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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로맨틱 고전영화를 즐겨 본다.
오늘은 “An affair to remember”라는
한국에서는 ‘러브 어페어’로 알려진
영화를 보고
여주인공의 매혹적인 분위기와 짧은
만남이지만 서로 진솔한 사랑에 이르는
스토리에 감정이 이입된다
나에게도 짧은 인연이 있었지만 영화와
달리 메꾸지 못한 뭔가가 남아 있다.
모처럼 동네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시켜 본다.
달달한 맛에 커피 향이 피어오른다
‘마들렌 효과’ 인가…당시의 흐릿한 추억이
타임슬립인 듯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감성까지 말라가는 하드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추억 속으로 빠져보고도 싶기에 ..
나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MARLBORO :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ver “
(남자는 로맨스가 끝났기에 사랑을 기억한다.)
…………
< 끌림 - seduisant >
입대를 앞둔 서클 후배가 찾아와
형님들에게 미팅을 주선했다고 한다.
마지못해 4:4로 미팅을 했다.
나이 들어 미팅하는 게 다들 쑥스럽다고들
한다. 아마 여자들은 더 했겠지만..
처음 본 건 이렇게 미팅 장소였다.
그중 한 명이 ‘미팅’이나 ‘discussion’이나
뜻은 비슷하니 그렇게 여기자고 했다.
그녀는 자리를 주도하기도 한다.
아마 그 자신감은 자신의 미모에서
나온듯하다. 나는 대학원 후반기,
그녀는 학부 졸업반이다.
한 번씩 학문적 관심을 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그럴싸한 지적인 레토릭을 섞어
말하기도 한다.
그녀의 솔깃한 눈빛을 훔쳐보기도 한다.
잡다한 수다와 수작이 오고 간 후,
뭐 자기 소지품을 서로 맞추는 고전적 방식으로
파트너가 정해졌고, 기대와 어긋나게 …
그녀는 내 친구의 파트너가 되었다
내 친구 녀석은 바로 파트너끼리 흩어지자고
했으나, 나는 단체로 시간을 더 보내자고
그녀를 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받아들인다.
현해탄이 보이는 호텔 커피숍으로 옮겨 입담을
즐기다가 짝끼리 헤어졌다.
미팅이란 상투적 만남에서 예상치 않게 마음의
동요가 인다. 서로 엇갈린 파트너가 되자
아쉬운 걸 잃은 도둑맞은 기분도 든다.
그녀도 그럴까…
후배 녀석이 느닷없이 미팅을 제의하다니..
지금도 의심스럽다.
후일담이지만 원래 후배 녀석이 나와 그녀를
매칭 시켜 주려고 했단다.
후에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나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고…
그 다음 날 일요일이지 싶다.
나는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논문 초록
타이핑을 하다가 어제 미팅에서 나를
쳐다보며 웃는 모습에
잔상이 남아선지 문뜩 그녀 생각이 났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주변은 적막하고
전동 타이핑 소리는 요란하다.
한참 영문 초록을 어설픈 솜씨로 타이핑한지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났다.
살며시 문을 열어 보니 그녀와 그녀 친구가
서 있었다. 뜻밖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치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물은 것 같다.
자기 생일이라 친구와 함께 학교에 놀러 왔다
들렀다고.. 내가 있는 대학 조교 사무실에
누가 있어 물어보니 가르쳐 주었단다.
사촌 오빠라고 했다고.. ㅋ~
오늘 학교 연구실에 간다고 내가 얘기했나 보다.
근데 기억이 안 난다. 그녀가 그 말을 새기고
있다니.. 묘한 감정이 든다.
아마 자기 친구와 어제 미팅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도 나왔지 싶다.
나는 어제 당신 파트너인 내 친구는 어땠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자기 스타일이 아닌 듯 그저 웃기만 하고
더 이상 언급하진 않는다.
두 번째 만나서인지 가벼운 농담도 오가기도
한다. 서로 파트너가 아니라서 오히려 부담
없고 자유로운듯했다.
당신 같은 보기 드문 미인이 미팅에 나와서
놀랐다. 개성도 강해 보여 매력도 발산하더라.
나와 매칭이 안돼 못내 아쉬웠다.
나는 이런 내심 어린 추파도 보낸다.
그녀는 응수한다. 칭찬은 고맙다.
그런 말 하는 게 그쪽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근데 여기 온건 거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만만치 않다.
그녀 친구는 유심히 나를 살펴보기도 했다.
나는 다소 아카데믹한 화제로 방향을 틀었다.
고상한 게 어울린다기에…잡담 끝에 얼마 후
가겠다고 해서 아쉽기도 하다.
배웅해 주며…내려가 차나 한잔 더 하자고
하니 그녀는 단호히 괜찮다며 들어가란다.
뒤돌아 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논문 열심히 준비하라고 그녀가 외친 것 같다.
시간을 뺏기 싫어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왜 찾아왔을까…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진로로
다소 고민이 있어 보였다. 답답하던 차
모처럼 호감도 생긴 남자한테 마음도
달랠 겸 왔지 싶다.
한 2~3주 지난 후 내 친한 친구가 찾아와
조심스럽게 그녀 이야기를 꺼냈다.
그 녀석은 자기 속마음을 꺼낼 때 좀 더듬는
버릇이 있다. 여러 번 그녀를 만나려고
했지만 철벽을 치더라고..
나는 속으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날 찾아왔다는
말은 차마 못 했다.
친구의 연줄을 다시 이어줄 요량으로
그녀가 있는 곳에 같이 갔다. 실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싶기도 해서…그녀가 나왔다.
내가 먼저 그녀를 구슬린 끝에…같이 가서 차나
한잔하자고…따라오나 싶더니 이내 되돌아갔다.
이건 그녀에 대한 은근한 나의 자신감에서
나온 거다. 하지만 그녀를 배려하지 못한 나의
자기애적 유아적인 행동이었다.
그 친구는 그 후로 더 대시했지만 무산된듯했다.
키도 크고 잘 생긴 놈인데 자존감이 많이
무너진 모양이다. 심지어 그녀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기까지 한다.
< 잔상 - visual echo >
그 후 나는 논문 마무리에 군대 시험
준비에 나름 여념이 없었다.
중간에 우연히 학교 정문 쪽으로 내려가다
남자들 속에 떠들며 올라오는 그녀를 만나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하기도 한 것 같다.
손이 뜨겁다.
12월 경이라 연구실 난로가 후끈거린다.
누군가 찾아왔다.
그녀다. 또 다른 자기 친구와 함께..
“교원 임용 후 교육대학원엘 진학하려고요"
손엔 입학원서가 쥐어져 있었다.
진로에 대해 자문 좀 해달라고 했다.
진지한 표정을 지었지만
실은 내가 자문할 것도 없었다. ㅋ~
같이 온 그녀 친구는 그녀가 전국 대학생 논문
발표 대회에서 대통령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오! 그래요“. 다소 놀랐다.
재원도 갖춘 여자네
공부를 더 해보라고 일반대학원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교 선생님도 당시엔 좋은 자리였기에..
얼마 후 내 지도교수의 등장으로 그녀는 친구와
함께 인사 후 자리를 떴다. 누구냐고 묻는다.
사촌 여동생이라고..ㅎ~
멀리까진 배웅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헤어지면 다시 볼 기약이 없음을
깨달었어야 했다. 그녀도 졸업하고 나도
연구실을 떠나야 했기에..
나는 논문 막바지로 정신이 없었는지
그녀 생각을 잠시 잊은 것 같다.
해가 바뀌고 시험과 논문 통과 후 권태로운
시간을 마주한다. 좀 알고 지내던
여자들도 만났다. 후배들과 학교 인근
나이트에서 놀다가 학교 벤치에서
날을 지새기도 한다.
그러던 중 그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캠퍼스 안 차가운
연못에서 파아란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ㅎ~
근무하는 학교로 한 번 연락해 보고
싶기도 했다. 심약한 나는 이내 포기한다.
그렇게 두어 번이나 다가왔는데도..
늦봄 - meet unconsciously
이내 봄이 왔다. 캠퍼스는 축제다.
또 다른 친구 놈한테 전화가 왔다.
그 녀석은 카사노바고 지금도 서울에 있어
자주 보지만 기질은 여전하다.
축제 구경이나 하면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사실 다소 바람기 있는 한 여자애한테서
연락이 왔다. 자기하고 축제에 가자고..
나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저녁 무렵 졸업 후라 쑥스럽지만
학교엘 놀러 갔다.
그 카사노바 친구가 만만해 보이는 여자라도
꼬시려고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셋이서 축제 구경만 하게 되었다. 카사노바
친구 놈이 또 다른 여자를 꼬시려고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뒤돌아 보니 그녀다.
햐~ 이건 또 무슨 우연인가…!
서로의 끌어당김이 가져온
우연찮은 만남인가..ㅎ~
그 순간 내 친한 친구가 “엇! 내 파트너네” 라고
외친다. 어둑했지만 내가 키가 커서
쉽게 발견했나 보다. 자기는 후배들
미팅시켜주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카사노바 친구는 어! 웬 거야 하면서 바로
그녀를 모시고 자주 가는 카페로 같이 갔고
그녀도 흔쾌히 따라왔다.
내 파트너라고 또 한 번 내 친구는 소리쳤다.
그녀는 사귄 것도 아닌데.. 그런 거 없다고
손사래친다.
수많은 잡담 속에 그러나 한 번씩 내 친구
녀석은 선을 넘는듯한 불쾌한 언사를 날린다.
뭔가 그녀에 대해 수집한 정보가
많은 모양이다.
시간은 어느덧 늦어졌고 타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내 친구는 반대 방향인데도 탈 버스가 왔어도
먼저 가질 않고 서성인다.
나는 선생이 된 후 달라진 그녀의 모습과
새로 산 듯한 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멘트를 보낸다. 그때 키도 물어본 것 같다.
당시로는 큰 편이다.
카사노바 친구에게 가는 방향이 같으니
에스코트해 주라고 했다.
그녀는 탈 버스가 오자 나에게 와서 속삭인다.
자기가 있는 학교로 전화 한 번 하면 안 되냐고..
그러면 자기가 하이힐 신고 나올 거라고..
내 마음을 그렇게 흔들곤 버스에 올라탔다.
남심을 흔드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여하튼 끼도 만만치 않다.
그냥 날리는 멘트인지, 아니면 기약 없이
이렇게 또 헤어지면 안 될 성싶어 나온
속마음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는 자기가 나를 더 갈망했던
거는 분명해 보였다. 착각인가..ㅋ~
그 후 버스에 같이 탄 카사노바 친구는
나더러 그녀를 확실하게 잡으라고 한다.
이건 프로다운 권고였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후회해 본다.
만일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면..
그랬더라면….
< 1 : 1 - captive >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 후배 연구실에
놀러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반응한다.
오늘 저녁에 보자고.. 목소리엔
오늘 당장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 앞이 익숙해 좋을 것 같다며
장소도 늘 가던 곳으로 정했다.
미리 분위기와 장소까지 숙고해서
준비해야 했는데…
서툰 연애 솜씨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디테일에 약한 게 여자라던데..
후배 연구실에서 조금 있다가 집으로 갔다.
머리도 좀 감고 나가야지.. 집에서 단장
중인데 내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좀 전에 학교에 있었는데 어디냐고…
저녁에 커피나 하자고 나오라고…
나는 몰래바이트(당시 학생 과외공부는 금지)
땜에 어렵다고 거절했다.
대망의 만남을 위해…흐~
저녁 무렵 나는 약속 장소에 갔다. 늦지 않도록.
근데 벌써 그녀는 앉아 있다.
표정은 그녀답지 않게 좀 긴장한 듯
굳어있는 느낌이다.
늘 3자가 끼어 있던 자리가 1:1로 마주하니
어색했다. 서로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단둘의 대화에 좀 약한 편이다.
뭐부터 이야기를 이어갈지 머뭇거리기까지
한다. 처음 만난 것도 아닌데…
그녀도 마찬가지인가 싶다.
멍석이 깔려 있었는데..
어색이 조금 지나가려 할 무렵
그녀의 눈빛이 이상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아뿔싸! 내 친구 녀석이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곳은 ‘파트3’이라는 상호의 커피숍이다.
매장 레이아웃이 세 군데로 굽어져 있다.
구석 코너에 있으면 은폐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와 있었기에 우리는
입구 창가 옆에 앉아 있게 되었다.
그는 혼자 커피를 마시러 온 모양이다.
자기 나름의 분위기도 즐기는 놈이니까..
실은 그 카페는 그 녀석과 늘 커피를
마시던 곳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안 날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우연도 가지가지이다.
둘은 커피를, 그녀는 커피라떼를 시켰다.
속이 약한 그녀는 진한 커피는 못 마신다.
친구 놈이 저녁을 사라고.. 선생님이
됐으니까 한 턱 내라고….
지하 경양식집에서 술과 저녁을 얻어먹은
것 같다. 밖으로 나온 후,
친구 녀석은 쓰린 마음을 누른 채 갔다.
메이트 게임은 원래 비정한 거다.
그녀는 좀 걷자고 한다.
다소 오해가 있었을까 봐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내 마음을 확인한 후 혹시나 기스가
날 뻔했던 자존감을 되찾은 듯이…말한다.
그녀는 개의치 않다며..
대뜸 내가 용기가 없다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포획된 동물같이 소침해지기도 한다.
내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느낀다.
그녀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내심 기뻐하는 눈치다.
같이 꽤나 걸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순간일 정도로 짧게
느껴진 거지만..
나는 버스까지 배웅하면서 일주일 후
만나자고 약속한 후 헤어졌다.
< 야위어가는 緣 - La donna è mobile >
추억을 조금 더 되새겨 본다.
단둘이 만나 데이트란 걸 했다.
활달하고 자기주도적인 스타일은 분명했다.
학창 시절 반장이나 간부도 도맡다시피
한 모양이다.
집 앞까지 와 자기 집도 알려준다.
감성이 풍부하지만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로맨스에 인생을 걸지 않을 타입이다.
즐길지는 모르지만.. ㅎ~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만난다.
나도 정말 사랑에 빠지는가 싶었다.
확신까지 한다.
그러나 막상 만나면, 시시콜콜한 것에서
심지어 미분방정식이 나오는 아카데믹한
주제까지 스펙트럼한 담소만 즐기기도 한다.
정작 서로 애정을 키우는 얘기는 뒤로 한 채….
늦 봄 6월 말이나 7월 초 밤이었을거다.
‘봄밤’이란 로맨스 드라마도 있듯
뭔가 진행될 무드의 또 화촉의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연애담을 살짝
풀어놓는다. 첫 사귄 남자가 자기한테 키스를
하려 해서 뺨을 세 차례나 때린 후 헤어졌다고..
남자들은 다 늑대라 늘 조심해야 한다고..
그리고 자기는 정에 약하다고…
묘하고 모호한 뉘앙스를 던진다
곰곰이 생각하면 뭔가 벗어나기 어려웠던
오래된 정이 있었거나 새로 싹틀지 모를 정에
두려움이 있어 보였다.
결혼이 어떤 거냐고 물으니 그냥 자기 편이 하나
생기는 거라고…내가 당신 편이 되면..
하고 물으니,
“one of them”이라는 듯 말한다.
그리곤 요즘 학교 여선생들이 중매쟁이들이
최고로 꼽는 자리라고.. 그간 봤던 그녀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맥락의 말도 나온다
캠퍼스를 내려가다 본관 앞으로 방향을 튼다.
그곳에는 한창 물이 오른 라일락 나무가 있다.
그녀는 잎사귀를 따더니 한 번 씹어보라고…
한 움큼 씹은 나는 토할 만큼 썼던
기억이 난다. 첫사랑의 맛이란다…
꽤나 둘이서 많이 걸은 것 같다. 나는 낮에
술을 좀 마셔서인지 특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뭔 얘기가 더 이어졌는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마치 복선처럼… 뭔가 의도한 듯
암시가 온다. 나는 좀 달라진,
그녀의 암시를 부정했지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날수록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그리고
내 진로도 고민해 본다.
그녀는 결혼 적령기의 사회인이다.
보고 싶어 만나면 점점 관계에 불안감이
감지되는 건 뭔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만나자고 했다.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자기가 먼저 전화하겠다고 했기에..
나는 이미 차인 상태였나 보다.
그녀는 흔쾌히 나오겠다고 한다.
나는 연구실에 있는 친한 후배 둘을
몰래 불러서
그녀가 어떤지 한 번 보라고까지 했다.
여자가 너무 쎈 인상이라고..
그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아 의아했다.
만나서 뭔 대화를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별로 없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게 지금도 이상하다.
그녀가 멀어질까 두려워 마음조차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 내 자존감을 위해…
정말 못난 놈이다.
그러나 나로선 쓰리지만 상대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 더 앞섰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가면 멀어지는 ‘루 살로메’의 기질이
느껴지는 그녀이기에…ㅋ~
< 멜랑꼴리 - thoughtful sorrow >
방황을 하게 된다. 심리가 불안하다.
나의 어설픈 직감 탓인가.
소위 썸을 타는 건가… 번민한다.
정말 좋아하면 위축되나 보다.
나름 여자에 강하다고 자부했지만,
숙맥이나 다름없다.
두 여자를 만난다.
우연히 전에 미팅에서 알게 된 여자다.
이 여자 역시 미팅 때 내 파트너는 아니었다.
우연히 학교에 테니스를 치러 왔다가 만났는데
한 번 보자고 싱겁게 얘기했다.
글래머러스한 키도 큰 이국적인 얼굴의
퀸카 스타일이다.
며칠 후 그 퀸카를 만난다. 약속 시간보다
많이 늦게 나타났다. 날 테스트해 본 거란다.
시내 중심가에서 볼링도 치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데이트를 한 것 같다.
몇 년 전 밤에 도서관에서 내가 엄청 예쁜
여학생하고 내려온 걸 봤다고도 했다.
그때 도서관 미녀는 내 서클 후배였다.
버스에 태워주면서 잘 가라며 어깨를
터치했다. 사소한 스킨십에 반응한다.
나중에 들었는데 나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그렇지만 나는 감흥이 없었다.
그녀 때문이다.
또 한 여자 친구는 입대 전 나를 보잔다.
시내 한복판의 괜찮은 커피숍에서 만났지만
나는 최근의 심정을 조금 토로했다.
그녀는 이해한다면서..
미련 없이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그 후에 간혹 마음의 동요가 있었던 인연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잊히기도 했다.
이건 다 내 탓이었다.
남녀관계는 미스매치가 다반사다.
그래서 괴로운 거다.
마음은 한때 서로 앞섰지만 더 진전되기
어려웠고.. 그리움도 잠시 나는 짧은 군
생활을 위해 입대했다.
서너 달 후 잠시 휴가차 나왔다. 12월 중순
경이다. 연락할까 망설이다 친구들과 만났다.
내 친구는 마치 선고하는 말투로 말한다.
그녀가 결혼했다고..
여전히 첩보망은 가동하고 있군..
군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백을 담은
연서를 보내기도 했다. 답장은 없었다.
그 무렵 그녀는 웨딩 마치를 올리는
시점이었나 보다.
두어 달에 걸쳐 만났지만 잔상들은 결국
조각난 추억으로 남겨졌다.
왜 멀어지려 했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싶었으나
확인하기엔 늦어버렸다.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런 건가!
그녀 자신이 부족했던 걸 의도했든 안 했든
나에게서 채우려 했기에... 나도 나의 결핍을
그녀를 통해 충족시키려 했기에..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서 나에게서
채우기엔 부족함을 느꼈으리라...
< 잔향 - late autumn >
간혹 생각은 났지만 가정과 사회생활로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20여 년이 흐른 봄,
나는 직장 근처 여고 담장을 지날 때
라일락의 진한 향이 코에 들어왔다.
잎사귀를 따 귀퉁이를 조금 씹었다.
쓴맛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점에
머문 것이 더할 나위가 없었는지도…
미리 정들기 전에 떠나려 했음을 암시했기에
플라토닉 사이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 80대에 가슴이 두근거려 사랑인 줄 알았더니
부정맥이네” 라는 자조적인 말에 웃기도 한다.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에 진입한 걸까.
추억을 머금어 보니 설렘도 생기기도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에게
솔직하며 때로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지….
지금 꽤나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순간이다.
그녀의 근황을 모른다. 애써 외면해 왔지만…
단지 그 쾌활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 늘 사랑받고 기쁨 속에서
건강하게 행복했으면 한다.
왜 갈수록 지난 일들이 아라비안나이트의
지니(genie)처럼 봉인된 병을 뚫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필드에서 샷이라도 같이 시원하게 날려봤으면..
뽀오얗게 덮인 헤져드에 빠져도
좋으련만.. ㅎ~
애잔한 그리움을 담은
쇼팽의 녹턴(op.9 no.2)이 다시 들리기도 한다.
“I'amour passe Ie temps, et Ie temps
passe I'amour”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잊게 한다.)
https://youtu.be/UtkIWqISreY?si=QRVnEelVJm4Be_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