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제일 수-퍼' 내 조그만 동네 한 켠에 있는 조그만 슈퍼마켓이었다. 슈퍼 안에는 왼쪽에 생활용품이, 가운데에는 온갖 먹거리가, 오른쪽에는 오늘 막 잡은 고기와 생선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항상 500원 막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내 친구들과 함께였다. 5~6개 정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나면 주인 아주머니가 항상 1개 더 서비스로 얹어주었다. 각자 아이스크림을 먹고 덤으로 얻은 쌍쌍바를 한입씩 먹는 게 낙이었다. 고작 코 묻은 500원만 내고서 5배가 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제일 수-퍼'였다. 나에게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건물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될 무렵, 제일 수-퍼가 아동안심보호구역으로 지저되었다. 나는 밖이 어둑어둑해져서 무서울 때마다 나만의 기지처럼 제일수-퍼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모, 나 키 잃어버려서 집에 못 들어가요." "또 놀다가 빠뜨린 거여? 어여 들어와. 나쁜 사람이 홱 낚아챌라." 그렇게 저녁 한나절을 보내다가 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매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제일 수-퍼에서 참 많은 덤을 얻었다. 물건값보다 중요한 인심이었다. 그렇게 인심의 향연 속에 '수-퍼 이모'라는 애칭이 입에 익을 정도로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몇 해가 흐른 가을, 제비는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물고 찾아왔다. '제일 수-퍼'가 있는 제일가는 우리 동네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었나 보다. 제일 수-퍼 아주머니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작은 편의점이 하나 들어섰다. 수-퍼 이모가 사라지고 편의점 삼촌이 들어왔다. 편의점 삼촌은 내게 비싸진 아이스크림 대신 천하장사 소시지를 챙겨주었다. "이거 먹고 쑥쑥커서 강호동 뺨치는 천하장사돼라." 그 말을 호기롭게 믿고 매일 편의점에 갔다. 그러나 작은 편의점은 얼마못가 맥을 못 추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웬만한 집보다도 큰 편의점이 들어섰다.
큰 현의점의 이름은 'Nice to meet you'를 줄여서 '엔유'라고 했다. 편의점을 거쳐가는 사람들은 이미 시간이 흘러 자라있었다. 나도 그랬다. 일이 끝나면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 하나에 삼각김밥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아이스크림도 먹을까? 하나에 1400원? 아이쿠' 결국 고르는 건 항상 똑같은 메뉴였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 편의점 알바생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물건을 하나하나 기계로 찍어냈다. "3500원이요." 순간, 덤은 없나 물어볼까 했다. 그러나 알바생도 비싸진 몸값을 자랑하는 물건들에 진저리가 나보였다. 편의점을 가득 채우는 컵라면 냄새가 몸에 배일까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였다. 엔유편의점에는 손님들이 한명씩 물건을 사서 나갈수록 물가가 주는 덤터기가 남았다., 참으로 불편한 편의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엔유편의점을 보면 옛날의 제일 수-퍼가 떠오를까 했지만 아니었다. 수-퍼에선 덤을 얻어오고 편의점에선 덤터기를 씌어 나오기 때문일까. 엔유편의점을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건물들을 바라본다. '아파트, 입시학원, 공인중개사' 모두 어둑어둑해지는 풍경 속에 파묻힌 채였다. 그리고 그 건물 어디에도 '안심보호구역'의 팻말은 없었다. 나는 그 중에서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내 모습 위로 그림자가 차츰차츰 나를 잠식해갔다.
첫댓글 초반부에서 '제일 수퍼'와 함께 엮어진 유년기의 따뜻했던 기억을 자잘한 에피소드와 소개하는 부분이 감성적인 설득을 돕는 면에 있어 좋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개발 된 이후 작은 편의점에서 오른 물가만큼이나 각박해진 인심을 엔유편의점으로 화자의 중심소재가 이동하는 부분에서 작은편의점 부분의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는 듯 합니다!
이 점이 글에서 일관된 정서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편의점 부분을 삭제하거나 작은 편의점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더 추가해서 제일수퍼가 갖는 존재감만큼으로 이 비중을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일슈퍼와 대비되는 존재가 엔유편의점이라는 게 확 와닿도록 사실적인 에피소드를 든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각박함(덤터기)의 상징들인 엔유편의점-입시학원-공인중개사의 각 특징을 망라할 수 있는 내용을 한 문장정도로 더 서술하여 이 상징들의 삭막한 공통점들이 독자에게 더 와닿을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예리하게 지적해주셨네요 : ) 제가 영서님의 피드백과 관련해 한터에서 피드백받은 내용 스터디에서 공유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