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남자가 부리는 마법
8.29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출처] 일 잘하는 사내 - 박경리
이렇게 일 잘하는 남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까탈스럽지도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는 것. 왜 허세를 부리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가서 일하고 움직여 버리니까.
각 반별 텃밭에는 토마토, 가지, 오이, 강낭콩, 상추, 땅콩, 옥수수, 배추 등 그 종류도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자기밭 작물을 못 따가도록 눈총을 주니까 직원들 수시로 따가고 캐 가라고 만든 여유분 텃밭, 아치형으로 골격을 만들어 길쭉한 호박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린 급식소 통로. 그 곳을 지나가며 아이들은 ‘야~ 츄러스 달려있다’며 꺄르르 웃는다.
지은지 15년쯤 지나 벽이 너덜너덜해지고, 에어컨 시설이 없는 동향으로 앉은 체육관은 여름만 되면 아이들이고 선생이고 모두 팥죽땀을 흘리는 곳이 된다. 그 곳을 예산을 끌어와 산뜻하게 변신시킨다. 학교에서 손 볼데만 있으면 언제나 팔 걷어 붙이고 사람을 부르거나 직접 해결하거나. 얼마전 과학실도 깨끗하게 수리했는데 마지막 물건 정리와 청소까지 다 했다고 우리가 시덥잖은 우스개소리를 양념삼아 주고 받을 때에도 바닥에 눌러 붙은 때를 손수 긁어내고 있었다.
주어가 없는 문장이었다. 우리학교 교장선생님 이야기였다. 너무 바빠서일까? 어쨌거나 권위를 부릴만한 위치가 되기도 하건만 도무지 권위의식이라고는 없는 이 일 잘하는 남자가 학교로 오고 나서는 학교가 꽃으로 텃밭으로 구석구석 정돈되고 단장된 곳으로 변신했다. 마이더스의 손을 눈으로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남자의 집은 고등학교 때 자취를 하며 다녔던 순박하게 생겼던 친해보지는 못했던 그러나 그 아이도 나처럼 누구가를 좋아하고 미래를 꿈꾸었을 남경이가 살았던 욕지도이다. 우리 학교가 변신 중에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은 이미 마법 속의 공간이다. 매일 출퇴근을 할 수 없어 주말부부인데, 부부 금슬이 좋아 늘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화초와 채소들을 키우며 별빛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주중보다 주말이 더 바쁜 사람이다.
사는 것이 환상이 아니고, 쉽지 않은 삶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지만, 그렇게 일 잘하는 사람의 손이 많은 사람의 그늘이 되어주고 자신의 공간을 자연의 향기로 다듬어 내는 그 손길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 생활에 필수적인 일 뿐만 아니라 그리운 것들을 찾아 산 뒤에까지 다녀오기에도 바쁜 내 손 끝만 쳐다보는 우리집 세 남자를 그렇다고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