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이 꽤 재미있는 일이라고 느낀 것은 사실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가시권에 들어온 은퇴.
마음만큼은 당장이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생각하면 4년 뒤라고 말하는 교사 친구부터, 계산해 보면 5년 뒤쯤은 자기가 나가는 차례가 된다고 말하는 은행원 친구까지.
은퇴까지 남은 근로시간이 한자리 수로 줄어들면서 친구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은퇴 후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 가로 흘러갔다.
먼저 퇴직한 선배가 말했다느니 등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은퇴 후 3개월은 천국. 그렇게 신나게 여행 다니고 나면 만사가 재미없고 심드렁하시면서 일을 다시 찾는다고 했다.
현실감각이 없거나, 본인의 나이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주제 파악을 못하거나 그러면서 재취업에 실패하고 나서 절대 장사는 하지 말라는 충고만큼은 다행스럽게 잊지 않고 지키게 되면 마지막에 찾아오는 할 일이 없어서 괴롭다는 무료함의 지옥.
- 왜. 난 정말 이해가 안 되. 놀 게 할 게 얼마나 많은데.
- 그 선배들도 다 그랬대.
앞서간 사람들의 말은 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절대 무료함은 느끼지 않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는 의지로 이것저것을 배우고 준비했다. 혹시 내 적성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혹여 혼자라도 잘 챙겨먹으러 요리, 혹시 귀촌을 할지도 모르고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집 짓기, 목공, 도배, 타일, 내 안의 예술적 영감을 찾을지도 있으니 드로잉.
생각보다는 모두 배울만 했다. 재미도 있고. 적당히 잘하시네요 라는 얘기도 들을 만큼의 재능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많은 영역이 뭔가 제2의 직업으로 갖기에는 스스로 했다고 하기에는 만족감도 있고 봐줄만하지만 돈을 받고 하기에는 기술이 딱 그만큼은 부족해 보였고, 많은 것을 쏟아 붓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그러던 중 만난 글쓰기는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글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마찬가지로 적당한 만큼의 재능만 있어 보였지만, 계속해서 소소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만들어냈다.
기발한 이야기도 읽은 맛이 나는 잘 쓴 문장도 세상에 넘쳐났지만,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는 색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보고 불현듯 떠올랐던 이미지와 특정 상황에서 갈라져 뻗어갔던 경우의 수와 사고들 그 사이 어딘 가에 맴돌았던 생각들.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속으로 곰씹었던 혼잣말들.
길가는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동의를 구하지 못할 활당하고 엉뚱한 상상들.
이런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이 묘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일기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묘한 형태의 글로 만들어지며. 그래도 소설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싶다.
소설로그.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이 장르의 특히 좋은 점은 일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들도 활기차게 듣게 된다. 작은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이 사건은 또 어떤 글감을 주려나 챙기게도 된다.
여전히 스스로 정해둔 혹은 남이 시키지 않았지만 굳이 참여해서 생겨나는 마감에 쫓겨 글을 쓰는 나를 보면 내가 글을 쓰는 것을 과연 정녕 좋아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꽁냥꽁냥 글을 쓴다. 조금은 근본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이 안 써질 땐 스스로를 다독인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초심으로 돌아가서 막 쓰자고.
첫댓글 은퇴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봄직한 여러 가지들에 공감이 갑니다. 적성,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신 것들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인규 선생님께서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글쓰기라는 '글감옥'을 찾아 내셨다니 다행입니다.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세작교 인생에세이를 수강하는 우리도 '내 이야기는 나만이 알 수 있고, 나만이 잘 쓸 수 있겠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계속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즐겁게 써 나가실 이야기 궁금해 집니다. 감사합니다.
후훗. 내글.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타인의 생각과 글을 좁은 소견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문향에 취하고 글을 쓰면서 흔적을 남기는 일이 게으른 행복을 만끽 하는 사람입니다.
행복을 누리세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