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강해시리즈 15.
“신실한 동역자들”
성경: 골로새서 4:7-18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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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단원(7-8)
① 본 단원의 중심점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11), 즉 동역자들의 역할과 면모를 살펴보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0명입니다.
바울의 서신 중에서 이처럼 여러 사람을 거명하고 있는 것은 로마서와 본 서신뿐입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고 있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공교한 말”(2:4)로 성도들을 속이려는 거짓 형제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사단의 일군들”(고후 11:15)이요,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신실한 일군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인정해주고, 천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바로 나 자신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를 깨닫기를 원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② 제일 먼저, ㉠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7상) 합니다.
같은 말씀을 에베소서(엡 6:21)에서도 대하게 됩니다.
이로 보건대 두기고는 바울로부터,
㉡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받아 가지고 이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중요한 임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임무를 심사숙고 끝에 두기고에게 맡겨서 에베소교회를 경유하여 골로새교회로 가도록 지시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만이 아니라 두기고는 주로,
㉡ “보냄을 받는 자”, 즉 사신(史臣)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딤후 4:12) 합니다.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딛 3:12)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보낼만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옥중 서신인 빌립보서에서,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빌 2:19-20) 하고 말씀함을 대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전달자로 알려진,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천거하기를,
㉢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롬 16: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기고나 뵈뵈는 바울의 “보호자”, 말씀의 보호자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③ 그러므로 그를 천거하는 말에는 최대의 신임(信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7하)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도,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엡 6:21)이라고 소개합니다.
두기고는 성도들에게는 사랑 받는 형제요, 주님에게는 신실한 일군이요, 바울에게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 즉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임무는 단순한 우편 배달부 역할이 아니라,
㉡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8)한 바울의 특사(特使)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여러 편의 서신을 기록하였음에도 옥중 사정에 관하여는 일언반구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신임하는 두기고를 보내서 알려주면서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두기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11) 한 “위로자”였습니다.
④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9상) 합니다.
오네시모에 관하여는 빌레몬서를 통해서 자세히 알 수가 있는데, 그는 골로새교회 성도인 빌레몬의 노예입니다.
그런데 도망을 했다가 옥중에 있는 바울을 만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신실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을 받을 자”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의 과거는 잊어버리고 변화된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동격인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할 뿐, 어두운 과거는 덮어두고 말이 없습니다.
<함께 갇힌 자들>
①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10) 합니다.
10-14절을 통해서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면모를 대하게 됩니다.
아리스다고, 마가(10), 유스도라 하는 예수(11), 에바브라(12), 누가와 데마(14).
㉠ 아리스다고 : 충성스러운 동역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큰 환난을 당할 때도 바울 대신 붙잡혀 곤욕을 치렀고(행 19:29),
그 후 바울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루살렘으로 갈 때도 동행(행 20:4)을 했으며,
결박당하여 로마로 호송 당할 때에도,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행 27:2) 하고 끝까지 동행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를 가리켜,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라고 말씀합니다.
㉡ 마가 : 그는 1차 선교여행 때 도중하차한 일 때문에 바울에게 신실하지 못한 자(행 13:13)로 여겨졌으나 바울이 최후 서신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할 정도로 신임을 회복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그를 골로새로 보내려하면서,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당부합니다.
㉢ 유스도라 하는 예수와, 마가와, 아리스다고, 이 세 사람을 가리켜, “저희는 할례당이라”(11)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라는 뜻입니다.
할례당 중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바울을 수종 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고,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11)고 말씀합니다.
㉣ 에바브라 :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12상)라고 말씀합니다.
1장에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1:7) 한 대로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하여 설립이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골로새교회의 사정도 그를 통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바브라의 골로새교회에 대한 사랑도 남다른 데가 있다 하겠습니다.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12) 합니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13) 합니다.
지도를 보면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는 삼각 지대를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에바브라는 이 삼각 지대를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 누가 : “사랑 받는 의원 누가”(14)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입니다.
그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중에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인 드로아 지방에서부터, “우리”(행 16:10)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후 고난의 예루살렘 행에도(행 21:1), 로마 행에도 동행(행 27:1)한 참으로 신실하고 사랑을 받을만한 동역자요, 바울의 주치의(主治醫)였습니다.
㉥ 데마 ; 그에 대한 아무런 소개가 없습니다.
데마는 골로새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바울과 함께 있었으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한 대로 바울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바울을 떠난 자는 데마 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처음 (복음)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16)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들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11) 한 말씀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 눔바 :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15)라고 말씀합니다. 눔바는 라오디게아교회의 유력한 형제로써 그의 집이 교회 장소로 제공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라오디게아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16)고 당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세기 경까지는 예배당이 아니라 가정교회 형태로 모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골로새의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몬 1:2),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에서 모인 교회(행 16:40) 등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신실한 자들이었습니다.
㉧ 아킵보 :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17) 합니다.
빌레몬서에서는,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몬 1:2)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골로새서를 당연히,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12) 편에 보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신을 두기고에게 맡기고 에바브라를 함께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임무를 위해서였을까요?
그래서 함께 군사 된 아킵보에게 골로새교회를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② 성경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자기 시대에 바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역사”한 동역자들입니다.
그들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들에게 맡겨졌던 구간(區間)을 달리기를 마치고
구속사의 무대를 떠났습니다.
이제 구속사의 무대에는 우리, 곧 형제가 등장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선한 싸움의 목적은 변함이 없이 저들과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중요한 것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하고 말할 수가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③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합니다.
그런 후에,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18) 하고 마지막으로, “매였다”는 한마디를 첨부합니다.
어떤 의도에서 이 말씀을 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골로새서가 매인 중에 기록한 말씀임을 생각하라.
매인 중에 한 권면이라는 이 진실성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아니었을까요?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출처: 설교전문학교 글쓴이: 임평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