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의 네 번째 소식
렘 24:1-10,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 나무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3)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고통과 시련이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미래를 보장한다는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진노와 고통, 고난은 견디기 힘든 삶의 과정이다. 누구나가 축복과 평강을 원하지 고통과 시련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일 때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이제껏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면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지만 당장의 고통과 시련이 힘들어 세상의 조류를 따라 편리하고 안락한 환경과 조건만을 따라 살아간다면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가 되어버릴 것이다. 부드러운 조개 살결에 칼로 쑤시는 듯한 거칠고 딱딱한 모래로 인한 고통 때문에 조개 안에서 끊임없이 액을 분출하여 결국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매 순간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도 미래의 값진 보석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임을 믿는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평강과 축복만이 있다는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맞지 않다. 그 분과 함께 살기에 더 인내해야 되고 더 손해를 봐야 되고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더욱 보배롭고 놀라운 것임을 조금씩이나마 깨달아지는 것 같다. 내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는 더 이상 부인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오한 은혜의 방편이다. 이왕 지고 갈 십자가라면 즐겁고 기쁘게 지고 가리라. 뼈를 썩게 하는 고통만이 나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욕망을 쇠잔하게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 트리부반 대학에서의 네팔어 학습
한국에서 등산을 하면 항상 보게 되는 것이 묘지인데, 묘패에 꼭 학생 누구 누구라고 씌여져 있다. 평생 배우다가 마치는게 인생이다는 진리를 더욱 실감하는 시간들이다. 누구 누구는 하나의 언어도 배우기 힘든데, 그 많은 언어들을 한다고 하면 정말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날 것이다. 아마도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내내 듣다보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리며 두통 증세를 경험한 분이라면 더 더욱을 그럴 것이다. 40 대 후반에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네팔어 학습반에는 60대 중반에 이르는 동급생이 한 분 계시는데, 저와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다. 그 외에도 이곳 네팔에는 은퇴후 실버 선생님으로서 인생 후반전을 의미있게 보내고저 오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분들도 참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의 모습에 부끄러울 때가 있다. 언어는 정말 지식이라기 보다 생활이라는 자세를 갖고 접근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새롭게 용기있게 잘 적응해 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1년 정도의 학습 목표를 갖고 있기에 무엇보다 더 집중하여 좋은 네팔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곳에서 주요 섬김의 대상은 여전히 티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섬기기 위해서도 네팔어를 잘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서남아 대회에 참석하고서
어느 인도 선생님이 태국에 와서는 너무 좋아서 통곡하고 울었다고 한다. 인도의 근무조건이 많이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물론, 그분이 어느 정도 쉬고 돌아가면 좋았건만 거기에 눌러 앉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금번 서남아 대회를 방콕에서 마치고 그대로 눌러 앉은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다. 우리 ㄱㄷ 선생님들은 사명감이 모두 투철하셔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셨다. 모두가 같은 지역이라고 하지만 같은 나라일지라도 스무 시간 훨씬 넘게 기차를 타고 가야지 만날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같은 인도 선생님들인데 마치 먼나라에서 모처럼 만난 양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반갑게 새롭게 서남아 지역에 영입된 저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셔서 정말 다른 단체가 갖지 않은 깊은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매 시간마다 나누는 선생님들의 말씀은 정말 현장 가운데서 깊이 체험된 삶에서 나온 말씀이어서인지 큰 감동으로 와 닿았다. 무엇보다 먼저 오신 시니어 선생님들의 겸손과 섬김은 후배들에게 솔선수범의 모습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머리가 숙여질 정도로 감사하였다. 누구의 기쁨에 하나같이 자신의 기쁨인양 기뻐하고 누구의 아픔에 하나같이 아파하는 모습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모든 선생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주시는 것 외에 다른 기대가 없다. 오늘도 새롭게 방글라데시아로 오게 될 세 분의 선생님과 가족을 위해 손 모은다. 먼저 오셨던 선생님들의 많은 아픔과 수고, 희생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그 땅을 위해 새롭게 신인 선생님들이 팀으로 오게 된다고 한다. 더욱 많은 응원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는 준비와 가족들의 적응을 위해서.
3. 하나님이 예비하신 수연이 학교
저희가 특별히 사실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것이 수연이 학교 입학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거의 4개월의 긴 시간을 보내게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남이 한다고 따라하지 말라는 것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하면 가랑이가 찢어지게 되는 법이다. 자기의 현재 처지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선생님의 자녀로서 현지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만큼 큰 특권은 없다. 그런데, 영어에 목메다보면 한국어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지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물론, 네팔은 이중언어 정책을 쓰기에 현지 학교에 가도 영어는 필수다. 물론, 현지 학교의 비성경적 세계관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하여 타종교의 비성경적 사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성경적인 바른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일에 파묻히면 자녀들의 삶과 사상을 확인하고 지도하기가 쉽지 않다. 가정과 일이 균형을 이루는 삶이 되도록 응원을 요청드린다.
4. 도시 빈민 가정의 자녀들
네팔에 와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도시 빈민들의 삶이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도 집세를 내기에 버거운 삶을 살기에 부모들 모두 노동 현장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산골 마을에서 도시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왔지만 현실은 부부가 일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음을 보았다. 심지어 노동 현장에서 노가다 하는 어린이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물론,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과 매우 흡사하다. 어리지만 소꼴매고 밭에서 김매고, 나무해오고 스스로 밥해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다. 이들의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당장에 가장 가까운 우리의 생활 태도에 호의적인 이웃들 중에서 수연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자녀를 집에 초대해 홈스테이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딸과 함께 숙제를 하며, 놀기도 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자기도 한다. 가정 예배를 드릴 때면 함께 예배에 참석시킨다. 그래서 두 가정을 선별해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 중에는 몸에 이가 있기도 하고 몸에 질병이 있기도 하다. 어떻게 위생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삶을 함께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자녀들의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안에서 한 가정 두 가정이 회복되고 건강하게 자라가도록 하는 것이 지금 저희의 소박한 꿈이다.
5. 티인들과의 계속적인 만남
네팔에 온지 4개월이 지나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티인들에게 조금 관계가 소원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난민촌을 방문한다. 그래도 우리와 말이 통하기에 잠시라도 방문하고 오면 맘의 짐이 한결 덜어져 편하다. 네팔 속에서의 티인 섬김에 관해 계속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묻고 있다. 네팔어로 진행하는 티인 예배 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티인에게는 티어로 예배를 진행해야 할텐데 다소 우려를 갖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한다는 것이 감사하다. 물론, 당장에 필요에 따라 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티인 예배 형태와 내용을 어떻게 갖추어 갈지를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네팔어는 티인 예배를 위해 더욱 예배가 풍성해지도록 보조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특별히 계속해서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위해 손 모은다. 네팔에서의 정치적인 변화도 어쩌면 예배의 내용과 형태를 세밀히 살펴야 할 이유이다. 계속해서 티인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복음이 전달되기를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