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워실, 연장전, 토마토, 일요일, 시옷, 울타리, 돈, 심장, 외계인, 시집 코너
나는 차가운 샤워실 구석에서 생각했다.
TV에서 들려오는 축구 경기의 연장전 열기가 뜨거웠다.
토마토처럼 빨개진 얼굴로 한 선수가 소리쳤다.
"이대로면 일요일 경기에 출전하지 못 할거야."
시옷 모양으로 대형을 갖추어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각자의 안전한 울타리라는 한계를 넘어 뛰고 있었다.
그들을 뛰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그들의 심장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TV속의 열기와 동떨어진 나는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서점을 가도, 그토록 좋아하는 시집 코너에 있어도 계속 차가울 뿐이다.
2. 참새, 양육, 커피, 편지, 초기구상, 다정함, 고통, 국어, 환생, 개밥그릇
참새의 엄마는 비둘기이다.
아기새를 양육하는 일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커피를 들고 출근한 비둘기 엄마는 아기 참새를 키우기 위해 오늘도 일을 한다.
산더미 같이 쌓인 배달해야 할 편지들에 한숨이 나온다.
초기 구상은 다른 비둘기 사원들과 일을 나눠 하는 것이었는데, 비둘기 엄마만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화를 내는 것보단 다정함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둘기 엄마는 고통 속에서도 아기 참새를 생각한다.
아기 참새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환생을 해도 다시 아기 참새의 엄마이고 싶다.
동그란 개 밥그릇 안에서 아직 자고 있을 아기 참새를 생각하니 쌓인 편지가 그다지 많지만은 않은 것도 같은 날이다.
3. 짐승, 작명, 불시착, 의류수거함, 영매, 이불, 플라스틱, 타투이스트, 귀빈, 스트레칭
갓 태어난 아기고양이는 고양이라기보다는 짐승 같다.
작명소에서 받은 이름을 불러주니 제 이름을 알아듣고 대답한다.
우리 집에 불시착한 아기고양이는 모든 것이 당황스럽고 새로울 것이다.
의류 수거함 옆에서 떨고 있는 아기고양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영매라고 하는데, 그래서 집에 데려오기 꺼러진 부분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버려진 이불 속에 묻혀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주변의 날카로운 플라스틱도 위험해 보였다.
새 가족이 된 아기 고양이를 타투이스트에게 부탁해 손가락에 새겼다.
이왕 우리 집에 왔으니 귀빈처럼 대접할 생각이다
긴장이 다 풀렸는지 내 옆에 온 아기 고양이가 등을 쭉 펴 스트레칭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