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에 이직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자연히 다양한 회사의 분위기도 겪었다.
첫 회사는 정말 80년대 처럼 계급을 나누고, 업무 시간외에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각박한 분위기였다.
쉬는 시간이라는 것도 존재해야하는 것인데, 그들이 합법적으로 쉴수 있는 시간은 담배를 피러 나가는 시간 뿐이었다.
혹여나 동료들끼리 사적인 대화를 하거나 하하호호 떠들면 곧바로 부장이 화를 냈다. 회사에서는 업무 하는 곳이고, 떠드는 곳이 아니니,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라고 말이다. 그런 곳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었다.
'우리' 그러나 반대로 또 생각해보면 어울리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우리회사가 잘되려면 우리가 모두 잘되려면 그리고 우리 회장님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하면서 집단의식을 강요했다.
두번째 회사는 여자들이 대부분인 학습지 회사였다. 학습지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전에 회사와는 다르게 화목한 분위기였다.
회사를 1주일 정도 다니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생각했던 화목한 분위기는 함께 있을때만이었고, 뒤에서는 서로를 헐뜯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습지 교사라는 특성이 프리랜서여서 였을까? 경쟁상대로 서로를 보았고 서로를 싫어했다.
이런 곳에서도 '우리'는 존재했다. 회의시간이 될때마다 팀장이 모두를 모아놓고 항상 강조했다.
'우리선생님들' '우리회사', '우리아이들' 이라고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단어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학습지를 배우는 아이들이 왜 우리 아이들인가? 내가 낳은 아이도 아닌데 왜? 라는 의문이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우리 아이들'이라는 친근한 말들 속에 진짜 뜻은 '우리 호구들'이라는 속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모른척 하기도 힘들었다.
세번째 회사는 가족회사였다. 딸과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건축회사였는데 이곳에 직원으로 들어가게되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앞뒤가 다르지도, 삭막하지도 않은 정말 가족같은 화목한 분위기였다. 일은 많았지만 제일 '우리'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우리회사 정말좋아.' 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정작 회사안에서는 '우리'라는 말을 가장 사용하지 않은 곳이다. 정확하게는 가족처럼 잘해주지만 진짜 우리는 가족이 될수 없음을 알려주는 듯 선을 그었다. 정이 들었던 마음과 다르게 선이 그어지는 것을 본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가족회사의 가족은 그들이기에 나는 '우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