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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km. 4 시간. 1만4천보.
고산역(60) ~ 천을산(150) ~ 우산(120) ~
매호천(40) ~ 고산서당(50) ~ 고산(90) ~
욱수천(40) ~ 사월역(60).
산을 3개 넘고 개울을 2개 건넜다.
철로를 2개나 지났다.
장대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것도 보고,
ktx가 쏜살같이 달리는 것도 봤다.
거대하고 웅장한 쇠덩어리 소리가 주는 위압감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기차 처음 봤을 때 기분이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했다.
장갑없이 다녀도 손이 멀쩡했다.
하나도 시리지 않았다.
정말 반가운 얼굴이 다 모였다.
보름산님. 반야행님. 봄햇살님. 꽃비님. 야월님.
마일도님. 모과나무님. 산사랑님이 참석하셨다.
너무 반가워서 전부 다 한번씩 껴안아주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서 그 마음 꾹 참았다.
반야행님. 꽃비님. 모과나무님이 오랜만에 나오셨다.
보름산님. 봄햇살님. 야월님. 마일도님. 산사랑님은
이번이 천을산 숲길 두번째다.
천을산 매력에 완전 매료 되셨나보다.
오늘 이렇게 좋은 길을 가능케 해준 길동무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 후기를 적는다.
시지는 원래 경산군 고산면이었으나,
1981년에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산군에서 분리되어 대구시로 편입되었다.
경산 사람은 이것을 늘 아쉬워한다.
현재 시지 지역 관할 행정동은 고산2동이다.
행정동은 행정 편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역이다.
등기부나 지적도는 법정동 주소를 사용한다.
범어동 만촌동 시지동은 법정동이고.
범어4동 만촌3동은 행정동이다.
서울 신림동은 법정동 하나에 인구가 28만명.
그래서 신림1동부터 11동까지 행정동이 11개인 때도 있었다.
법정동 인구와 면적이 너무 비대하면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잘게 쪼개고, 반대로 인구가 적으면
법정동 몇 개를 뭉쳐서 1개의 행정동으로 만든다.
같은 수성구 안에 있지만 시지 지역은
범어동, 만촌동, 수성동에 비해
교육, 집값, 교통 등의 인프라 측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이들 동네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릴 만큼
소득과 자산이 전국 순위 안에 드는 부촌이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대구시였던
이들 수성구 원도심 주민들은
시지를 은근히 깔보고 무시하는 편이다.
서울은 지방을, 서울 강남은 강북을 업신여긴다
편을 가르고 편먹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다.
산이 지니는 맛과 멋은
그 높이나 산세(山勢)와는 무관하다.
산이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골이 깊으면 깊은 대로, 얕으면 얕은 대로,
자신만의 품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널리 이름난 산만 산인 것은 아니다.
도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산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런 산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면이 있어
동네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제 몫 다하는 산,
가까이 있어 언제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
높거나 산세가 험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포근하고 친숙하고 다정한 산,
오랜 친구처럼 언제 찾아가도 아무 말 없이
무덤덤하게 맞아주는 산,
항상 거기에 그대로 있어서
모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산,
천을산이 바로 이런 산이다.
천을산 유래는 따로 알려진 것이 없다.
천을(天乙)은 천일(天一)과 같은 말이다.
천일은 북극성 근처의 별인 천일성에서 나왔다.
천일성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며
하늘을 주재하는 천제(天帝)다.
천을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 1km 끝에
우산(120)이 있다. 매호천 바로 옆이다.
산을 앞에서 보면 암소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보여서
우산(牛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산에서 정동(正東)으로 1km 떨어진 들판에
높이가 채 100m 안되는 고산(孤山)이 있다.
고산면의 지명 유래가 되는 곳이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 홀로 솟은 산이라는 뜻이다.
'높을 고'가 아니고 '외로울 고'(孤)’를 산 이름에
붙인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고산이 있는 동네 이름이 성동(城洞)이다.
고산에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여겨지는
토성이 있는데 이것이 성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다.
성산봉대(城山熢臺), 고산서당 등 사적이 있다.
고산 서당은 퇴계의 수필(手筆)을 받았다.
재(齋)는 ‘고산(孤山)’, 문(門)은 ‘구도(求道)’다.
‘求道’라는 편액은 지금도 남아있다.
천을산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세를 보인다.
천을산(150) - 우산(120) 능선 바위 덤 밑으로
가천역이 있다. 영천 가는 대구선 시작점이다.
화물 전용역으로 2천년대에 신설되었다.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간다.
가천역 너머로 금호강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골짜기가 2개 나있는데,
한 곳에는 증심사 절이 있고 다른 곳에는 서당못이 있다.
시지(時至)라고 하는 지명의 어원은
시지원(時至院)에서 비롯되었다.
옛날부터 이 지역은
서울-안동-대구-경산-청도-부산을 잇는 국도가 통과하는
교통요지로서 시지원(時至院)이라는 院이 설치되어 있었다.
때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로 시지(時至)라고 했다.
조선시대 때 지방으로
출장하는 관원이 이용하도록
전국 주요 길목에 설치한 숙박 시설을
‘院’(원)이라고 했다.
서울시 이태원동, 이천시 장호원읍,
세종시 조치원읍, 남양주시 퇴계원읍 등의
지명에 그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한자로는 역참(驛站)이다.
버스 안내판에 정류소 의미하는 글자로
한자 참(站)이 나온다.
이번 정류소는 중국어로 本站이다.
영어는 this stop이다.
시지동은 옛 경산군 고산면의 중심지였다.
옛날 면사무소 자리에 고산2동 주민센터가 있다.
고산면은 경산에서 대구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도로 양쪽에는 포도밭과 딸기밭이 그득했다.
지하철이 놓이기 전에는 반월당 경유하는 75번,
동대구역 가는 1번 버스에 콩나물처럼 실려 다녔다.
눈 오는 날 담티고개에선 버스를 뒤에서 밀었다.
시지 남쪽은 500~600m에 달하는
유건산, 대덕산으로 막혀있다.
천을산 북쪽은 금호강과 철도가 가로막고 있다.
동쪽은 경산시 방향으로 넓게 트여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시지동 서쪽은
최근에 수성알파시티가 개발되었고
연호동도 법조타운으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마지막 남은 군부대마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다시 한번 상전벽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유허비각 앞에 아산 장씨 덕산재가 있다.
아산 장씨. 밀양 박씨 문중 재실이 천을산 주변에 있다.
덕산재와 솔일재다.
밀양박씨 재실 솔일재
정다운 길벗님. 천을산 입구에서 한컷.
천을산 정상.
고산초등학교를 병풍처럼 감싸 안고
나지막이 자리 잡고 있는 천을산은
해발 150m의 야산이다.
새해 첫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천을산을 찾는다.
이곳에서 수성구 해맞이 행사가 해마다 열린다.
천을산 정상부
안심 부근의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대구 동구의 광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좌측은 율하. 우측은 동호, 중앙부는 반야월 중심,
그 뒤로 뾰족한 초례봉이 보인다.
비로봉. 동봉. 관봉. 환성산도 잘 보인다.
용암산성 대암봉 요령봉 능천산은 보너스다.
절벽아래 가천역과 100미터 이상 표고차가 난다.
북쪽으로 나있는 전망대가 적어도 4개다.
만촌동 두리마루숲길과 차이가 너무 많다.
앉아서 쉴 만한 정자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두리마루숲길에서 번듯한 정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정표. 안내도도 천을산은 깔끔하고 알기쉽다.
두리마루 숲길에는 수십번 다닌 사람 눈에도
헷갈리게 그려놓은 안내도가 있다.
볼 때마다 천불이 난다.
천을산은 야자매트. 나무계단. 맨 땅 걷기.
세 개중에 하나 골라서 자기 입맛대로 걷도록 해둔 구간도 있다.
운동 체육 시설도 천을산엔 돈을 쏟아 부은 태가 난다.
두리마루 숲길 구조물은 썰렁하고 낡았다.
어르신들이 집에서 한개 씩 가져다 나른 의자.
여기저기 나뒹구는 플라스틱 훌라후프.
나무 지팡이. 손으로 짜맞춘 역도기.
비닐 장판으로 비가림한 오두막.
언제 폭삭 주저앉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점심 먹었던 기억도 있다.
들이치는 비바람 피할 요량으로
비닐 둘둘 말아둔 곳도 있다.
50년전 풍경이다. 왠지 눈물이 난다. 짠하다.
천을산 코스는 북쪽 능선이 1km. 전체 30만평.
연호동과 이천동. 만촌동에 걸쳐있는
두리마루숲길은 200만 평. 10km 넘는다.
두리마루숲길을 안마당 처럼 다니시는 분들은
자기 마을 숲길이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만촌동 동네 이름 그대로 태만하다.
점잖은 것인지 바보스러운지 모르겠다.
내눈엔 미련해 보인다.
재산세를 3배 정도 내면, 주민 요구 2배 들어주기는 쉽다.
우는 아이 젖 한번 더 물린다는 말도 있다.
많은 돈 안 드는 먼지 떨이기. 벌레 퇴치기. 수세식 화장실.
최소 5개씩은 추가로 필요하다.
보름산님이 배낭에 안주와 술을 넣어 오셨다.
분위기 좋아서 기분 내어 동동주를 2잔 마셨다.
반야행님은 찰떡을. 모과나무님은 사과를.
산사랑님은 호두과자를. 봄햇살님은 삶은 감자를.
아이고 하도 많아서,
바라바리 싸들고 오셔서 기억도 다 못해내겠다.
식품을 먹은 게 아니고
따뜻한 정성을 받았는데
당연히 머리 속에 박혀야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기억력...
주시는 것 열심히 받아 먹었다는 것만 머리속에...
아 중요한 것.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
서병장님이 손수 제작해서 참석자 모두에게 주신 것.
이름표 태그다.
150 ~ 120 ~ 130 ~ 100 ~ 120 ~ 80~ 120.
1km 안에서 북쪽 능선의 높이 변화다.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간다.
내려갔다가 또 곧바로 올라간다.
호흡이 빠르다. 정신 차릴 여유없이 몰아부친다.
길게 호흡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이게 야트막한 동네산이 가지는 장점이다.
나무계단 쪽에서 야자매트길 선호하는 분들을 바라보았다.
7대2로 갈렸다. 야매파가 7명이다.
북쪽 능선에서 제일 낮은 곳이다.
고산중학교 쪽으로 빠지면 서당지가 나온다.
서당지 아래는 주말농장이 활발하다.
서당지는 저수지 주변 주말농장 물 공급원이다.
우산 올라가는 경사길.
우산 꼭대기에서 런던 지하철 역사를 꽃비님에게 들었다.
1860년대. 지금부터 160년전.
고종 즉위하고 대원군 섭정기.
증기기관차가 모는 지하철이 런던 시내를 달렸다.
우리나라는 1975년.
서울역과 시청, 종로를 지나는 1호선이 제일 먼저다.
영국 런던 지하철은 'Subway'나 'Metro'로 대신
'Underground'나 'Tube'라고 하는 것이 좋다.
영국인들은 'Subway'라고 하면 샌드위치 체인점인
써브웨이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당시에는 전동차가 없었다. 당연히 증기기관차 매연 때문에
말만 지하철이지 철로 위가 뻥뚫린 형태였다고 한다.
엄마산 옆에 붙어있는 송아지산 꼭대기.
농막 뒤에 사나운 거위가 산다.
우산에서 매호천으로 내려가는 경사지.
조금 비탈지다.
철로 너머 비닐 온실 '생각을 담는 정원'에 가봐야 하는데.
그 날 깜박했다. 빼먹은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매호천.
대덕산 청계사 물이 이곳으로 흐른다.
조금 더 가서 금호강으로 합류한다.
오른쪽이 우산.
ktx 철로 밑
캠핑카 캐러밴이 수북하다.
매호천 건너 고산 가는 길.
고산 입구
↓남천
이 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부 지방이다.
중국 이름은 남천(南天)인데 중국명 그대로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행운목으로 부른다.
재난을 피한다는 일본말과 남천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에
추울수록 더욱 발갛게 잎에 단풍이 들어
꽃처럼 화사한 빛을 발한다.
붉은 열매와 빨간 나뭇잎은
흰 눈에 덮여도 그 붉은 빛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철 조경수로 인기가 높다.
고산은 높이가 100m 안된다.
영어 대문자 H 형상을 하고있다.
산기슭에 이런 과수원이 많다.
고산서당 앞 배수펌프시설.
전각 복구해 놓은 걸로 착각하기 쉽다.
고산서당은 대원군 때 철폐되었고
아직 미복원 상태로 있다.
느티나무.
정확한 수령은 모른다. 적어도 300년은 넘었다.
고산서당 설립 연대에 심었다면 500살이다.
옛날부터 마을 입구에 심는 정자나무로 느티나무를 심었다.
나이가 500살, 800살, 천 살이 넘는 느티나무도 있다.
높이 30m에 이를 정도로 크게 자라면서
나무 형태까지 아름다워 사람들이 매우 아끼는 나무다.
특히 넓은 그늘을 드리워 정자나무로 사랑받았다.
느티나무 밑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는 장소였다.
느티나무는 예부터 마을을 굽어보는 자리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당산나무 구실을 하였다.
노거수는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구 팔공산 아래 내동에 500살 느티나무가 있다.
생장 속도가 빨라 늙은 티를 내는 나무로 보인다고 하여
‘느티’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
느티나무의 묘목은 어릴때는 티가 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수려한 모습이 되어 간다는
‘늦티나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
멀리서 보아도 느티나무인 줄 짐작할 수 있어
늘 티를 내는 나무라는 뜻의 ‘늘티나무’가
‘느티나무’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산서당에서 배운대로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창의하신 선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고산서당 뒤쪽으로 올랐다.
깃발도 처음길이라 살짝 긴장하였다.
해는 떨어지려하고
좋은 길은 어디로 숨었는지 발자국만 보이는데.
마음만 급했다.
초조한 기색 안보이려 애를 써도
눈치가 3백단 대구방 회원들 촉은 못 피한다.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눈앞에 넓은 길이 똬악.
얼굴이 밝아지고
행복감이 밀려왔다.
산 타는 맛은 바로 이 맛이다.
짧게 끝내야 '이것 재미지다' 라고 한다.
철망을 넘었다.
이쯤이 고산 정상.
야트막한 산에 밭을 일구어 정상부근에 과일 나무가 많았다.
천년 세월을 버텨낼 토성은 없다.
농부가 밭을 만들다보면 작은 둔덕같은 토성은 쉽게 없어진다.
고산을 무사히 내려왔다. 오후 4시반 정도였다.
성동 마을을 지나고 있다.
욱수천. 욱수지와 욱수골물이 흐른다.
솔밭정 만보정 욱수정에 떨어진 빗물이 여기로 모인다.
사월역 바로 직전.
오늘 참석 해주신 대구방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