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씀)
꽃바구니 대신 약병이 담긴 바구니를
약 먹는거 깜박할까봐
눈에 잘 띄도록 주방 한켠에 두었다
언젠가부터 한병 두병 모아져
갖가지 종류의 약들이 바구니를 채워 가고 있다
돌이켜보니 한창 때는
건강을 도와 준다는 약이
그다지 필요치 않아
약상자에는 소독약 진통제
소화제 반창고 이정도 상비약이 전부
그 밖에 비타민이나 각종 영양제 같은건
나와 상관 없는 줄 알았다
어릴 적 튼실했던 우리 아이들
병원이나 약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
어쩌다 감기나 걸리면
평소에 구경 못 하던 약을 보고는
과자 먹듯 마구 집어 먹어 곤욕을 치뤘다
특히 감기 시럽은 오빠 약인데
감기 안걸린 동생이 저는 안 준다며
얼마나 울고 불고 떼를 쓰는지
하는 수 없이 시럽을 수저에 조금 따라 먹이는
몹쓸 짓을 했는데
이제는 탱탱하게 물이 오른 젊은이가 되어
감기약 따위는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젊은 시절
이웃에서 남편에게 보약을 달여 줬다 하길래
왠지 나도 그래야 할거 같아
요즘에야 간편하게 모두 달여서 주지만
그 때는 옛날 방식대로 주전자 모양의
옹기 약탕기에 약을 달여야 해
물이 반으로 졸아들 때까지 끓인 후
삼베 천에 약을 싸맨 다음
젓가락을 이용해 비틀어 짜냈다
힘들게 달인 보약이건만
먹는 사람이 미꾸라지라서
협조를 안해줬다
탕약은 짓는 사람 달이는 사람
먹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야 효험을 본다는데
저녁에 마시라고 주면
자다 소변 마려워 깬다 핑게
아침에는 얼렁뚱땅 출근한다 도망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순순히 먹질 않아
속 터지게 했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에서 받은 스쿠알렌 로얄제리 비타민등은
결국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을 넘기다 버려야 했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달라졌다
비타민도 보이면 먹고
눈에 좋다는 보조제도
팩에 담긴 녹용도 스스로 찾아
순응하며 잘 먹고 있는 달라진 모습이
어색하면서 나이들었다는
쓸쓸한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친구의 팔순 넘은 시부모님은 식사 후에
두 분이 동시에 약을 한 웅큼씩 드시는 일이
중요한 일과라서
꼭 물을 달라고 하시는데
그런 두분 모습이 보기 싫다 하더니
이제 그녀 부부도
혈압약 부터 이약 저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이 흉 봤던 시부모님과
어쩌면 그렇게 자기 모습이
닮았냐며 쓴 웃음을 짓는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요즘에는 모임에서 기념 선물로
건강보조제나 영양제를 종종 받는다
밥은 안먹어도 약은 먹어야 하고
약 먹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씩 내가 약을 먹었나 안먹었나
생각 나지 않아 낭패인 적도 종종 있다
여행 떠날 때도 가방에 약 부터 챙겨야 한다
날마다 아침에 먹어야 하는 약
휴일에는 이랬으면 좋겠다
'국경일과
일요일은 약 먹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