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하는 광선(말4: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1-2)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년 전 고대 이스라엘시대때에 하나님의 종 이사야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던 나라와 사회를 바라보고 이렇게 탄식하면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매어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와 거의 유사한 안타까움과 탄식이 깃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극심한 상처와 고통속에서 너나할 것 없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 사회를 치료해보고자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통해 이 나라를 고쳐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 5년전, 세계는 우리를 가리켜 '한국병'에 빠진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정부는 '어떻게 하면 이 한국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면서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하에, 나름대로 많은 부분을 고치기 위해 애써왔고 치료해왔습니다. 그러나 또다른 상처가 터지고 또다른 문제가 생기고 또 넘어지고 쓰러져있는 오늘날의 이 모습...
이러한 가운데 다른 정치가들이 '나에게 다시 한번 5년의 기회를 준다면 온전히 나라를 고쳐놓겠다'고 지금 일어서 있습니다. 혹 이곳에 정당에 관계되시는 분이, '수성구지역에서 가 장 큰 범어교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어떤 설교를 하고 있는가' 싶어 한번 들어보러 오셨다면 듣기 민망하시겠지만, 우리 한국병을 근원적으로 고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독선적이거나 비관론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시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상처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사람은 우리 가운데 없습니다.
5년전, 모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치유를 부르짓었고, 애써왔습니다. 때때로 어떤 부분은 고쳐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버렸습니다. 결국 우리의 역사 경험과 우리의 현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이와 같이 병든 나라와 병든 사람들을 이 세상 정권, 이 세상 정치,이 세상 문화, 이 세상의 교육으로는 고쳐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비관 속에서 계속해서 터진 상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고침 받아야 합니다, 분명히 새로움을 받아야 합니다. 분명히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권리가 있고, 그런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고침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상처를 고쳐주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장 2절 말씀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치가도, 교육가도, 문화가도, 어떤 사람도 우리의 이 병을 고쳐놓을 수 없지만, 그러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오늘 이 세상을 고쳐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얼마나 우리 민족을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한 것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경건치 않을때에, 제 갈길로 가버린 우리들.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들이 과연 당신을 찾는 자였는가를 고려하신 즉,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 땅을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고, 어떻게든 고쳐놓아야하겠다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성탄절이 몇주 남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온 교회와 온 성도들, 그리고 온 나라가 의로운 빛, 치료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과 사회가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막의 지혜』라는 책 가운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군인이 그 지역의 미오스라는 현자(賢者)를 찾아가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나같은 죄인을 용서 하실까요?"
그 말을 들은 미오스는 "자네는 옷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되물었습니다.
"그야 옷을 기워서 고쳐입지요"
"바로 그것일세. 자네가 입는 하잘 것 없는 옷도 아끼기에 고쳐입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피조물이 죄를 지었을 때, 병들었을 때, 매정하게 내다버리지는 않는것이라네."
물론 요즘은 사람들이 물질의 풍요에 젖어 무엇이 떨어지고 낡아지면 내다버립니다. 그러기 에 요즘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고쳐입어야죠"라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에, 당신이 한번 당신의 자녀로서 선택하시고 한번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으시고 보시기에 좋게 지은 이 피조물의 세계이기에, 병들어 고통하고 신음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아니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 바로 이 언약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서 "아버지여, 우리를 고쳐주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교회적으로 우리는 고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리니 그 치료의 광선을 얻은 자는 나가서 외양간에서 쳐나온 송아지같이 뛴다'는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 송아지는 외양간에 갇혀서 늘 답답해했는데, 그 문을 열어놓으니 마음대로 뛰쳐다니는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치료의 광선, 치료의 빛을 받는 자는 오늘 이 답답한 현실, 오늘 우겨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저께 우리 딸아이가 텔레비젼을 보다 9시 뉴스를 자막으로 예고하는 것을 보고 대뜸 하는 말이 "아빠 오늘 뉴스는 하나 볼 것이 있어요. 글쎄, 동해에 고래가 나타났대요"
그 외에는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어린 아이도 뉴스를 보면 답답하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답답한 현실속에 살고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의 광선을 얻을 때에 우리는 외양간에서 뛰어나가 마음껏 즐겁게, 마음껏 기쁘게 마음껏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에게 이러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오늘 성경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 치료의 광선이 비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선지자 이후의 약 100년동안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이라는 땅에 가서 70년의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후 다시 70년 뒤, 고국으로 돌아오니 나라가 완전히 황폐화 되어있었습니다. 돌아온 국민들의 마음이 낙심되었습니다. '어떻게 살것인가' '괜히 돌아온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낙심하고 있을 그 때에, 학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가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세상에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습니다. 하늘은 낙망하고 있는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을 돕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하나님이 하늘의 권세와 이 땅의 권세를 갖고 역사를 지배하심을 믿는 그 사람에게,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말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 세상 물질적인 것을 최고로 표현하는 것으로 '은과 금'을 듭니다. 회사도, 먹을 것도 입을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것이기에 "너희는 굳세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그를 치료하시고, 그의 마음에 낙심을 고쳐주시며 다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하늘을 믿고 스스로 굳세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자리가 위태합니까? 여러분의 사업체가 기울어지기 직전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굳세게 하십시오.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낙망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 갈 찌어다" 하는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는 굳건히 일어설 수 있는, 바로 그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십시오.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경제가 무너져서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역사, 우리 개인의 역사속에서도, 무너지고 실패하는 것은 물질의 부족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정신적인 타락, 정신적인 가난, 정신이 부패해져있고, 그 정신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속에서 계속해서 고난을 당해왔고, 오늘 우리 나라도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부유해지는데 정신은 따라와주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비만증 환자처럼 키는 자라지 아니하고 그냥 옆으로만 풍요하게 먹고 마셔서 살이 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비만증 환자를 태운 차는 고속으로 질주하다가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 지금 낭떠러지에 다다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황폐입니다.
오늘 성경은 대표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가리켜 '교만한 것'과 '죄악을 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라기서의 상황은 그렇습니다. 학개선지자때의 얼마 뒤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굳세게 일어났고 하나님을 믿어 성전을 지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를 재건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전처럼 점차 부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교회당을 새워서 예배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윤기나게 재건되어져 가고 있는데, 70년동안 바벨론땅에서 살때에 하나님 없이 살던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와버렸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올라가기는 갔는데, 하나님없이 살아가던 마음 그대를 가지고 올라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따라 양과 소와 같은 소득물을 갖고 왔는데, 말라기서 1-2장에 보면, 이 소와 양들이 그들에게 번성하여 질때에 제물로 삼기는 삼았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보시니 아주 형편이 없는 제물이었습니다. 눈이 없고 다리를 절고... 말하자면 상품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별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제물'이라 하면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올라온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제사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는 소를 잡으라고 말하셨습니다. 중산층에게는 양을, 하층에게는 비둘기를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극빈자는 밀가루 한 홉이라도 바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부담스로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제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형편에 따라 바칠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너희가 바칠 때 흠없는 것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흠없는 것을 바치라'
그런데 이 말라기 시대 사람들은 온갖 것을 다갖고 왔지만,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뜻과 정성이 없이 외형적인 형식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끝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흑암에 빠졌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현실과 다른 말씀이 올찌라도 그 말씀에 '아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이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백만장자가 여행을 떠났습니다. 항해 중 폭풍을 만났습니다. 이 폭풍속에 백만장자도 배멀미를 하고 사경을 헤매면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만약 살려주신다면 내 저택을 팔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니, 순간 그렇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그치고 배가 순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백만장자가 정신을 가만히 차려보니 조금전에 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순간 '그 파도는 단지 바람이 불어서 그런거지, 이제는 끝이 났는데, 내가 괜한 약속을 했다.'하고는 그 약속을 스스로 파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배가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불고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내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하시는가?' 하고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을 재약속하니 다시 순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다에서 체험한 그것으로 은혜를 받아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것이 부담이 되어 교묘한 궁리를 했습니다.
약속한대로 저택을 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가격은 불과 1달러였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그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목에 걸린 표의 명시된 가격이 백만달러였습니다. '1달러짜리 우리집을 사시는 분은 반드시 백만달러 짜리 고양이를 함께 사야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앞에 얼마를 올렸겠습니까? 물론 저택 판 돈 1달러를 올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라기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양이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우리들 속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의 생활은 자기가 지배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풀무불같은 불이 임하여 초개같이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에 처해지더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를 고치시고 치료하는 광선이 임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사람들 가운데 의인이 하나도 없음을 아시고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한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는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자이셨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지'하고 결심하지만 믿음으로 살지 못함을 아시는 주님, 죽음의 두려워서 일평생 그것의 종노릇하는 것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또한 십자가 앞에서 '내 마음이 민망하여 심히 두렵다'고 고백하셨으며, 목이 마르시면 마실 것을, 배가 고프시면 먹을 것을 사오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자가 아니라, 연약함을 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휘장을 찢어놓으시고 십자가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이 은혜의 보좌(구약의 지성소)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믿고 들어가는 자이며,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치료의 광선을 비쳐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과 우리 머리와 온 몸의 상처와 멍듬을 치료하는 은혜의 보좌앞에 비치는 그 치료의 광선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주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이 땅의 참된 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낙심하고 멍들었을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여호와를 경외합시다. 스스로 굳세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믿음을 갖고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 치료의 광선속에 날마다 새롭게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의 주변은 심히 어둡습니다. 너무 답답합니다. 낙이 없고 웃을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도대체 당신은 무엇이 그렇게 기쁘냐?', '무엇이 그렇게 평안하냐?'하고 물어올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 굳세게 하고 말씀따라 순종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예수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삶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에 치료의 빛을 비추어주시고 육신과 마음이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죄악으로 방황하는 자를 치유하셔서 복된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