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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안 이루어진 어머니와 목사님의 합심기도>의 줄거리: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참 기가막힌 말씀 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위한답시고 서점에서 자기계발서나 뒤적거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구하기만 하면 얻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잘못 구하지만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우선 뭘 구해야 할지를 알고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젠 좀 구하는 대로 실제로 얻고 누리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안 이루어진 어머니와 목사님의 합심기도
(약4:1~17)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안 이루어진 어머니와 목사님의 합심기도>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정말 정확하게 연수를 헬 수는 없습니다마는, 저희 어머니와 제가 어렸을 때 다니던 동네에 있던 장로교 통합측 교회의 목사님이 한 가지 제목을 가지고 합심기도를 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를 따라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간헐적으로 나가게 되지요, 그렇게 나가고 그리고 중학교 때 어쨌든 혼자서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부려놓고는 한 20분 걸어가야 되는 교회에 가서 늦게까지 기도하곤 했어요.
그때는 뭘 알아서 그랬는지 하여간 그랬어요.
근데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다 보면, 목사님 말씀이 끝나고 각자 개인 기도를 하게 될 때 실제로 30분 이상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어떨 때는 할머니와 저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던 강대상 뒤쪽에 방석을 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데, 그 기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듣는데 소름이 쫙 끼치는 겁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 이름을 거명하시면서 기도를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에 새벽기도를 가면 또 기도를 하십니다.
또 기도하시고 날마다 기도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 교회에는 나가시지 않았어요, 저기 종로에 있는 초동교회라고 기독교장로회 교회를 나가셨습니다.
교편생활 하실 때, 조향록 목사님이라든지 이런 친분이 있던 분들이 조향록 목사님이 초동교회에서 담임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교회를 나가셨고, 나머지 가족들은 동네에 있는 장로교회를 나갔는데, 교회에 나오지도 않는 저희 아버지 성함을 거명하시면서 기도를 하시는데, 들어보면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입니다, 어머니도.
어머니는 공공연하게 당신의 기도제목들을 가족들에게 얘기하죠.
특히 제가 기도생활을 하고 그러니까 저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어떡하든지 아버지 사업이 잘돼가지고 중단돼있던 교회건축에 헌금도 하고 목사님이 목회활동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도록 좀 풍성하게 목사님께 거마비를 좀 드렸으면 좋겠다, 당시 목사님이 장로님들하고 사이가 안 좋으셨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늘 어머니하고 고민을 얘기하시고 그러시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목사님에게 정말 마음을 많이 주시면서 어떡하든 목사님의 목회를 원활하게 도울 수 있도록 돈을 좀 많이 벌어서 대드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돈 많이 벌면 구제할 수도 있고 선교할 수도 있고 얼마나 좋겠냐?
늘 이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렇게 좋은 의도로 건축헌금, 목사님 활동비, 구제비, 선교비, 정말 아름답고 기가 막힌 명분으로 기도하시고 하시고, 똑같은 명분을 가지고 목사님께서 새벽기도 때마다 강단에서 같이 합심으로 기도하셨는데, 중학교 때니까 벌써 두 분이 합심기도 하신지가 4년이 지났지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있는 집을 팔고 친척이 사 둔 집에서 살았습니다.
제 사촌들을 둘이나 어머니가 거느리시고, 얼마나 힘 드셨겠어요?
그리고 계속 기도하십니다, 집을 팔았는데도 목사님이 계속 기도하세요, 이제 5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났어요,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저희가 달동네로 갔습니다, 친척집에서 사는 것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돼서.
오늘 본문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구해도 얻지 못한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목사님과, 한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어요, 그때 교인이 250~300명 정도 되는 교회였으니까 그게 벌써 40여 년 전이니까 작은 교회가 아니죠, 그 담임목사님과 저희 어머니가 합심을 해서 아버지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명분은 예배당 건축, 이런 좋은 명분들이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구했다고 말하기에는 내세운 명분들이 괜찮은 거예요.
아니, 목사님 목회활동비 드려서 좋은 뜻으로 마음껏, 선교사님들 만나면 도움도 드리고 고생하는 후배 목사님들 만나면 좀 푹푹 집어서 드리기도 하고, 또 노회 같은 데에 가서 어렵게 목회하고 수고하시는 목사님들 모셔다가 식사도 내시고… 얼마나 좋아요?
근데 그렇게 기도한지가 5, 6년이 지났는데 달동네로 갔다니까요.
그게 아직도 마음에 맺혀있어요.
도대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오늘 이 야고보 장로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본 거예요, 자꾸 교인들이 다투고 싸워요, 그런데 정욕을 위해서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위치는 지금까지 진행된 맥락에서 볼 때, 어제 용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용 가는 데에 구름 가고 범 가는 데에 바람 간다’라는 속담이 있어요, 용이 날아가면 구름을 몰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몰려가는 걸 보면 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범이 뛰어갈 때 보면 범 주위에 바람이 일어납니다, 그래 범 가는 데에 바람 간다는 거예요.
여기에 비유하자면 야고보 장로의 말씀은 ‘믿음 가는 데에 행함 간다’ 이겁니다.
근데 그 믿음 속에 행위가 있고, 본문에서 그랬잖아요, 구제에 대한 예를 들면서 실지로 구제하는 행위는 하지 않으면서 말만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면 되겠느냐, 그리고 말 또한 행위의 차원에 속한다고 했어요.
행함에 속하는 게 행위가 있고, 말도 행위에 속하고, 더 깊이 생각, 지혜와 총명이 행함에 속한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믿음 가는 곳에 행함 따라간다, 믿음 가는 곳에 행위가 있고, 믿음 가는 곳에 올바른 말이 있고, 믿음 가는 곳에 올바른 생각이 있다.
오늘 본문은 뭡니까?
‘믿음 가는 곳에 올바른 구함이 있다’ 이겁니다.
구함도 행함 속에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올바른 기도가 있고 올바른 구함이 있다 이거예요.
구하기는 구하는데 정욕으로 구한다는 겁니다.
이 정욕으로 구한다는 말을 다들 어떻게 주석을 달아놓았나 하면,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구하는 거다’ 이렇게 해놨어요.
도대체 기독교 신앙과 관계된 잘못된 개념들과 이해들을 어떻게 바꿔야 될지 모르겠어요.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하는 것이 왜 정욕입니까?
아담을 에덴동산에 만드셨어요, 에덴동산이 기쁨의 동산이에요.
그러면 누구 기쁘라고 기쁨의 동산에다 아담을 만드셨습니까?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구하는 게 정욕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
그러면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하지 않습니까?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하지 않습니까?
만족하지 않은 게 죄고 기쁘지 못한 게 죄에요.
정욕이 뭡니까?
2장 15절에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에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으니라’
욕심이 뭐라고요? 분수에 넘치는 것, 아니면 분수에서 모자라는 것.
다시 말해서 분수에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분수에서 벗어난 것을 구하는 겁니다.
그러면 정욕은 뭡니까?
분수에서 벗어난 것으로 기뻐하려 하는 게 정욕이지, 내가 나 자신의 기쁨을 원하는 게 왜 정욕입니까?
기쁘라고 만족하라고 나 자신이 유쾌하고 즐거우라고, 유쾌하고 즐거운 게 쾌락이에요, 쾌락이라는 단어가 정욕과 연관이 돼서 사용하니까 쾌락이 나쁜 것이라고 인상지지만 말 그대로는 유쾌하고 즐거운 게 쾌락이기 때문에, 유쾌하고 즐겁지 않으면 그게 죄악이고, 그게 왜 죄악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마음을 비워놓은 상태로 만드신 이유가, 채워서 만족하고 기쁘고 즐거우라고 비워두신 겁니다.
배가 고플 때 먹으면 즐겁잖아요, 바로 그렇게 즐거우라고 만드신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가 정욕이냐 하면, 기뻐하려 하는 것 만족하려 하는 것은 죄가 아닌데, 분수에 맞지 않는 대상을 통해서 기뻐하려 하는 이게 바로 정욕이고 이게 죄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비워두시면서 기쁨을 누려라, 만족을 누려라, 행복해라, 유쾌하며 즐거워해라, 이렇게 하고 지으신 거예요.
이게 분수에요.
그러면 그렇게 유쾌하고 행복하고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겁니까?
우리 분수에 맞는 대상이 뭡니까?
어떤 대상을 통해 우리가 유쾌하고 즐겁고 만족하는 겁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의도에 따르면.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으로 기쁘고 만족하고 행복하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분수에요.
그래서 야고보 장로님이 마귀에게 절대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귀는 자꾸,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 안에서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우리를 설득시킵니다.
다 속아 넘어가요, 다 속아 넘어가.
돈이 없기 때문에 지금 걱정이라는 거예요, 속는 거예요.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무슨 얘깁니까? 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온갖 좋은 것과 온전한 선물들은 다 이 세상 밖인 하늘로부터 주어진다는 얘깁니다,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는 그림자가 없는 분,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분이고, 그분으로부터 주어지는 거니까 이 세상에 뭐가 없다고 괴로워하고 불평불만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다 마귀에게 속는 거니까.
그래서 구하는 것은 구하는 건데,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생겨먹은 구조 자체가 지금 그 상태로는 암만 구해봐야 얻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안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구해도 얻을 수도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지금 간음하고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4절에 ‘간음한 여인들아’
이 말씀은 여인들 중에서 간음한 대상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서신을 읽게 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선택받은 교인들에게 다 얘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영이신, 육체가 아니고 영이신 하나님에게 선민은 자녀이면서 동시에 아내입니다.
이사야서 54장에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에게 내가 그들의 남편이라는 말씀을 하셔요, 호세아서 5장에도 이스라엘이 계약을 깨뜨리고 사생아를 낳았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서 3장 31절에서도 하나님이 당신 스스로를 이스라엘 선민들에게 남편이라고 얘기하시면서 ‘이 아내 된 이스라엘이 결혼계약을 깨뜨렸다’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다 여인이에요.
그런데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간음이 뭡니까?
하나님 말고 다른 대상으로 기뻐하려 하는 것.
기뻐하고 싶어 하고 만족하고 싶어 하고 행복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하나님이 넣어주신 욕구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만족하려 하느냐 하는 얘깁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행복과 기쁨과 만족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마음이 채워져야 될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대상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 반드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이게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선물.
그러니 하나님으로 하라는 얘기에요.
근데 하나님 말고 다른 대상을 통해서 이 빈 마음을 채워서 만족하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간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서는 구해봐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9절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자, 우리가 마음에 돈을 집어넣었어요, 돈을 집어넣는 게 믿음이에요, 돈에 대한 믿음.
돈이 있으면 나는 기쁠 수 있다, 만족할 수 있다,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기뻐했습니다, 지금 이 기뻐하는 게 뭡니까? 간음의 현장입니다.
돈이 벌렸기 때문에 기뻐하는 거, 이게 바로 정욕의 실현이고 간음의 현장이라는 거예요.
자식을 마음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내가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살지만 남편 바라보고 살았다가는 인생이 별 볼일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저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잘 길러서 내 인생을 한 번 꽃피워보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돼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마음에 자식을 넣고 그 자식을 잘 길러서 생각대로 일이 잘됐다고 하는 그 사실은 지금 간음하고 있는 거니까.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는 거예요.
돈이 잘 벌립니까? 그러면 근심하라는 겁니다.
‘왜? 도대체 하나님께서 나한테 서운한 게 있으신가? 왜 자꾸 나한테 돈을 주시지? 나 돈 먹고 떨어지라는 말씀이신가?’ 이렇게 근심하라는 얘깁니다.
일이 잘되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러시지? 왜 자꾸 세상일들이 잘되게 하시지? 이런 거 먹고 떨어지라는 얘긴가?’
일본 잘사는 거 보세요, 여러분!
중국 일어나는 것 보세요, 13억 중에서 1억밖에 예수를 안 믿어요.
그래도 전 세계가 빨려 들어가듯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그렇게 지진으로 때려 맞아도 계속 일어나요, 안 믿는데.
그러면 걱정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북 왕국 여로보암 2세 때 북 왕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적 번성기를 이룹니다.
그리고 30년 뒤에 망했어요.
내가 부족하고 죄인인데, 세상일이 다 잘돼요, 다~
그러면 근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
일이 안 될 때는 ‘아,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끌려고 그러시는구나!’
그래서 세상과 벗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하는 말씀을 지금 왜 하는 겁니까?
바로 우리 마음의 빈자리는 하나님만이 들어오셔야 될 자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다른 걸 채워버리면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실 수가 없어요, 하나님만의 자리를 뺏겼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다가 이 세상의 무엇이든지 집어넣고 나면 그게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라는 거예요.
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세상과 벗 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과 벗 된다는 것은 세상과 친밀해진다는 거예요, 가까이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근데 가족, 세상에 속한 것 아닙니까?
손 붙잡고 살아요,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한 회사 동료직원들 가까이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돈, 이보다 더 가까울 수는 없지요.
어떻게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벗 됨이라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가까이 있는데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벗 되지 말라는 얘기는 무슨 얘긴가 하면, 유착하지 말라는 얘기에요.
오장육부가 있는데, 이 장기들이 서로 다 붙어있어요, 틈바구니가 없이 붙어있습니다.
붙어있는데 서로 이개이동을 합니다,
이개이동이라는 게 뭡니까?
이, 격리라고 할 때 이(離)자, 개, 열릴 개(開)자, 이, 움직일 이(移)자, 움직일 동(動).
위와 창자가 붙어있어도, 폐와 심장, 장기들이 붙어있어도, 유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서로 엉겨 붙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붙어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습니다.
세상과는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붙어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어야 돼요.
근데 이게 엉겨 붙어버립니다.
어떨 때 엉겨 붙습니까?
장기 중 하나에 염증이 생겼어요, 그 염증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염증이 생겼던 부분이 다른 장기와 붙은 상태에서 굳어질 때 다른 장기도 제 살인 줄 알고 염증이 회복되는 중에 그만 붙어버립니다, 엉겨 붙어버린다는 거예요, 유착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유착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과 유착된 상태에서 백 날 천 날 기도해도 안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장로님이 깊이 들어가시는 겁니다.
‘간음하지 말라’
마음속에 무얼 집어넣었어요, 그 이유는 마귀에 속아서 교만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교만해졌으니까 마음에 돈을 집어넣고, 교만해졌으니까 마음에 사업을 집어넣고,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런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대통령 자리가 내 마음에 집어넣고 성취하면 행복할 거라는 선악의 판단을 왜 하는 겁니까?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 자리에 섰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마음에 집어넣으면 다 간음의 대상들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을 마음에 집어넣고 현실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게 정욕이라는 얘기에요.
꿈과 비전, 이거 좋아하지 마세요! 그거 다 정욕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3절이나 시편 37편 4절 같은 데서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에 ‘여호와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러면 너희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
또, 빌립보서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이루게 하시느니라.’ 같은 말이에요.
여호와를 기뻐하라, 여호와께서 마음에 들어와서 여호와 때문에 기쁜 겁니다.
여호와 때문에 기쁜 상태에서 소원을 갖게 될 때, 이게 정욕으로 구한 게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심겨졌기 때문에.
새 언약에 대해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내 마음에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루시려고 하는 계획을 소원으로 써주십니다.
그러나 소원이 이루어진 다음에 기쁜 게 아니라, 기쁜 마음에다가 소원을 써주시는 겁니다.
지금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기쁘고 있는데, 그 기쁘고 있는 마음에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과 계획을 써주십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소원하고 구하는 거예요.
그게 다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래서 오늘 마지막에 사업가 얘기를 하잖아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이제 내가 어디에 가서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
이 허탄한 사람아, 네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계획을 세우느냐? 이 얘기에요.
그러면서 한 말이 ‘하나님의 뜻이면 이것을 하기도 하고 저것을 하기도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살라는 얘깁니다.
이게 누리는 거예요, 구속하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 기쁨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루고 싶은 뜻을 기록해주십니다.
그러면 그게 내 소원이 되는데, 그 소원을 기도하고 구하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제는 좀 이렇게 구하고, 이렇게 얻고, 이렇게 좀 누리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4년 5년 동안 합심해서 새벽기도 때 기도를 드려도 안 이루어지는 그런 기도 말고, 우리가 세상 것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간음하는 상태에서 하는 그런 기도 말고, 악을 쓰면서 주여 삼창을 하면서 그렇게 기도할 것도 아니고, 이미 마음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그 행복한 마음에 써주시는 하나님의 계획들이 나의 소원이 돼서 구하는 기도들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얘깁니다.
이게 기가 막힌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구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구하고, 얻고 누리면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먼저, 어떡하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간음하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돼요.
먼저 구할 게 있어요.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소원을 써주셔서 구하기 전에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 주님이 피를 흘리신 것처럼, 내 마음에 세상이 담겨져 있다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주님의 살이 찢기신 것처럼 내 마음이 이 세상과 유착된 상태로부터 끊어져 나와서 이개이동의 상태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내 마음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따라서 아버지께로 가 머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이 기도가 받아들여지고 응답되면서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기쁘게 되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 펄펄 뛰는 마음에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써주시고, 그 계획을 소원으로 삼아서 기도하면 이루어져 나가게 된다는 얘기죠.
이게 바로 가나안 복지요, 회복된 에덴동산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제는 진짜 간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기뻐하는 내 마음에 기록해주신 하나님의 뜻들이 나의 소원이 되어서 그 소원을 따라 기도할 때 다 이루어지는 놀라운 복된 삶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세상에서 음양원리에 사람
에게는 결혼으로 행복을
추구합니다만 하나님과 결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혼인제도를 세우셨음을
봅니다
또다시 마음을 추스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 설교를 올바로 분별하는 기준이 돼서 정말 은혜가 넘침니다... 지난 녹취문 정말 귀합니다!!! 할렐루야!!!!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