긴 머리를 잘라 단발머리를 하거나 파마를 하거나, 재물이나 직장을 잃어버렸을 때 헤어지겠다는 말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어떤 이유에서 만났든지 간에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운데 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짝 지어 주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의 남편에게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2)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도우며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훌륭한 아내의 내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그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어 부부가 되게 하였으니 부부는 돕는 관계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 남편은 언제나 그 아내 옆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항상 함께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생활은 인생의 긴 대화' 라고 니이체는 말했습니다.
부부가 한 지붕 밑에서 생활의 반려자로서 인생의 먼 길을 같이 걸어갈 때 서로의 마음속에는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의지, 서로 도우려는 정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인생의 고난 속에서 행복을 건설하려는 창조적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연극을 잘 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 오히려 큰 소리로 웃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침 신문을 들고 읽어면서, 거실을 걸어가다가 그만 물 주전자를 발로 차서 엎질러 버렸다고 합시다.
남편이 아내에게 "왜 이곳에 두었느냐"고 화를 내면, 아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눈도 없냐"고 언성을 높일 것입니다.
결국 아침부터 부부는 소리를 지르고 다투게 될 것이고 냉전이 계속 될 것입니다.
이 때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내가 그만 신문을 읽다가 중요한 기사에 몰두했기 때문에 그만 주전자가 있는 줄 모르고 발로 차서 엎질러 버렸으니 미안하오" 라고 말하면서 그 엎질러진 물을 닦아낸다면 아내는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소, 미안하오" 라고 말하면서 어찌할 줄 모를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할려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성공적으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영국의 한 선교사님께서 선교훈련원에 오셔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교입니까? 목회입니까? 아니면 회사일이나 공적인 일입니까?
가정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지에 나갔을 때 여러분의 전도를 듣고 찾아 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들의 눈에 비취기를 행복하고 즐거운 가정으로 보일 때 그들은 여러분을 찾아와서 가정 문제, 남편 문제, 자식 문제를 가지로 상담을 하게 될 것이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들을 만족하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내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라고 했습니다.
결혼 기념일이나, 생일 날은 당연히 선물을 해야 하며, 특별한 날이 아닌 날 퇴근길에 장미꽃 한 송이라도 들고 집에 들어가 대문에서 영접하는 아내를 만나라고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남편으로부터 장미 꽃을 선물로 받으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남편으로부터 장미 꽃을 선물로 받으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연애할 때 말고, 지금 말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를 선물했는데, 아내의 생일 날 딸들이 장미꽃을 한 다발을 선물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하는 남편의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아내의 내조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도움 없이는 인생의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 성공도 어렵습니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라고 한다면 결국은 보이
지 않는 여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의 역사는 한마디로 아내가 만든 남편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이요, 어머니가 낳은 자식 때문에 된 것입니다.
남편의 성격을 알고 사업의 좋은 협조자가 되고, 크고 작은 일에 올바른 충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낙심했을 때 용기를 주고, 교만해 졌을 때에는 덕으로 자제시키고, 자기 능력에 지나친 행동을 할 때에는 분수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은 아내입니다.
(3)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입니다.
벧전 3:1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아무리 신앙이 좋고, 기도를 잘하고, 성령이 충만해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행복을 위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므로 자기 마음이 편합니다.
베드로전서 3:3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5절에는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했다"고 했습니다.
3:6절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22절에서도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가정생활의 위치상 분명히 남편이 우선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두 사람을 앉혀놓고 권면을 한다면 남편에게 먼저 권면을 하고 충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내를 먼저 불러서 권면하고 충고합니다.
왜 그러실까요?
여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그것은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부부생활의 행복이 좌우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요, 아내는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내가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면 그만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결혼 생활의 행복이 아내의 위치와 역할에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먼저 권면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의 가정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왜 실패했습니까?
오늘날 가정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를 진단해 보면 남편 쪽보다도 아내 쪽에 문제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먼저 사별하면 아내는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혼자 가정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먼저 사별한 남편은 얼마 가지 못해서 재혼을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남편도 자녀들이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물론 가지고 있겠지만 남편들은 무게의 중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과 엘가나의 가정 즉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가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두 가정은 비슷한 형편으로서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자식이 없었고, 엘가나의 가정에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두 가정 모두 본 처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두 가정 모두 자식 가지기를 대망했습니다.
그래서 두 가정 모두 첩들을 통해서, 즉 씨받이를 통해서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두 가정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본 처에게서 자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비교가 될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믿음의 어머니라고 불렀던 사라는 어떠했습니까?
자기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자진해서 몸종 하갈을 천거하고,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몸종이었던 하갈이 잉태하자 주인이었던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비록 그가 임신을 했을지라도 하갈을 학대하였고,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90세가 다 되었던 사라의 몸에서 임신을 하게 될 것이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었습니다. 이 웃음은 기뻐서 어찌할 줄 몰라 웃었던 웃음이 아니라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어떻게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하고 비웃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왜 웃는냐? 고 묻자 아니 나는 웃지 않았다고 발뺌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게 되자 하갈과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아 내었습니다.
한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 남편 엘가나에게 아내가 둘 있었는데 한나와 브닌나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아이가 없었고, 브닌나를 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그대가 내게 있어서 열 아들 보다도 귀하다고 위로해 주었고, 브닌나 보다도 갑절로 필요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하게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남편에게 투기하거나,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금식하며 눈물뿌리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애를 먹일 때에도,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아 데리고 왔다고 할지라도, 후처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아니하고 그 모든 고민과 아픔과 문제들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눈물의 짐보따리, 근심의 보따리, 염려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부르짖어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영육간에 쇠퇴해 가던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며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는 한 마디 말에 그 말이 이루어질 줄 믿고 아멘 하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자가 확증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의 종이 단지 너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한다는 희망적인 말 한마디에 아멘한 것입니다.
사라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사자의 확정적인 말 한번이 아니고 거듭거듭 하신 말씀에도 믿지 못하고 비웃었던 것에 비교하면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아들 사무엘,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 아들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그 아들을 바쳤습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그 어떤 사람에게도 뽐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석녀였던 한나가, 3남 2녀를 낳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 성도 여러분!
이런 아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왜 이렇게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자녀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자기 남편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쳤다면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미래에 아이들을 위해서 참고, 남편을 받들어 주어야 가정에 질서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숙한 어머니가 되기 전에 반드시 훌륭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4. 현숙한 어머니는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들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집 밖에 있거나 집 안에 있거나, 혼자 힘으로 일하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든지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상고의 배와 같아서"라고 하는 말은 상선이 들어오는데 물건을 싣고 오면 먼 길이지만 가서 싼 물건을 사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어디에 싼 것이 있나? 해서 가서 사 오는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요 현숙한 여인이 살아가는 성실한 삶입니다.
사치하고 꾸미고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여자의 본심일지 모르지만 현숙한 여인, 현숙한 어머니, 현숙한 아내는 남편의 박봉으로 가정의 꾸려나가기 위해 한푼 두푼 절약하여 가계를 이끌어 가며 살아갑니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게으르지 않고 아침에 남편보다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을 돌봅니다.
저의 기억에도 어머니께서 새벽에 일어나셔서 밥을 짓고 저희들을 깨워 먹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음식도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어야 건강에 좋은 것입니다.
가정에 돌아오면 어머니 마음이 담긴 식탁이 있어야 합니다.
또 19절, 21-22절을 보시면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이부자리와 모시와 붉은 털로 옷을 짜 입혀서 온 식구가 눈 이와도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어디서 현숙한 여인을 찾겠는가?
자녀를 위해 밤에 불을 끄지 아니하고 일하시는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자녀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시킨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성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 현숙한 아내, 현숙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본분도 지키기 위해서 부지런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5. 현숙한 어머니는 하나님의 교사입니다.
26절에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현숙한 여인은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하나님을 배웠고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는 나를 탕자의 길에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참회록에서 "하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 어머니를 먼저 보내 주셨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하시려고 어머니의 학교에서 자라게 했다. 이 세상에 우리 어머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을 무한히 찬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234장
1절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말
그때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3절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 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4절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후렴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 주시던
재미있게 듣던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1. 가정은 어머니가 있는 곳입니다.
2. 하나님은 현숙한 어머니를 찾고 계십니다.
3. 현숙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아내는 먼저 지금 남편에게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아내는 서로 도우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입니다.
4. 현숙한 어머니는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5. 현숙한 어머니는 하나님의 교사입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