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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가사(山으로 가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광인
비를 피해서 간 국사지맥 2-1구간 및 왕의단맥
성황당고개(928번 도로)-국사봉(△729m)-x722m-공수골재-x551m-꽃재-x578m-화전고개(시멘트
임도)-x508m 국사지맥 끝 왕의단맥 시작-월천고개(2차선 도로)-x318m-왕의산(x342m)-x326m-
오봉산(△225.4m)-x198m-비조령(서낭당고개)-비조산(x308m)-x245m(근품산)-금산교 합수점
도상거리 : 15km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궁면, 문경시 산양면, 산북면
도엽명 : 1/5만 예천
국사지맥이 국사봉을 지나서 남쪽으로 향하다가 508m에 이르러 남동쪽으로 흐르며
예천비행장 쪽으로 흐르고,
508m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월천고개를 거쳐서 상기 왕의산 오봉산 비조산을 거쳐서
금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짧은 능선을 임의적으로 왕의단맥이라 불러보며 종주해본다
성황당고개에서 왕의단맥이 분기하는 508m까지는 대체로 뚜렷한 산길이 이어지지만 화전고개
내려서기 직전 잠시 흐릿한 곳이 있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국사와 왕의의 분기봉인 508m 이후
산불이 난 곳부터 월천고개까지는 정말로 독도에 주의하며 내려서야 하는 곳이다
월천고개 이후 거의 서쪽으로 이어지는 왕의단맥은 지루할 정도로 변화가 없는 지루한 능선이고
송림이 좋지만 그 아래 할키는 가시들이 도사린다
하산 후에는 예천보다는 점촌이 가깝고 점촌이 예천보다는 교통편이 좋다
이 구간 거리가 짧으니 예천서 용문까지는 버스를 이용해도 되고 용문에서 성황당고개까지만
택시를 이용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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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2013년 3월 17일 (일) 맑지만 황사가 있고 밤에 비 내림
홀로산행
날이 따뜻해지면서 고흥지맥을 중지하기로 하고 고산지맥을 가려다가 알고지내는 산 꾼들 토요일
문경인근에서 만나고 일요일 시산제 행사가 있다고 해서 일년에 한 번 있을까! 할 정도인
토요산행으로 이 능선을 종주하고 저녁에 문경으로 갈까 계획했다가 토요일 열시 산으로 알게 된
지인의 자녀 결혼식이 있어 참석하느라 토요산행은 포기하고 당연히 문경의 시산제도 포기한다
아침 첫 버스로 내려갈까! 하다가 여유롭게 산행을 하기 위해서 동서울터미널 21시45분 마지막
버스로 영주로 향하고 도착한 자정의 영주시가지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시청 인근의 몇 번 이용했던 찜질방에서 몇 시간 잠을 자고 영주역에서 05시50분 출발하는
경북선 열차로 예천역 도착이 06시23분 이다
역 인근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용문행 버스는 06시20분이니 이런 것과 연계해서 버스시간이
조정되면 좋겠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택시로 성황당고개로 달려가니 요금은 20.000원이고 역시 바람이 강하다
하지만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니 잠시 후면 기온이 오르지 않을까 싶다
06시56분 택시를 보내고 출발하는 성황당고개는 용문면 두천리 소재인데 동쪽 저 아래
두천마을을 조금 전에 지나왔다
두천리는 寧越 辛氏가 開拓했다고 하나 지금은 沙夫里에서 移居한 慶州 孫氏 集性村이며
杜雲禪師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몇 달 전 TV 인간극장에 방영되었던 103세 손 할아버지가 아직도 건강하게 지내시고 계시는
마을이다
▽ 산행 초반 멋진 자태의 천주봉이 보이고
▽ 예천은 자구지맥과 국사지맥 때문에 몇 차레 왔다
▽ 산행이 시작되는 성황당고개 동쪽 자구지맥 능선위로 해가 뜨고
-성황당고개-
쉬는 날이면 등산을 다닌다는 기사님 말씀은「국사봉 오르는 길은 두천마을 저 쪽에 있습니다」
라고 했지만 나야 마루금을 타는 사람이니 도로의 시멘트 턱을 올라서 절개지를 올라서니 튼튼한
석축의 2기의 무덤이 아래 위로 자리하고 있는데 상단의 무덤은「寧越 辛公」무덤이니
두천리 소개와 무관치 않겠다
무덤 뒤가 마루금의 날 등이고 남쪽의 억센 진달래 가지들 사이로 부드러운 능선이다
둔덕 같이 오르나! 했지만 내려서다가 살짝 올라서 송림을 지나니 출발 8분 후
07시08분 능선을 가르는 푹 패어진 시멘트 임도를 지나서 오르면 송림이 빼곡하고 그 아래
어린 진달래들이며 그런대로 족적도 있고 괜찮은 편이다
잠시 후 오름의 초입부 좌측으로 잘 조성된 무덤이고 무덤 뒤로 올라간다
임도에서 5분 후 쌍무덤을 지나고 잠시 후부터 상당히 가파르고 참나무 잡목들이다
07시18분 한 턱을 오르니 가파름이 한풀 꺽이고 키큰 진달래 사이로 잠시 평탄하다가 잠시
오르 내리는데 넓은 등산로가 나타나고 우측(북서)으로 멀리 특별하게 생긴 천주봉(823.5m)과
그 좌측으로 공덕산(912.9m)가 보인다
공덕산은 작년 봄 인공고관절 수술 후 퇴원해서 바로 찾아가서 억지로(?) 정상까지 올랐건 곳이니
특별하고 천두봉 뒤족으로 보이는 바위의 산은 백두대간의 황장산(1.077.3m)이고 공덕산
좌측으로 운달산(1.097.2m)이 그 육중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 시작하자 말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고
▽ 좌측 운달산 중앙 공덕산과 나뭇가지 뒤 천주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 당겨본 운달산
▽ 공덕산과 천주봉
▽ 천주봉 뒤로 보이는 황장산
-국사봉-
이 후 남서쪽으로 휘어지며 오르는 능선은 뚜렷한 길이 이어지고
07시39분 좋았던 길은 우측사면의 마른 골자기 쪽으로 사라지고 전면의 날 등으로 올라서려치면
진달래들이 억세지만 마루금을 타는 선답자들의 족적들이고 제법 가파르다
그렇게 7분 여 후 우측 x523m x573m로 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이고 그 쪽으로 족적이 뚜렷하다
좌측으로 살짝 휘어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올라서면 송림이 우거지고 그 아래 진달래들이다
07시50분 봉우리 하나 휘돌아 남쪽으로 오르니 갈비가 푹신하고 3분 정도 올라서니
좁은 공터에서 남쪽-남동으로 평탄하듯 조금씩 오른다
6분 후 좌측사면으로 무덤이 보이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이리저리 오르니
08시04분 공터에「예천303 1979 건설부」아주 오래된 삼각점의 국사봉 정상이다
사방에 나무들이 가려져 조망은 없지만 북쪽 나뭇가지 사이로 지난 구간의 매봉(865.3m)과
상부댐이 보이고 북쪽 저수령 방향으 지난구간 능선들이다
전국에 국사봉이 많지만 이곳 국사봉은 경북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와 용문면 두천리,
동로면 인곡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732m)으로 국가에서 봉화대를 세웠던 곳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불렀다고 하고 산 정상에는 제단이 있어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낸다
이 곳 국사봉은 정상에 산불이 나서 불이 붙게 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송림들이 나타나며 저 위 국사봉으로 향하고
▽ 국사봉 정상
-꽃재-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산행을 시작한지라 허기가 지니 막걸리 한잔에 휴식 후 08시21분 출발,
동쪽으로 울툭불툭 바위를 밟고 내리고 올라서니 출발 5분 후 너른 헬기장을 이룬 722m에
국사봉 표석이 서있고 공수골재 사곡↓→솔숲정 사곡 이정목도 보인다
마루금은 남쪽으로 바뀌며 공수골재 방향으로 송림아래 뚜렷한 길로 내려선다
잠시 후 남서쪽으로 훠어지며 내려서는데 아주 괜찮은 송림아래 넓은 등산로고 여기저기
가지치기와 간벌된 소나무 더미들이 잘 치워진 체 보이니 이 것이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지맥의 마루금의 차이다
08시41분 둔덕 같이 올랐다가 3분여 내려서니 푹 패어진 넓은 길이 능선을 가르는「공수골재」
에는 샘터도 만들어 놓았지만 지금은 물이 없다
08시46분 3분 정도 올라서니 별 특징 없는 x561m 고 공수골재 이후 아주 넓었던 길은 아니고
그런대로 괜찮은 등산로다
몇 걸음 내렸다가 금방 올라선 봉우리에서 내려서니 방향은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서고 좌측으로
휘어가는 뚜렷한 길만 따르면 된다
08시58분 절개면을 내려서니 임도 종점의「꽃재」다
좌측 사곡방향은 임도가 끝나고 소로가 보이고 그 아래 습지같이 물이 고인 곳이 보이니
산짐승들이 물을 마시거나 멧돼지들의 진흙목욕탕 정도 되겠다
▽ 금방 다시 올라선 722m 헬기장에 국사봉 정상석이다
▽ 좋은 송림능선을 내려서니 공수골재다
▽ 꽃재를 지나고
-x578m-
꽃재의 우측(북)은 넓은 임도가 문경 동로를 알리고 있다
절개지의 좌측으로 오르니 송림아래 길이 뚜렷하고 곧 잘 조성된 이름 없는 무덤이 자리하고
있으니 뒤돌아 국사봉 일대가 잘 보인다
햇볕이 강해지면서 반소매로 갈아입느라 2분 지체 후 무덤의 우측으로 뚜렷한 길로 돌아 오르니
날 등과 만나고 서쪽의 오름이 이어진다
09시12분 마루금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바뀌는 북쪽 마광리「꽃재마을」쪽 지능선 분기봉이고
남쪽으로 틀어가는 능선도 송림아래 괜찮다
잠시 몇 걸음 오르니 부드러운 능선이고 다시 내리다가 올라서기 직전 좌측아래 내려가는 뚜렷한
길이 보이고 3분 정도 오르니 묵은 헬기장이며 좌측(동) 사곡리 쪽 능선이 분기한다
사곡리는 동쪽 절골에는 사찰이 있었으며 최씨 최흥문과 함녕김씨가 기묘사화(1519)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사곡 또는 돌개라 불렀고그 후 抑佛의 영향으로 사곡이라 바꾸어 칭함
내려서면 x578m 오르기 전의 잘록이에는 나무들이 자라난 봉분이지만「安東 金公」상석의
글씨는 뚜렷하다
2분을 올라서니 봉우리라기 보다 펑퍼짐한 능선의 x578m 다
남서쪽으로 휘어지며 3분 여 올라서니 좌측의 분기봉이고 2분을 더 올라서니 나무아래
작은 바위들의 분기봉이고 좌측아래「죽안저수지」가 역광에 반짝이고 2~3분 정도 내려서다가
1분 정도 오르니 해발 약 540m 정도의 분기봉이다(09시34분)
▽ 꽃재 위 무덤에서 뒤돌아 올려본 국사봉 일대
▽ 헬기장을 지나고 내려섰가 올라선 578m는 봉우리가 아니다
▽ 540m 정도의 분기봉에서 가야할 국사와 왕의의 분기봉인 508m를 본다
-화전고개-
진행방향은 x514m x590m x619m로 이어지는 큰 능선이고 여기서 마루금은 남쪽으로 휘어서 남쪽
저 앞의 x50m를 겨냥하며 고도를 내리는데 우측(남서) 저 아래「이천마을」과 골자기가 파고
들어온 것이 보이고 고도를 뚝 떨어트리며 내려서는데 전면 우측 저 멀리 오후에 지나가야할
비조산이 가파르게 서있는 모습이고 남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은 초반은 지그재그로 족적이
있었지만 분기봉에서 4~5분 후 봉분의 형태가 거의 없는「慶州 金氏」상석을 지나면서부터
족적도 사라진다
저 아래 보이는 송접탑이 그래도 좋은 포인트가 되며 내려서는데 뿌리 채 뽑혀 누워있는 나무들과
넝쿨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이리저리 피하며 내려서니 09시50분 우측사면으로「예천 점촌 TL」
그러나 번호는 지워졌는지 없는 큰 송전탑의 좌측 날 등으로 조심스럽게 4분 여 내려서니
임도 종점인 편의상「화전고개」로 불러보는 임도다
서쪽 이천마을 쪽은 시멘트 포장이고 동쪽 화전리 쪽은 임도가 없고 소로만 보이는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 휴식에 10시03분 출발
화전리는 임진왜란(1592)때 영월인 엄천 손이 가족을 데리고 피란 와서 개척하여 목화가 잘되어
화지터(화전)아 하였으며 본래 예천군 지서면 화전동 지역으로 1914년 이후에 화전리라 불린다
임도 건너 낙엽송 아래 펑퍼짐한 지형으로 오름이 시작되고 3분 후 山경계표석이 보이고
다시 2분 후 봉분이 커다랗고 아주 오래된 비석의「宜人 漢陽 趙氏」무덤이다
宜人은 조선시대 正六品과 從六品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어지던 품계 다
▽ 화전고개로 내려서며 멀리 남서쪽으로 가야할 왕의지맥의 비조산이 보인다
▽ 508m를 보며 송전탑을 포인트로 삼아 길 없는 능선을 내려서니
▽ 시멘트 임도의 종점인 화전고개다
▽ 낙엽송 숲을 따라 오르다가 의인 한양조씨 무덤도 포인트다
-국사지맥을 버리고 왕의단맥으로-
잠시 후 문패 없는 큰 봉분의 무덤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고 여전히 낙엽송들이 무성한
가운데 한차례 1분여 살짝 내리고 다시 오름이다
10시27분 山 경계표석 다시 나타나고 3분 정도 올라서니「寧越 嚴公」무덤이 보이는 국사지맥과
왕의단맥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좌측으로 살짝 비켜난 508m 정상에 올라보니 잡목들뿐이다
다시 영월 엄공 무덤 쪽으로 되돌아 나와서 서쪽으로 고도를 줄이며 내려서며 왕의단맥이
시작되고,
오늘 곳곳에 보이는 영월 엄씨의 무덤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시해 당한 뒤 그 시신을 거두는
사람은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렸음에도 영월사람 엄흥도(당시 영월戶長)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고는 도망을 해서 이곳에 숨어 살았다고 하며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내려서다가 둔덕 같이 올라서고 내려서는데 송림 아래로 진달래들의 능선인데 사람들이
다닌 흔적들이다
10시44분 내려서다보니 펑퍼짐한 지형인데 좌측(남)「새발개마을」쪽으로 지능선이 분기하고
지형이 모호한 곳이다
새발개 마을은 1719년 조선 정조 때 장극찬이란 분이 산북 내화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 보니
산이 낮고 평평하여 새가 밭에서 나르는 형상 같기도 하고 산이 새의 발 같기도 하여 새발재
또는 봉강이라 불렀다 한다
우측으로 살짝 틀듯이 평탄하게 조금씩 고도를 줄이며 내려가고
10시50분 내려서다가 살짝 올라선 곳부터는 산불이 난 흔적들로 쓰러진 나무들과 산불 후 자라난
가시잡목들로 괴롭고 능선은 아주 모호한 상태다
남서쪽으로 내려서다가 거의 남쪽으로 내리는 형태지만 계속 능선의 상태는 모호하고 화재지역은
이어진다
내려서다가 불탄 흔적의 무덤이 하나 보이는 곳에서 서쪽의「이천마을」쪽으로 발달한 능선을
버리고 남서쪽으로 내려서야 하고 전면 좌측 저 아래 새발개마을 을 좌표로 삼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며 남쪽 멀리 문수기맥의 나부산(334m)이 가늠되고 더 멀리 희미하지만 보현기맥의
비봉산(597.3m)도 독특한 모양 때문에 가늠된다
▽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국사봉을 바라보며 올라선 508m 정상은 잡목이다
▽ 송림으로 내려서다가 올라선 산불지대부터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 불탄 지대에 무덤이 보이며 독도주의고 가시잡목과 쓰러지 나무들을 피해 내리고
▽ 새발개 마을을 좌표로 삼으며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 문수기맥 쪽도 아주 희미하게 보이고 줌인해보니 보현의 비봉산도 얼핏 보인다
-월천고개-
불탄 무덤에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려서다보니 9분 후 산불지대는 끝나고 갈비가 밟히는
송림 아래로 내려서니 금방 봉분은 사라지고「孺人 海州 吳氏」상석을 지나노라니 산수유가
활짝 피어있다
11시08분 내려선 곳에서 1분 정도 올라서니 송림이 빼곡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좀 모호한
봉우리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해보니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살짝 비켜난 상태다
우측으로 틀면서 남서쪽으로 내려서는데 완전히 틀어가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는 모르고 조심스럽게 방향을 잡으며 내리고,
11시18분 능선의 좌우를 상하로 가르는 묵은 산판 길을 가르고 내려서는데 조금 모호하다 산판이
나타날 때 우측으로 조금 더 틀어서 방향을 잡았더라면 하는 것은 나중의 생각이다
우측의 마른 계곡 너머가 마루금의 능선인 것 같은데 그냥 능선이 살아있으니 내려서고,
11시38분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도로 직전이고 우측 바로 옆 무덤들 저 편으로
역시 송림아래 무덤들이 있는 x242m봉이 보이니 마루금에서 살짝 좌측으로 벗어난 상태로
내려선 거다
2차선의 도로를 따라서 몇 걸음 서쪽으로 올라서니 도로 양쪽으로 전신주가 서있는 x242m
바로 아래의 편의상 부르는「월천고개」다
도로 건너 작은 절개지로 올라간다
▽ 해주 오씨 무덤을 지나며 조심스럽게 내려서는 독도주의 지역이다
▽ 242m 봉에서 비켜나서 내려섰다
▽ 월천고개
-318m-
분기봉인 x318m까지 올라서서 휴식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잠시 올라서다가 스마트폰의
배터리 교체를 위해서 배낭을 내린 김에 아침식사도 하지 않았으니 그냥 준비한 김밥 한 줄과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11시59분 출발 초반 가시잡목들이 있는 것 같지만 잠시 후 송림
이 나타나며 청미래 같은 것들에서 해방되는 것 같지만 반소매 차림이라 수시로 비명을 지른다
3분 후 남동쪽으로 틀어서 봉분이 납작한 무덤을 지나 1분여 내려서고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둔덕 같이 올라서니 출발 10분 후 좌측 분기능선이고 남동쪽으로 오르다가 남쪽으로 은근한
오름이다
12시22분 그렇게 수시로 가시에 찔리며 올라서니 잡목들 사이로 억새와 풀들이 자라난
좁은 공터의 x318m 정상이고 마루금은 남쪽 오름에서 서쪽으로 휘어가야하고 반대인 동쪽으로
x206m를 거쳐서「신안마을」로 능선이 분기하는 분기봉이다
몇 걸음 평탄하다가 내려서는 모양이고 중키의 소나무아래 희미하지만 족적은 있고 송림아래
빼곡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가시들이 괴롭힌다
하지만 지형도에 이름을 가진 왕의산을 가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내려서니
12시27분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있지만 예전에는 남북의 사람들이 넘어 다녔을만한 잘록이를
지나고 여전히 서쪽의 오름이다
▽ 318m 정상에 올라서서 북쪽 508m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635m 능선을 본다
▽ 서쪽으로 향하는 송림의 능선을 따라 내리니 잘록이다
-왕의산-
5분 여 올라서니 북쪽 지능선이 분기하고 좌측으로 몇 걸음 틀었다가 왕의산을 바라보며 2~3분
내려서니 역시 옛 소로 흔적의 왕의산 직전 안부고 17분 정도 꾸준히 서쪽-남서쪽으로 올라서니
헬기장인데 남쪽「생화당마을」능선 분기봉이고 1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서니 소나무와
노간주나무들이 어우러지고 아무 특징과 표시가 없는 왕의산 정상이다
이름을 보면 왕의 옷과 연관이 되는데 과연 왕의산은 王衣山은 고려 공민왕이 몽고의 침입으로
안동에서 피난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옷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쉬었다 하여 왕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시야가 터지지 않아 답답한 곳인데 남서쪽으로 약간 시야가 터지는 곳이 있어 산양면
들판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자락은「숭덕지맥」의 능선이 아닐까! 싶다 5분여 지체 후
12시48분 출발
내려서면서 폐 무덤을 지나고 2~3분 내리니 도랑 같이 푹 파여진 잘록이고 북서쪽으로
금방 오르니 우측으로 능선이 분기하고 부드럽게 갈비를 밟으며 4~5분 올라서니 역시 송림아래
특징 없는 x320m 다
북쪽으로 몇 걸음 틀었다가 서쪽으로 내려서니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다
아무튼 이 서쪽으로 이어지는 왕의단맥은 거의 특징 없이 이어진다
13시01분 올라서니 해발 235m 정도의 봉우리고 잠시 잡목사이로 내려서니 다시 송림아래
고만고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 헬기장을 지나자말자 올라서면 왕의산 정상은 평범하다
▽ 남서쪽 산양면 들판을 바라보고
▽ 푹 패어진 잘록이를 지나고, 올라선 320m 도 특징 없다
눈꺼풀이 무겁고 잠이 계속 쏟아지니 오늘 거리가 여유로워서 그런걸까! 잠이 부족해서 그런걸까!
5분 후 다시 송림아래 둔덕 같이 올라선 곳은 북쪽「잇잘마을」쪽 능선 분기봉이고 내려서는 듯
하다가 오르면 금방 남쪽「상위마을」쪽 분기봉이다
마루금은 우측인 북서쪽으로 휘어지며 조금씩 올라간다
걸어가면서도 눈이 감기니 이거 오늘 무슨 일일까?
다시 5분 후 오르면 서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2분 여 내려서고 오름이 이어진다
13시18분 1분 정도 가파르게 오르니 펑퍼짐한 봉우리고 여전히 특징 없이 고만고만하게 능선이
이어진다
5분 후 서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내려서기 전 평탄한 곳에서 막걸리 한잔 휴식 후
13시41분 출발이다
5분 여 남쪽으로 내려서니 방향은 우측인 북서쪽으로 휘며 은근히 올라선 곳에서 오봉산을 향해
내려서야 하는데 능선이 워낙 펑퍼짐해서 조심스럽다
잡목아래 머리를 숙이며 나침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리는데 이 일대 아까부터 그나마 있던
족적도 사라졌으니 독도주의다
14시02분 살짝 오른 곳에서 남서쪽 저 말리 비죽하게 솟은 비조산을 바라보며 하여튼 이 일대는
독도를 주의하며 내려간다
우측 저 아래 오렌지색의 지붕 건물도 보이는 것이 축사일거다
5분 후 완전히 뚝 떨어지니 서낭당 흔적의 안부고 오봉산을 향한 오름인데 좌측으로 습지 같은
것이 보이니 짐승들의 물 마시는 곳 일거다
▽ 거의 특징 없는 능선을 지루하게 이어가고
▽ 14시07분 오봉산 오름 직전의 서낭당 안부 좌측에는 습지가 있다
-오봉산-
습지 저 아래 형천리「고모마을」쪽 골자기가 파고 들어온 곳이고 오름이 이어지고
14시16분 그렇게 올라서니 지도상에 삼각점이 설치된 것으로 표기된 오봉산 정상인데 아무리
여지저기 뒤져보며 살펴봐도 낙엽들을 뒤져봐도 삼각점을 찾을 수 없다
물론 주로 삼각점들이 설치된 나무가 베어지고 그런 형태의 봉우리도 아니다 2~3분 지체 후
우측으로 회룡리「아릇젓절마을」을 보며 평탄하듯 약간씩 고도를 줄이며 내려간다
우측 바로 아래「회룡저수지」일부가 보이고 북쪽의 큰 산들은 공덕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능선들이다
잠시 후 우측으로 분기한 봉우리가 있어 삼각점이 있나! 살펴보지만 결국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14시20분 살짝 내렸다가 올라선 곳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삼각점을 찾아보고,
남서쪽으로 내려서고 저 앞의 회룡저수지 쪽으로 지능선 분기봉으로 오른다
8분 여 올라선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은 지금까지와 달리 상황이 괜찮고 정말이지
한숨 자고가고 싶을 정도로 눈꺼풀이 무겁다 3분 지체
3분 정도 부드럽게 내려서고 둔덕 같이 오르고 다시 내려서니 특징 없는 고만고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 송림 저 위가 오봉산 정상인데 아무리 삼각점을 찾아도 없다
▽ 나뭇가지 사이로 저 앞 비조산이 보인다
-비조령-
14시39분 내려선 옛 소로 같은 곳에서 1~2분 올라서니 봉우리라기보다 둔덕 같은 x198m 다
남서쪽으로 틀어서 고도를 줄이며 금방 내려서고 1분도 걸리지 않아 올라선 봉우리에는
구덩이 파져있다
14시49분 살짝 내려서서 둔덕 같이 오르니 남서쪽에서 서쪽으로 이어가고 비조산이 가깝게
잘 보이는 시야가 터지는 곳이다
3분 정도 올라서니 중장비들이 올라와서 파 헤쳐진 능선들에는 나무들이 베어져 있고
전면 앞으로 해발 250m 정도의 봉우리와 그 뒤로 비조산이 비죽하게 솟아있다
좌측 산 아래로 시멘트의 인공농수로도 보이고 벌판 저편의 집들이 많은 곳은 산양면 소재지인 듯
하기야 언제부터 예천 땅에서 문경 땅으로 접어든 것이다 5분 후 우측 저 아래 회룡저수지 제방이
보이고 좌측아래 큰 비석의 잘 조성된 경주 김공 무덤이 있어 휴식 후 15시11분 출발
1분 정도 내려서니 우측 회룡저수지와 남쪽「마네마을」로 이어주는 푹 패어지고 뚜렷한 갈림길
안부로 내려서고 올라서니 우측 바로 아래 저수지 제방이고 그 앞으로 파란지붕의 건물들은
축사로 보인다
오름은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고 7분 여 올라서니(15시20분) 해발 약 250m의 정상도
역시 평범하다
5분 정도 내려서니 역시 푹 패어진 좌우 넓은 길의 당산나무와 서낭당 흔적의 飛鳥嶺 靈神碑가
있는「비조령」이다
▽ x198m 정상
▽ 파 헤쳐진 지역에서 저 앞 250m 와 비조산이 우뚝 솟아있다
▽ 남쪽 들판 저 편으로 산양면 소재지다
▽ 내려선 비조령
-비봉산-
비조령에서 마지막 비조산 오름길은 뚜렷하다
송림아래 꾸준한 오름이 18분 정도 이어지니 바위지대 한차례 오르고 상당히 가파름이다
15시50분 그렇게 올라서니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좁은 공터를 이룬 비조산 정상이다
비조산은 산양면 부암리 뒷산으로 높이 310.4m이고 옛날 烽火를 올리던 곳으로 전하며 왕의산과
능선으로 이어지고 현리 쪽으로 근품산성이 있는 근품산과 이어지고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했다고 하여 飛鳥山이라 부르며 산양면 부암리와 산북면 약석리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지역 지명 유래-
갈 길이 멀지않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아까부터 무겁던 눈꺼풀을 달래주려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워버렸는데 그런데 정말 심하게 잠이 들었나보다
반소매 차림으로 누웠으니 추위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보니 16시34분이다
40분 이상 잠에 빠졌던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잠시 내려서고 다시 전면의 300m 정도의 봉우리 오름이다
3분 정도 올라서니 봉우리고 남서쪽 송림능선을 뚝 떨어져 내려선다
3~4분 여 후 구덩이가 패어진 곳에는「仁川蔡公 孺人 潁陽千氏」쌍무덤이고 다시 아래는
「仁川蔡公 孺人 安東權氏」의 합장무덤이다
계속 남서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측(북서)으로 잘 흘러내린 능선으로 아무생각 없이 내리다
보니「仁川蔡公 草溪卞氏」가 나타나며 아차! 잘못 내려서는 것을 눈치채고 남서쪽으로 휘어가며
마루금으로 다시 돌아오니 47분이다 몇 분 소요한 거다
▽ 바위지대를 지나고 가파르게 올라서니 비조산 정상에서 잠이 오래 들었다
-근품산-
16시52분 5분 여 내려선 곳에는 북쪽「구룡판마을」남쪽「봉우재마을」을 이어주는 듯 넓은 길이
능선을 가르는 돌무더기의 고개를 편의상「봉우재」로 부르기로 하고 해발 약190m 정도다
남서쪽으로 마지막 x245m 오름의 길도 뚜렷하고 초반 잠시 가파르다가 고개에서 8분 후
좌측사면으로 문패 없는 쌍무덤이 보이면서 북서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능선은 분지 같이
펑퍼짐하며 송림아래 베어진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더미를 이루고 있다
쌍무덤을 또 지나고 2분 여 더 올라선 x245m 정상은 노송아래 단단하게 석축의 담장으로 둘러진
사당이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17시05분)
국립지리원의 지형도에는 단순히 x245m로 표기되었지만 이곳 향토 사람들은 근품산으로 부르며
近品山은 현리 마을 뒷산으로 신라 때 근암성이 있었고 신라 경애왕 4년(927) 봄에 고려 태조가
점령했던 근품성을 같은 해 가을에 견훤이 탈환했던 곳 이란다
사당 뒤 정상의 북쪽으로 금천의「새들보」쪽으로 능선이 분기하고 내가 갈 능선은 남쪽으로
이 사당의 진입로인지! 아주 넓은 길이 송림아래 펼쳐진다
내려서다가 둔덕 같이 한번 오르고 계속 넓은 길을 따라 내려서니
17시14분 능선이 두 가닥으로 나뉘는 듯 하고 좌측사면으로 펑퍼짐한 무덤지대를 끼고
내려서려면 좌측 저 아래 상당히 큰「현리마을」이 보인다
현리마을은 신라시대 때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현청 소재지였고 고려시대 때는 가유현(嘉猷縣)의
소재지여서 현리로 칭하게 되었다 하며 지금부터 약 550여년전에 朴孝昌이란 선비가 개척한
마을이라고도 한다
아까부터 인천 채씨의 무덤들이 많이 보이더니 현리가 인천 채씨의 집성촌이란다
▽ 봉우재를 지나서 올라서면 분지 같이 펑퍼짐 오름에 송림이 좋다
▽ 245m는 근품산이라 하고 정상에는 사당이다
▽ 좋은 송림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 내려서니 배수로고 저 앞 농로를 따르니 금천 건너 운달지맥이 보인다
▽ 금사교를 건너서 마지막 내려섰던 근품산을 바라본다
둔덕 같이 살짝 오르니 구덩이가 파져있고 마을을 겨냥하며 내려서다가 3분 후 마을을 좌측으로
두고 능선으로 내려선다
17시21분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인공배수로가 나타나고 전면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좌측으로 현리마을을 두고 서쪽으로 길게 뻗은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금천으로 향한다
서쪽 저 금천 건너 낮게 이어가는 능선은 운달지맥의 월방산(360m)과 △351.9m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이곳은 2011년 4월 24일 10시~12시 사이에 지나갔던 곳이고 그 때는 이곳을 쳐다보며
지나갔었다
17시26분 농로를 지나서 금천이 흐르는 곳에서 마루금의 산행은 끝난 것이고 우측(북)으로 틀어
금천을 좌측으로 두고 2분 후「錦山橋」를 건너는 것은 예천보다 점촌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후 59번 도로에서 잠시 후 점촌으로 향하는 트럭을 얻어 타고 점촌터미널에서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온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