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지맥 4구간 2013. 5. 5 (일) 산길 : 오실고개~위천 사람 : 조진대 무심이 조은산 거리 : 10.4km 구간거리 오실고개~7.4~170봉(큰골말냉 갈림봉)~3.0~쌍계천 / 10.4km Cartographic Length = 11.6km Total Time: 04:00 신산경표 초판에는 선암지맥의 끝을 큰골말냉(259.4m)을 지나 대량교로 잡았었는데 개정판에서 쌍계교로 수정이 되었다. 대량교쪽은 산줄기가 물을 만나기까지 가장 긴 능선이기는 하나 합수점이 아니라, 보다 분수령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한 쌍계천이 위천을 만나는 쌍계교로 수정이 된 듯하다. 대량교와 쌍계교로 갈라지는 분기봉인 170봉에서 쌍계교까지는 3km, 대량교는 8.8 km. 큰골말냉으로 가는 길이 6km 가량 더 길다. 5번국도 군위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휴게소 뒤쪽 중앙고속도로를 건너는게 일이다. 휴게소 우측(북)에 무공수훈자전공비가 있고, 그 우측에 있는 수렛길로 들어가면 고속도로 아래로 뚫린 굴다리가 있다. 차는 지날 수 없고 보행은 충분하다. 굴다리를 지나면 과수원 길을 따라 마루금에 복귀가 되고 ×224봉을 향해 오른다. 무공수훈자전공비가 나란히 둘이 있는데, 왼쪽은 월남참전, 오른쪽은 6.25참전 전공비다. 두 비가 나란히 있으면서 올라가는 계단은 따로라. 즉, 위에서는 서로 통하지 않게 되어있어 두 군데 다 헌화라도 할라치면, 계단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야 되는 구조다. 마치 성씨가 다른 문중의 묘역처럼 울타리를 두른 셈이다. 전공비가 어찌되었든, 긴 밤 늘어지게 자고난 우리는 군기도 그만큼 늘어지고, 또 띵가묵기 요령이 발동이 되어 군위휴게소 대신 224봉 너머 있는 중북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굴다리로 돌아 오르는 거리를 치면 중북고개까지 1.9km 가량 되는 거리를 빼먹고 시작이다. 06:35 중북고개 06:55 △149.5m 07:00 중북마을 07:28 ×204 08:30 배나무밭 안부 08:40 큰골말냉 분기봉 09:34 과수원 울타리 10:04 도암2리 삼거리
쌍계천의 새벽
허리가 휘어지도록 얼마나 잤던지 알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어제 저녁 강 건너편에 하우스 하나 지어놓고 낚싯대 드리우던 아저씨는 아직도 그 자세다. 이 물에 뭐가 있다고, 밤 새 뭘 낚았는지 모를 일이다. 강물 위로 물안개 피어 오른다만 똑딱이로 담아내기에는 무리다. 사모님이 끓여주신 된장국에 밥 말아먹고 차를 장천교 가까이 이동했다. 오전수업으로 끝날거 같아 점심은 없다.
중북고개
중북고개 (135m)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 중북마을에서 5번국도로 나가는 고개. 시멘트 포장길이다. 어제와 달리 활짝 갠 날씨에 해는 벌써 짱짱하다. 첫봉 찍고 바로 내려와야 하므로 서쪽 아래로 보이는 중북마을로 더 들어가 -더 띵가묵고- 다음 도로에서 시작해도 되겠다만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니 올라가보자.
묘터를 지나 수렛길로 10분도 안되어 200m쯤 되는 첫봉 꼭대기는 바닥이 암반이다. 우측으로 넘어가는 길도 뚜렷하나 중북마을은 왼쪽으로 ‘급좌틀’이다. 5분 내려오니 잘 닦인 묘터, 문패는 교장절강장공이시다. 혹 조선시대에 교장이란 관직이라도 있었나 싶어 자세히 읽어보니 의성, 군위 일대에서 교장을 역임하다가 1988년 정년퇴임하셨다... 현대의 학교장을 조선시대로 치면 봉정대부(정4품)쯤 되지 않을까 싶다
200봉
교장선생님묘
△149.5m
149.5m (△의성457) 교장선생님 묘 바로 아래 삼각점이 있고 사각의 석물이 있어 살펴보니 ‘大明壇’이다. 절강장씨의 시조인 장해빈(張海濱 1575~1657)이 고국 명나라를 잊지 못해 뒷산에 대명단을 쌓고 모국(중국)을 향해 절했다고 한다.
절강장씨(浙江張氏)의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중국(中國)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의 속현인 오강현 사람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장군으로 와서 울산의 증성(甑城) 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고향인 절강을 본관(本官)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대명단
대명단은 대구 대명동에도 있고 성주군 용암면 대명동에도 있다. 위의 절강장씨 시조 장해빈은 부상을 당해 귀국을 못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쪽(대구, 성주)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임진왜란의 2차 전쟁인 정유재란(1597~1598)에 구원병으로 조선에 출정한 명나라 장수들중에서, 명나라의 쇠퇴함을 알고 스스로 귀국을 꺼리고 조선에 정착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정권이 바뀌면 직전 권력이 하루아침에 팽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 귀국을 늦추면서 본국의 돌아가는 추세를 관망하다가 결국은 눌러 앉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결국 명나라는 1644년 누루하치에 의해 멸망하고 청나라가 건국이 되는데, 그 동안 조선에서 대명단을 만들어 명의 부흥을 기원했다는 부분은 일맥상통이다.
중북마을(中北) 마을길따라 내려가다보니 마루금 트랙에서 조금 벗어난다마는, 논밭에서 일하며 보는 눈도 있는데 남의 과수원 뚫고 들어갈 일이 아니라 점잖게 길 따라 올라갔다. 중북마을의 뒷능선인 셈이다마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것이, 전문용어로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한다지.
마을을 가로질러 대명단을 내려오면서 봤던 건너편 임도로 올라가면 커다란 물탱크가 있고 이후는 비포장이다만 넓이나 바닥이나 승용차도 다니겠다.
우측 숲이 터진 사이로 골프장 그린이 보인다. 봉양면에서 본 간판 [엠스클럽CC]다. 넓은 길로 밋밋하게 오르다가 200쯤 되는 봉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며 큰 길은 왼쪽으로 가고 좁은 우회전이다. 어제 헤어졌던 의성군계를 다시 접하게 된다.
×204봉에 일렬횡대로 나란히 앉아 20분간 쉬었다 간다. 10시쯤이면 산행이 끝날거 같아 서두를 일이 없다. 마을에서 가까운지 거름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의성김공묘를 지나면 능선 왼편으로 넓게 벌목이 되어 있다. 이쪽 저쪽 비탈 전체를 벌목하고 나무젓가락 만한 묘목을 심었다.
엠스클럽CC (골프장)
×204봉에서 일렬횡대로 정렬~!
벌목지
벌목이 끝나는 210봉을 우측으로 질러가면 다시 울창한 수림속으로 들어간다. 앞서 가시던 선두대장님이 주춤하는데 고라니 한 마리 휙 지나간다.
작은 비석의 贈가선대부경주이공에 이어 경주최공묘가 이어진다. 고문님이 사모님더러 절 올리고 가잔다. 사모님이 경주최씨라. ×236봉을 지나고 우측으로 비안면계를 만난다. 선암지맥의 마지막 면이 된다.
贈가선대부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종2품의 관직이고, 그 앞에 붙이는 贈(증), 또는 追贈(추증)은 관료의 사후에 직급을 높이는 일, 또는 관직 없이 죽은 사람에게 사후 관직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벼슬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아들과 동일한 품계와 벼슬이 추증되며, 할아버지는 1등급, 증조부는 2등급 아래로 추증된다. 현직에 있는 아들이 승진할 때마다 계속 추증된다.
하얀 연기는 농약이다.
배나무밭 안부 (125m) 잠시 길이 잡목으로 어수선하더니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는 곳은 배나무 과수원이다. 한참 농약을 뿌려 대더니 우리를 보고는 기계를 끈다. 왼쪽 대흥리 농암저수지에서 비안면 장암마을로 넘어가는 묵은 고개다.
장암마을 고개
×170 분기봉
분기봉(170m) 고개에서 10분 오르면 지맥이 갈라지는 분기봉이다. 리본 여럿 걸린 왼쪽은 군위군계를 따라 큰골말냉(△259.4m) 지나 대량교로 가고, 올라선 정면(북)은 위천과 쌍계천의 합수점인 쌍계교로 간다. 별 다른 특징은 없고 왼쪽 대량교 들머리에 묘가 보인다. 선답자들의 리본은 거의가 큰골말냉쪽으로 걸렸으나, 우리는 신버젼 대로 쌍계교로 간다.
큰골말냉은 8.8km, 쌍계교는 3km
가도마을 고개 - 1
170봉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군위군계에서 벗어나면서 온전히 의성군 비안면으로 들어간다. 수렛길 따라 3분 내려오니 시멘트길이 넘어가는 가도고개다. 우측 아랫마을이 가도마을이라.
160쯤 되는 봉을 넘어가면 다시 시멘트길 고개인데 역시 가도마을에서 올라온 길이다. 건너 우측으로 나있는 수렛길따라 오르고 ×184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간다.
가도마을 고개 - 2
×184
과수원 울타리 봉분에 잔디가 하나도 없이 무너져 가는 민둥머리 쌍묘를 지나 왼쪽으로 휘돌아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마루금으로 보이는 우측 비탈로 내려서려 하나 철조망 울타리가 가로 막는다. 사과 과수원이다. 틈이 없나 이리저리 기웃거리니 과수원 안에서 개가 짖어대고, 사람이 내다본다. 쌍계교쪽 길을 물으니 직진해 더 내려가면 길이 있단다. 주인이 빤히 보고 있는데 울타리를 넘을 수야 없는 일이고, 과수원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 마을에서 올라 온 길을 만났다.
과수원 주인 "저짝으로 돌아가슈~"
임도 지형도에 표기된 쌍계교에서 산으로 올라 온 임도 끝지점이다. 도암리의 사과밭이 넓게 펼쳐지고 멀리 28번국도 장춘교 너머로 위천과 쌍계천의 합수점이 보인다. 고추밭에 일하던 농부가 심심했던지 자꾸 말을 건다. 귀농도 땅이 있어야 할꺼 아니냐 물었더니 주위에 노는 땅이 얼마든지 있고, 자기도 700여평 밭을 년간 30만원에 임대를 했단다. 국고 지원 받아 하우스도 짓고 자두나무도 500주 심고... 들어보니 정부미 30년 보다 훨씬 낫구만. 당장 사표내고 여기로 와야겠다.
28번국도 장춘교 너머로 합수부가 보인다
도암2리 입구
도암2리 삼거리 (60m) 위천과 쌍계천의 함수점은 장춘교 너머에 있겠다만 차를 대놓은 여기서 지맥 산행을 마친다. 춘산면 금오리 사금령에서 발원하여 춘산 가음 봉양으로 흐르는 쌍계천(雙溪川)은 사곡면 사곡령에서 내려 온 남대천 물을 보태 여기 장천교 아래에서 선암지맥 뱀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팔공산 북사면 물을 다 모으며 구비구비 휘돌아 온 위천을 만난다. 보현지맥에서 분기한 선암지맥은 우로 쌍계천을, 좌로 위천을 흘려보내며 여기까지 와서 맥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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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